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HEU, 낡은 평가를 폐기할 때가 왔다” (데이비드 올브라이트, 2007. 2. 27)

출처: 프레시안

“北HEU, 낡은 평가를 폐기할 때가 왔다”

방북 핵과학자 올브라이트 “2002년 CIA 평가는 오류”

북한의 고농축우라늄(HEU) 프로그램은 2.13합의를 좌초시킬 최대의 암초라고 할 수 있다. 2002년 10월 미국측의 문제제기로 제네바합의가 좌초한 이래 북한은 일관되게 HEU프로그램의 존재를 부인하는 반면 미국은 ‘분명히 있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2.13합의에도 이 문제는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고 있어 언제든지 북핵폐기 이행의 장애물로 등장할 가능성을 안고 있다.

최근 미 행정부의 일부 관리들이 북한의 고농축우라늄(HEU)과 관련한 미국측 정보가 불확실하다고 말했다는 언론보도가 나오고 있지만 2차 북핵위기 발발의 핵심이었던 이 문제가 2.13 합의 이행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는 전망은 끊이지 않고 있다.

북한이 ‘실험실 수준의 HEU 프로그램이 있었다’고 시인한다거나, 미국 역시 ‘정보가 불확실했다’고 인정할 가능성도 있다는 전망과 보도가 있지만 그리 현실성은 없어 보인다. 어느 한 쪽의 잘못이 입증되는 순간 4년 반동안 질기게 이어져왔던 북핵위기의 책임을 뒤집어 써야 하기 때문이다.

방한한 존 네그로폰테 미 국무부 부장관이 “북한이 HEU 프로그램을 보유해 왔다는 데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못을 박았다거나 뉴욕에서 열린 북미 관계정상화 실무회의에서 미국이 이 문제에 대한 해명을 요구했다는 것은 미국이 이 문제에 관해 물러설 의향이 없음을 시사한다.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이 뉴욕 회의에서 북한도 그 문제를 해명할 용의가 있음을 밝혔다고 전해지지만 2002년 북일정상회담에서 일본인 납치 문제를 시인했던 것 같은 ‘고백외교’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미국의 저명한 핵 전문가인 데이비드 올브라이트 미국 과학국제안보연구소(ISIS) 소장은 북한이 고농축우라늄 생산 공장을 짓고 있다는 미 중앙정보국(CIA)의 2002년 분석은 낡은 것이고, 2.13합의의 진전을 위해서는 그 평가부터 폐기해야 한다고 지속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올브라이트는 특히 CIA의 분석시점이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앞두고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위협을 과장, 날조하던 시기라는 점에서 북한 HEU에 관한 정보의 신뢰성에도 의문이 간다고 지적했다.

2.13합의 직전인 지난달 30일~2월 4일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온 올브라이트 소장은 각종 기자회견과 토론회를 통해 이같은 주장을 펴면서 당시의 CIA 평가는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정보실패와 같은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따.

다음은 올브라이트 소장이 HEU 문제에 관해 미 노틸러스 연구소에 지난달 27일 기고한 글의 주요 내용이다.

올브라이트 소장은 이 글에서 역시 같은 주장을 반복하면서 “지난 몇 년 동안 대규모 (HEU를 생산하는) 원심분리기 시설의 존재와 건설 계획을 입증할 만한 명백한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북한의 원심분리기 프로그램에 대한 의문점은 분명 남아 있다”면서도 2002년의 잘못된 평가가 그 의문점을 풀고 2.13합의를 진전시키는 데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편집자>

북한의 대규모 우라늄 농축 시설 : 알루미늄관에 대한 미심쩍은 추정

북한의 핵 능력에 대해 말할 때 북한이 1년에 서너개의 핵무기를 만들어 낼 고농축우라늄 생산 능력을 갖춘 대규모 우라늄 농축 시설을 가지고 있거나 건설 중이라는 사실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최근 6자회담에서 새로운 합의(2.13합의)가 나옴에 따라 그 미심쩍은 주장은 재검토되어야 할 시점이 됐다.

미국의 전ㆍ현직 관리들은 가스 원심분리기를 근거로 원심분리기 공장의 존재를 기정사실화하며 이번 합의를 반대하거나 합의의 장래에 극단적인 경고를 하고 있다. 마이클 그린 전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은 최근 뉴스위크에 “북한은 여전히 HEU(고농축우라늄) 프로그램의 존재를 시인하지 않고 있는데 이는 과거의 모든 약속을 위반하는 것이고 공장이 한번 가동되면 수십개의 핵무기를 생산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이 핵시설 해체 목록에 그 프로그램을 올리지 않는다면 이번 합의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썼다.

그러나 북한에 대규모 원심분리기 공장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아마 과거에도 절대 없었을 것이다. 원심분리기 공장의 존재를 처음으로 주장했던 2002년 미국 정보기관의 보고서는 북한이 수천개의 알루미늄관을 인도받았다는 사실에 기인한 바 크다. 미 국가정보원(CIA)이 이라크에 가스 원심분리기 수천개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 이라크의 고강도 알루미늄관을 근거로 들었듯이 북한의 (HEU) 프로그램에 대한 분석 역시 오류인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정보기관들이 북한에 대한 그같은 평가를 내놨던 때는 이라크 대량살상무기(WMD) 프로그램에 대해 수많은 잘못된 평가를 내놓던 바로 그 시기였다.

북한이 악명높은 파키스탄의 압둘 카디르 칸 박사로부터 원심분리기 기동장치 등 소규모 가스 원심분리 프로그램을 위한 각종 장비와 원심분리기를 외국에서 획득했다고 시사할 만한 근거는 충분하다. 그러나 북한의 그같은 노력이 어느 정도 성과를 얻었는지, 혹은 현재 상태는 어떤지에 대한 정보는 없다.

수십개의 원심분리기와 시설물이 필요한 소규모 원심분리 프로그램과, 수천개의 완전한 원심분리기를 제조하는 대규모 생산 공장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전자의 추정이 보다 현실에 부합한다면, 후자를 기반으로 한 정책은 잘못된 것이다. 북한 핵 프로그램의 실상을 반영하지 못하는 대북 정책은 최근의 진전에 따른 기회를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2002년 가을 1994년의 제네바 합의를 좌초시키고 북한과 주변국의 많은 협력 사항들을 망쳐놨던 것은 바로 대규모 핵 프로그램(후자)이 있다는 주장 때문이었다.

최근 평양을 방문한 조엘 위트 전 국무부 전 제네바 군축회담 대표와 나는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 리근 외무성 미국국장 등과 원심분리기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그들은 북한에는 어떤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도 없다고 거듭 부인하면서도 그 문제에 대해 협의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냈다.

김계관 부상은 북한이 “그 문제를 청산할 의지”가 있다고 말했다. 그들은 또 미국이 북한의 원심분리기 프로그램에 대해 문서화된 증거를 제시한다면 그에 답할 뜻이 있다면서, 북한은 그 문제를 풀 수 있다는 확신을 표명했다.

여기서 북한의 원심분리기 프로그램에 대한 미국 정보기관들의 평가를 다시 돌아보는 것이 핵심적이다.

CIA 2002년 평가

2002년 11월 19일 CIA가 의회에 배포한 보고문에는 “북한이 원심분리기 시설 하나를 건설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분명한 증거가 있다”고 되어 있다. CIA는 이 공장이 완공되어 빠르면 2005년 경(mid-decade) 완전히 가동된다면 매년 2개 이상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HEU를 생산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부시 행정부의 관리들이나 정보기관의 일부 인사들은 이 평가를 확대해석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들은 2002년 후반 언론에 나와서는 그 공장이 2003년 말 완공되고 연간 6개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HEU를 생산할 것이라고 말했다. CIA와 부시 행정부는 이같은 평가에 대해 어떤 다른 말이나 모호한 말을 하지 않았다.

2002년 말부터 2006년까지 이 문제에 밝은 미국, 한국, 중국, 일본의 관리들과 만나본 결과 그 대규모 공장에 관한 가장 중요한 증거는 북한이 (원심분리기 제조에 필요한) 6000 시리즈 알루미늄관 수천 개를 2000년대 말 독일과 러시아에서 획득했거나 획득하려 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는 것이었다. 많은 이들은 북한이 건설하고 있다는 대규모 공장에 대한 “명백한 증거”로 꼽는 증거는 바로 그것이었다.

북한이 찾아 조달한 알루미늄관이 무엇인지를 알아내는 일은 쉽다. 그러나 알루미늄관 그 자체만으로는 대규모 원심분리 공장이 북한에 실제 존재하는지, 상태가 어떤지, 가스 원심분리기 공장의 건설 계획이 어떤지에 대한 믿을 만한 지표가 되지는 않는다.

원심분리기의 민감한 부품(components)을 획득했다는 추가 정보나 원심분리기 공장에 관한 확실한 추가 정보가 없다면 대규모 공장을 짓는다거나 그 완공 날짜가 언제라는 식의 예측은 추론(speculation)으로 봐야 한다. 이 문제에 정통한 전직 미국 관리는 조엘 위트에게 “2005년 경이 되면 북한이 2개의 핵폭탄을 만들 만한 HEU를 생산할 것이라고 당신에게 말할 수 있는 아이디어는 허술한 첩보에 따른 것일 뿐이다”고 말했다.

또 북한 관리들이 2002년 말 원심분리기 프로그램의 존재를 인정했다는 것은 미국 관리들에 의해 과장되어 왔을 가능성이 있다. 조엘 위트와 만난 그 전직 관리는 “그들이 HEU를 시인했다는 것은 실제 한 말과 회의록 기록이 분명히 일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2004년이 되자 일부 정보 관리들이 당초의 평가를 축소시키는 듯한 발언을 했다. 국무부의 한 전직 관리는 2004년 원심분리기 공장 완공 계획에 대한 예측에 대해 논란이 있었다고 말했다. 한 정보 관리는 2004년 11월 4일자 <유에스에이 투데이>에 CIA가 우라늄 농축 공장에 대해 “확신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몇 년 동안 대규모 원심분리기 시설의 존재와 건설 계획을 입증할 만한 명백한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특히 원심분리기의 민감한 부품을 북한이 대규모로 획득했다는 증거는 여전히 빠져있다. 북한의 제한된 기술력으로 볼 때 원심분리기 공장에 들어갈 많은 민감한 품목들은 해외에서 조달할 것으로 보인다. 이 문제에 정통한 미국의 한 고위급 관리는 2007년 1월 북한이 대규모 원심분리기 프로그램을 위한 물자를 조달했다는 증거는 지난 몇 년간 없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가능성은?

이라크가 보유했던 알루미늄관과는 달리 북한이 획득했다는 것들은 P-2형 원심분리기라는 사실은 일관되게 알려진 사실이다. 그에 따라 다음과 같은 가능성들이 존재한다.

● 북한이 실제로 그런 시설을 만들 능력은 없으면서도 일단 원심분리기 프로그램을 위한 모든 것들을 사들여 창고에 쌓아두었을 수 있다.

● 북한은 누군가를 위해 알루미늄관을 샀다. 알루미늄관의 조달 사실을 알게 된 유럽의 한 정보 요원은 당시 그 알루미늄 관이 바로 그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칸 박사가 20개의 원심분리기를 북한에 팔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그 정보요원은 그 알루미늄관이 북한의 원심분리기 제조 시도를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배제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2004년 말 대규모 원심분리기 프로그램이 언젠가 우리들을 놀라게 할 일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또 다른 가능성은 원심분리기 공장 건설 착수로 볼 수 있는 초기 준비가 있었지만 더 이상 진전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라크 침공을 앞두고 공격의 명분을 찾기 위해 온갖 공작을 벌였던) 2002년의 분위기에서 부시 행정부의 정보 해석은 ‘악의 축’이라는 오명을 씌우기 위해 가장 적합한 것일 수 있었다. 당시 CIA 정보분석가들은 다른 비밀 핵 프로그램에 대해서도 잘못된 판독을 하고 있었고 부시 행정부는 단편적인 사실에서 어떤 결론에 도달하려고 애를 썼었다. 그러나 그간은 낡은 평가를 폐기해야 할 시간이 왔다.

2.13합의가 진전을 보고 검증할 만한 핵폐기가 이뤄지기 위해 반드시 풀어야할 북한의 원심분리기 프로그램에 대한 의문점은 분명 남아 있다. 그러나 2002년의 잘못된 평가가 이번 합의를 잠식하거나 북한 핵폐기에 대한 상응조치를 어렵게 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

번역=황준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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