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폭력평화 기조 속에서 촛불시위는 계속된다”

여중생범대위, 시민들의 의지로 승리확신

효순이와 미선이가 처참하게 눈을 감은 지난해 6월, 가슴마다 검은리본을 달고 거리로 쏟아져 나온 무수한 시민들은 분루를 삼키며 한목소리로 한미SOFA를 개정하라고 외쳤다. 그게 벌써 200일을 지나고 있다.

‘미군 궤도차량에 의한 여중생 살인사건 범국민대책위원회(상임공동대표 홍근수)’의 싸움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이 사건의 해결을 촉구하는 시민의 행렬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불어났고, 서명인 수만도 200여만 명을 넘어섰다.

▲ 범대위는 지난해 6월 이후 지금까지 ‘여중생사건’의 올바른 해결과 소파개정을 위해 투쟁해왔다. 사진은 지난 7월 8일 의정부 미2사단 앞에서 벌어졌던 범국민대회.

월드컵의 열기로 가득했던 6월, 미군은 두 여중생의 죽음을 유야무야 덮으려 했다. 이에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범대위의 집회는 여름 내내 의정부 미군부대 앞을 달구었다. 교복을 입은 중·고등학생들이 집회를 주도하기도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국민적 공분을 이끌어내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7월 10일 미군 피의자에 대한 한국정부의 재판권 포기요청을 미군이 거부하자 불평등한 소파문제를 인식한 시민사회단체들의 결집은 공고해졌다. 집회에도 가족단위와 학생 등 수백 여명의 참가자들이 동참하기 시작했다.

11월 20일과 22일, 피의자에 대한 무죄평결은 국민적 분노를 이끌어내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한 네티즌의 제안으로 시민들은 거리에 모여들었다. 한 손에 촛불을 든 채.

네티즌 88% “촛불행진을 계속해야 한다”

▲여중생 범대위 김종일 위원장

“”불평등한 한미관계에 대한 문제 제기와 해결은 강한 나라 미국, 강한 군대 미군이라는 패배적 인식 때문에 미뤄져 왔다. 하지만 단합된 평화적 시위를 통해 해결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시민들 스스로가 확인하고 있다”고 김종일 여중생 범대위 위원장은 말한다.

집회는 사건 직후 부대 앞에서 학생들과 시민단체들에 의해 집중적으로 이뤄졌다. 하지만 촛불시위와 함께 달라졌다. 일반시민들이 주도하는 집회의 규모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진 것이다. 시위의 방식과 내용을 놓고도 참가자들의 다양한 목소리가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촛불시위가 분리되기에 이르기도 했다.

이에 대해 채희병 범대위 사무국장은 “몇몇 언론들이 주도하는 대립적 구도는 결코 아니다. 다양성의 표출로 본다. 지금 시기는 충분히 토론하고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이같은 내용을 범대위는 논평을 통해 공식적으로 밝힌바 있다.

한편, 시민들의 의견을 구하기 위해 범대위는 1월 4일부터 7일까지 네티즌 4000여 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벌였다. 집회 방식의 대중성 여부를 묻는 질문에 대해 네티즌들은 50대 50의 뜻을 나타냈다. “촛불행진을 계속해야 한다”는 의견은 88%를 차지했다. 이에 대해 여중생 범대위는 대중성 확보를 위한 의견수렴 차원에서 재여론조사를 벌일 예정이다. 집회 방식의 다양성을 위해서도 골몰하고 있다. 당장 범대위 사이트(www.antimigun.org)를 통해 추후 평화촛불대행진에 대한 참여여부와 행사진행을 위한 세부적 의견을 구하고 있다. 내주 예정된 범대위와 네티즌들을 포함하는 각계각층의 시민들과의 토론회 역시 촛불시위를 더욱 대중적인 집회로 이끌어내기 위한 방안 등을 고민하고 여러 의견들을 공유하자는 취지에서 마련되었다.

촛불행진의 기조 “비폭력평화”는 계속되어야

▲ 지난 12월 7일 첫 촛불평화대행진에 참여한 시민들로 광화문 네 거리는 가득 채워졌다.

‘여중생 사건해결과 반전평화는 별개?’ ‘반미시위?’. 시위의 메시지는 촛불시위가 분리되어 진행되었던 원인 중에 하나다. 이에 대한 범대위의 입장은 유연하다. 김종일 위원장은 “여중생 사건을 계기로 미 부시정권의 약소국에 대한 패권적 자세를 국민들이 인식했고 더 나아가 미국의 이라크 민중에 대한 전쟁시도를 비판하기에 이르렀다고 본다”고 말했다. 홍근수 범대위 상임공동대표 역시 “범대위에 참여한 시민단체들 모두가 다른 단체들과 마찬가지로 반전과 평화를 염원한다. 하지만 여중생 범대위가 모든 것을 다할 수는 없다. 결성취지에 맞게 우선적으로 사건의 해결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반전평화로의 시위내용의 확대여부를 둘러싼 논의에 대해서도 김 위원장은 “약소국 민중을 억압하는 부시정권이라는 비판의 대상은 공통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시위과정을 통해 얻고자하는 해결과제와 목적이 다른 것”이라며 “공통점을 중심으로 미국의 일방적 정책을 비판하자”고 덧붙였다.

‘반미’라는 이념운동으로 치우치는 것이 아닌가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명확한 입장이다. 채희병 사무국장은 “불합리한 사건에 대한 정당하고 기본적인 요구조차 거부하는 미국에 대한 분노와 규탄의 정서는 당연한 것”이라며 지금의 반미가 폐쇄적이거나 극단적인 의미가 아님을 지적했다. 이유있는 반미인 셈이다.

대사관 진입을 위한 경찰과의 무리한 대치상황에 대해 시민들은 우려를 나타내기도 한다. 이와 관련, 김종일 위원장은 “비폭력 평화기조와 탄력적인 진행으로 행사를 이끌어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대규모의 집회에서 벌어지는 상황들에 시민들은 충분히 부담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우리의 촛불시위는 비폭력평화기조를 표방한다. 마찰은 피하면서 시민들 모두가 함께 평화롭게 진행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범대위에 소속된 150여 개 단체들의 의견을 조율하고 공통분모를 찾아내는 것은 쉽지 않았다. 3대 요구안으로 집약된 것이 △한미소파의 전면개정 △미군피의자 처벌 △부시의 공개사과. 아직 어느 것 하나 이뤄진 것이 없다. 따라서 범대위는 “다양한 의견을 표출하되, 비본질적인 것에 대한 논란을 가능한 한 자제하고 사건의 해결을 위한 요구안을 실현시키는데 하나가 돼야할 때”라고 말하고 있다.

▲ 범대위는 실질적인 문제해결을 위해 불평등한 한미소파의 개정 촉구를 추진해왔다. 사진은 지난 9월 민변과 합동으로 소파개정안을 마련, 발표한 기자회견 모습.

이를 위해 범대위는 올해 더욱 고삐를 잡아당기고 있다. 범대위 내에 결성된 ‘소파개정추진단’이 지난 9일 기자회견을 갖고 현재 민변(회장 최병모)과 마련 중인 ‘한미소파 개정 범국민요구안’의 방향과 내용을 발표했다. 이와 관련, 홍근수 대표는 “노예취급을 받을 수 밖에 없는 불평등한 한미소파의 전면개정 없이는 한미관계의 유지는 불가능하다”며 “여중생 사건에 분노하고 저항하고 있는 국민들의 바람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밝혔다.

바로 다음날인 10일 범대위는 서울지방검찰청에 미군피의자에 대한 수사 및 재판기록을 정보공개청구했다. 부시 대통령의 공개사과 역시 미국 내 언론사들과 연대단체들을 통해 한미소파의 불평등성과 이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를 알려 반드시 이끌어낼 태세다.

2003년을 ‘자주와 평화의 해’로 정한 범대위와 국민들의 촛불평화행진은 계속된다. 범대위는 우리의 요구가 실현된다면 미국과의 불평등한 관계를 극복할 수 있는 우리 미래의 청사진이 마련되는 것이라고 의미를 두었다. 또한 미국에 의해 억압받는 다른 나라들에 역시 중대한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종일 위원장은 “국민들과 함께 해온 지금까지의 싸움이 승리를 가져올 것을 확신하게 만든다”며 “끝까지 함께 갈 것을 믿는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의 말대로 범대위가 예까지 올 수 있었던 동력은 국민들의 힘이다. 촛불시위를 거듭할수록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의 눈은 되록되록 살아나고 있다. 홍근수 대표의 말에도 힘이 실린다. “승리하는 날까지 촛불은 절대 꺼지지 않습니다.”

김선중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