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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북관계
  • 2001.08.30
  • 1367

6박7일 민족통일대축전 평양취재기 ② - 대동강에서 묘향산까지



2001 민족통일대축전 평양행사. 수많은 논란 속에 지난 8월 15일부터 21일까지 개최된 이 행사에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소속으로 월간 참여사회 최경석 기자가 직접 다녀왔다. 6박 7일간 일정으로 평양에 머물면서 바라본 통일대축전과 평양행사 등을 세차례 나눠 싣는다. - 편집자주

6박7일 민족통일대축전 평양취재기 ① - 방북결정에서 폐막식까지

한반도에서 5번째로 긴 대동강

"난 6·25를 직접 겪은 사람입니다. 참혹했던 기억도 여전히 많이 남아 있어요. 이곳에 직접 와보니 수많은 생각이 스쳐갑니다."

대동강 유람선에서 만난 한 남측 인사는 이렇게 말을 붙인다. 나이가 60대인 그는 물끄러미 대동강변을 바라보고 있다. 필자와 이런저런 얘길 나누던 그는 술 한잔을 권한다.

▲반갑습니다!

대동강 유람선을 타기 전 한복을 입은 북측 안내원들이 마중나와 남측 대표단을 환영하고 있다.


"평양만 그런지 몰라도 사람들의 일상에 조금은 여유도 있는 것 같아요. 놀랐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통일에 대한 열의도 진심이더군요. 나 이곳에 와서 생각이 참 많이 바뀌었습니다. 다시 돌아가면 내가 느낀 이곳 사정을 사람들과 꼭 나누고 싶어요. 북과 교류도 자주 하고 싶고. 무엇보다 서로가 자주 만나야 이해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이겁니다."

무언가 나눌 것이 있다면 남과 북이 함께 했으면 좋겠다는 그. 필자와 헤어진 그는 북측 안내원들과 자연스럽게 얘기를 하거나 사진을 찍고 있다. 어느새 평양에 온지 3일이 지난 17일 오후. 통일과 관련, 다양한 관점을 가진 단체들에서 온 남측 대표단 340명의 사고방식에 어떤 변화가 일고 있는 걸까 궁금하기도 하다. 서로가 다른 체제에 살아온 지 50년, 우선은 각자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의 여지가 필요한 건 아닐까.

총 450.3㎞로 한반도에서 5번째로 긴 강이라는 대동강. 대동강변을 따라 저 멀리 모란꽃을 닮았다고 해 '모란봉'으로 이름지어진 금수산이 보인다. 그 건너편에는 길게 뻗은 능라도도 보인다. 북의 안내원은 대동강에는 양의 뿔을 닮아 이름붙인 '양각도' 등 5개의 섬이 있다고 전했다. 옥류교와 대동교를 지나 멀리 5·1경기장도 보인다. 이 경기장은 평양 최대의 수용능력을 갖춘 경기장으로 지난 89년 완공되었다. 북측 안내원은 "1990년 남북통일축구대회가 개최된 곳"이라고 설명했다. 북측이 자랑으로 여기는 지난 1968년 1월 23일 원산 앞바다에서 포획했다는 푸에블로호와 1866년 통상을 요구하며 온 미국 셔먼호 격침장소도 보인다. 그들이 미국을 대하는 태도가 무엇인지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33년전 모습 그대로

60년대말, 북미간의 첨예한 긴장관계를 일으켰던 '푸에블로호납치사건'의 미 해군 정보수집함 푸에블로호가 대동강변에 전시되어 있다.


1시간 30분 동안 유람선을 타고 대동강을 따라 내려온 대표단은 17일 오후 4시 30분 경 만경대에 하차했다. '일만가지 경치를 볼 수 있는 곳'이라는 뜻을 가진 이곳에는 고(故) 김 주석의 증조부 김응우 씨가 1862년 처음 터를 잡고 대대로 살아온 초가집이 있다. 340명의 대표단은 일부가 안내원의 해설을 듣는가 하면 일부는 자유롭게 주변 경치를 감상하거나 뜨거운 햇빛을 피해 잠시 휴식을 취하기도 했다.

안내원의 설명에 따르면 이곳에서 고(故) 김 주석은 1912년 4월 15일 태어났다고 한다. ㄷ자 모양의 초가집에는 낡은 농기구와 가재도구, 그리고 고(故) 김 주석 일가의 초상화가 전시되어 있다. 특별히 사람들의 눈길을 끈 것은 일명 '오장독' 이라는 두세겹으로 일그러진 독항아리였다. 소설가 황석영 씨는 "예전 북측 작가들 말에 의하면 이 독은 잘못 만든 독이라 팔지도 않았는데 가난했던 김 주석의 증조모가 장에 나가서 겨우 떼를 써 사왔다고 들었다"며 "당시 이 집안이 얼마나 가난하고 힘들게 살았는지를 보여주는 자료로 들었다"고 소개했다. 그의 말에 보태어 북측 만경대 생가 안내원은 "이 독은 127년이나 된 독"이라며 "혁명전통 집안의 삶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말했다.

▲ 'ㄷ'자 모양의 초가집

남측 대표단이 만경대 김일성 주석의 생가를 방문해 사진을 찍거나 집안을 구경하고 있다.


일정에 쫓겨 북측 안내원들은 남측 대표단을 서둘러 버스로 이동 시켰고 대표단 중 일부는 주변 우물가에서 목을 축이거나 담소를 나눴다. 매우 비좁았던 생가에서 대표단은 기념사진을 삼삼오오 찍기도 했다.

'한마명수'인 처녀가 남포10차선도로 건설의 최고노력영웅

5시 15분, 평양∼남포간 50여 km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다. 지난 98년 11월 북의 '고난의 행군'시기 건설했다는 10차선 고속도로. 북쪽의 전국 각지에서 5만여 명의 청년돌격대와 군인들을 동원해 건설한 이 도로의 명칭은 '청년영웅도로'. 이 도로를 건설한 노력영웅은 '한마명수'로 불린 한 처녀가 뽑혔다. '한마'는 망치 한 대를 가리키는 말. 그 어느 청년보다도 이 처녀의 한마 솜씨가 빼어나 뽑혔다고 한다. 그러나 10차선 고속도로에는 그렇게 많은 차량이 달리고 있지는 않다. 아직 남포에 공업단지 조성이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한 안내원은 "대우에서 짓다만 공장도 있다. 지금은 어떻게 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평양∼남포간' 고속도로를 잠시 방문한 대표단은 곧바로 동명왕릉으로 향했다. 가는 도중 '2001년 민족통일대축전' 개·폐막식 행사가 열렸던 '조국통일 3대헌장기념탑'을 스쳐갔다.

▲ 고즈넉한 왕릉

조용하면서도 위엄있는 모습을 갖춘 고구려 시조 고주몽의 무덤인 동명왕릉이 보인다.


동명왕릉에는 고구려의 역대 왕과 장수들의 무덤이 20여 개 있다. 그 중에는 평강공주와 사랑을 나눈 바보 온달의 무덤도 있다. 멀찍이 푸르른 잔디로 뒤덮인, 동명왕릉의 절반 정도 크기의 무덤이 보인다. 시간이 허락되지 않아 그곳으로 가보지는 못했다. 그 옆에는 정릉사라는 절이 있다. 신라 불국사 정도의 규모로 지난 90년대 완전 복원했다고 한다. 이곳에서 30여분 정도 관람을 마친 대표단 일행은 저녁 7시가 넘어 다시 평양 시내 인민대학습당으로 향했다.

한편 그곳으로 가는 도중 다시 '조국통일 3대헌장기념탑'을 지나가게 되었다. 이 기념탑은 평양시내로 들어가는 통일거리 길목 위에 설치되어 있다. 7시 18분 경, 이곳을 통과하던 버스는 잠시 멈췄고 사람들은 남쪽에서 민족공동행사 개·폐막식 내내 논란이 되었던 이 현장을 10여분 정도 직접 둘러보았다. 기념탑을 둘러본 남측 일간지 기자 중 한 명은 "이렇게 개·폐막식이 끝나고 와보니 그렇게 심각한 논란을 일으킬만한 특별한 내용이나 상징이 있지도 않다"며 "남쪽에서 너무 민감하게 받아들인 면도 없지 않다"고 개인적 의견을 말하기도 했다. 이 기념탑은 폭이 61.5미터로 작년 6.15공동선언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 도서목록 확인 중

국립도서관에 해당하는 북의 인민대학습당에서 요리사인 김경희(26세) 씨가 고기가공학과 관련된 책을 찾고 있다.
저녁 7시 45분, 인민대학습당에 도착했다. 1982년 4월 1일에 개관된 이곳은 남쪽의 국립도서관과 같은 곳이다. 3000만 부의 장서를 소장하고 있다. 책은 대부분 김일성, 김정일 관계서적들, 사회과학, 문학작품, 기술공학, 특수기술문헌을 비롯한 북한에서 발행된 각종 출판물들과 기술문헌들 및 외국의 과학기술도서들, 정기간행물들 등이 보관되어 있다. 북에서 17살 이상의 공민권을 갖은 사람이면 누구나 이용이 가능하다. 여기서 만난 김경희(26세) 씨는 고기가공학과 관련된 책을 찾고 있었다. 그는 평양 단고기국집 요리사로 "퇴근 후 시간이 나면 한달에 1∼2번은 꼭 오려고 한다"며 "요즘 새로운 고기 요리법을 고민하다 이곳에 자료를 찾으러 오게 된 것"이라고 설명해 줬다.

9시가 넘은 저녁시간, 일행은 숙소인 고려호텔로 돌아왔다. 일본의 역사왜곡에 공동으로 규탄 성명을 내는 등 16일로 공동행사를 마친 대표단은 이날 평양 주변의 명승지를 보면서 조금은 피곤해진 몸과 마음의 피로를 풀었다.

▲ 문제의 조국통일 3대헌장 기념탑

2001 민족통일대축전 개폐막식의 논란거리가 되었던 기념탑. 높이 30m, 폭 61.5m로 6·15공동선언이행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고 한다.


백두산 천지

"우리는 이렇게 300명이 넘는 사람이 오는데 왜 북측은 서울로 안 와요?"

"아니, 언제 안 간다고 했습니까? 그 이전에 신뢰할 수 있는 상황이 되야 가죠."

삼지연 비행장에서 백두산 정상으로 가고 있는 15인승 미니버스 안. 넉넉잡아 1시간은 가야 한다는 이 길. 버스안에서 남측 인사 3명과 북의 안내원 1명이 서로 남북 민간교류에 대해 옥신각신하고 있다. 남측 인사들은 서로 화해하고 교류해야 한다면 서로 오갈 것을 요구했다. 북측 안내원은 아직은 정치적으로 긴장관계인 북남, 북미 관계를 들며 나름의 불만스러운 상황을 설명했다. 그가 보기에 남북관계의 냉각은 MD를 추진중인 부시정권과 미덥지 않은 남쪽 정부의 태도가 문제라는 것. 민간의 대화에서도 아직까지는 매우 정치적으로 민감하거나 긴장된 얘기들이 오갔다. 서로가 자신의 입장을 확인하는 데서 끝난 대화. 더 많은 대화가 남북 간에 필요하다는 것을 양쪽 모두 느끼지 않았을까.

▲ 서서히 안개가 사라지면서 백두산 천지의 본 모습이 드러나고 있다.


차창으로 보이는 백두산 일대 해발 1500미터 지역은 어른 키의 3∼4배 정도는 족히 될 크기의 침엽수림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러다 2000여 미터를 넘어서부터 펼쳐진 고원지대에는 키 작은 침엽수와 활엽수림이 뒤섞여 등장한다. 누군가의 말처럼 "여인네 속살처럼 흰" 자작나무 숲도 보인다. 어느새 저 멀리 백두산 정상이 보인다.

천지는 예술의 극치

천지로 걸어 올라가는 동안 늦가을처럼 싸늘한 바람과 비, 안개 등으로 대표단을 반기지 않는 것만 같던 백두산. 그러나 이내 정상에 오르자 안개가 걷히며 백두산 천지가 완연히 보인다. 남과 북의 사람들은 흥분된 감정을 가누지 못하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만세삼창을 외치고 있다.

▲ 확연히 모습을 드러낸 백두산 천지. 사람들은 이를 보고 만세삼창이나 기념사진을 찍으며 감동을 만끽했다.


8월 17일 오전 11시, 서서히 안개가 사라지며 천지는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최고 해발 2700미터을 웃도는 백두산. 남측 사람들은 "중국을 통해 올라와 본 적은 있지만 이렇게 내 발로 걸어오다니 믿기지 않는다"며 연신 감탄을 하고 있다. 한 인사는 "한라에서 백두까지, 모두 우리 땅이며 남과 북이 한 민족이라는 걸 새삼 느낀다"고 말했다. 30대 후반의 남측 한 인사는 백두산 방명록에 "통일이 되면 아이들과 함께 꼭 다시 오고 싶습니다"라고 적기도 했다.

이 날 천지를 본 남측 대표단은 북이 마련한 코스를 따라 백두산 아래 항일유격 장소였다는 여러 백두산 밀영지 및 삼지연대기념비를 둘러보기도 했다. 남측 대표단의 한 청년은 백두산 밀영이 정말 산 깊숙이 있는 곳인지 주변을 돌아다니다 북측 안내원의 제지를 당하기도 하고, 김정일 생가를 본 일행 중 일부는 믿을 수 없다며 고개를 젓거나 항일유격의 연도에서 사건까지 북측 안내원이 설명한 내용을 두세 번 되물어 보며 확인을 하는 모습도 보인다. 또한 일부는 안내원의 설명을 메모하기 바쁘다. 여전히 서로가 직접 확인하고픈 것들이 많이 남아 있는 것이 현재의 남북 상황이라는 것을 반영하는 것 같다.

▲ 푸르게 펼쳐진 고원

천지에서 내려다본 백두산 주변의 고원지대. 조금은 높아진 기온 탓에 화산재로 덮여있던 이곳에도 푸른 싹이 나기 시작했다고 북측 안내원은 전했다.


저녁 10시에야 돌아온 일행. 그러나 고려호텔 안에서는 어제 만경대 생가에서 서명한 방명록 내용이 남쪽 언론에 크게 보도되면서 큰 논란이 일고 있다는 소식이 퍼지면서 술렁이고 있다. 남측 대표단 일행의 얼굴이 모두 굳어져 있다. 혹자는 "개폐막식 참관 논란도 있었는데 개인적 행동은 매우 사려 깊게 해야 되는 거 아니냐, 정말 객관적인 자세들이 부족하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하고. 혹자는 "일부 언론이 남북간의 화해보다는 여전히 냉전적 시각으로 뭔가 딴지를 걸 명분을 찾다가 이런 것들을 부풀리는 것 아니냐"며 "앞으로 이곳 기자들과는 말도 하지 않을 것"이라며 불쾌해 하고 있다.

조금은 쓸쓸한 분위기의 묘향산 보현사

8월 19일, 오전에 종교예배를 본 일행이 돌아오자 남측 대표단은 묘향산으로 출발했다. 버스 안에서 어제처럼 서로가 궁금해하던 내용을 조금씩 질문하며 시간을 보냈다.

▲ 활짝 웃고 있는 신혼부부

묘향산으로 신혼여행을 온 장주학(29), 문혜옥(26) 부부가 장모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북에서 지난 몇 년 동안의 '고난의 행군'이라 불린 힘든 시절이 있었죠?"

"아, 예. 올해도 홍수와 가뭄이 반복돼 힘든 때도 있었죠.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그땐 정말 힘들었어요."

한 인사는 매우 조심스럽게 탈북자 얘기도 꺼낸다. 북측 안내원은 단호하게 "함께 허리띠 졸라매지 않고 혼자 살겠다고 간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그는 남쪽에 6·15남북공동선언의 이행의지가 어느 정도나 되는지 물어보기도 했다. 분단체제가 지속된 지 50여년, 서로가 확인하고 물어보고 싶은 것들이 너무나 많은 상황. 어쩌면 현재의 남북관계와 그 속에서 살고 있는 서로의 처지를 반증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서로의 체제에서부터 일상까지, 각자 체득하며 갈라진 나름의 코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두 개의 머리를 갖고 있다 해도 몸은 하나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면….

정오가 되어서야 묘향산에 도착했다. 평양에서 160여 킬로미터를 달려온 이 곳.여기에는 1042년(고려 중종 8년)에 세워진 보현사가 있다. 안내원은 여기 표지판에 있는 묘향산 전경을 하나하나 설명하고 있다. 남쪽에서는 TV나 사진으로만 보던 상원암, 비로봉, 만폭동 등의 절경이 표시되어 있다. 묘향산은 8만4000 봉우리로 되어 있어 석 달을 돌아봐도 다 볼 수 없는 곳이라고 한다. 임진왜란 당시 승병장으로 활약한 서산대사의 비문도 보인다.

▲ 보현사 입구에는 임진왜란 당시 승병장으로 활약한 서산대사를 기리는 비문이 있다.
보현사 입구에서는 한 신혼부부가 사진을 찍고 있었다. 장주학(29), 문혜옥(26) 부부. 평양시에 사는 이들은 오늘 결혼식을 올린 뒤 신혼여행차 이곳 묘향산에 왔다고 한다. 이들을 본 북측 안내원들이 "오늘밤 조직하겠네"하고 농담도 건넨다.

보현사에는 고려시기에 세워진 4각9층다보탑과 8각13층탑과 대웅전 등이 남아있다. 대웅전을 둘러본 한 스님은 "화엄경에 '보현행원품'에 나오는 것으로 보현사는 경남 합천의 해인사와 더불어 화엄도량이며 비로자나불을 모시는 절"이라며 "따라서 비로자나불을 모시면 본당이 대웅전이 아니라 대적광전(비로전)이라고 적혀있어야 맞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보현사가 처음 세워졌을 당시에는 해인사와 더불어 매우 웅대했다고 들었는데 보수된 이 곳은 어쩐지 협소해 보인다"며 "조금은 쓸쓸한 마음도 든다"고 소감을 말했다. 이 정도 규모라면 수십, 수백 명의 수행원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아 안타깝다는 것.

오후 3시부터는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위원장이 세계 각국으로부터 받았다는 선물을 전시해 둔 국제친선전람관을 들렀다. 이 건물에서 남측 대표단의 눈길을 끈 곳은 두 곳. 한 곳에는 김일성 주석의 생전 모습을 중국에서 밀납으로 만든 모형이 전시되어 있다. 북측 안내원들은 이전까지의 전람관 소개와는 달리 사뭇 진지하고 조심스럽게 남측에 소개했다. 이들 안내원 3∼4명은 묵례를 하기도 했다. 남측 대표단 중 한 인사는 "(밀납모형이 살아있는 듯해) 조금은 전율이 느껴졌다"며 "솔직히 우상숭배, 1인독재라는 느낌도 들고 한편으론 국가 최고지도자에 대한 그들 나름의 예우로 이해할 부분인 것 같기도 하다"면서 좀 더 생각해 볼 문제라고 말했다. 한편 김정일 위원장이 받은 선물만을 보관해 놓은 '김정일 선물관'에는 6·15남북공동선언 전후로 남측에서 보낸 선물들이 주목받았다. 특히 작년 9월 18일 김종필 자민련 총재가 보냈다는 은수저세트와 1998년 10월 26일 동아일보사취재단이 보냈다는 '1937년 보천보전투 동아일보 호외'의 순금인쇄판이 남측 대표단 사이에서 회자되었다. 한 인사는 "이것이야말로 국가보안법 상의 찬양, 고무죄에 해당하는 것 아니냐"고 소리치기도 했다.

▲ 보현사 절내에 있는 8각13층탑과 대웅전. 보현사는 고려때부터 지금까지 보전되고 있는 북의 대표적 사찰 중의 하나이다.


국제친선전람관에서 2시간 넘게 관람한 남측 대표단 일행은 매우 피곤한 몸을 이끌고 고려호텔로 돌아왔다. 상원암 등 묘향산을 더 둘러보고 싶다는 요구도 있었으나 시간상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일부는 "전시관은 정말 말 그대로 선전 아니냐"며, "오히려 묘향산을 제대로 보여주는 배려가 아쉽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경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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