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군축센터 파병 2009-10-07   1570

아프간 점령 8년, 지속되는 파병의 오류

작가 할레드 호세이니의 작품인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이라는 소설에는 17세기 페르시아의 한 시인이 카불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시구가 나온다. “지붕 위에서 희미하게 반짝이는 달들을 셀 수도 없었고, 벽 뒤에 숨은 천 개의 찬란한 태양들을 셀 수도 없네”


오늘날 카불은 이 시에서 묘사하는 것과 같은 찬란한 모습을 찾기 힘들다. 끊임없는 무장갈등과 오랜 외세 점령으로 점철된 현대사를 겪은 아프간인들의 삶은 그야말로 비극적이고 처참하다. 한 세기가 흘러도 마찬가지이다. 미국은 지난 2001년 10월 7일, 대테러전을 수행하기 위해 아프간을 공격했고, 그로부터 미군 주둔은 이제 9년 째를 맞고 있다. 


지금 미국은 아프간 추가 파병을 놓고 여야간 기싸움이 한창이다. 민주당 내에서는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기존 증파 전략을 재검토해야 하며, 첨단 무기를 활용하여 파키스탄 등지로 집중되는 알카에다 소탕을 목표로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반면 공화당 내에서는 여전히 탈레반의 아프간 장악을 막기 위해서라도 지상군 증파를 통해 고군분투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어찌됐든 오바마 대통령은 아프간에서 더 이상의 미군 철수는 없다고 방점을 찍고 있다. 이런 태도는 미국이 일으킨 아프간 침공을 여전히 정당화하고 있다는 면에서 부시 정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 6일 알자지라 뉴스에서는 아프간 정치인 중 한 명인 Hekmatyar씨의 인터뷰가 이목을 끌었다. 미국이 아프간 침공과 미군 주둔을 위해 ‘거짓된 변명(false pretext)’을 해 왔다고 비판했기 때문이다. “아프간 사람들은 유럽이나 미국에 어떤 군사적인 행동을 하지 않았다. 9.11 테러도 마찬가지이다. 9.11 테러를 일으킨 사람들이 미국 내에서 고공 훈련을 받으며 테러를 준비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결국 유럽이나 미국 내에서 발생한 것이지 아프간 혹은 이라크 사람이 저지른 것이 아니었다.”


그의 주장은 우리에겐 더 이상 새롭지 않다. 이는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에서 대량살상무기를 더 이상 찾지 못하자 이라크 침공을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공격이라고 말을 바꾼 것과 궤를 같이 한다. 즉 미국은 탈레반을 9.11 테러를 일으킨 알카에다와 직결된 세력으로 악마화하려 했지만, 여태 정확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 채 추측과 주장만 남아 있다. 오히려 계속되는 미국의 군사작전 실패는 탈레반 세력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키우게 만드는 호기로 작용해 왔다. 그렇기에 최근 민주당과 오바마 주요 참모진들이 주장하는 대로 미군의 아프간 증파가 더 이상 실효성이 없다는 것은 설득력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한편으로 미군이 아프간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는 상황은 한국군 재파병으로 이어질 수 있다. 미국은 한국군이 이미 아프간 파병을 했다가 불가피하게 철군을 했던 사정이 있었음에도, 계속해서 재파병을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난 6일,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김장수 의원은 미국이 전투병 파병을 요청하면 정부는 어떡할 것이냐고 물은 적이 있다.


이 때 김태영 국방장관은 “국익과 국내 사정을 고려해 결정하겠다” 라고 답했는데, 정부의 이런 태도는 여전히 아프간 재파병에 대해 어정쩡한 입장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기존의 파병 관례처럼 미국의 요청을 완전히 뿌리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우리 군대를 그 위험한 전장으로 또 다시 보내는 것은 엄청난 정치적 위험을 무릅써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정말 안타까운 것은 지금까지 아프간에 파병을 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을 내비치는 정부 입장에 대해 국민들이 신뢰를 가지기 어렵다는 점이다. 현재 미군이 아프간에서 겪는 수난을 냉정하게 분석하고, 우리의 대테러전 참여에 대한 총체적인 평가를 통해, 과연 아프간 평화를 위해 국제사회가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그 속에서 한국의 진정한 역할은 무엇이어야 하는지 그 종합적인 구상과 계획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는 8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점 없이, 미국의 지속적인 요구와 국민의 반대 여론 사이에서 일단 눈치작전을 구사하는 것 같다.


정부가 ‘기여외교’를 강조하며 해외 파병 상설부대를 만들고 ‘신속파병법’을 제정하자고 주장하는 것이 못미더운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기여(寄與)’가 도움을 주며 더불어 산다는 뜻에서 출발하는 것처럼 우리는 국제사회 이웃과 어떻게 더불어 지낼지 그 원칙과 방향이 먼저 있어야 한다. 그것도 없이 더 많은 군대를 더 빠른 속도로 보내는 것만이 국제사회 평화에 ‘기여’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지은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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