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의 대북 패키지’..무슨 내용 담았나 (연합뉴스, 2006. 11. 30)

(서울.베이징=연합뉴스) 정준영 조준형 기자 = 베이징(北京)에서 28~29일 이뤄진 북미 대화가 6자회담의 진전을 위한 미국의 제안을 설명하는 데 상당 부분 할애됐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그 제안 내용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미국의 대북 제안은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의 입을 통해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에게 전달됐지만 사실상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향한 조지 부시 대통령의 `육성’에 가까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 때문에 이번 제안을 `부시의 패키지’로 확대 해석하는 시각도 나오고 있다.

게다가 2003년 이후 6자회담 과정에서 북미 양국 수석대표가 이틀 간에 걸쳐 얼굴을 맞댄 일도 드문 일이었고 미국이 스스로 다양한 아이디어를 북한에 내놓는 경우도 이례적이라는 점에 긍정적인 의미를 두는 전문가들도 적지 않은 상황이다.

이 같은 상황 때문에 북미 접촉 분위기는 북한이 요구사항을 주장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던 과거와는 달리 미국이 적극적으로 입장을 설명하고 북한은 조심스럽게 경청하는 분위기를 연출했다는 후문이다.

1박2일 간의 협의 끝에 기대했던 6자회담 재개 날짜를 잡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실패’ 내지 `결렬’로 보지 않고 “더 지켜보자”는 입장이 나오고 있는 것도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에 따라 공은 다시 북한으로 넘어간 상황이며 앞으로 짧게는 열흘, 길게는 한 달 가량이 6자회담 재개와 그를 통한 실질적인 진전을 예상해 볼 수 있는 중요한 국면이 될 것이라는 게 외교 소식통들의 전망이다.

◇ `부시의 패키지’ 어떻게 나왔나 = 미국의 제안은 지난 18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통해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당시 한미 정상회담에서 부시 대통령이 북한이 핵무기를 폐기할 경우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김정일 위원장과 종전 선언 문서에 공동서명을 할 용의가 있다고 밝힌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이는 9.19 공동성명의 이행 순서를 감안할 때 시기적으로 다소 멀게 느껴지긴 하지만 북한과 김정일 위원장의 존재를 카운터파트로 인정하려는 듯한 태도에서 나온 전향적인 발언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미국의 이런 움직임은 한미 공동의 노력에 기반하고 있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공동의 노력은 9월 14일 워싱턴 한미 정상회담에서 6자회담의 재개 및 진전을 위해 만들어 나가기로 합의한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을 말한다.

결과적으로 북핵은 물론 방코델타아시아(BDA) 문제가 불거진 상황까지 돌파하기 위해 성안에 들어간 이 포괄적 접근방안이 이번 미국의 대북 제안에 상당 부분 녹아들어갔을 것이라는 해석인 셈이다.

특히 중요한 것은 부시의 `결재’를 받은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는 점.

정부 소식통도 “힐 차관보가 많은 내용의 인센티브를 북측에 설명할 수 있었던 것은 부시 대통령의 위임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보면 된다”면서 “따라서 이는 부시 대통령의 뜻에 김정일 위원장의 답변을 촉구한 의미로 받아들여진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김계관 부상이 평양에 돌아가서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은 내용에 대한 검토에도 고민이 필요하겠지만 부시 대통령의 뜻과 의지가 실린 미국 측 제안이 갖는 무게를 감안한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또 이런 제안이 나온 것은 지난 7일 미국의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승리하면서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부 장관이 경질된 상황에 비춰 워싱턴에서 강경파보다는 대화파의 입지가 넓어진 데 따른 것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많다.

◇ 무슨 내용 들어있나 = 미국의 제안 내용은 아직 공개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내용적으로는 9.19 공동성명과 이에 기반해 만들던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이 바탕이 됐으며 상황적으로는 지난 달 9일 북한의 핵실험이 고려 대상이 됐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내용은 크게 두가지로 구성됐을 것으로 관측된다.

우선 북한이 핵폐기를 위해 해야 할 이행조치들을 나열하고 그에 따라 미국 또는 다른 6자회담 참가국이 취할 수 있는 상응조치들이 들어갔을 것이라는 관측인 것이다.

9.19 공동성명에 있는 핵포기, 에너지 및 경제 협력, 관계정상화, 평화체제 등 핵심 제목들이 죄다 망라됐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9.19 성명에서 한발짝 나아가 공동성명에 명시되지 않은 구체적인 아이디어, 예를 들면 핵심 목표들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취할 수 있는 세부조치가 들어갔을 가능성이 설득력 있게 제기되고 있다.

톰 케이시 미 국무부 부대변인이 “회담을 생산적으로 만들기 위한 모든 아이디어들이 포함됐다”고 설명한 것도 이런 가능성에 무게를 실어주고 있다.

특히 김계관 부상이 이번에 즉답을 하지 못한 것도 평소에 미국측으로부터 직접 듣지 못했던 포괄적이고도 구체적인 내용이 들어있었기 때문일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런 분석들에 비춰 미국이 북한에 요구한 이행 조치는 현존하는 모든 핵무기와 핵관련 프로그램의 폐기에 맞춰졌을 것으로 보인다.

핵 폐기의 시퀀스는 일반적으로 `동결-신고-검증-폐기’ 등 4단계로 이뤄진다.

하지만 과거와 달리 이번에는 북한이 조기에 이행할 조치의 내용에 동결은 물론 신고까지 집어넣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외교 소식통의 관측이다.

이런 관측에는 북한의 핵실험 강행에 따른 상황 변화를 반영하기 위해서는 종전처럼 초기 조치로 5MW 흑연감속로의 가동을 중단하는 상징적인 행동 보다는 보다 실질적인 조치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깔려 있어 보인다.

이에 상응하는 조치들로는 정치적 측면에서는 체제안전 보장, 평화체제, 관계개선 등이, 경제적으로는 에너지 지원, 인도적 지원 문제가 거론됐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반응이다.

우선 체제안전 보장은 부시 대통령이 대북 불침 의사를 구두로 밝히는 종전 수준에 그치는 게 아니라 양자 차원에서 서명이 들어간 친서 형식으로 이뤄질 수 있다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아울러 이미 확인된 한국전쟁 종전선언도 들어갔을 것으로 확실시된다. 종전선언은 동시에 평화협정을 수반할 수 있지만 먼저 종전선언을 한 뒤 북미관계 개선의 추이를 봐가며 평화협정으로 갈 가능성도 적지 않은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체제안전 문제는 수교를 통한 북미관계 개선으로 귀결될 것이라는 예상인 셈이다.

경제적으로는 9.19성명에 나온 에너지 지원이 거론됐을 것으로 보인다.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에 따라 초기에 취해진 조치가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를 통한 대북 중유 지원사업이었던 점은 이번에도 미국과 다른 국가가 함께 참여하는 중유 지원안이 구체적으로 전달됐을 것으로 보는 이유가 되고 있다.

게다가 심각한 에너지난에 직면한 북한은 중유가 절실한 상황이다.

특히 중유 지원 시기를 북한의 조기 이행조치로 미국이 희망하는 `동결-신고’에 맞춰 잡겠다며 `동시행동’의 원칙을 적용했을 가능성도 유력하게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9.19 공동성명 직후부터 제공 시기를 놓고 북미 간에 장외공방이 벌어진 경수로 문제까지 이번에 미국이 언급했는지 여부는 즉각 확인되지 않고 있다.

경수로가 제공돼야 핵을 폐기하겠다는 북한에 맞서 핵확산방지조약(NPT) 복귀 이후에 경수로 제공을 논의하겠다는 미국의 종전 입장에 변화가 있었다면 북한에게는 무시하기 어려운 `당근’이 될 것이라는 게 전반적인 관측이다.

이와 함께 인도적 지원이나 개발 지원 문제가 거론됐을 수도 있다. 이번 회담 테이블에 의제로 오르기에는 시기상조로 보이지만 `모든 아이디어’를 냈다는 미국 측 설명에 비춰 부분적으로 언급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예컨대 인도적 차원에서 식량을 직접 주거나 세계식량기구(WFP)를 통해 간접 지원하는 방안, 북한이 희망했던 세계은행이나 아시아개발은행(ADB) 가입을 허용해 북한 개발 프로젝트를 추진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방법 등을 상정할 수 있다.

국제 금융기구 가입은 미국이 대북 제재를 해제하는 문제와도 연결된다.

아울러 9.19성명 이후 북미 관계를 꼬이게 만들었던 BDA 문제에 대한 해결방향도 대략 제시됐을 것으로 보이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 북 반응 주목 = 향후 주시 대상은 북한의 반응이다.

김계관 부상은 30일 베이징에서 천영우 외교통상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만난 뒤 한반도 비핵화는 고 김일성 주석의 유훈으로서 9.19성명을 이행할 준비가 돼 있으나 “현 단계에서는” 일방적으로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외교적 과정’임을 들어 북미 협의 내용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을 피하며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이런 태도는 물론 비핵화를 유훈에 연결시킨 발언 역시 긍정적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앞으로 6자회담 재개 여부는 핵실험에 따른 북미 양국의 인식 차이를 좁힐 수 있는지에 달려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미국은 북한의 핵실험에 따라 그 이전과 같은 수는 없다는 기본 인식을 갖고 있는 반면 북한은 핵보유국 지위를 강조하고 있는 만큼 좁히기 어려운 간극을 노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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