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당성 없는 국방장관의 국방예산 증액 논리


이상희 국방장관 국방예산 관련 서한 내용에 대한 참여연대 반박



오늘(8월28일) 논란이 되고 있는 이상희 장관의 국방예산 소폭 증액 반대 서한 전문이 공개되었다. 청와대 등에 전달된 국방장관의 서한 내용이 언론에 전면 공개되면서 그 이면에는 장관의 국방예산 증액 요구 이상의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까지 일고 있다. 이러한 논란 가운데 참여연대는 이상희 장관이 서한에서 언급한 국방예산 증액의 논리들이 여러 측면에서 부적절하고 타당하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먼저 이상희 장관의 서한 내용에 대해 지적하기에 앞서 국방부가 수정한 국방개혁의 기본 방향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주지하듯이 이상희 국방부 장관 하의 국방정책은 북 측의 재래식 위협을 강조하며 지상군 위주의 전력을 증강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해 논란이 되었던 차세대전차사업인 ‘흑표사업’뿐만 아니라 대폭 도입 시기를 앞당긴 차기 자주포, 차기 다련장, 차기 장갑차 그리고 소위 북한 급변사태에 대비한다면 도입을 결정한 차륜형 장갑차, 지뢰와 같은 장비 도입이 그것이다. 여기에다 중고 아파치 헬기를 불리한 조건으로 도입하는 등 지상군 전력증강은 총 60조원을 상회할 예정이다.

그리고 이상희 장관은 한미군사동맹을 바탕으로 전시작전권 환수 이후에도 핵심 정보, 작전능력을 계속 미국에 의존한다는 새로운 국방력 건설의 지침을 내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국이 이와 같은 전력을 제공할지도 의문이지만 이러한 논리는 지상군 전력증강을 합리화하기 위한 잘못된 논거임이 서서히 밝혀지고 있다.


이상희 장관은 서한에서 미 국방장관들의 발언을 빌어 국방예산 대폭 증액을 요구하고 있는데, 이는 터무니없을 뿐만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사실을 왜곡하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다. 우선 이상희 장관이 ‘한국의 낮은 국방비 투자를 지목하면서 한국이 한·미동맹관계에 무임승차(free-ride)하려 한다’며 게이츠 미 국방장관이 불만을 표출했다고 밝힌 부분과 관련하여 과연 게이츠 장관이 한국의 국방비 규모 문제를 지적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끊임없이 미군에게 의존하려는 한국 군 당국과 국방정책에 대한 불만이었는지 따져봐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지난 10년 동안 전임정부가 국방예산을 대폭 증액하며 ‘자주국방’ 건설 논리를 내세울 때 여전히 주한미군의 ‘인계철선’ 역할을 주장하고,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를 강력히 반대하며, 재래식 전력증강에 집중하면서 핵심전력은 미군 전력에 의존하고자 하는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게이츠 장관이 말했다는 ‘한미동맹관계에 무임승차’하고자 했던 것은 바로 이들 아닌가. 나아가 이상희 장관은 게이츠 미 국방장관이 한국의 국방비 규모에 대해 실제 불만을 표출했는지 해명해야 한다.


또한 럼스펠드 전 미 국방장관이 미국의 국방비 투자에 비해 한국은 2.7%에 불과하다고 불만을 표시했다는 부분도 마찬가지이다. 미국이 전세계 군비지출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고, 전 세계 국가 중 국방예산을 GDP 4%를 쓰는 나라는 매우 드물며, 한국의 2.7%의 국방비 규모도 높은 수준이라는 점에서 타당하지 않은 주장이다. 국방예산을 많이 지출하다는 것이 곧 국민들의 안전 수준을 보여주는 지표라고도 할 수 없다.


나아가 이상희 장관이 재정을 긴축해야 한다면 병영환경의 불편을 감내하는 쪽으로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지금 국방예산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경상운영비 축소는 육군 병력의 과감한 축소와 불필요한 장교인원 축소를 통한 예산 감축이어야지, 사병 인건비나 복무환경 개선비용을 희생시키는 방향이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앞으로 몇 년 더 희생해도 괜찮다는 식으로 장병의 생명과 인권을 경시하는 발상을 국방장관이 거침없이 드러냈다는 것은 충격적인 일이다. 우리는 전력증강 일변도의 국방력 건설의 풍조 속에 군 내부에서 각종 자살, 안전사고가 빈번해지고, 복무환경이 저하되어 온 것이 군 수뇌부의 이와 같은 발상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본다. 도리어 관리 부담이 가중되고 있는 전근대적 병영체계를 방치하고 무기도입이 우선이라는 장관의 발상은 반인권적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국방예산은 ‘아무리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최종적 예산편성상의 국가재정 증가율 이상으로 보장되어야 하며 그 이하의 수준일 경우에는 그 어떤 논리로도 이를 설명할 수는 없’다는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 국민들에게 위협은 외부로부터의 군사적 위협만 있는 것이 아니라 주거, 보건, 교육, 에너지 등 생명, 안전과 직결된 다양한 위협들이 존재한다. 이미 곳곳에서 많은 국민들이 현실로 직면해 있는 위협들이다. 이 같은 생존의 문제를 안고 사는 서민들을 위해 사회안전망을 제공해주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방예산은 반드시 국가재정 증가율 이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거나, 반드시 국가재정 배분의 우선순위에 있어야 한다는 주장은 막대한 국방예산에 익숙해져 있는 군의 논리일 뿐이다.


한편 재정 당국의 정상적인 예산편성 절차를 초월하여 대통령과 직거래를 통해 결정된 국방개혁 기본계획이 예산의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사고방식은 과거 일본 군국주의가 남긴 유산이다. 일제 때 일본군은 내각의 통제를 받지 않고 천황과 직거래를 했다. 이런 유산이 아직도 청산되지 않고 현행 국가재정법의 절차를 무시하면서 유독 국방만이 성역이라는 인식에서 이러한 서한이 작성되었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국방은 국민을 떠나서 존재할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보다 정상적인 법절차에 따라 국방 재원 규모가 결정되는 것이 옳다.


이상희 장관의 우려대로 지금 한반도 주변의 안보환경은 안정적이지 않다. 전 세계 국가 중에서 가장 많은 국방예산을 투입하고 무기를 생산, 구매하는 나라들이 바로 동북아에 존재한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그래서 군사력 대비만큼 북한과 주변국에 대한 외교도 매우 중요하고 절실하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외교안보 당국은 최선의 외교적 노력을 경주하면서 군사력 확보를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미숙한 외교력에 군사적 대립과 갈등을 부추기면서 군사력 대응태세만을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이상희 장관이 언급한 ‘최소한의 자위적 방어역량’은 어느 수준이고, 이를 위해 어떤 규모의 국방예산이 필요한지 앞으로 많은 토론이 이루어져야 한다. 아울러 참여연대는 이번 사태가 주변 군사, 경제 강국들과 군비경쟁의 악순환에 빠져 증액일변도의 국방비 지출을 용인하는 것이 한국의 지속가능한 생존방식인지 본격적으로 토론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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