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주 씨 사망사건, 여중생 사건의 재연인가?

유족·시민단체, 사고현장의 의혹 제기

신효순, 심미선 두 여중생의 사망사건 이후 미군 관련 범죄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효순이와 미선이가 숨진 곳으로부터 4km 떨어진 지점에서 또다시 사고가 발생했다. 이번 사고에 연루된 미군 역시 여중생 사건의 피의자 소속부대인 2사단 소속이다.

지난 16일 밤 11시 30분 경 파주시 법원읍 웅담리 지방도로에서 스포티지 승용차를 몰고가던 박승주(37)씨가 훈련을 마치고 돌아가는 중이던 미2사단 공병여단 82대대 캠프 에드워드(Camp Edwards) 소속 부교 운반용 트레일러에 받혀 숨진 사고가 발생했다.

▲ 바닥의 흰색 꺾쇠 표시가 트레일러 뒷바퀴 위치를, 아래쪽 오른 쪽 차선 내의 흰 선 표시가 부교가 나온 곳의 폭까지를 잰 것으로 트레일러의 대형 규모를 짐작케한다.

당일 사고는 삼거리를 향해 오른쪽으로 꺾어져 나오던, 길이 18.10m, 폭 4.10m의 대형 미군 트레일러가 폭 6.30m 도로의 중앙선을 침범한 채 지나가다가 반대방향에서 오던 박 씨의 차량과 충돌한 것이지만 이에 대한 해석이 현장조사를 벌인 유가족, 시민단체들과 경찰들 사이에 엇갈리고 있는 상태다.

사고차량 잔해의 위치 논란=사고가 일어난 다음날(17일) 아침 현장조사를 한 파주경찰서 사고조사계는 박씨가 중앙선을 침범해 사고가 일어난 것으로 잠정적인 결론을 내린 상태다. 그러나 유가족들은 ‘진짜’ 현장이 따로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단서는 우선, 박씨의 사고차량의 파편들이다. 경찰이 주장하는 현장에서 모아진 것과 같은 파편들이 현장으로부터 미군 트레일러가 오던 쪽으로 13여 미터가 떨어진 곳에 걸쳐 흩어져 있는 것이 유가족들과 시민단체들에 의해 발견된 것이다. 충돌한 지점에서 파편이 날아갔다고 하기에는 상식적으로 너무 먼 거리다.

대형트레일러 앞에서 과속을?=경찰이 주장하는 대로 박씨가 중앙선을 침범하여 달려갔다해도 박 씨의 차량의 앞부분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인데 이 정도가 되려면 박 씨가 상당한 속도로 운전을 했어야 했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하지만 현지 주민들과 유가족들은 좁은 도로인데다 중앙선을 넘어 앞으로 오고 있는 대형 트레일러를 보고도 속도를 낼 수 있었겠느냐며 강하게 반론을 제기했다.

더군다나 경찰의 보고대로 사고현장의 트레일러에 앞서 같은 규모의 트레일러 6대가 이미 지나간 상태였다면 이를 지나쳤을 박 씨가 중앙선을 침범해서 왔을리는 없을 것이라는 얘기다. 사고차량이 옮겨진 파주자동차공업사의 한 직원 역시 “속도를 내지 않았다면 이정도의 상태로 볼 때 (트레일러가)덮친 후 밀고갔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말했다. 바로 ‘진짜’ 현장에서 박씨의 차량을 덮친 미군 트레일러가 사고차량을 13여 미터 정도 밀고 나갔을 것이라고 유가족들과 시민단체들이 추정하는 배경이다.

▲ 사건 당시의 참상을 보여주는 박 씨의 스포티지 차량.

현재 미군 측과 경찰은 공식적인 입장발표를 하고 있지 않은 상태이지만 어느새 유가족들의 마음에 ‘공동의 적’의 되어 버린 이들의 ‘물타기수사’가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현지 주민인 안상한(51)씨는 “카투사들이 동네를 다니며 박 씨가 음주운전 상태였다고 말하고 다닌다는 소문이 파다하다”며 “최초목격자가 숨이 남아있는 듯 보였던 박씨를 차에서 끌어내려고 하자 미군이 가로막았다고 했다”고 말했다.

유가족들은 특히 경찰의 수사에 분통을 터뜨렸다. 박씨의 처삼촌인 조한조(53)씨는 “우리가 거듭 제기하는 의혹에 대해 제대로 수사할 생각은커녕 아예 자기들 입장에서 확정내린 결론으로 우리를 설득하기에만 급급하다”며 “수사 자체가 전적으로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17일 영안실을 찾은 경찰은 한바탕 소란을 피우기까지 했다. 박씨의 시신에서 알콜농도를 확인하기 위한 혈액채취에 합의하라고 종용하기 위해 온 것이었다. “이왕 난 사고니까 물흐르듯 빨리 끝내자”라고까지 말하는 경찰의 한쪽으로만 쏠린 귀에 유가족들은 강경하다. 진상이 규명될 때까지 장례도 무기한 연기할 예정이다.

박승주 씨는 사고현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면서 12년 째 웅담리에서 살아왔다. 유가족은 부인 최미애(33)씨와 딸 박해미(11)양과 아들 박민서(4)군이다. 최 씨는 말을 하기 어려울 정도로 거의 탈진상태여서 주위의 안타까움을 샀다.

이날 현장에 나와 현지 시민단체 관계자들과 함께 자체조사를 벌인 김판태 불평등한소파개정국민행동 사무처장 역시 연달아 발생하고 있는 미군관련 사건들에 대해 착잡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에 따르면 여중생 사건 범국민 대책위를 비롯한 시민단체 진영은 이번 사건에 대한 논의를 통해 조만간 구체적 입장을 발표할 계획이다.

미 2사단과 경찰이 이번 사건 역시 제기되고 있는 의혹들에 대한 명확한 진상규명 없이 사람들의 입을 막으려 한다면 이후의 상황은 불을 보듯 뻔하다. 미군이 ‘믿는 구석’이 바닥을 드러내는 것은 이제 시간문제일 것이다. 현지 주민들은 입을 모아 얘기한다. “그들은 우리에게 피해만 줍니다”

김선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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