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군축센터 칼럼(pd) 2010-10-20   1857

[GPPAC] 천안함 사태 이후 한반도 정세 / 서보혁(국문)

 

다음은 GPPAC-NEA(동북아 지역 무장갈등예방 국제연대) 국제회의(2010/10/15-16, 울라바토르)에서 발표한 발제문입니다,

천안함 사태 이후 한반도 정세

서보혁(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실행위원)

2010년 3월 26일 저녁 한반도 서해상- 남한 해군의 관리수역인 백령도와 대청도 사이 해역 -에서 남한 해군의 초계함(1,200t급 천안함)이 침몰되어 승선한 104명 중 46명이 사망하였다. 정부는 선체를 인양하고 민군 합동조사단을 구성하여 사고 원인을 조사하여, 5월 20일 “천안함은 북한의 기습적인 어뢰 공격에 의해 침몰되었다”고 결론내렸다. 이어 5월 24일 이명박(Lee Myung-Bak)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하여 “천안함 사태가 북한에 의해 자행되었다”고 말하고, 그에 따라 북이 “자신의 행위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도록 “단호하게 조처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1. 대북 제재 외교와 그 대가

이 대통령의 5.24 담화는 천안함 사건을 전후로 한국의 외교안보정책과 남북관계가 구분된다는 정부의 입장을 분명히 하였다.

첫째, 이 대통령의 5.24 담화 발표 직후 남한의 외교안보정책은 대북제재에 초점이 모아졌다. 같은 날 열린 통일․외교․국방장관 합동기자회견에서 유명환 외교부 장관은 “동맹국과 우방국, 주요국 및 국제기구를 포함한 국제사회와의 긴밀한 협조 하에 가능한 모든 외교적 대응조치를 취해나가는 데 만전을 기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통일부 장관은 대통령이 밝힌 대북 제재 조치 외에도 방북 불허, 대북투자 확대 금지, 대북지원 보류 입장을 밝혔다. 한국 정부가 발표한 천안함 사건 조사결과에 대한 의혹이 가시지 않는 가운데서 이명박 정부는 경제적, 군사적, 심리적, 외교적 방법을 총동원하여 대북 제재에 나섰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외교안보정책의 제일 과제로 설정한 한반도 비핵화 문제도 뒷전으로 밀려났다. 천안함 사건을 계기로 한 대북 제재는 MB 정부의 우선적인 정책 의제로 급부상하였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대북 제재 결의를 이끌어내는 것과 중국, 러시아의 협력을 확보하는 일이 그 중심에 있었다.

이명박 정부의 천안함 외교는 미국과의 긴밀한 협조가 제일 우선이었고, 그것은 다른 외교적 노력의 바탕이 되었다. 양국 사이에서는 처음으로 외교․국방 장관 회의(2+2)가 열려 양국간 공조를 과시하였다. 그러나 대북제재를 위한 미국의 전폭적인 지지와 성원을 이끌어내는 데 적지 않은 대가가 필요했다. 6월 26일 제4차 G20 정상회의가 열리는 캐나다 토론토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미국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가졌다. 오바마 대통령은 자유무역협정(FTA) 문제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표명하며 “내가 11월 한국을 방문했을 때 상당한 추진이 이뤄지기를 바라고 그 방문 몇 개월 후에 우리가 이 협정을 의회에 제출하게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이 대통령은 “오바마 대통령의 제안에 대해 저희 한국은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대통령은 또 “이란 핵 제지를 위한 유엔 결의에 대해서 우리는 전적으로 동의를 하고, 한국도 적극적으로 제재 실천에 참여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한국이 이란 제재에 적극적으로 동참할 경우 한국이 입을 경제적, 외교적 손실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처럼 미국은 이명박 정부의 천안함 관련 대북 제재에 적극적인 지지를 표하면서 FTA 재협의, 이란 제재 동참, 아프가니스탄 파병 등에 걸쳐 한국의 협조를 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천안함 침몰을 규탄하는 한국정부의 외교적 노력은 유엔 안보리 성명 채택으로 집중되었다. 이명박 정부는 천안함 사태에 대해 북한의 사과,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 등을 남북대화의 조건 혹은 천안함 외교의 최대 목표로 삼은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의 5.24 담화 직후 정부 관계자들은 유엔 안보리의 대북 결의안 채택을 목표로 삼는 발언을 하였다. 그러나 6.2 지방선거와 천영우 외교부 차관의 미국 방문을 계기로 정부의 천안함 외교 목표는 안보리 의장 성명 채택으로 목표치를 하향조정하였다. 결국, 7월 9일 안보리 15개국 대표들의 동의 하에 의장 성명이 채택되었는데, 그 내용은 남북한의 입장을 절충하고 국제사회의 우려와 기대를 곁들인 것이었다. 이런 식의 성명은 누구의 승리도 아닌, 관련 당사자들이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는 데 편리한 내용이었다. 그럼에도 의장 성명에서 유의할 대목은 10항이다. 10항은 “유엔 안보리는 — 적절한 경로를 통해 직접 대화와 협상을 가급적 조속히 재개하기 위해 평화적 수단으로 한반도의 현안들을 해결할 것을 권장한다”고 밝히고 있다. 북한을 국제무대에서 고립시키겠다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제재 외교는 냉엄한 국제정치의 현실에 부딪혔다. 북한이 회원국으로 가입해 있고 북한과 우호관계가 적지 않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대북 규탄 결의안 채택은 유엔 안보리에서보다 더 어려웠다. 7월 24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제17차 ARF에서 천안함 사건에 대한 의장 성명이 채택되었다. 성명은 유엔 안보리 의장 성명에 대한 지지와 함께 6자회담 복귀를 권고하였다.

대북 제재를 겨냥한 MB 정부의 천안함 외교는 중국과 러시아에서 암초를 만나 좌초 위기를 맞이하기도 하였다. 중국과 러시아는 천안함 사태를 북한 때리기로 몰아가는 움직임에 반대하는 입장을 분명히 하였다. 5월 20일 합동조사단 조사결과 발표 이후 중국측은 “각국은 냉정하고 자제하는 태도로 적절하게 관련 문제를 처리하며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켜서는 안된다”고 밝혀 한국정부의 입장과 차이를 보였다. 러시아 역시 천안함 사태 발생 초기 시기부터 한국정부와 다소 거리를 둔 입장을 견지하여 왔다. 러시아는 한국정부의 요청에 따라 천안함 침몰 원인 규명작업에 독자적으로 참여하였지만, 조사 후 한국정부의 입장을 지지하는 발표 없이 귀국하였다. 그 후 러시아는 미국, 중국에 조사결과를 통보하면서 한국측의 조사결과와 다른 내용을 담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명박 정부가 펼쳐온 일련의 천안함 외교는 한반도가 여전히 국제분쟁 지역 중 하나이고, 남북간 불신과 긴장이 계속되고 있다는 현실을 국제사회에 다시 한번 상기시켜주는 역할을 하였다. 다른 한편, MB 정부의 천안함 외교는 대북 제재에 일관성(!)을 유지하는 대신 그에 상응하는 비용을 초래하는 데 구애받지 않은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으로부터의 통상, 안보 요구와 중국, 러시아와의 외교적 마찰이 그것이다. 대북 제재를 위해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의 긴장을 조성하고 주변 강대국과 갈등을 가져오는 것이 실리외교에 어울리는지 의문이다. 특히, MB 정부가 한미 동맹에 의지한 채 중국과 러시아를 대북정책상의 지지를 획득할 대상 정도로 여기고 접근하였다면, 그것은 냉정한 국제정치 현실에 대한 희망적 사고(wishful thinking)의 실패를 보여주는 사례일 것이다.



2. 최악의 남북관계

둘째, 5.24 담화를 바탕으로 한 남한의 대북 제재는 악화될 대로 악화된 남북관계를 최악의 상태로 몰아갔다. 천안함 침몰사고 이후 남북관계는 전형적인 치킨게임 양상을 보여주었다. 북한은 남한의 전방위 제재 발표에 대해 강력히 반발하였다. 이 대통령의 5.24 조치 발표 이후 북한은 남북 접촉 차단, 남한 어선 나포,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에서의 군사훈련 등이 그 예이다. 다른 한편, 북한은 남한의 대북제재의 칼끝을 약화시키려는 노력도 병행해나갔는데, 남한의 유엔 안보리 제재 결의 구상을 파탄시키려는 것이 그 초점이었다. 북한은 8월 25-27일 카터(Jimmy Carter) 전 미국 대통령의 방북을 허용해 북에 억류되어 있던 미국 시민 곰즈(Aijalon M. Gomez)씨와 귀국하도록 해주었다. 그러나 김정일 위원장은 카터 대통령을 남겨두고 중국에 가 후진타오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가졌다(8월 27일). 북한의 이런 이중 정책은 남한 주도의 대북제재를 피하고 천안함 사태 이후 처해진 국제적 고립을 탈피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북한의 대응은 남한의 대북정책에 부분적인 수정을 불러왔다. 한국정부가 제재 일변도의 대북정책에서 대화를 모색하는 조치를 모색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현상은 1년 전 8월 남북간에 조성된 일련의 대화를 재연하는 듯 하였다. 이번 대화는 북의 수해가 촉매가 되었다. 남한정부는 8월 26일 북한에 수해 복구 지원 의사를 전달하였고, 31일 100억 원 상당의 수해복구 지원 의사를 다시 밝혔다. 이에 대해 9월 4일 북한의 조선적십자회는 개성공단관리위원회를 통해 남한에 수해 복구를 위한 쌀, 시멘트를 지원 요청하는 통지문을 전달하였다. 또 7일에는 북한에 나포되었던 남한 어선과 선원 7명이 NLL을 통해 귀환하였다. 북한은 9월 17일 남북 적십자 실무접촉에서 10월 하순 금강산 지구에서 100명 규모의 이산가족 상봉을 갖자고 제의하였다. 이후 남북은 10월 30일에 이산가족 상봉을 가질 것을 합의하였다. 그러나 현인택 통일부 장관은 대북정책 방향인 ‘비핵․개방․3000’을 수정할 의사가 없다고 밝혔다. 일련의 남북 당국간 접촉에서 천안함 사태에 대한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요구하는 남측 주장과 그에 대한 북측의 반발이 대화의 진전을 가로막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볼 때 2009년에 이어 2010년의 일시적인 남북대화도 관계개선의 발판이 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결국, 2008년 이명박 정부 들어선 이후 남북관계는 남한정부의 남북 합의 이행 무시와 북한의 선 핵포기 요구로 후퇴하기 시작하였고, 천안함 사태로 최악의 상태를 지내고 있다. 이제 출구 전략을 찾을 때이나, 명분과 분위기가 아직 조성되지 않고 있는 형국이다.



3. 진전없는 북미관계

2008년 북미관계가 북핵 불능화 단계의 조치와 맞물려 일부 진전이 있었다고 한다면, 2009년은 북한의 2차 핵실험, 2010년은 천안함 사태로 대화의 접점 자체가 마련되지 않고 있다. 이런 현상은 악화된 남북관계와 함께 남북미간 적대적 상호의존관계를 잘 보여주고 있다. 역설적인 것은 전임 정부의 일방주의적 외교정책을 비판하고 대화를 강조한 오바마 행정부 들어 북미관계가 부시 정부 말기보다 못하다는 현실이다.

2009년 5월 25일 북한의 2차 핵실험 이후 미국은 유엔 안보리를 통한 제재를 가하였다. 그런 상황에서 오바마 행정부는 북한과 대화에 나설 수 없었다. 힐러리 클린턴(Hillary R. Clinton) 미 국무장관은 그해 7월 22일 ARF 참석차 방문한 태국 에서, 북한의 비가역적 비핵화 조치를 전제로 북한과 미국과의 관계정상화 문제를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북한의 핵실험 이후 미 고위인사가 북미관계 정상화를 언급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지만, 무게는 “북한이 완전하고 비가역적인 비핵화에 동의하면”이라는 전제였다. 물론 클린턴 장관은 “북한이 비가역적인 비핵화에 나선다면 미국과 파트너들은 보상과 북미관계 정상화 기회 등이 포함된 패키지를 진전시킬 것”이라고 말해 이른바 포괄적 패키지의 내용에 관계정상화 카드가 포함돼있음을 분명히 했다. 또 클린턴 장관은 자신의 발언이 북한을 제외한 6자회담 참가 5개국의 협의를 거쳐 나온 것임을 강조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의 발언은 당시 이명박 정부의 ‘그랜드 바겐’ 구상, 곧 북핵 폐기를 전제로 한 포괄적 접근과 일맥상통하는 것이었다. 북한의 선 핵포기 입장에 변화가 없는 것이었다. 클린턴 장관은 같은 해 10월 21일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는 한 북미 관계정상화는 결코 있을 수 없다고 강조한 것은 이전 발언과 다른 것이 아니라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 핵정책을 가장 솔직히 표현한 것이었다. 그는 특히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검증가능하고, 비가역적인 북한의 조치가 취해질 때까지 대북 제재는 완화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는데, 이는 한국정부와 사전 공유한 입장으로 보인다.

결국, 오바마 행정부의 입장에서 미국의 대북정책은 한미 동맹관계의 틀 아래에서 접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 행정부가 부시 행정부의 외교안보정책 비판에서 초점을 두었던 것은 동맹국을 무시한 독선적 정책 스타일이었다. 그런 점에서 대북정책에 관한 한 한국정부의 입장을 존중하는 것이 오바마 행정부로서는 당연한 원칙이자 손해 볼 것 없는 입장이다. 거기에 천안함 사태까지 발생한 상황에서 워싱턴이 서울을 제치고 평양으로 직행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와 관련해 커트 캠벨(Kurt Campbell)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2010년 9월 17일 상원 청문회에 출석하여 북미관계 재개를 위해서는 남북관계 재개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 그의 발언은 북미대화 재개와 관련해서는 한국정부의 의사를 최대한 존중할 것이라는 의사 표시이다.

현실을 균형적으로 본다면, 사실 2차 북핵실험을 단행한 북한도 북미관계 개선 의지가 있었는지 의문이다. 북한은 오바마 대통령 취임을 1개월 여 앞둔 2009년 1월 17일 외무성 대변인 담화 형식을 통해 “관계정상화와 핵문제는 철두철미 별개의 문제”라고 전제하고, “우리가 핵무기를 만들게 된 것은 미국과의 관계정상화나 경제지원 같은 것을 바라서가 아니라 미국의 핵위협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였다”라고 주장한 바 있다. 이 담화는 미 국무부가 북한에 관계정상화에 앞서 북핵문제 해결을 강조하고 나선데 대한 반응이었다는 점에서 유의할 부분이다. 실제 북한은 오바마 행정부의 한반도 정책이 수립되기 이전에 미사일 발사, 핵 실험 등 사전에 계획된 수순에 따라 상황을 악화시켰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2010년 9월 28일 열린 제3차 당대표자회 결과를 보면 북한의 비핵화 의지가 높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보다 현실적이고 장기적인 새로운 대북정책이 필요한 가장 큰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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