평화군축센터 파병 2003-03-21   644

굉음과 폭격 속에서 우리는 야만의 전쟁을 기록하고 있다

이라크평화팀 활동가의 생생한 전쟁 증언

2003년 3월 20일 목요일 바그다드 현지 시각 새벽 5시 34분 미국의 첫 공습이 시작됐다. 공습 시작 이후에도 바그다드에 머물며 난민구호활동을 벌일 한상진 씨 등 이라크평화팀 3명을 남겨두고 요르단 암만에 와 있는 임영신 씨는 우울한 마음으로 현지 전쟁상황을 전해왔다.

▲ 사진 한겨레신문 임종진 기자

3월 20일 새벽 4시. 요르단의 새벽, 전쟁이 터졌다며 다급히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이 깼다. CNN은 이미 마치 전쟁쇼를 보도하듯 폭격의 현장에서 안전한 장소들을 찾아 바그다드의 하늘과 텅 빈 도심, 터져 나오는 굉음들을 침략자의 얼굴을 뻔뻔히 가린 채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CNN의 화면 너머 바그다드의 하늘을, 우리가 걸었던 그 거리들을, 아직도 손에 온기가 가시지 않은 친구들이 잠들어 있을 집들을 본다. 화면 속에서는 이미 그들의 미사일이 바그다드 항공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고, 부시는 지금 평화를 위해 전쟁을 해야할 때라고, 사담 후세인의 목을 베어내야 할 때라고 낮은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위선자의 표정은 언제나 진실을 감추고 있듯 전쟁광 부시의 표정도 슬픔이 배여 있다. 그의 간악한 표정을 보니 내내 가슴에 감고 있던 동료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세 사람의 동료들을 남겨두고 넘어온 국경

▲ 사진 한겨레신문 임종진 기자

한상진 유은하 배상현. 이라크평화팀 세 명은 바그다드에 남았다.

그들은 이 전쟁을 파괴당하는 자의 눈으로, 미국의 눈이 아닌 이라크의 눈으로 기록을 하기 위해 남은 것이다. 무엇보다 이라크 사람들과 함께 이 전쟁을 고스란히 겪으며 모든 생명의 소중함을 다시 깨우치고자 한다. 평화를 위해 전쟁 통에 목숨을 걸고 묵묵히 야만의 전쟁을 목도하고 있는 동료들을 두고 오니 마음이 무겁다.

48시간 안에 망명이든 전쟁이든 한 가지를 택하라는 부시의 성명을 듣던 우리는 그 48시간을 4시간 남겨두고 국경에 도착했다. 그 짧은 시간 사이에 국경 택시는 한 대당 750달러 수준에서 한 좌석당 450달러(대당 2000달러) 수준까지 뛰었고 국경엔 이라크를 떠나는 사람들의 행렬이 조금씩 길어지기 시작했다.

이제 이라크 국경 너머에 남아 있는 한국인은 세 사람의 평화 활동가, 그리고 분쟁전문 기자 조성수 씨뿐이다. 모든 언론사가 떠난 그 땅에 그들이 남아 있는 한 우리는 요르단에 머물 것이다. 미국이 침공한 이라크의 실상을 똑똑히 바라보고 기록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금 한국에 돌아가지 않고 이곳에 머물고 있는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평화의 인사

▲ 사진 한겨레신문 임종진 기자

전쟁의 뉴스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찾기 위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다시 3차 공습이 시작되었다.

그 포성 속에서 우리는 100여 차례의 시도만에 겨우 바그다드의 한상진 씨와 연결됐다. 잠시 포성이 멎은 상태, 그러나 미군의 공습이 예고 없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시민들은 자신의 집에서 꼼짝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한다. 상황이 변한다면 한상진 씨와 유은하 씨는 원래 예정대로 병원에 가서 사람들을 만나고 도울 것이다.

어제까지 북바그다드 발전소에 머물던 배상현 씨는 바그다드 시내에 머물고 있는 두 사람과 합류해 현지 활동을 하기 위해 시내를 향해 떠났다고 해 모두 긴 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거리에 나올 경우 발포하겠다는 사담 후세인의 엄포 속에 차량조차 거의 다니지 않는 그 바그다드에서 그들이 무사히 움직이고 서로 만날 수 있을 지에 대해서는 누구도 확신할 수 없는 일이다.

전쟁 전 이라크를 나온 마지막 평화팀원이었던 임종진 기자가 바그다드를 떠나던 그 아침까지도 그들은 가게문을 열고 물건을 팔고 운전을 하며 전쟁을 그렇게 일상으로 맞이하고 있었다고 했다. 물건을 사려는 그에게 전쟁이 오늘밤에 일어날 것 같으냐고 물으며 돈을 받고 물건을 건네주었다는 전쟁 속, 이라크 사람들의 일상이다. 그러나 CNN 뉴스 속에서 우리가 진실로 느끼고 만난 슬픔이 깊은 눈의 이라크 사람들을 만날 수 없다. 단지 CNN이 말하고 싶어하는 것, 미국은 이라크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도망치고 내전을 일으키며 혼란에 빠져들기를 원한다는 그들의 의도된 뉴스만을 내보낼 뿐이다.

미국식 보도에는 ‘사람들’이 아니라 ‘전쟁’만이 존재했다. 하루종일 이라크에 관한 뉴스를 듣고 있는 지금, 우리는 뉴스가 아니라 그들을, 그들의 삶을 만나고 싶다. 저 국경 너머 그들이 이 전쟁을 어떻게 겪고 어떻게 마주하고 있는지, 이 아침도 심장에 손을 얹고 ‘샬롬’하며 평화의 인사를 나누고 있을 이라크 사람들의 정확한 형편을 듣고 싶다.

수하드 아주머니의 마지막 말

▲ (사진 뉴스앤조이 주재이 기자) 출국전 아들을 꼭 껴안고 있는 임영신 씨

지금 다시 들어갈 수 없는 국경 너머의 풍경들, 바그다드의 풍경들을 전해주는 CNN의 뉴스 뒤편에 가린 이라크 진실을 만나고 싶다.

평화의 촛불을 띄웠던 티그리스 강에 마음을 적신다. 두고 온 세 사람의 동료들이 서로 의지하며 살고 있을 숙소를 본다. 우리와 손잡고 뛰고 노래하며 ‘평화’를 외쳤던 아이들의 크고 깊은 눈동자를 본다. 보이는 것 너머를 보는 눈, 모든 위선과 조작을 넘어 진실에 가 닿을 수 있는 깊은 시선 없이 우리는 이 절망의 아침을 넘어설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며 전쟁의 뉴스를 듣고 있는 이 아침 이라크의 국영방송에서 사담 후세인은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평화를 위해 전쟁을 해야 할 때라는 부시의 선전포고, “사담의 목베기”라는 작전명 속에 바그다드의 삶을 침략해 들어가는 미국의 잔혹한 발길, 그 폭력과 전쟁의 뉴스 속에 우리를 떠나 보내며 던진 수하드 아주머니의 마지막 말이 귓가에 맴돈다.

“신은 자신의 사람을 한 사람도 잊지 않으신다.”어쩌면 하나님은 전쟁을 위해 길을 떠나는 미군들을 축복하는 그들의 머리 위가 아니라 그 총과 칼, 폭탄 끝에 산산이 부서질 이라크 사람들 속에, 그 무슬림들의 검고 깊은 눈동자 속에 머물고 계신지도 모르겠다.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그 신음을 쓸어안기 위해…. 지금 여기에 이라크 사람들과 함께….

위 글은 월간 <참여사회>4월호에 게재될 예정입니다.

임영신 평화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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