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군축센터 일반(pd) 2003-03-05   1065

두 개의 슈퍼파워 : 미국 제국주의 VS 반전평화운동

한반도 평화의 길찾기

정욱식(평화네트워크 대표)

본문은 참여연대 월례행사인 ‘회원한마당’에서 3월 4일 정욱식 대표가 강연한 내용임을 알려드립니다.

“우리 모두는 독일의 히틀러 시대 초기에 ‘예방전쟁(preventive war)’라는 말을 접한 적이 있다…. 솔직히 나는 ‘예방전쟁’에 대해 진지하게 말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귀기울이고 싶지 않다.”

부시 대통령을 히틀러에 비유한다면, 미국으로서는 대단히 불쾌한 일이겠지만, 위에서 소개한 말은 정작 50년 전 미국 대통령인 아이젠하워가 선제공격을 통해 소련을 무장해제시키자는 강경파들의 제안에 대한 반응이다.

아이젠하워가 단호히 예방전쟁 도입을 반대한지 정확히 50년이 지난 지금, 21세기 미국의 첫 대통령은 선제공격 전략을 국가 공식 문서에 명시하면서, 후세인 정권이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해 미국과 국제사회를 위협하기 전에 ‘예방적’ 차원에서 후세인 정권을 제거하겠다는 입장을 공식화하고 있다.

히틀러와 비유되기를 거부하면서 예방전쟁을 단호히 반대했던 50년 전의 미국 대통령이 오늘날 미국 대통령의 모습을 보면 어떤 생각을 갖게 될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처럼 오늘날의 미국은 국제사회는 물론이고 지난 세기 미국도 상당히 낯설어할 만큼, 제국주의적 속성을 보이고 있다. 물론 미국이 냉전시대에는 소련과 함께, 그리고 탈냉전이후에는 독점적으로 패권적 지위를 누려온 것이 사실이지만, 이는 분명 제국주의와는 달랐다.

과거 미국은 국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라도 부분적인 주권의 제한을 수용했지만, 오늘날의 미국은 미국 스스로 만들어온 국제질서를 송두리째 뒤흔들면서 국제사회에서 초법적인 존재로 군림하려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곧 오늘날 달라진 미국을 이해하는 것이, 전쟁머신으로서의 미국의 독주를 막고 미국을 ‘정상화’할 수 있는 첫 걸음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즉, 제국주의로 치닫는 미국을, 그래도 국제사회에서 봐줄 만했던 ‘온건한 패권국가’로 되돌리기 위해서는 부시 행정부의 속성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을 이해하기 위한 네 가지의 키워드

▲ 지난 2월 15일 대학로에서 열린 반전평화대회에서 ‘석유’를 위해 전쟁을 벌이고 있는 부시대통령으로 분한 한 참가자의 모습.

오늘날 미국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네 개의 키워드를 새겨둘 필요가 있다. 기독교 원리주의와 군사주의, 그리고 미국 우월주의와 미국 예외주의가 그것이다.

◇기독교 원리주의와 군사주의=부시 대통령의 화법에서 잘 드러나고 있듯이 오늘날 미국 정부는 세계를 철저하게 선과 악의 이분법적 대결구조로 보면서, “악을 제거하라”는 신의 명령을 받은 미국과 미국을 따르는 나라는 선이요, 나머지는 악이다라는 극단적인 세계관을 갖고 있다.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 정치와 종교의 분리에 있다는 평범한 진리조차도, 오늘날 선진 민주주의 국가라는 미국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정치와 종교를 동일시하는 부시 대통령의 통치철학이 오늘날 미국 민주주의의 가장 큰 위협이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부시 행정부의 기독교 원리주의적인 세계관이 ‘도덕적 기준’에 따른 것이라고 보면 큰 오산이다. 부시 대통령은 그 유명한 “악의 축” 발언을 비롯해 틈만 나면 “주민들을 굶겨 죽이면서 대량살상무기를 만들고 이를 다른 나라와 테러집단에게 확산시키는 정권”에 대해 도덕적인 증오와 극단적인 적대관을 피력해왔다.

이에 따라 김정일 정권과 후세인 정권은 최우선적인 “정권 교체(regime change)”의 대상으로 거론되어 왔다. 이들과 도저히 같은 하늘 아래에서 살 수 없다는 부시 대통령은, 그러나 북한, 이라크에 못지 않은, 때로는 더욱 심각한 도덕적 결함을 갖고 있는 나라들을 정권 교체가 아닌 정권 ‘지원’의 대상으로 삼아왔다.

핵무기를 비롯한 대량살상무기의 실질적인 확산의 주범으로 일컬어지는 파키스탄 정권, 테러국가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이스라엘 정권, 이라크 정권 못지 않게 쿠르드족을 억압하고 있는 터키 정권 등은 역설적으로 오늘날 미국의 가장 강력한 동맹국들이다. 부시 대통령이 신으로부터 부여받았다는 선악의 구분 잣대가 실은 부시 행정부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라는 점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자의적인 선과 악의 대결적인 세계관이 날로 악화되고, 그 부정적인 영향을 극대화시키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부시 대통령 개인의 종교적 세계관이 역사상 가장 잘 준비된 군사주의와 만났기 때문이다.

오늘날 미국의 외교안보정책을 결정하는 핵심적인 인물들을 보면, 그야말로 ‘군사주의의 드림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버지 부시 대통령 때 국방장관을 지낸 바 있고 아내와 함께 군수산업체을 두루 거친 딕 체니 부통령. 그는 부시 정권의 대외정책을 결정하는 막후 실세로 미국 역사상 가장 강력한 부통령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딕 체니가 막후 실세라면, “테러와의 전쟁”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도날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미국 정부의 ‘섹스 심벌’이라고 할 수 있다. 탁월한 말재주와 유머 감각을 소유한 럼스펠드는 이미 1970년대에 국방장관을 지낸 인물로, 전세계적인 반발을 불러오고 있는 미사일방어체제(MD)와 우주의 군사적 선점 계획을 오래 전부터 준비해왔다.

이 밖에도 아버지 부시 때 국방부 차관을 지내면서 선제공격과 군사패권주의를 오래전부터 주창해온 폴 월포위츠 국방부 부장관, 미일동맹 강화론의 선봉장인 리처드 아미티지 국무부 부장관, 협상보다는 군사력으로 북한과 이라크를 상대해야 한다고 주장해온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안보보좌관 등도 오늘날 미국의 군사주의를 이끌어오고 있는 인물들이다.

이들은 클린턴 행정부 때를 잃어버린 8년이라고 인식하면서 탈냉전이후 미국의 군사패권주의 추구 방향을 부시 정권의 출범이전부터 가다듬어 왔고, 부시 대통령이 당선되자 자신들이 꿈꿔온 미국과 세계를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그리고 스스로 외교안보문제를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한 부시 대통령 주위로 병풍을 치고는, 부시의 종교적 세계관을 실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군사력에 있다는 점을 주입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기독교 원리주의와 군사주의의 만남을 통해, 미국의 매파들은 “꿈의 향연”을 버리고 있지만, 세계와 미국의 시민들에게는 그야말로 ‘악몽’과도 같은 현실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우월주의와 예외주의=또 한가지 최악의 만남은 미국 우월주의와 미국 예외주의와의 만남이다. 우월주의와 예외주의는 동전의 앞뒤와도 같은 것으로써, “미국은 우월하기 때문에 예외일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민주주의와 인권, 시장경제에 있어서 다른 나라의 모범이자 다른 나라들이 마땅히 따라야 할 이상이기 때문에 미국식 체제는 가장 우월하고, 이러한 미국을 보호하고 미국식 체제를 세계화하기 위해서는 국제사회의 규범으로부터 미국이 제한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즉, 미국을 제외한 모든 국가는 미국보다 열등한 국가이기 때문에 국제 규범을 지켜야 하고 이를 어길 시에는 “응분의 대가”를 치러야 하지만, 미국만은 예외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부시 정권은 미국 스스로도 공들여 만들어온 각종 국제조약과 규범을 송두리째 무너뜨리고 있다. MD 구축에 제한을 둔 탄도탄요격미사일(ABM) 조약의 탈퇴, 생물무기금지협약(BWC) 검증의정서 채택 거부, 포괄핵실험금지조약(CTBT) 인준 거부, 기후협약 거부, 국제사법재판소(ICC)에서의 미국 예외주의 관철, 북한, 이란, 이라크 등 비핵국가에 대한 핵선제공격 전략 채택 및 신세대 핵무기 개발 추진 등 불과 2년 동안 보여온 부시 정권의 국제규범 무시는 오늘날 대량살상무기 확산 억제를 비롯한 국제평화에 가장 큰 위협이 되고 있는 것이다. 국제체제의 가장 기본적인 명제가 “주권의 제한”에 있다는 상식조차도 오늘날 부시 행정부하의 미국에서는 설자리가 없는 것이다.

기독교 원리주의와 군사주의의 만남에 의한 ‘군사패권주의’와 미국 우월주의와 예외주의와의 만남에 의한 ‘일방주의’는 제국주의적 속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더욱 중요하게는 과거의 경우에 세계 유일 초강대국으로서의 미국이 ‘도’를 넘어설 때, 내부적으로 이를 교정·조절해왔던 특유의 체제 유연성과 자기정화 기능마저 오늘날의 미국에서는 마비 증상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에 운동권이나 진보적 지식인들이나 쓸 법안 표현들이 오늘날에는 미국 언론은 물론이고 미국 정부 관계자조차 쓰고 있다는 것은 오늘 미국 내부의 비판 정신의 쇠퇴와 자기정화 기능의 마비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일방주의’ ‘패권주의’ ‘군사적 패권’ ‘제국주의’ 등은 이제 더 이상 미국을 비판하는 단어가 아닌, 부시 행정부의 상당수 관리들 스스로도 즐겨 쓰는 표현이 된 것이다.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 전세계는 현재 반전평화의 물결에 휩싸여있다. 사진은 지난 2월15일 한국 반전평화대회 모습

상호간의 불신과 힘의 논리가 국제체제의 중요한 속성이라고 할 때, 쉽게 유혹에 빠지기 쉬우면서도 절대로 남발해서는 안 되는 것이 바로 ‘예방 전쟁’이라는 개념 하에 특정 국가나 집단을 선제공격하는 것이다. 이는 특히 ‘국가이성’에만 맡길 수 없는 부분이라는 점에서 2차 대전 이후 국제체제에서 가장 심혈을 기울인 부분이기도 하다.

국제법에서 유일하게 선제공격을 허용하는 경우를 ‘확실한 공격 징후를 보인 국가에 대한 자위권 행사’로 못박은 것도 선제공격 남발이 가져올 재앙적 결과에 대한 인류의 뼈저린 자기반성 때문이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는 이러한 금지선을 넘어서고 있다. 미국에 대한 확고한 공격 징후가 없더라도, 위협이 되기 전에 필요하다면 선제공격을 통해 위협을 제거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위협의 여부와 선제공격의 필요성 역시 미국이 판단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총인지도 아닌지도 모르는 무엇인가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사람이 곧 나에게 총을 겨눌 것이라고 판단해 총으로 그 사람을 쏴 죽이겠다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총을 겨눈 사람을 자위적 차원에서 공격하는 ‘정당방위’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이다. 더구나 그것이 대량살상을 가져올 수밖에 없는 전쟁이라고 한다면, 이를 강행하려는 국가에게 ‘제국주의’외에 다른 이름표를 달아주기는 힘들 것이다.

너무나도 다행스러운 것은, 부시 행정부가 대이라크 전쟁 준비에 박차를 가하면서,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전쟁을 막아야 한다”는 예방 외교와 예방 운동이 힘을 얻고 있다는 것이다. 많은 국가들이 “아직 전쟁을 피할 수 있다”며, 유엔 무기 사찰단의 활동을 강화하면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를 완전히 제거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나오면서 이라크 전쟁을 위한 미국 주도의 국제연합 창설 계획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미국은 사담 후세인 정권을 제거하지 않는 한 불씨가 남게 된다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승인 없이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지원 없이도 이라크 침공을 단행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전쟁의 정당성에 대한 의구심과 전쟁이 가져올 재앙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무마시키지 못하고 있다.

특히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전세계 걸쳐 엄청난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반전평화 운동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악한 지도자가 대량살상무기를 갖게 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얼토당토하지 않은 명분으로 이라크 침공을 강행하려는 부시 정권의 진정한 의도가 중동의 석유 패권 장악과 자신의 강력한 정치적 기반인 군산복합체의 살찌우기에 있다는 주장이 강한 설득력을 얻으면서 사상 최대의 반전운동이 전세계에 걸쳐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전세계의 반전평화주의자들은 후세인 정권에게 생화학무기를 제공했던 당사자가 바로 미국이고, 걸프전 이후 8년간의 혹독할 정도의 무기 사찰 및 해제 작업으로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가 대부분 제거되었으며, 이라크가 유엔 무기 사찰단 활동에 전적으로 협력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더러운 전쟁’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이라크 다음에는 북한이 될 것”이라는 불안감이 확산되면서, 한국에서도 반전평화운동이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반전평화운동의 성장에 힘입어 2월 15일 열린 반전 시위는 세계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기에 충분한 역사적인 사건이다. 이 날 전세계 수백 개 도시에서 약 1천 5백만 명이 참여한 사상 최대 규모의 반전 시위는 부시 행정부의 제국주의적 침략 전쟁에 맞설 ‘거리의 슈퍼파워’의 등장을 알리는 신호탄이었기 때문이다.

부시 대통령은 이러한 반전 시위에 개의치 않겠다고 하지만, 그가 이러한 인류 사회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전쟁에 다가설 수록, 미국 제국주의는 근본적인 도전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2월 15일 반전 시위는 보여준 것이다.

부시 행정부의 제국주의에 맞선 이러한 반전평화운동은 인류 사회가 함께 가꾸어나가야 할 소중한 자산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제국주의에 순응하면서 끊임없는 전쟁과 폭력 속에서 불안한 삶을 살아갈 것인지, 반전평화운동에 적극 동참함으로써 미국을 바로 세우고 진정한 평화를 만듦으로써 정의로운 삶을 살아갈 것인지는 우리들의 선택에 달려 있는 것이다.

한반도 전쟁 위기가 오기 전에

작년 10월 핵파문 이후 미국은 외교를 통한 평화적인 해결 원칙을 밝히면서도, 북한의 대화 요구를 일축하고 대북한 압박에 비중을 둬오고 있다. 또한 북한의 핵포기를 유도한다는 이유로 대북한 제재 및 군사 행동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전형적인 힘의 외교를 구사하고 있는 부시 행정부는 제재나 군사 행동의 가능성을 암시하는 것이 북한을 굴복시킬 수 있는 효과적인 카드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에 이어 노무현 정부도 무력 사용은 물론 제재나 무력 사용 검토 등 일련의 대북한 강경책에 대해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무력 사용은 물론 제재를 통해서도 북한의 핵포기를 유도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전쟁 가능성을 높일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즉, 대화와 협상만이 북한의 핵무장과 한반도의 전쟁 위기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노무현 정부의 단호한 입장은 같은 평화적인 해결을 말하면서도 협상을 거부한 채, 압박과 제재만 강조하는 미국의 ‘평화적 해결’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는 것으로써, 이러한 이유 때문에 발생하는 한미간의 갈등은 감수하겠다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 전에 거듭 “미국과 다른 의견을 말하지 말라고 조언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는 모순이며, 전쟁을 막고 불안을 없애려면 다른 의견도 말해야 한다”며 대미 발언의 수위를 높이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미간의 갈등 요인은 ‘평화적 해결’의 방법론을 둘러싼 이견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한미간의 표면화되지 않은, 그러나 내재되어 있는 근본적인 갈등 요인인 평화적 해결 원칙의 ‘적용 시한’이다. 미국이 대이라크 전쟁 계획에 몰두하고 있는 상황에서, 또한 북한이 이른바 금지선(red line)이라고 일컬어지는 ‘사용후 연료봉’의 재처리에 들어가지 않은 상황에서 당분간 한미간의 ‘평화적 해결 원칙’은 지켜질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전쟁을 통해서든, 유엔 무기 사찰 활동을 통해서든 이라크 문제가 해결되거나 북한이 ‘사용후 연료봉’의 재처리 단계에 진입할 때도, 과연 한미간의 평화적 해결 원칙이 지켜질 것인가에 있다. 즉, 이라크 문제가 해결된 이후 미국의 대북한 태도가 돌변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미국의 평화적 해결 원칙은 시간과 상황에 따라 ‘한시적’으로 적용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특히 북한이 협상을 강력히 원하고 있는 상태에서, 미국의 계속 협상을 거부하는 것은 결국 대이라크 전쟁 이후 대북 압박을 본격화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깊은 우려를 낳고 있기도 하다.

노무현 대통령이 미국과의 갈등을 불사하고 출범을 전후해 미국에 대한 발언의 수위를 높이고 있는 것은 위와 같은 우려가 반영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지금 시점’에서 대북한 제재 및 무력 사용에 대한 단호한 반대 의지를 천명함으로써, 부시 행정부가 ‘앞으로도’ 딴 생각을 못하도록 예방하겠다는 것이다.

무력 사용 ‘검토’도 반대하겠다는 것은 이러한 노 대통령의 단호한 입장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는 근본적으로 노무현 정부가 부시 행정부의 ‘예방 전쟁(preventive war)’ 전략에 맞서 한반도 위기를 예방하겠다는 ‘예방 외교(preventive diplomacy)’를 본격적으로 추진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문제는 앞으로다. 미국이 협상에 나설 가능성도, 북한이 일방적으로 핵포기를 단행할 가능성도 극히 낮은 상황에서, 시간은 결코 우리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북한이 금지선에 접근할 경우 북한의 핵무장을 우려하는 국제사회의 목소리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고, 이에 따라 특단의 대책을 요구하는 안팎의 목소리도 높아질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되면 노무현 정부의 입지는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한미간의 이견과 갈등을 정부에 대한 공격의 근거로 삼아온 국내의 보수 강경 세력들이 노무현 정부에 강력 반발할 가능성도 대단히 높다.

상황이 호전되지 않고 시간이 흐르면, 우리가 직면할 최후의 딜레마는 “핵무기를 가진 북한과의 공존을 선택할 것인지, 아니면 전쟁이라도 불사해서 이를 저지해야 할 것인지”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전쟁이 민족공동체의 소멸을 의미하는 우리로서는 당연히 북한의 핵무장 이후에도 협상을 통한 문제 해결 원칙을 고수해야겠지만,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생각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따라서 이러한 딜레마에 봉착하지 않기 위해서는 반전(反戰)에 대한 단호한 의지 못지 않게, 반핵(反核)에 대한 가장 합리적인 해결안을 찾고 이를 통한 주도적인 역할을 모색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즉, 국민과 국제사회에서 공히 받아들여질 수 있는 치밀하고도 세련된 평화적 해결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가 명심해야 할 부분은 합리적이고도 평화적인 해결안이 부족한 상태에서 미국의 제재나 무력 사용 검토를 반대하게 되면, “노무현 정부가 북한의 핵무장을 용인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국내외 강경파들의 근거 없는, 그러나 정치적으로 대단히 민감한 의구심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의구심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북한 핵개발 불용이라는 단호한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북한의 핵무장을 막을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안을 국민과 국제사회에 내놓는 것 이외의 대안은 없다. 즉, 노무현 대통령이 지금까지 피력해온 것처럼, 한 손에 ‘한반도 전쟁위기 불용’ 입장을 계속 견지하는 것과 함께, 다른 한 손에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인 해결안’을 들고나올 때, 반전과 반핵이라는 양보할 수 없는 두 가지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예방 외교의 토대가 마련된다는 것이다.

이는 핵문제를 둘러싼 한미간의 갈등이 증폭될 때도, 노무현 정부에게 힘을 실어줄 수 있다. 국민과 국제사회로 하여금 “문제를 풀 수 있는 충분한 방법이 있는데, 왜 미국은 협상에 나서지 않느냐”는 의구심을 갖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무현 차기 정부의 출범을 앞두고 언론과 적지 않은 사람들은 노무현 당선자의 외교 경험이 일천하고 통일·외교·안보팀의 인적 자원이 부족해, ‘과연 한반도의 위기를 슬기롭게 풀어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우려가 전혀 근거 없는 것은 아니지만, 노무현이라는 새로운 정치 리더십은 그 동안 ‘전통적인’ 관점에서의 평가를 무색하게 만들어왔다. 돈과 조직, 계보의 관점에서 볼 때, 그는 분명 ‘준비된’ 대통령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원칙과 소신을 갖고 정치 인생을 밟아옴으로써, 기존 정치인이나 보수 언론이 아닌 국민들의 지지와 참여를 통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의 당선을 일컬어 ‘국민의 승리’라고 말하는 것도 이 때문이지 않는가?

마찬가지로 노무현 정부가 펼쳐나가야 할 ‘예방 외교’는 준비된 것도, 주어진 것도 아닐 수 있다. 이제 ‘대통령 만들기’에서 ‘평화 만들기’로 국민들의 시야가 넓어져야 하는 것이다. 국내에서 위력을 발휘한 소신과 원칙이 국제사회에서도 지지와 협력을 얻을 수 있도록, ‘참여’의 정신에 기반을 둔, 지지와 협력, 비판과 감시를 국민들이 펼쳐나갈 때, 2003년 한반도 위기설을 기우로 만들 수 있는 힘이 마련되는 것이다.

김선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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