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강정마을 평화센터가 사라졌습니다

2020년, 강정마을 평화운동의 상징이었던 강정 평화센터가 안타깝게도 사라졌습니다. 지난 10년 강정 평화센터의 기억들 그리고 평화센터를 새로 지으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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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강정마을 평화센터가 사라졌습니다

[강정평화센터 새로짓기 ①] 강정 주민의 지난 12년, 그들이 여전히 바라는 건 ‘희망’이다

 

고권일(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주민회 공동대표)

 

▲ 제주해군기지가 들어서기 전 구럼비 바위와 할망물의 모습 ⓒ 강정 평화센터 재건립 추진위원회

 

다른 시간, 다른 공간.

 

강정마을이 대한민국에서 보낸 지난 12년을 정의할 때, 가장 적합한 말이 아닌가 합니다. 우리는 대한민국이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대로 민주공화국이라 생각을 했었습니다. 민주공화국이란 주권이 국민에게 있기 때문에, 국가가 개개인의 삶에 영향을 주는 일을 하려 할 때는 개인의 결정을 최대한 존중하는 방향으로 일을 처리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강정마을 주민들의 주권은 철저히 침해당했습니다. 국가가 제주해군기지를 강정마을에 건설할 것을 결정했기에, 87표의 찬성 측 주권은 존중받았으나 680표의 반대 측 주권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은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이 주민투표조차 찬성 측 해녀들의 투표함 탈취사건을 겪으며 천신만고 끝에 재차 이뤄진 투표에서 얻어진 결과였지만, 제주도정과 국가는 받아들이지 않았지요. 2019년에 발표된 ‘경찰의 인권침해 진상조사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투표함 탈취사건은 찬성 측 해녀들의 자발적인 행동이라기보다 해군과 경찰, 제주도정, 서귀포시청의 조직적인 개입 혹은 방조가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우리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우리와 함께 반대한다면 해군이나 국가도 우리를 무시할 수 없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강정 주민들은 제주도 사회에 제주해군기지 문제를 알리기 위해 제주도를 한 바퀴 도는 도보순례를 하고 차량 시위, 도청 앞 집회, 평화로 10km 구간을 연결하는 1인 시위, 도청 앞 1인 시위 등 생각해 낼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노력했습니다. 그 과정을 통해 여론이 우리에게 우호적으로 변하자 국정원과 기무사는 댓글공작을 통해 여론을 호도했습니다. 심지어 제주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주민들을 북한의 지령을 받아 움직이는 반국가단체로 모함하는 논평들이 중앙 언론에 게재되고, 강정 주민들을 사회적으로 매장하려는 정치인들의 선동이 이어졌습니다.

 

우리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같은 국가에 동시대에 사는 사람인 우리를 적으로 몰아가는 것을 보며 큰 공포를 느꼈습니다. 제주 4.3이 바로 그런 사건입니다. 평범하게 살고 있던 수많은 제주인이 공산주의자로 낙인찍혀서 목숨을 잃은 사건이죠. 강정마을에서도 4.3 당시 80여 분이 돌아가셨습니다. 실제로 강정마을에서 4.3 때 누명을 쓰고 돌아가신 사람이 없는 집안은 없을 것입니다.

 

한편, 제주해군기지 건설 문제가 한참 뜨거웠던 2009년 서귀포신문사가 바른정신과의원과 함께 실시한 정신건강실태조사에서 강정 주민 중 50%에 가까운 사람들이 정신건강 위험군에 속하고, 자살을 생각한 비율이 40%가 넘고, 적대감을 보이는 주민이 57%에 달한다는 충격적인 결과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2010년 말부터는 제주해군기지 건설공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며 공권력에 의한 탄압도 본격화되었습니다. 제주해군기지 사업은 단일 사업으로는 대한민국 역사상 최대의 연행자와 사법처리자 수를 기록했습니다. 

 

700건이 넘는 연행자, 690건에 달하는 사법처리가 이루어졌고 36건이나 되는 구속자와 28건에 이르는 자발적 노역이 진행되었으며, 벌금만도 3억 원에 이르렀습니다. 평화적 관점이나 민주적 관점은 일단 차치하더라도, 법률적 관점에서만큼이라도 제주해군기지가 정말로 정당한 사업이었는지, 그리고 이 사업에 반대한 사람들은 정말로 불법적이었는지 우리는 따져 물어야 합니다. 

 

헌정사상 가장 불법적인 사업, 제주해군기지 건설

  

▲  경찰청 인권침해 사건 진상조사위원회 보고회 ⓒ 제주해군기지 전국대책회의

 

국책사업인 제주해군기지 사업은 국방부 장관이 승인 고시를 할 때, 법률에 의거하여 관계부처와 사전에 검토와 협의를 거쳐야 합니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습니다. 특히, 20년 단위로 수립하고 5년 단위로 보완하는 국가항만관리계획에 누락된 사업이고, 국토부가 포괄적으로 수립하고 관리하는 국토관리계획에도 누락된 사업이었으며, 국토부와 제주특별자치도가 관리하는 제주도 도시계획에도 반영되지 않은 사업이었습니다. 

 

그러하기에 제주해군기지는 최소 18개 법률에 저촉되는 사업이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환경영향평가법에 따른 환경영향평가도 받지 아니하고 사업 고시를 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행정소송을 통해 이 사업의 불법성을 폭로하려 하였지만, 당시 양승태가 이끄는 대법원은 불법 사업인 제주해군기지 건설사업을 합법 사업으로 둔갑시켰습니다. 이후 법원 행정처가 공개한 양승태 대법원 내부 문건에는 ‘정부 운영에 대한 사법부의 협력 사례’로 강정마을 제주 해군기지 건설 관련 판결이 명시되어 있었습니다. (관련기사 : ‘재판 거래’와 2012년 7월의 강정, 그리고 2013년 10월의 밀양 http://omn.kr/rlgt)

 

그렇게 제주해군기지 건설사업이 합법 사업이라는 최종 판결이 나오자 해군은 이 사업을 반대하던 사람들에 대한 대대적인 고발을 하기 시작했고, 검찰은 이를 받아들여 기소를 남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가 대한민국 헌정사상 유례없을 정도의 인권 탄압으로 이어졌던 것입니다.

 

우리는 제주해군기지 건설 과정에서 발생했던 수많은 인권침해와 불법성에 대하여 반드시 국가 차원의 진상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 싸움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며, 동시에 우리는 평화의 가치를 이어가야 할 막중한 의무도 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사과하지 않았다

 

▲  제주생명평화대행진 “평화야 고치글라” ⓒ 정택용

    

“해군기지가 준공되었으니 이제 싸움은 끝난 것 아닌가요?”

 

이렇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과연 그런가요?

 

해군은 아직 강정마을에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았습니다. 부석종 해군참모총장은 최근 2020년 5월 20일 강정마을을 방문했으나, 사과에 대해 ‘주민들의 의견이 하나로 모이면 수용해서 시행할 것’이라 밝혔습니다. 사실상 제주해군기지 해상구역 전체를 군사시설 보호구역으로 지정하는 것에 주민 동의를 구하는 조건으로 사과하겠다는 의사를 비친 셈입니다. 

 

앞서 해군은 2018년에 강정마을이 국제관함식을 수용한다면 상생을 위해 사과하겠다는 뜻을 표명했었습니다. 물론 이 국제관함식 수용 여부를 두고 강정마을은 해군기지 유치 과정 때보다도 더욱 큰 갈등을 빚었고 상처도 컸습니다. 그러나 주민투표를 통해 국제관함식 수용이 결정된 후에도 해군은 사과 한마디 없었습니다. 오히려 국제관함식 기간 내내 해군기지와 관함식에 반대한 주민들은 경찰에 의해 통제되고 고착 당했습니다.

 

제주해군기지는 추진과정에서 민주적 절차를 무시하였고, 그 자체적으로 불법 사업이었을 뿐만 아니라 공권력 남용에 의한 인권침해가 극심하여 강정마을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사업입니다. 해군도 공식 사과를 하지 않았지만, 국가 또한 진상조사를 통한 명예 회복에는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상처투성이인 강정마을에 산다는 건

 

 

▲  강정마을 앞바다와 범섬 ⓒ 정택용

 

상처투성이인 강정마을에 산다는 것은 각별한 각오가 필요합니다. 가장 먼저, 사시사철 어느 계절이든 풍요한 먹을거리와 휴식처를 제공해주었던 구럼비 바위를 다시는 볼 수 없습니다. 그 대신 아침저녁으로 마을에는 군가가 울려 퍼지고, 마을 전체를 들썩일 만큼 큰 군함의 뱃고동 소리를 들어야 하며, 온통 삐죽삐죽 철침이 박혀있는 해군기지 경계 울타리를 보아야 합니다.

 

둘째로, 해군과 손을 맞잡은 찬성 측 주민들이 마을회를 장악하고, 모든 것에 돈의 논리를 내세워 마을의 중대사를 결정짓는 현실을 마주 봐야 합니다. 이를 보며 이루 말할 수 없는 참담함과 수치스러움을 느낍니다. 우리가 10년간 실천해왔던 정의로움이 물거품처럼 허망하게 흩어지는 좌절을 곱씹어야 합니다.

 

셋째로, 해군기지 진입도로 건설이 추진되어 강정천 생태계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강정천은 강정마을의 보물 중 보물임에도 찬성 측 주민들은 이 도로가 건설되어야 강정마을의 경제가 나아지고 지역발전계획도 원활하게 추진될 것이라 말합니다. 그러나 지역발전계획의 대부분은 결과적으로 해군의 부속시설 사업이 될 것임이 자명한데도 경제 논리에 홀린 사람들의 마음을 바꾸어 놓지 못하는 우리의 무능이 더욱 좌절스럽습니다.

 

마지막으로, 정의로운 투쟁의 기억이 패배 의식으로 뒤바뀌는 시간 속에서, 공격적인 행동과 언어로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는 상황으로 발전할 때,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증오가 내 마음 안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것을 봅니다. 그 분노는 이런 상황까지 내몰리게 만든 국가에 대한 증오뿐만이 아닙니다. 저는 인간 자체에 대한 기대와 신뢰까지 잃어버리게 되는 것은 아닌지 두렵습니다.

 

강정마을 평화센터가 사라졌습니다

 

▲  강정마을 평화센터 ⓒ 정택용

 

2012년부터 8년간 마을의 중심에서 우리의 든든한 깃발이 되어주었던 평화센터가 농협에 부지가 매각되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강정 투쟁의 상징이었던 기록관, 투쟁을 준비하던 작업실, 휴식과 회의 공간, 연대자들과의 만남 공간, 서로를 위로하고 강정 투쟁의 외연을 확장하던 문화예술공간으로 기능하던 평화센터는 단순한 ‘공간’이 아닌 소중한 ‘장소’였습니다. 이 장소가 사라진 사실과 우리가 지켜왔던 가느다란 명예 한 조각조차 남기지 못하는 현실이 너무나 아픕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시 시작하려 합니다. 

 

우리가 이루고자 했던 정의를, 우리가 지켜내야 할 명예를, 우리가 되찾고자 하는 미래를 위해, 다시 시작하려 합니다.

 

비록, 우리의 힘이 미약하여 앞으로 어떤 일을 이루어 낼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대한민국 정부가 끝끝내 외면한다고 해도, 우리는 강정마을을 찾는 사람들에게 제주해군기지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줄 것입니다. 그리고 진상규명을 통해 우리의 명예로운 이름을 되찾는 노력도 멈추지 않겠습니다. 마침내 평화를 꿈꾸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모여들어 제주해군기지가 폐쇄되고, 구럼비 바위를 되찾고, 그 위에 평화공원과 평화대학이 들어서는 아름다운 꿈에서 깨어나지 않겠습니다.

 

절망이 희망으로, 전쟁이 상생으로, 분열이 어우러짐으로 가는 길은 너무도 거대한 위업이라지만, 그 시작은 항상 한 걸음의 용기에서 시작된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그 한 걸음조차 스스로 내딛기 버겁습니다.

 

강정마을에 평화센터가 다시 세워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그 한 걸음이 작은 나비의 날갯짓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함께 해주세요.

 

‘강정 평화센터 새로짓기’ 텀블벅 프로젝트 밀어주기 : https://www.tumblbug.com/gangjung_peace_ce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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