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들지 않겠다는 제 양심을 지키고 싶습니다”

스물일곱 청년 오태양 씨, 양심적 병역거부 선언

12월 17일, 논산훈련소로 가야 할 한 청년이 입대를 거부했다. 오태양 씨(27세). 그는 이미 네 차례 입영연기를 했고 마지막 남은 입영일자에 병역거부를 선택했다.

대신 그는 국가인권위원회로 찾아가 자신의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진정서를 제출하고 기자회견을 가졌다.

그는 이후 자신의 병역거부에 대해 병무청으로 직접 찾아가 상담을 요청할 계획이며 만일 재판에 회부돼, 실정법 위반으로 군형무소에 수감되어야 한다면 기꺼이 이를 선택할 결심을 했다.

6·15공동선언 이후 남북이 화해와 협력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지만 여전히 분단이라는 상황에서 서로 총칼을 맞대며 대치하고 있다. 한창 자신의 꿈을 일궈가야 할 수십만의 젊은이들은 군대로 징집돼 군사훈련을 받고 있는 대한민국. 어쩌면 그는 불가능한 일을 하려고 하는 지도 모르겠다. 이미 종교적인 이유로 집총거부를 한 1만여 명의 ‘여호와의 증인’ 들이 범법자로 형을 살았고 지금도 1600여 명이 군형무소에서 3년형을 살고 있다.

한편 올해 초부터 인권, 시민단체와 일부 언론을 통해 사회적 논쟁으로 번진 ‘양심적 병역거부’와 ‘대체복무제’는 오 씨의 기자회견을 통해 한층 더 우리 사회의 ‘뜨거운 감자’로 오르내릴 것으로 전망된다.

입대일 이틀 전, 기자는 그를 만나 그간의 심경을 듣고 병역거부를 하게 된 계기 등을 인터뷰할 수 있었다. 그는 독실한 불교신자로 ‘불살생(不殺生)’의 계율을 지키고 싶었고 평화로운 삶을 원하고 있었다. 군사훈련 대신 노숙자나 기아로 고통받는 이들을 돕고 싶고 소외된 이웃을 위해 무언가 봉사를 하고 싶어하는 그는 병역의 의무를 완전히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비전투분야에서 자신의 양심과 인권을 지키며 현역 복무기간과 내용에 해당하는 일을 하고 싶어했다. ‘병역거부’를 하기까지 엄청난 고민과 복잡한 갈등을 겪었을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 지금 심경은 어떻습니까?

“이 문제를 처음 고민했던 올해 2, 3월만 해도 두렵고 괴로웠어요. 사회적으로 이방인 취급을 당할 것이고 재판을 받아 실정법을 어겼다면 수감생활도 감내해야 하니까요. 8개월이 지난 지금은 담담합니다.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나서 기도를 해요. 법당에 가서 예불을 드렸어요. 명상과 기도, 산책을 하면서 마음을 정리했습니다.”

– 결정적 계기가 된 일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올해 2월까지만 해도 방위산업체로 지정된 직장에 다니기 위해 산업기능요원 시험을 준비중이었어요. 그런데 우연찮게 한 인터넷 사이트에서 ‘여호와의 증인’과 관련된 ‘병역의 의무 대 양심의 자유’ 토론방을 개설했더군요. 거기서 ‘여호와의 증인’ 분들의 수기를 읽었어요. 군사훈련과 집총거부의 이유로 군에서 항명죄로 3년형 이상을 선고받고 수감생활을 해요. 그 와중에 엄청난 인권유린을 당하고…. 출소 후에도 사회적응이나 취직이 매우 어렵고 엄청난 정신적 후유증으로 고생한다는 수기들이 적혀 있었어요. 그걸 보는 순간, 굉장히 충격적이었어요. 많이 울기도 했습니다. ‘세상에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했죠. 그러나 곧 제 문제로 다가왔습니다. 저도 불살생(不殺生)을 지키려는 종교인이며 평생 사회 봉사를 하거나 평화롭게 살고자 하는 마음인데, ‘군사훈련이란 내게 어떤 의미일까’ 하고 고민하게 되었어요. 일단, 그 문제를 접하고 나자 다른 일을 할 수 없더군요. 시험공부도 접게 되고, 밥도 잘 안 먹히고…. 그러다 한 불교단체에서 실시한 수련프로그램에 참여해, 나름대로 진지하게 고민를 했어요. 그 프로그램을 끝마치면서 결정했어요. ‘병역의 의무’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지만 군사훈련과 집총을 제 양심상의 이유로 거부하겠다고 말이죠.”

▲ 국가인권위원회 사무실에서 가족 등과 함께 기자회견을 갖고 있는 오태양씨

– 주변에서 조언을 해 준 사람은 없었습니까?

“3월부터 8개월 동안 혼자서 고민한 후 결정했어요. 개인적인 문제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다가 제 주변의 가까운 동료들에게 얘기했고 격려와 지지를 많이 얻었어요. 병역특례로 군복무를 대신한 한 친구는 4주 군사훈련 중 총도 쏴보고 수류탄을 던져봤더니 집총거부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겠다고 말하더군요.”

– 군대를 다녀온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군사훈련과 집총거부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입니다. 예를 들어 현재 사격훈련을 한다고 해도 바로 사람을 죽이는 것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매우 드물고, 자위권이나 국가안보 차원에서 그 정도 훈련도 못 받느냐 등 반론도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요.

“이 문제의 핵심은 어떤 보편적인 사회의 기준으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개인의 양심과 인권의 문제로 봐야 합니다. 저는 현역 장병들이나 예비역인 사람들의 선택과 관점을 존중합니다. 그들 나름의 신념도 있을 것이고 군대의 필요성 등에 대한 생각도 존중합니다. 그렇지만 아주 소수의 사람들 중에는 그런 행위가 자신의 양심을 거스르는 행위이기 때문에 도저히 할 수 없는 이들도 있습니다. 저는 진지하게 고민했어요. ‘한국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총을 들어야만 하느냐’를 제 자신에게 물어봤어요. 결론은 북한에 태어났더라도, 미국에 태어나 부모님이 이번 테러로 돌아가셨더라도, 미국의 공격을 받은 아프간에 태어났더라도 제가 집총을 받아들이거나 군사훈련을 받겠는가 했을 때 전쟁을 위한 군사훈련에는 일체 참가하지 않을 것이라는 겁니다.”

– 4주 군사훈련 중 수류탄 투척 훈련이나 사격 등이 있지만, 이는 2, 3일만 참으면 되는 건데 이마저도 견디지 못하냐 라고 군복무를 마친 사람들이 얘기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는 독신자들에게 결혼하고 사는 게 뭐가 문제냐, 동성애자들에게 이성간 결혼하는 것이 뭐 문제냐, 정말 안 되는 거냐는 물음과 같아요. 다른 예를 들자면 당신의 사상이 의심스럽다, 사상을 전향하라고 전향서나 준법서약서를 쓰라고 강요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 종이 한 장 쓰는 것이 뭐가 어렵냐는 거죠. 그러나 그 한 장 때문에 40∼50년을 자신의 신념과 양심을 지키며 견뎌온 사람들이 있어요. 저는 한국사회가 타인의 기본적인 가치관이나 양심에 대해 얼마나 포용하고 관용할 수 있느냐의 문제라고 봅니다.

군대를 가는 것이 당연하고 군사훈련을 받고 전쟁을 치르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 우리 사회의 가치관입니다. 하지만 그것과 반하는 혹은 일치하지 않은 소수자의 가치관이라는 것도 있어요. 그렇다면 이들의 양심이 부정적이고 나쁜 것이냐. 저는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생각이 다를 뿐이지, 그들에게도 양심이 있어요. 그런데 다수라는 이유만으로 그들의 가치관을 강요하는 것은 파시즘이라고 봅니다.”

– 인권의 측면도 있지만 헌법에 ‘병역의 의무’를 포함, 4대 의무가 명시되어 있고 군형법 44조에 병역거부 시, 적전 중에는 사형, 무기징역, 10년 이하의 징역 등을 가할 수 있고 계엄 상황에서는 7년, 그 외에는 3년의 징역에 처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런 법적인 문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헌법에는 ‘국민의 기본권이 국가의 안전보장이나 공공의 복리를 침해할 소지가 있을 경우 제한할 수 있다’고 하지만 ‘본질적인 국민의 기본권은 침해할 수 없다’는 문구도 있습니다. 개인의 양심과 인권을 지키는 것은 기본권입니다.

우리나라의 소수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집총을 거부했을 때, 그들의 행위가 심각하게 국가의 안전보장을 해치거나 공공복리에 위배되는 것인가 따져볼 필요가 있어요. 저를 포함해서 이들은 국가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군사훈련만은 받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4주간의 군사훈련만을 받지 않을 수 있다면 비전투분야의 근무나 사회복지시설에서의 봉사활동 등을 현역군인의 복무기간과 내용에 준한 활동을 함으로써 병역의 의무를 하겠다는 겁니다. 이것이 과연 형평성에 어긋나고 법에 어긋나는 것인지는 심사숙고해야 합니다.”

– 말씀하신 봉사활동이 ‘대체복무제’라는 형태로 현재 사회적 논의가 촉발된 상태입니다. 그렇지만 분단체제로 서로 대치하고 있는 상황인데, 대체복무제가 가능한가라는 회의적인 시각도 있습니다.

“얼마 전 국방부의 한 의견서에는 이미 ‘한국적 대체복무제’가 있다고 합니다. 한 해 15만 2000여 명이 입대를 하고 그 중 절반 가량인 7만여 명이 기본적인 4주 군사훈련을 마친 후 비전투분야에서 일을 해요. 상근예비역, 공익근무요원, 산업기능요원, 전문연구요원, 예체능 특기자, 해외봉사협력 요원 등으로 말이죠. 이들은 기본적인 4주 군사훈련은 합니다. 그러면 이미 대체복무제가 존재하므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게 군사훈련 대신 이를 시행할 수 있다고 봅니다. 현역복무기간보다 훨씬 긴 기간 혹은 고된 봉사활동이라도 하겠다는 사람들입니다. ‘대체복무제를 시행했을 경우, 국가 안보력이 떨어지거나 국민질서를 위협할 것이냐’라고 되물으면 저는 이미 매년 입대하는 이들의 50%가 대체복무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 주장은 모순이라고 봅니다. 대체복무와 국가 안보는 상관이 없죠. 개인의 인권을 한국사회가 보장하느냐 아니냐 이런 문제라는 겁니다.”

– 아시아에서 최초로 대체복무제를 도입한 대만은 인권의 측면도 있지만 군 현대화라는 측면에서 이뤄졌다고 하던데요. 어떻게 봅니까?

“대만 또한 280만이라는 중국의 군대와 대치 중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과감하게 대체복무제를 선택했어요. 국가적 인력을 재배치한 겁니다. 우리도 가능하리라고 봅니다. 현재는 사회적 재원을 낭비하는 측면도 있어요. 지금까지 숱한 병역거부자 중에 의대생, 법대생들 등 다양한 대학재원들이 있어요. IMF이후 사회적 안전망이 구축되어야 한다고 하는데 사회복지 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 이런 이들을 사회적 재원으로 활용하면 국가도 이익이고 개인의 인권도 존중받고 사회복지도 넓어지는, 그야말로 일석삼조라고 봅니다. 누구에게도 해가 되는 것이 아니에요. 저는 사회구성원으로 혜택받은 것이 있기 때문에 그만큼 환원해야 한다고 여깁니다. ‘병역의 의무’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군사훈련을 거부하는 겁니다.

– 4주 군사훈련 외에도 군내 의문사 혹은 가혹행위 등 인권 유린행위 등이 여전히 군내 문제로 남아 있습니다.

“군복무를 하는 사람들의 삶이 존중되어야 합니다. 군대 내의 민주적 환경 변화, 인권 보장 처우 개선 등이 이뤄져야 할 것입니다. 이런 다양한 개선은 대체복무제 도입의 사회적 논의를 통해 함께 이뤄지기를 바랍니다.

▲ 오태양씨가 기자회견을 마친후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접수하고 있다.

– 앞으로의 계획은?

“병무청 상담 후 ‘여호와의 증인’ 분들의 집회(예배)에 참석할 예정입니다. 그분들과는 종교를 떠나 많은 교감을 나누었어요. 이후 구속되는 날까지 사회시설에서 봉사활동을 계속하고 싶습니다. 아직 정한 곳은 없어요. 주로 공부방 야학이나 노숙자 시설에서 일하고 싶어요. 얼마나 할 수 있을 지는 모르지만….”

그는 대학시절 교직을 이수했다. 학창시절 농촌봉사활동과 공부방 활동에 관심을 가지고 활동했던 그는 사회에 나가서도 교육혜택을 받지 못한 이들을 위해 봉사하고 싶은 마음이란다. 어떤 오지라도 자신이 도울 수만 있다면 달려가고 싶다는 그. 우리 사회가 좀 더 관용적이고 차이를 인정해 준다면 이런 그에게 현역복무 기간 혹은 그 이상일지라도 봉사의 기회를 줄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이 참된 민주주의의 외연을 넓히는 일은 아닐까 싶다.

1998년 4월 유엔인권위원회는 양심적 병역거부권과 관련, 이를 정당한 인권으로 인정하고 유엔 회원국은 이를 사회에 알리며 준수할 의무가 있음을 결의했다. 유엔의 1997년 보고에 따르면, 이미 세계적으로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보장하는 국가가 84개국, 징병제가 있어도 대체복무제와 같은 민간봉사제도를 보장하는 국가만 해도 25개국이다. 아예 징병제가 없는 국가도 69개국이나 된다. 이제 지구적 차원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와 대체복무제가 인정되고 있는 상황이다.

오 씨는 인터뷰 후 우리 사회가 여러 차이에 대한 따뜻한 배려를 해 줄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하는 바램을 나타냈다. 자신의 양심을 지키고 사회에 기여하길 바라는 오 씨의 뜻이 제대로 이뤄지기를 소망해 본다.

최경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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