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군축센터 기타(pd) 2003-03-15   740

‘평화를 위해서는 전쟁보다 더 위험한 용기가 필요하다’

이 글은 전 참여연대 간사로 활동했던 임영신 씨가 지난 3월 6일 이라크로 떠나기 전 벗들에게 보낸 메일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낼 모래 출국을 앞두고 아직까지 여행 가방은 커녕 마음의 짐조차 꾸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낼이면 합숙을 한 후 다음날 곧장 공항으로 가서 비행기를 타야 하는 터라 오늘이 아이들과 남편과 함께 할 수 있는 마지막 밤이 될 듯 합니다. 요르단 비자를 받기 위해 방학중인 아이의 손을 잡고 요르단 영사관을 향해 뛰어가는데 아이가 묻습니다.

“엄마, 도대체 무슨 일을 하시려고 이렇게 급하게 가시는 거예요?”

그 물음이 제게 영사관을 향하는 것을 묻는 짧은 질문으로 그치지 않고 하루종일 가슴에 남습니다. 이라크행을 결정하고 꼬박 일주일이 흘렀습니다. 그 사이 이메일을 통해 여비를 모금하고 한국에서 펼쳐두었던 일들을 매듭짓느라 매일을 새벽에야 잠이 들었습니다. 아이들과 넉넉히 산책 한 번 하지 못한 채 일주일이 고스란히 갔습니다.

마지막 밤 아이들에게 편지를 쓰려하니 마음에 미안함만 그득 차오릅니다. “엄마 거기가서 나 없다고 인간방패하면 안돼요.”라며 짐짓 아는 척을 하는 여섯 살 난 아들의 눈빛이 “난 엄마랑 헤어지는 거 싫은데, 그래서 마음이 너무 아픈데 엄만 왜 먼 여행을 가려고 그래요?”라며 눈을 글썽이는 세 살 난 딸아이의 눈빛이 제게 가장 크고 무거운 짐입니다.

출국을 남겨두고 아이들에게 남편에게 편지를 쓰며 처음으로 죽음을 깊이 생각해봅니다. 늘 버릇처럼 말하곤 했었지요 “죽을 수 있는 일을 위해 살고 싶다”고 “언제든 죽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고.

아이들에게 남편에게 새벽녁까지 편지를 써놓고 차마 건넬수가 없어 봉인을 해 서랍 속에 넣어두었습니다. 혹여 제게 무슨 일이 생기면 그 편지를 읽으라고 만약 네가 무사히 돌아온다면 내가 긴 편지가 되겠노라고

죽으려고 그곳에 가느냐는 물음들에 이렇게 대답하곤 했습니다. 살기 위해 간다고, 더불어 살기 위해 인간방패가 되려고 길을 떠나냐고 묻는 이들에게 이렇게 답했습니다. 평화의 증인이 되기 위해 간다고

파괴자가 아니라 파괴당하는 자의 눈으로 죽이는 자가 아니라 죽어 가는 자의 눈으로 전쟁을 일으킨 남성이 아니라 상처입고 희생당하는 여자와 아이의 눈으로 파헤쳐지고 오염될 그 오랜 강과 대지의 눈으로 하루 아침에 잿더미가 될 그 오랜 바그다드 문명의 눈으로 그 전쟁을 기록하고 싶습니다.

해서 저는 살고 싶습니다. 살아서 돌아오고 싶습니다. 내가 믿는 하나님이 죽으려 하는 자는 살 것이요 살고자 하는 자는 죽을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없이 영광이 없다는 것을
그리스도를 통해 가르쳐 주셨기 때문입니다.

기도해 주십시오. 무모한 결심을 용기로 착각하지 않도록 때와 곳에 맞는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도울 손길을 만날 수 있도록 무엇보다 이 여행을 통해 제 자신이 제 삶과 운동 앞에 바로 설 수 있도록 마음의 허영을 벗어두고 뿌리깊은 중심만을 가지고 돌아 올 수 있도록 제게 이 길을 열어주신
남편과 아이, 그리고 벗들 앞에 제 삶 부끄럽지 않게 살아 갈 수 있도록…

이라크에 전쟁 없는 평화가 깃들 수 있도록…

‘평화를 위해서는 전쟁보다 더 위험한 용기가 필요하다’

이라크에 먼저 가 있는 한국 평화팀이 Iraq peace team의 대표를 만났을 때 50대의 평화운동가인 그녀가 들려준 말이라 합니다. 그 말을 가장 먼저 가방에 담습니다. 그리고 님들께서 보내주신 사랑을 가방 가득 채웁니다.

평화를 찾아 떠나는 먼 여행을 위해 길이 되어주신 귀한 벗들
찾아 뵙지도 못한 채 떠나는 먼길
멀리서 나마 마음 깊은 곳의 감사를 드립니다.

그대들 가난을 알기에 그대들 깊은 중심을 알기에 그대들 내 혼에 실어주시는 삶의 뜻을 알기에
내게 부어 주신 그 사랑 제 정수리에 생의 축복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그 사랑 속에 이미 평화가 있습니다.

(중략)

무엇보다 제게 이 여행을 허락해준 내 생의 반려 이도영님 내 생의 가장 귀한 화관 늘봄과 시원한 달의 기나긴 시간동안 제 가족들을 돌보아 주실 어머님, 늘 제 생애 깊은 신뢰 부어주는 동생 윤신에게 제 영혼을 담은 감사 드립니다.

그 사랑의 힘으로 평화를 일구는 작은 씨앗이 되겠습니다.
평화가 강물처럼 흐를 세상을 위해
첫걸음 내딛는 작은 샘물하나 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글 : 임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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