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군축센터 기타(pd) 2008-07-05   1113

[알면통(通)한다⑥] 위협은 해석의 문제이지 객관적 사실이 아니다 -‘평화국가 구상’과 시민사회운동

동아시아 평화와 한반도의 좌표: 평화국가 만들기


2008년 7월 4일 연속기획강좌 ‘알면通한다’의 마지막 시간. 참여연대 3층 중회의실에서 시작된 마지막 알통강좌는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실행위원이며 평화연구자이신 이대훈 선생이 맡아 주셨습니다. 이대훈 선생은 ‘평화국가’에 대한 상상력과 꿈을 구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방법과 목록까지 제안하며, 하나 하나 펼쳐 보이셨는데요. 그럼 평화국가는 과연 가능한 것인지, 어떻게 만들 수 있는 것인지 그 목록을 들여다 볼까요? 



군대 없는 국가, 경찰 없는 국가는 상상하기 어렵다?


‘평화 국가’라는 말은 언뜻 보면 모순 어법입니다. 국가는 일정하게 폭력적인 장치를 갖고 있어야만 유지되는 기구이기 때문이죠. 군대 없는 국가, 경찰 없는 국가는 상상하기 힘듭니다. 국가 앞에 ‘평화’라는 단어를 붙이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저마다 ‘평화’를 정서적으로는 좋아하면서도 구체적인 정책이나 프로그램으로 옮기려 하면 “꿈도 꾸지 마라.” “세상 물정 모른다.” “순진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고, 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는 국가와는 질적으로 다른 정치공동체를 생각해보자는 것이 평화국가의 구상입니다. 폭력 없는 국가는 가능할까요? 발상을 전환해 봅시다. 세상의 모든 진보는 불가능한 것을 꿈꾸면서 시작되었으니까요.


우리의 헌법은 약한 평화주의, 그러나 국방 의무만은 성역


대한민국 헌법에서는 침략전쟁을 하지 않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둘러둘러 애써 이라크에 파병을 했지요. 침략하는 건 아니라고 발뺌하면서요. 강한 평화주의는 침략전쟁이든 아니든 모든 전쟁을 반대하는 것입니다.  우리 헌법 자체는 평화주의 헌법입니다.

그러나 우리 헌법에는 성역이 있습니다. 국방의 의무는 헌법에 명확히 규정돼 있습니다. 그렇다면! 침략전쟁은 거부하지만 다른 형태의 군사활동은 열심히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국방의 의무와 더불어 우리는 세금을 내야 합니다. 내가 세금을 내지만 우리 군대가 내 의견과 다르게 공격적이며 침략적인 행동을 할 때 주권자로서의 나는 어떤 행동을 할 수 있는가가 헌법에는 담겨있지 않습니다. 군대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빈 구석, 즉 성역이 있는 것입니다. 국가가 폭력적 행위를 시도할 때 시민들이 불복종하고 저항할 수 있다는 조항이 헌법에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름다운 저항의 사례 하나, 영국 핵잠수함 교신 시설 무력화시킨 3인


영국에서 두 번째로 가난한 도시이고 이민자들이 많이 살지만, 세계에서 최초로 노동조합이 생겨나고 영국에서 유일하게 평화학과를 가진 대학 멘체스터 브래드포드에서 40대 후반의 안젤라와 50대, 60대의 벗이 놀라운 계획을 짭니다. 영국의 막강한 핵잠수함을 무력화시키겠다는 것. 철조망을 자르는 연장, 해머, 고무 보트, 따뜻한 차가 담긴 보온병을 들고 이 세 사람은 영국 핵잠수함의 암호를 통제할 수 있는 센터가 있는 섬으로 전진합니다. 스코트랜드에서 관광객인 것처럼 배회하다가 해가 지자 보초를 피해 고무보트를 타고 섬까지 도달한 것입니다.

운 좋게도 센터의 좁은 창문 하나가 열려 있었습니다. 건물 안에 진입한 세 사람은 이때부터 즐거운 ‘부수기’ 파티를 시작합니다. 컴퓨터를 부숴 바다에 던져 버린 후, 차를 한 잔씩 마시고 담소도 나누기까지 아무도 출동하지 않았습니다. 그제서야 안젤라와 두 명의 친구는 경찰에 전화를 걸어 “우리를 잡아가라.”고 말합니다. 이분들은 재판을 거쳐 무죄로 석방되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궁금하시죠?


유엔 국제사법재판소 “평화로운 시기에 핵무기 제조, 보유, 사용은 불법”


유엔국제사법재판소는 일반재판소와는 달리 개인을 재판하는 곳이 아니라, 커다란 국제재판을 하는 곳으로 판결이 권위를 가집니다. 각국의 재판부가 국제의 최고 판결 권위로 해석을 하게 되지요. 70년대 말부터 반핵운동단체들은 유럽 몇몇 정부에 로비를 해서 국제사법재판소에 핵무기가 불법인지 아닌지에 대해 소송을 제기합니다. 긴 시간 법리논쟁은 한 끝에 1986년 유엔국제사법재판소에서 권고안이 나왔습니다.



“평화로운 시기에 핵무기를 제조, 보유, 사용하는 것은 불법이다. 전쟁 시기에 제조, 보유, 사용은 불법인지 합법인지 판단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안젤라 팀은 국제법상으로 분명이 핵무기가 불법인데 정부가 의도적으로 불법행위를 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국가의 폭력행위를 막기 위해 직접행동을 한 것이며 이는 법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2001년의 재판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물론 강대국들은 이런 내용을 무시하면서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고, 국가간 견제관계기 때문에 세계의 핵무기를 100% 포기시키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시민들이 평화적으로 움직이는 이런 직접평화행동은 매우 중요합니다.


군인에게도 저항할 권리가 있다!


평화국가에서 저항권은 아주 핵심적인 권리입니다. 그런데 양심적 병역거부는 제한된 저항권입니다. 군대에 안 가겠다는 것이 아니라 군대에서 폭력적인 활동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저항이니까요. 이는 군대에 들어가기 전까지의 저항권입니다. 이스라엘이나 팔레스타인에서처럼 민간을 쑥대밭으로 만들라는 살상 명령을 받게 되면 주권자로서 군인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스라엘 장교 중 몇 명은 폭력행동을 거부해 재판에 회부된 적이 있습니다. 그들은 군대자체를 거부한 게 아니라 군대의 특별한 명령을 거부한 겁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우리 군대문화에서는 명령을 거부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지요.


미군은 부당한 명령에 대해 거부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입대하자마자 교육받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군대에 가면 명령에 무조건 복종할 것을 교육받습니다. 군인은 복종해야 할까요? 군인 역시 시민이고 주권자인데 그들의 권리와 자유는 어디까지일까요? 명령에 대해서 판단할 수 있는 자기 양심과 사상의 자유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는 여지가 있어야 합니다.


내가 낸 세금으로 군대가 유지되고 그 군대가 불법전쟁을 벌이고 있을 때 나는 세금을 내지 않거나, 노동을 거부할 권리가 있을까요? 내가 운전하고 있는 기관차가 무기를 운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 기관사는 불법전쟁에 일조하기 않기 위하여 기관차를 멈추고 거부할 수 있을까요?


저항 행동의 구체적인 목록 만들기


국방예산의 상당 부분이 국회 안에서 국가안보라는 이름하에 보안사항으로 비밀리에 처리됩니다. 예산 계획은 알 수 있어도 집행내역은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국방분야의 예산 낭비가 가장 심합니다. 시민단체가 감시하기 어려운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국방예산을 국방관계자끼리 만나고 국방소속 국회의원들끼리 만나서 정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미국은 국방비가 전체 예산의 46%를 차지하는 반면 교육예산은 2%에 해당합니다. 국방비를 2%만 줄여도 교육예산은 두 배로 늘어납니다.

국방비가 늘어날수록 사회복지서비스를 누려야 할 사람들의 권리는 보장되지 않는 것입니다. 국방예산을 정하는 과정을 훨씬 복잡하게 하고, 사회복지기관의 감시를 받도록 해야 합니다. 사회복지 서비스의 수급자들도 국방예산에 의견을 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밖에도 인권교육을 받을 수 있는 권리, 평화교육을 받을 수 있는 권리도 보장되어야 합니다.




안보위협 해석을 독점하지 말라, 위험도 민주화돼야 한다


우리에게 친숙한 안보담론. 무엇이 문제일까요? 그것은 소수의 국방안보 권력자들이 위협 해석을 독점해 다수의 국민에게 과도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안다는 것이 곧 권력인 셈입니다. 위협해석의 독점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도전해야 할까요? 안보 관련 해석을 독점하고 ‘잘 모르면 가만 있어’라는 식으로 말하는 지배자들의 언어를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됩니다. ‘무식하면 가만 있으라’고 말하면 ‘무식’이 뭐고 ‘유식’은 뭔지 따져봐야 합니다. ‘폭력 시위 가만 있어’라고 저들이 말하면 ‘이쪽이 폭력인지 저쪽이 폭력인지 따져봐야 합니다. 언어를 받아들이면 일단 지는 싸움이 됩니다. 안보와 위협 해석에 대한 권리도 시민이 가져와야 합니다.


촛불시위에 나온 사람들에게는 건강과 검역주권이 가장 중요한 위협이었기 때문에 광장에 나와 발언을 하는 것입니다. 서해교전 때도 보수언론에서는 ‘안보의 구멍이 뚫렸다’고 비난했지만, 시민단체에서는 ‘안보의 구멍뚫린 게 아니다. 전화 한 통 걸면 된다. 군사 핫라인을 설치하면 된다.’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군사전화가 개설된 후로는 발포를 안 하고 있습니다.

안보문제는 상상의 영역입니다. 어떤 것이 위협이라는 것은 해석의 문제이지 객관적인 것이 아닙니다. 중국의 핵무기가 800개에 이르지만 중국 핵무기는 우리에게 위협이라고 해석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북한 핵무기는 3개만 돼도 어마어마한 위협으로 해석됩니다. 객관적 사실 말고도 그것을 둘러싼 다른 움직임이 있어야만 위협이 되는 것이죠.


국방안보관계자가 안보와 위협에 대한 해석을 독점해서는 안 됩니다. 대한민국 공동체가 처한 위협이 무엇인지에 관해서는 비군사적인 영역까지 포함해, 민관 전문가가 같이 종합적으로, 오랫동안 검토해야 합니다. 위협에 대한 시민들의 평가 권한이 높아져야 합니다. 북한의 핵실험이 가장 중요한 문제인지, 서민들의 생활과 생존이 가장 중요한 문제인지, 평화국가의 논제는 안보위협 해석을 누가 어떻게 하느냐입니다.


정부가 평화국가를 만들어주기를 기다려야 할까요? 당연히 아니죠. 구체적인 정책과 비전을 세우고 모아 모아서 ‘우리가 그리는 국가는 이런 모습’이라고 제시해야 합니다. 시민 스스로 중요한 안보문제, 외교문제, 위험의 문제에 대해 지속적으로 제기하여, 어느 것도 ‘가장’ 중요해지지 않고 ‘위협도 위험도 민주화되는 상태’로 나아가는 것이 평화국가의 구상입니다.


               
                    전은옥 (원폭피해자 및 원폭2세환우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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