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군축센터 파병 2003-03-17   549

“평화를 원한다면 나와 함께 이라크로 들어가자”

<특별인터뷰> 평화학자 요한갈퉁

글 : 강은지 민족21 기자

사진 : 류관희 월간참여사회 객원기자

세계적인 평화학자이자 평화운동가인 요한 갈퉁 유럽평화대학교수가 지난 3월 1일 방한했다. 그는 수십회 남한과 북한을 오간 유럽내 한반도 전문가이기도 하다. 그를 만나 미국의 명분없는 이라크 전쟁과 북핵위기 한반도 평화 등에 대해 들어 보았다. (편집자 주)

지난 3월 1일∼3일, 국제평화대학원대학교 개교기념을 맞아 제2회 휴머니티건퍼런스-지구인평화포럼이 서울 그랜드힐튼호텔 컨벤션센터에서 열렸다. 이 평화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을 찾은 요한 갈퉁 유럽평화대학 교수를 3월 1일 숙소에서 만났다. 세계적인 평화학자이자 평화운동가인 요한 갈퉁 교수는 남한과 북한을 오간 것만도 수십회에 달하는 유럽 내 한반도 전문가이기도 하다.

이번 방한은 지난 2000년 5월 5·18 기념행사에 참석한 이후 3년만에 이루어진 것. 그동안 한반도와 세계는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역사적인 6·15남북공동선언도 있었지만 미국 부시 대통령이 정권을 잡으면서 새롭게 한반도에 위기상황이 조성됐고 지난해 터진 북핵 문제로 전쟁까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더군다나 미국은 전세계의 반전여론에도 불구하고 이라크에 대한 전쟁계획을 강행해 이라크 공습은 이제 거의 초읽기에 들어갔다. 평화를 위해서는 갈등과 폭력의 본질을 이해하고 풀어야 한다고, “평화적 수단에 의한 평화”만이 진정한 평화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분명 소중한 성찰이고 자세이겠지만, 내일 당장 폭격이 시작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갈지 모르는 상황에서 평화를 ‘말한다’는 것이 과연 얼마나 의미가 있는 것일까.

그러면 안된다고 말한다고 부시 대통령을 설득할 수 있을까. 당장 이 전쟁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요한 갈퉁 교수를 만나러 가는 길, 필자는 내내 그런 의문을 떨쳐버릴 수 없었기에 처음부터 공세적인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당신의 저서도 읽었고 당신의 평화이론에 많이 공감한다. 하지만 실질적인 문제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평화 방안을 논하고 분석하기에는 혹은 평화에 대한 깨달음을 얻기에는 시간이 너무 없다. 지금 당장 우리에게 닥친 이 전쟁 위기 상황에 평화운동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좋은 질문이다. 우선 국가, 정부가 할 수 있는 일과 민중들이 할 수 있는 일을 구분해야 할 것 같다. 정부는 전쟁을 지연시키는 데 어느 정도 역할을 할 수 있었다. 사실 미국은 가능한 한 빨리 전쟁을 시작하고자 했지만 독일이나 프랑스 같은 여러 국가들 덕분에 그나마 지금까지 개전이 지연되어 온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들 국가들이 주장해온 사찰 연장이나 강화 제안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중동의 안보와 공조를 위한 정상회담이 필요하다. 우리는 이미 과거 커다란 성과를 낸 정상회담 모델을 가지고 있다. 1973년에서 1975년 사이에 진행되었던 유럽의 안보와 공조를 위한 헬싱키 유럽안보정상회담이 바로 그것이다. 물론 이러한 회담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조건이 있다.

당시 유럽안보정상회담을 제안한 핀란드 케코넨 대통령과 같은 현명한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프랑스의 시라크 대통령이나 독일 슈뢰더 총리도 이러한 정상회담을 제안할 수 있을 만한 뛰어난 인물들이다. 이들이 사찰 연장 제안에서 더 나아가 중동안보정상회담을 제안하고 실질적으로 추진한다면 미국과 영국의 일방적 독주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일반 민중들이 할 수 있는 역할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 미국은 계속되는 반전 시위나 여론에 별로 개의치 않는 것처럼 보인다.

“전세계적으로 천오백만 여명의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 반전과 평화를 외쳤던 지난 2월 15일은 분명 엄청난 일이었고 훌륭한 시작이었다. 하지만 당신이 지적한 것처럼 미국이나 영국 정부에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 이들은 결코 민중들을 존중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은 이라크에서 그 민중들을 죽이고 싶어한다. 그리고 아마도 그렇게 할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존경하는 것이 딱 하나 있다. 바로 돈이다. 만약 전세계적으로 수백만의 사람들이 미국 상품 소비를 중단한다면 그들을 귀를 기울일 것이다. 코카콜라나 맥도날드를 먹지 말아라. 미국 신용카드를 사용하지 말고 달러를 사용하지 말아라. 모든 미국 채권, 주식, 금융상품, 자본들을 팔아버려라. 그 영향력은 엄청날 것이다.

미국 기업들은 수익의 60% 가까이를 해외 시장에서 벌어들인다. 미국 상품 불매운동은 기업들에 엄청난 피해를 줄 것이고 그렇게 되면 미국 기업들이 나서서 미국 정부에 대외정책 고려를 촉구할 것이다. 정부는 할 수 없지만 일반 민중들은 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일은 바로 ‘인간방패’다. 이미 전세계에서 많은 이들이 이라크에서 인간방패로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그 규모가 아직 충분하지 않다. 더 많은 사람들, 수천 수만의 사람들이 이라크로 들어가야 한다.

인간방패 역할을 해야 한다. 만약 10만 명의 인간방패가 조직되고 그 중 유명 인사들이 천명만 된다면 미국은 전쟁을 하지 못할 것이다. 나 역시 조만간 이라크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러한 일 역시 분명 정부는 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민중들은 할 수 있고 이것이 동시에 일어난다면 미국을 막을 수 있다. 다시 말하건대 거리로 나선 천오백만명 시민들의 운동은 대단한 것이었지만 불행히도 미국을 움직이지는 못했다.

반전 시위가 거세게 일어난 몇몇 국가들에서 정부에 깊은 인상을 남기기는 했다. 아마도 독일과 프랑스는 자국의 평화시위에 누구보다 감명받은 국가들일 것이다. 그러나 미국, 영국, 이탈리아, 스페인 정부들은 민중들의 목소리에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이탈리아나 스페인과 같은 나라의 경우 구 파시스트 세력 출신의 지도자들이 정권을 잡고 있다.

이들은 강한 국가, 강한 군사력에 의한 정치를 열망한다. 미국은 이 모든 것을 갖추고 있는 나라다. 그래서 이들이 미국을 따르는 것이다. 영국은 이와는 또 다르다. 영국은 자국이 계속해서 위대한 나라, Great Britain으로 존속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미국과 함께 하는 것뿐이라는 신념을 오랫동안 간직해 왔다. 일본도 비슷한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아마도 한국의 보수주의자들 중에서도 똑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미국이 이라크 전쟁을 강행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직도 명확하지 않다. 이라크의 석유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그렇게만 보기에도 부시 대통령의 후세인 정권에 대한 혐오감이나 증오는 지나친 감이 있다. 도대체 미국은 왜 그렇게 후세인을 싫어하는가.

“이라크와 북한의 공통점이 있다면 미국의 영향력이나 파워를 인정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움직이려 한다는 것이다. 미국이라는 국가는 독립적인 의견, 국가, 사람을 싫어한다. 미워한다. 더 나아가 견딜 수 없어한다. 탈레반이 그랬고 유고슬라비아가 그랬고 또 이라크와 북한이 그러하다. 이라크 전에는 이란이 그랬다.

그래서 미국은 이라크를 움직여 이란과 싸우도록 했다. 그런데 사담 후세인이 자신들이 이용당했다는 것을 깨닫고 미국에 저항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미국으로부터 벌을 받은 것이다. 게다가 한때 자신들을 따랐던 사람이 배신하고 적으로 돌아섰기 때문에 미국은 후세인에게 그만큼 더 심한 처벌을 가한 것이다. 어쩌면 한국 지도자들이나 보수주의자들 역시 벌을 받을 것을 두려워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지금까지 한국은 미국에 상당히 순종적이었기 때문에 더 이상 미국에 순종하기를 거부하고 맞선다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라크 결의안 처리가 계속 지연되는 등 유엔 내에서의 반대도 심한데 미국은 정말 이라크 공격을 강행할까.

“사실 예측하기 어렵다. 미국 역시 아주 어려운 선택에 놓여 있다. 미국의 입장에 대해 흥미로운 부분은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하지 않는다면 미국은 이라크에 지는 셈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이 전세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단독으로 이라크 공격을 감행한다면 그 역시 여러 가지 면에서 미국은 지는 것이다. 말한 대로 지금 전세계가 미국의 정책에 반대하고 있다.

유엔 안보리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 역시 그러한 점을 보여준다. 미국은 현재 안보리 회원국들을 협박하거나 매수하려 하고 있다. 미국은 이들에게 ‘지금 우리에게 반대한다면 엄청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라고 위협하고 있다. 사실 이런 식으로 행동하는 국가는 유엔에서 즉각 배제되어야 한다. 다른 나라들을 협박해 표를 사려 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유엔에서 축출할 수 있다.

나는 이런 현상이 곧 일어나리라고 본다. 유엔과 미국과의 갈등, 미국과 유럽과의 갈등이 이렇게 계속 증폭되어 나가면 말이다. 비록 스페인과 이탈리아 등이 미국의 편을 들고 있지만 그 국민의 90%는 이에 반대하고 있다. 영국 역시 국민들의 반대의견이 70%가 넘는다. 또 미국이 전쟁을 강행한다면 이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죽게 될 것이며 전쟁에서 승리해 후세인을 제거한다 해도 그 이후 이라크의 미래는 또 어떻게 할 것인가.

미국은 후세인 제거와 이라크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자기라고 말하고 있지만 그것은 옳지 않다. 사담 후세인 정권 교체를 결정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이라크 사람들이다. 다른 어느 누구도 이러한 것을 결정할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은 민주적인 선거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사실은 미국에서부터 민주적인 선거가 이루어져야 한다. 부패한 조작선거 말고 정말 민주적인 선거 말이다.

어쩌면 미국의 다음 선거에는 국제사회가 감시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조지 W. 부시는 미국인들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이 아니다. 속임수와 조작으로 빼앗은 자리다. 미국 대법원조차 플로리다 주에서 5만9천여 명에 달하는 유권자들의 투표권을 박탈한 사실을 문제삼지 않았는가. 그 중 전과자 등의 이유로 실제로 투표권이 없는 사람은 고작 1∼2%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이렇게 투표권이 박탈된 사람들 중 거의 100%가 부시에게 반대하는 흑인들이었다.”

이라크의 미래에 대해 좀더 이야기해보자. 미국 정부가 이에 대한 장기적인 전망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가.

“재미있는 일화를 하나 들어보자. 한 2주 전쯤 아일랜드의 한 TV가 힐러리 클린턴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런데 힐러리가 그 인터뷰에서 민주당 역시 장기적이고 긍정적인 접근법을 별로 가지고 있지 못하다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유럽의 요한 갈퉁인가 뭔가 하는 사람이 긍정적인 가능성들을 많이 이야기하는 것 같더라’라고.

이처럼 대부분의 미국 정치인들은 부정적인 접근법, 최악의 상황만을 이야기하고 있을 뿐 긍정적이고 장기적인 접근법을 말하고 있지도 알고 있지도 못하다. 평화적 결론을 위한 장기적인 정책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 이유 중의 하나는 그들이 지금 당장의 세계만을 보고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러한 상황은 우리에게 긍정적이며 장기적인 접근법을 갖춘 평화문화가 결여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라크와 마찬가지로 미국 정부를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은 미국인들에게 있다. 그리고 지금 그들이 움직이고 있다. 미국의 반전운동과 반정부 운동은 베트남전 때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놀랄 정도다. 9·11은 여러 가지 면에서 미국인들을 놀라게 했다. 테러의 공포도 공포지만 미국인들은 이 사건을 통해 미국이, 그리고 미국 정부가 전세계로부터 얼마나 많은 미움을 받고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미국 정부가 계속해서 미국인들과 세계를 기만해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 깨달음이 수백만 명의 사람들을 반전과 평화를 외치며 거리로 나오게 했던 것이다. 정치인들이 긍정적 접근법을 충분히 가지고 있지 못하다면 우리가 하면 된다. 이러한 민중들의 움직임이 계속 성장한다면, 언젠가는, 정말 언젠가는 미국에 알 카에다와 협상할 의사와 준비가 되어 있는 정권이 들어설지도 모른다. 알 카에다에 대한 햇볕정책을 논하게 될지도 모른다. 언젠가는 그렇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

협상을 하려면 서로가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알아야 할 텐데, 알 카에다로 대표되는 이슬람과 미국 저항 세력들이 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들이 원하는 것은 단 하나, 바로 존중과 인정이다. 우리의 종교를 인정해달라. 우리의 문화를 이해해달라. 우리의 삶의 방식을 존중해달라는 것이다. 북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존중과 인정. 북한이 얻고자 하는 것, 그렇게도 갈망하는 것은 바로 좀더 많은 인정을 받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주체’에 대한 존중도 포함되어 있다. 말하자면 북한의 사상과 체계를 인정해달라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슬람의 요구와 북한의 요구는 동일하다.

그러면 미국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들이 원하는 것은 바로 자유거래, 자유무역이다. 상품뿐만 아니라 미국의 문화와 사상과 종교까지 포함하는 자유무역, 시장개방이다. 그런데 문제는 미국식 경제와 거래는 이슬람 문화와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슬람은 미국과는 완전히 다른 경제철학을 지니고 있다. 이를 이해해야만 한다.

하지만 유럽이나 미국의 정치인들은 이슬람이 경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들의 입장이 무엇인지를 전혀 이해하지도 알지도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이슬람에서 사는 자와 파는 자의 관계는 두터운 인간관계에 기반한다. 만약 슈퍼마켓에서 물건을 사면서 상점 주인과 단 한번도 얼굴을 쳐다보지 않고 돈만 건넨다면 이것은 가장 무례한 범죄 중의 하나가 된다. 매춘만큼이나 심한 범죄이다. 경제학자들이 이슬람의 이러한 문화를 이해한다면 전세계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은 이미 오래 전에 남북 철도·도로 연결을 제안하는 등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도 많은 조언을 해왔다. 지금 다시 한번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방안들을 제안한다면?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하나 있다. 나는 지금까지 단 한번도 ‘국가’의 통일 방안에 대해 이야기한 적은 없다. ‘민족’의 통일 계획만을 고민하고 제안해왔을 뿐이다. 이것을 혼동하게 되면 큰 실수를 저지를 수 있다. 국가의 통일, 하나의 국가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다시 말해 한 명의 대통령, 한 명의 최고지도자를 논한다는 것인데 도대체 어떤 지도자, 어느 쪽의 지도자인가? 북한의 김일성 주석의 실수는 그것이 자기라고 이야기했었다는 점이다.

그럼 다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 문제로 돌아가서 나는 우선 아시아 공동체 형성을 위해 노력할 것을 제안한다. 남한과 북한, 그리고 유사한 문화와 역사를 가진 한 가족인 중국과 일본, 베트남이 2+3의 공조와 협력체를 이뤄 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공동 프로젝트를 구상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유럽연합이 좋은 실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유럽연합 역시 서로 미워하면서 갈라져있던 동독과 서독, 동유럽과 서유럽이라는 분단과 갈등이 있었지만 공동의 노력으로 이를 극복하고 연합을 이룰 수 있었다. 또 나는 DMZ와 관련해 여러 가지를 구상해왔다. 얼마 전에도 2002 월드컵 경기장을 DMZ에 세우는 구상을 했었는데 아쉽게도 남북 단일팀도 DMZ 월드컵 경기장도 성사되지 않았다.

하지만 한일월드컵은 성사됐고 한국과 일본이 연대와 연합을 이뤘던 경험은 이후 아시아 연합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DMZ를 생태 천국, 생태 공원으로 만드는 것도 나의 구상 중 하나다. 이는 DMZ를 긍정적인 의미로 변화시키고 발전시키는 것이며 동시에 세계 환경에도 기여하는 일이 될 것이다.

내가 오랫동안 구상해온 프로젝트 중에는 또 남북이 환경친화적 경제교류를 강화하는 것도 있다. 한 예로 남북은 석유에 의존하지 않는 에너지 시스템을 공동으로 개발할 수 있을 것이다. 한반도는 자연으로부터 충분한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천연조건을 갖추고 있다. 바람도, 햇볕도, 조류간만의 차도 충분하다. 이를 남북이 함께 개발하면 남쪽의 지나친 에너지 해외 의존 문제도, 북한의 핵발전소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이러한 에너지 공조의 연장선상에서 남북은 새로운 식량공급 정책을 세울 수도 있을 것이다. 한반도 해변을 따라 공동으로 어장을 개발하고 양식장을 개발하면 식량을 수입에 의존하는 비율을 훨씬 낮출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프로젝트들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수억 달러 상당의 돈이 필요하다는 것이 문제가 될 수도 있지만 전쟁을 위해서 이 돈을 사용하느니 평화를 위해서 사용하는 것이 훨씬 낫지 않을까.”

상당히 이상적이고 친환경적이며 평화적인 구상들이다. 하지만 통일을 이야기할 때 정치적인 문제를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지 않나.

“지난 50여 년간 내가 평화의 조건에 관해 연구하면서 얻은 결론을 한 마디로 정리한다면 ‘평화의 조건’은 평등, 대등(equality)이라는 것이다. 한 예로 평화가 없는 곳,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는 대등함이 없다. 남북은 서로 대등한 관계에 설 수 있도록 정치 기구, 제도들을 공동으로 개발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남북의 협력이 필요하다. 남북 협력과 교류가 보다 증진되어야 한다. 어쩌면 이를 위한 영구적인, 상설 기구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기구는 정치적 센터로서 DMZ에 세우면 좋을 것이다. 이러한 연합(confederation)이 궁극적으로 연방(federation)으로 발전할지 여부는 좀더 오랜 시간을 두고 지켜보아야 할 일이다.

더 나아가 두 국가가 궁극적으로 단일국가가 되기까지는 여기에서 또 20여 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서두를 필요가 없다. 먼저 평등한 대등한 관계를 만들기 위한 과정을 지원해야 한다. 북한은 이 점에 있어서 아주 전략적이고 또 고집이 세다.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먼저 대등한 관계를 이룬 후에 논의하자’라는 것이 북한의 입장이다.

마치 사춘기 소녀가 부모님을 바라볼 때처럼, 페미니스트 아내가 남편을 바라볼 때처럼 고집스럽다. 나는 북한의 이러한 입장을 이해한다. 그렇기에 북한의 이러한 태도가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라크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이라크 문제에 대해 해결책이 있다면 그것은 이라크와 대등한 입장에서 대화와 협상을 통한 정치적 해결책이 되어야만 한다. 그 외에는 해결책이 없다. 이라크를 미군정으로 점령하는 것은 옳지 않을뿐더러 해결책이 될 수도 없다.”

요한 갈퉁

– 1930년 노르웨이 오슬로 출생

– 오슬로대학 수학박사, 사회학박사 취득

– 오슬로대학 교수, 제네바개발고등연구원, 프린스턴대학 하와이대학 객원교수 역임

– 베텐 헤르데케대학 사회학과 교수, 스웨덴 인문사회과학연구원의 올로프 파르메 객원교수, 탐베레대학, 크루주나 포카대학, 웁살라대학 등의 명예박사, 아리칸테대학, 베를린자유대학, 사천대학 등의 명예교수

– 저서 ‘평화를 위한 선택’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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