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군축센터 칼럼(pd) 2010-05-04   1836

[칼럼] “핵무기 없는 세상? 핵보유국들 먼저!”


‘핵폐기’ 꿈꾸는 이들, NPT 평가회의에 모이다
프레시안 [김재명의 ‘월드 포커스’]에 실린 글입니다.(프레시안으로 바로가기)




김재명 (프레시안 기획위원. 국제분쟁 전문기자. 성공회대 겸임교수)



우리 인류는 도대체 언제쯤 핵무기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핵무기 없는 세상’이란 꿈은 이뤄질 수 있을까. 지금 미국 뉴욕은 이런 물음에 대한 답을 찾고자 전세계로부터 몰려든 사람들로 북적인다.


핵확산금지조약(NPT) 제8차 평가회의에 모여든 189개국정부 대표들과 비정부기구(NGO) 활동가 대표들이 바로 그들이다. 유엔본부를 중심으로 5월3일부터 28일까지 거의 한달 동안 이어질 이 모임에서 핵무기 숫자를 줄이자는 이른바 핵군축-비확산 논의가 이뤄질 예정이다.



불평등한, 그리고 이중잣대인 NPT

1970년에 시작된 NPT는 이미 핵무기를 지닌 미국, 소련, 영국, 프랑스, 중국 등 이른바 P5(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5개국)만을 ‘핵무기 클럽'(nuclear-weapon club)으로 인정하고, 다른 나라들은 핵무기를 개발해서도 보유해서도 안 된다는 배타적인 ‘불평등 국제조약’의 대표적인 보기다.


NPT 체제의 또다른 문제점은 친미국가냐 아니냐에 따라 대응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이른바 ‘이중잣대’다. 친미국가인 이스라엘은 NPT에 가입도 안하고 IAEA 사찰도 받지 않는 특혜를 누려왔다. 미국의 이스라엘 감싸안기의 극단적인 보기다. 이에 비해 반미국가인 이란(현 NPT 회원국)과 북한(NPT 탈퇴국)은 전방위 압박을 받아왔다.


5년 터울로 열리는 NPT 평가회의는 이런 여러 문제점들을 풀기 위한 노력이라는 최소의 의미를 지녔다. 지난 2005년의 평가회의는 미국의 조지 부시 대통령이 판을 깨는 악동 역할을 맡아 하는 바람에 회의에서 함께 다룰 의제들조차 합의하지 못한 채 말잔치로 끝났었다.


이번엔? △포괄적 핵실험 금지조약(CTBT)과 무기용 핵물질 생산금지조약(FMCT) △핵 비확산체제 강화 △중동비핵지대 등의 사안들을 다루기로 합의했다. NPT의 3대 축인 핵군축, 비확산, 평화적 핵 이용권에 대한 각국의 이해가 대립하고 있는 만큼 다각적인 논쟁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과 이란의 핵문제가 갈등을 겪는 터에 ‘중동비핵지대화’와 같은 구상이 현실화될지 두고 볼 일이다.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의 두 보고서
뉴욕 NPT 제8차 평가회의에 즈음해서 한국시민사회의 역량을 보여주는 의미 있는 두 개의 보고서가 나왔다.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가 펴낸 「2010 핵군축보고서Ⅰ- 주요 국가의 유엔 핵군축 결의안 표결 실태 분석」(48쪽 분량), 「2010 핵군축보고서Ⅱ- 한국 정부의 핵정책 리뷰」(14쪽 분량)다.(핵군축보고서 원문 보기)


이 핵군축보고서들은 국제사회 핵군축·비확산 논의를 소개하고 이들 쟁점들에 대한 주요 핵보유국들과 6자회담 당사국들의 입장을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먼저, 「2010 핵군축보고서Ⅰ」은 2009년 참여연대가 펴냈던 문건(「핵무기 없는 세상을 향한 핵군축보고서」)을 기반으로 2009 유엔총회에서 핵무기 관련 각종 결의안에 한국을 포함한 각국이 어떤 입장을 보였는가를 분석하고 있다.


여기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미국, 이스라엘, 한국, 일본의 표결 성향이다. 미국은 부시 행정부 시절이던 2008년 당시 표결에 부쳐진 핵무기 관련 결의안 18건 모두 100% 반대 입장을 취했었으나, 오바마 취임 뒤 15%의 찬성률을 보여 핵군축에 최소한의 성의를 보이는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의 낮은 찬성률, 뭘 뜻하나
이스라엘은 여전히 가장 낮은 찬성률을 보이고 있다. 이스라엘은 핵무기 보유에 대해 “확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다”는 이른바 NCND 입장을 고집하고 있어 핵군축·비확산 체제에 커다란 걸림돌로 꼽힌다.


비공식적으로 핵무기 보유를 인정받고 있는 북한, 핵개발 중인 것으로 의심을 받는 이란, 이들 두 나라는 핵군축·비확산 결의안들에 대해 높은 찬성률을 보여 이스라엘과 대조적인 모습이다(이란은 92%, 북한은 60%).


그렇다면 한국은 어떠한가. 핵무기 비보유국인 한국과 일본은 비핵국가로써 높은 찬성률을 보일 것으로 예상되지만 그렇지 못하다. 그저 절반 수준의 찬성률을 보이는데 그친다(한국 54%, 일본 62%).


한국과 일본은 1995년 및 2000년 NPT 검토회의에서 합의한 핵군축 의무이행’ 결의안에 반대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이와 관련, 참여연대 보고서는 “한국과 일본이 미국으로부터 핵억지력을 제공받고 있어, 미국의 핵군축이 이들이 향유하는 핵억지력의 약화로 이어질 것을 우려한 표결의 결과로 보인다”고 풀이한다.( [2010 핵군축 보고서Ⅰ] 방사능 물질 통제& 12개국의 핵군축 및 비확산 결의안 표결 성향)


“오바마의 미국, 핵군축·비확산 아니다”
한편으로 이 보고서는 미국 오바마 정부의 핵정책을 분석함으로써 ‘핵무기 없는 세상’ 구상에 대한 중간 평가를 시도하고 있다.

핵태세보고서(NPR 2010)에서 오바마 행정부는 미국이 ‘효과적인 핵 억지력은 유지’하겠다고 공언하면서, 핵선제공격 배제(No First Use) 정책을 끝내 채택하지 않았다. 아울러 미국은 핵무기 비중이 줄어드는 만큼 다른 재래식 무기와 미사일방어체제(MD)를 강화하겠다고 밝혔었다.

보고서는 이같은 사실들을 지적하면서, 미 오바마 정부가 국제적인 핵군축·비확산 의지를 좌절시키고 있음을 비판한다. 아울러 미국의 핵정책이 핵군축보다는 비확산, 특히 핵테러리즘에 대한 핵안보 태세 강화로 주요한 조치로 상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과연 그 방향이 적절한 지를 따져 묻는다.


끝으로 이 「2010 핵군축보고서Ⅰ」보고서는 NWC(핵무기협약), CTBT(포괄적 핵실험금지조약), FMCT(핵분열성물질 생산금지조약), NSA(소극적 안전보장) 조약화 논의 등 국제 핵군축·비확산 체제 강화를 위한 의제들과 각국 입장과 2010 NPT 검토회의의 쟁점들을 짚어보면서, NPT에서 다뤄지거나 합의되어야 할 것들에 대한 제언으로 마무리하고 있다.([2010 핵군축 보고서Ⅰ] 미국의 핵 정책 리뷰)



이명박정부의 바람직한 핵정책 방향은?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가 펴낸「2010 핵군축보고서Ⅱ」는 한국 정부의 유엔핵군축 표결과 북핵 폐기 정책의 부조화 문제와 아울러, △원전 수출 세일즈, △한-인도 핵교류. △한미 원자력 협정 개정 등이 가져올 문제들을 분석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평화적 핵 이용권’과 ‘핵확산’의 모호한 경계에 대한 국제사회의 민감한 논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잘못된 정책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또한 이 보고서는 한국 이명박정부의 핵정책 분석과 평가를 통해 지금 뉴욕에서 열리는 2010 NPT 검토회의에서 정부가 보여주어야 할 바람직한 핵정책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NPT 체제를 공고화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핵보유국들의 핵군축의 노력이 가시적 결과물을 도출해야 하고, △핵보유국들은 핵군축 관련 4대 조약(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 핵분열성물질생산금지조약(FMCT), 핵무기협약(NWC), 소극적안전보장(NSA) 관련 조약)의 발효를 위한 구체적이며 적극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2010 핵군축 보고서 Ⅱ] 한국 정부의 핵 정책 리뷰&한국정부에 대한 제언)



‘동북아비핵지대화’ 공식 논의돼야
이 보고서는 아울러 △핵무기 없는 세상 구현의 중간단계인 비핵지대화 확대 노력에 핵보유국들이 적극적으로 협력해야 하고 △동북아시아는 핵을 둘러싼 실질적 대립과 불신이 존재하는 지역인 만큼 한일 시민사회와 의원들이 지지하는 동북아비핵지대화 구상을 이번 NPT 검토회의에서 공식 의제로 채택해 주기를 기대하고 촉구하고 있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핵과 관련해 흔히 들어왔던 주제는 북한 핵문제다. 참여연대 측은 이 두 개의 보고서를 통해 북핵폐기 여부로만 집중되어 있는 한국사회의 관심을 넓히고, 북핵 문제를 한반도 비핵화, 나아가 핵무기 없는 세계라는 보다 넓은 시각에서 바라보는 참고자료로 활용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참여연대는 보고서 발간과 더불어 2010 NPT 검토회의가 열리는 뉴욕으로 실무간사들을 파견한 상태다.


이들은 뉴욕 현지에서 국제 NGO 단체들과 함께 ‘핵무기 없는 세상과 동북아 비핵지대화’ ‘아태지역 군사주의에의 도전과 핵무기 폐지’ ‘아태지역 내 군축을 위한 시민사회 구상’ 등 여러 토론 모임에 발제-토론자로 참여하고 있다.


지금 뉴욕에는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실무간사들을 포함한 한국의 평화활동가들 수십 명이 머물고 있다. 이들은 국제 NGO 활동가들과의 대화와 토론을 통해 북핵문제를 포함한 한반도와 동북아에서 핵위협을 포괄적으로 제거하기 위한 동북아비핵지대화 구상을 띄우기 위해 노력중이다. 아울러 이들은 NPT 평가회의에 대표를 보낸 각국 정부 활동을 바로 현장에서 지켜볼 예정이다.



핵군축이 아니라 핵폐기다
핵과 관련한 첫째 문제는 기존의 핵보유국들이 핵무기 폐기를 말로만 하고 실천에 옮기는 데 굼뜨다는 것이다. 핵무기를 갖지 못한 국가들 가운데 상당수가 국가안보를 위해 ‘핵보유’로의 유혹을 쉽게 떨쳐내기 못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전면 핵폐기를 외면하는 기존 핵보유국들의 잘못 탓이 크다.


지난 4월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러시아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체코 수도 프라하에서 만나 전략핵무기를 7년 안에 각각 1550기로 줄이고, 전략핵무기를 탑재하는 미사일의 상한을 각각 800기로 유지하기로 한 신전략무기감축협정(New START)에 서명했지만, 전면 핵군축과는 거리가 멀다. 미국-러시아가 보유하기로 한 3000기의 전략핵무기만으로도 지구상의 모든 사람을 죽이고 지구촌 환경을 완전 오염시키기에 충분하다.


현재 지구상에는 2만개쯤의 핵무기가 있다고 추정된다. 분명한 사실은 지금의 핵무기들은 1945년 일본 히로시마에 떨어졌던 원폭보다 훨씬 살상력이 크다는 것이다. 히로시마 원폭에 견주어 1000배의 살상력을 지닌 것들도 있다.


지구촌의 평화와 안전을 위해서는 핵군축뿐 아니라 핵폐기가 시급한 과제다. 뉴욕 NPT 평가회의에 즈음해 뉴욕으로 간 지구촌 평화활동가들에게 기대를 걸며 박수를 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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