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영선 칼럼- 미·중 정상회담과 북한 (중앙일보, 2006. 4. 3)

[중앙일보 하영선]

베이징 6자회담의 9.19 공동성명이 발표된 지 반년이 지났다. 북핵 문제가 드디어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고 자신감을 보이던 정부 당국은 뒤늦게 ‘미묘한 정세변화론’을 얘기하고 있다. 정세의 변화는 사실이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이 변화를 사전에 읽고 해결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사후적으로 돌파구를 찾으려는 데 있다. 지난 반년 동안의 ‘미묘한 정세변화’는 예측 불가능했던 것이 아니다. 9.19 공동성명 이후 사태의 전개는 거의 완벽하게 예상 경로에 따라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 당국이 핵 태풍의 예상 경로를 제대로 예보하지 못하는 것은 기본공식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다. 공식으로 풀어야 할 문제를 공식 없이 풀어 보려는 노력은 힘만 들고 답을 찾을 수는 없다. 난무하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장님 코끼리 만지는 식의 경로 예측과 비현실적인 로드맵 그리기를 반복할 위험성이 높다.

핵 태풍의 예상 진로는 비교적 선명하다. 우선 주목할 것은 오는 4월 20일의 미.중 정상회담이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후진타오 국가주석에게 북핵 문제에 대해 할 얘기를 예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해답은 지난 3월 16일 백악관이 4년 만에 새로 발표한 ‘국가안보전략보고서’에서 찾는 것이 빠르다. 북한이 ‘강도적인 선전포고 문건’이라고 격렬하게 비난한 이 보고서는 부시 제2기 행정부가 현재 추진하고 있는 국가안보전략의 기본 공식을 간결하게 요약하고 있다. 현재 진행하고 있는 반(反)대량살상무기테러전의 궁극적 승리를 전 세계 폭정의 종식과 효율적 민주주의의 증진에서 찾고 있다. 미국은 세계의 7대 폭정국가를 지적하면서 북한을 가장 먼저 거명했다. 자유의 승리를 위해서는 정치.경제.외교를 비롯한 다양한 수단을 최대한 동원할 것을 천명하고 있다. 동시에 전 세계 민주공동체의 성장을 위한 다국적 협력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이 공식에 대입해 보면 부시 대통령은 북한의 선(先)핵포기를 전제로 9.19 공동성명의 이행을 위한 6자회담을 계속해 추진하되 실질적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면 북한의 폭정종식을 위한 노력을 강화할 수밖에 없으며, 유럽연합이나 일본 같은 주주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이익상관자(stakeholder)인 중국도 이 노력에 함께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한편 이미 널리 알려진 중국의 공식은 지난 3월 16일 리자오싱 외교부장의 기자회견에서 다시 확인되고 있다. 중국의 최대 당면과제는 국내경제이며, 이를 위한 국제 평화.발전.협력을 강조하되 국가이익상 불가피하게 해야 할 바는 하겠다는 것이다. 국내경제의 지속적 발전을 위해 북핵 문제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싶은 중국은 섣부르게 미국의 희망을 받아들이기보다는 핵포기.경제지원.관계개선.평화체제 구축이라는 ‘마(魔)의 사각관계’가 엉킬 대로 엉켜 있는 6자회담의 재개를 통해, 수령체제 옹호를 최우선시하는 북한과 선 핵포기를 양보할 수 없는 미국의 갈등을 조정해 보려는 시도를 할 것이다.

태풍의 핵은 북한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지난 1월 중국 방문의 연회 연설에서 과거에는 볼 수 없는 어조와 언어로 중국을 높이고 있다. 5년 전 천지개벽한 상하이를 방문하던 때보다 더 큰 감동을 받았고, 중국에서 모든 일이 잘되고 있는 것을 자기 일처럼 기뻐하며, 북한을 지지.원조하는 것을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최근 위폐.인권문제에서 보는 것처럼 부시 행정부가 6자회담의 가시적 성과가 없는 가운데 폭정종식을 위한 정치.경제.외교전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불안해진 북한이 택하고 있는 대응이다. 그러나 중국을 방패 삼아 문제를 풀어 보려는 노력은 전술적 선택이지 전략적 선택은 못 된다. 미.중 정상회담으로 약간의 시간을 벌 수는 있어도 북핵 태풍은 점점 더 커지면서 한반도에 몰아닥칠 것이다. 북한 지도부의 핵포기와 개혁개방의 전략적 선택과 관련 당사국들의 경제지원.관계개선.평화체제 구축 없이 태풍은 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전략적 선택은 무엇인가.

하영선 서울대 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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