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군축센터 핵없는 세상 2007-09-11   1251

그는 왜 남북 정상회담을 받아들였나(한겨레21, 김연철, 2007. 8. 16)

그는 왜 남북 정상회담을 받아들였나, 그는 남쪽에 어떤 보따리를 원하나

▣ 김연철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교수

정상회담은 협상이다. 그것도 의제가 조율되지 않은 열린 협상이다. 남북 정상회담은 일반적인 정상회담과 다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북한에서 유일하게 협상 권한을 가진 사람이다. 물론 협상 전략은 실무적으로 준비돼 있을 것이다. 그러나 김정일 위원장은 즉석 결정을 내리기도 한다. 그 결정을 북한에서 번복할 사람은 없다. 결국 김정일 위원장을 설득하는 것이 바로 남쪽 협상전략의 핵심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김정일 위원장의 머릿속으로 들어가보아야 한다.

김정일 위원장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김정일 위원장이 정상회담을 받아들인 배경이 궁금하다. 그는 지난 2005년 정동영 장관과의 6·17 면담에서 정상회담 개최에 합의한 바 있다. 그러나 그 이후 진척되지 못했다. 우리 쪽의 거듭된 확인에도 북한은 기다려달라고 했다. 그런데 남쪽 대통령 선거를 넉 달여 앞둔 지금 시점에서 북한은 정상회담을 선택했다. 정말로 정치적으로 남쪽의 대선에 영향을 미칠 의도인가? 물론 그러한 의도를 전적으로 배제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그러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김정일 위원장의 생각을 읽어보자. 과감한 상상력이니,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

핵 포기하고 체제 유지할 수 있을까

지금 가장 큰 고민은 핵 포기다. 과연 핵을 포기하고도 체제를 유지할 수 있을까? 오랫동안 고민을 해보아도 결정을 못 내리겠다. 미국이 이라크와 달리 북한을 넘보지 못하는 이유가 뭐겠는가? 핵이라는 ‘자위적 국방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핵은 미래를 보장해주지 않는다. 대외관계 개선과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핵을 포기해야 한다. 그렇지만 핵을 포기하고도 체제를 유지할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다행스럽게 조지 부시 미국 행정부는 생각을 바꾸었다. 지난해 11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부시 대통령은 “김정일 체제를 인정하겠다”고 했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다. 핵을 포기하면, 노무현 대통령을 포함해서 3자가 평화협정을 맺자고 했다. 정권 교체(Regime Change)를 주장하던 몇 년 전과 비교해보면 파격적인 변화다. 미국의 의지는 2007년 방코델타아시아(BDA) 문제를 푸는 과정을 통해 재확인됐다. 애국법이라는 현실적 제약을 뛰어넘어 연방은행을 통해 미국은 송금 중계를 했다.

미국의 크리스토퍼 힐 6자회담 수석대표가 평양에 왔을 때, 만나볼까 생각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과의 관계는 더 지켜보아야 한다. 비핵화의 2단계 조치인 불능화는 테러지원국 해제와 적성국 교역법이 해제돼야 가능할 것이다. 핵물질과 핵무기를 폐기하는 것은 그다음 단계다. 물론 부시 행정부가 서두르고 있음은 잘 알고 있다. 미국과 관계 정상화를 할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왜 미국과 우방이 될 수 없는가? 체제를 유지하고 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다면 충분히 생각해볼 수 있다. 일부 남쪽 사람들은 공화국(북한)을 반미 운동단체쯤으로 생각하지만, 공화국은 국가이고, 국익이 이념보다 중요하다. 미국과 친구가 되면, 중국이나 러시아는 더욱더 북한에 접근해올 것이다. 나쁠 것이 없다. 미국과 관계 개선을 이루고, 경제 제재가 해제되면 공화국은 살아날 수 있다. 그렇게 생각을 해보니, 더 중요한 고민이 생긴다.

평양에 성조기가 날린다고 공화국의 체제가 보장될 수 있을까? 미국의 위협도 크지만, 더 직접적인 위협은 사실 남한이다. 2000년 정상회담 이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정치적 신뢰도 높아졌고, 경제협력도 활성화되고 있다. 그러나 정치적 신뢰는 근본 문제를 넘어설 만큼은 아니다. 공화국의 존재를 부정하는 법률도 있고, 북남 간의 경제력 차이도 크다. 더욱 중요한 것은 남쪽의 국방력이 이제는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는 사실이다.

서해 경계선 문제 피하는 남쪽

그래서 핵을 포기하기 위해서는 남쪽과의 평화 정착이 필요하다. 마침 남쪽은 평화를 말하고 있다. 장관급 회담에서 남쪽 대표는 이제는 평화를 논의할 때라고 했고, 남쪽에서 평양을 방문하는 유력한 정치인들은 하나같이 평화체제를 말한다. 다들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이라고 하니, 근거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남쪽이 그토록 원하는 경제협력 사업들, 열차 운행이나 한강 하구 개발 문제도 군사적 보장이 전제돼야 한다고 분명히 밝혔다. 그래서 남쪽과 이제 평화 문제를 본격적으로 논의할 시기가 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장성급 회담을 해보니 예상과 달랐다. 남쪽은 서해 평화 정착을 주장하면서, 충돌 방지를 위한 근본적 대책인 경계선 문제를 피하고 있다. 국방장관 회담을 해야 논의할 수 있다고 한다. 문제를 회피하기 위한 핑계로 보인다. 직항로 문제나 공동어로 등 단계적인 서해 평화 정착 방안을 제안해도 남쪽은 북방한계선(NLL) 고수라는 기존 입장만 되풀이한다. 방송을 통해, 서해에서 다시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고 해도 반응이 없다. 평화체제의 당사자답게 행동하라고 말해도 마찬가지다. 답답한 상황이다.

공화국 내부 사정도 고민이다. 세월은 한해 두해 지나가고 있다. 나도 벌써 65살이다. 몸도 예전과 다르다. 그러나 후계자는 불투명하다. 정남은 밖으로만 돌고, 정철, 정운도 아직 나이가 어리다. 나는 1967년 4기 15차 전원회의에서 박금철 등 갑산계를 몰아낼 정도로 당내 영향력이 있었다. 겨우 25살의 나이였다. 당시 아버지 김일성 주석은 55살이었다. 나는 30대 초반에 이미 후계자로 공식화됐다. 그런데 지금은 그 당시와 다르다. 여전히 후계체제를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이 안 선다.

북-미 관계를 비롯해서 대외 정세가 복잡하니, 국내 문제에 집중하기도 어렵다. 경제 사정도 밝지 않다. 2006년 핵실험을 하니, 국제 제재는 더욱 강화됐다. 남쪽도 쌀 지원을 중단했다. 겨우 비상 자금을 풀어 식량과 기름, 필요한 물자를 사왔다. 2002년 7·1 경제관리 개선 조치를 취한 지 5년이 흘렀지만, 물자는 부족하고, 물가는 유동적이며, 공장 가동률도 여전히 낮다.

역시 남쪽과의 경제협력이 중요하다. 얼마 전 남쪽에서 경공업 지원을 약속했다. 의복과 신발을 생산할 수 있는 원자재를 지원하기로 했다. 그것으로 공장을 돌릴 것이다. 1990년대 경제위기를 겪은 이후 많은 공장들이 쉬고 있다. 7·1 조치로 일한 만큼 분배하는 체계를 세웠는데, 공장이 돌아가야 임금을 줄 것이 아닌가? 남쪽의 지원은 일자리를 제공해준다는 점에서 고마운 일이다.

경제 개방에서도 남쪽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신의주는 2002년 10월 파격적인 경제 개방 조치를 취했지만, 양빈의 구속으로 흐지부지됐다. 1991년에 개방한 나진·선봉 역시 그저 그렇다. 발전하고 있는 곳은 개성뿐이다. 관광사업도 중요하다. 현금 수입을 늘릴 수 있는 관광사업은 역시 남쪽과 해야 한다. 금강산 관광을 넘어, 백두산이나 개성 관광도 빨리 추진했으면 좋겠다.

군사력, 노 대통령과 담판을

핵을 포기하려면 역시 남쪽과의 관계를 진전시켜야 한다. 공존이 제도화되지 않으면 국력의 차이를 고려할 때 공화국의 안전 보장을 장담할 수 없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군사력이다. 핵을 포기하게 되면, 억지력은 상실된다. 재래식 군비로는 남쪽과 상대가 되지 않는다. 그것이 고민이다. 남쪽 군부와 대화를 시도해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역시 노무현 대통령과 직접 담판을 할 수밖에 없다.

남쪽에서 실질적인 평화 정착 의지를 보인다면 공화국도 양보할 것이다. 열차도 운행하고, 한강 하구의 모래도 퍼가게 할 것이다. 그러나 남쪽은 말만 한다. 행동으로 평화 정착에 나설지 믿지 못하겠다. 서해 경계선 문제도 풀지 못하면서 앞으로 어떻게 병력·군비 감축을 할 수 있겠는가? 물론 남쪽 사정을 생각해보면, 지금 서해 경계선을 확정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핵을 포기한 뒤에 남쪽이 군비 통제에 나서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서해 경계선 문제는 평화를 향한 남쪽 정부의 의지를 상징한다. 그 의지를 확인해보고 싶다. 최소한 지금보다 진전된 방안을 갖고 와야 다른 문제도 논의할 것이다.

상호 체제 존중도 그렇다. 이미 2005년 8·15 때 김기남 비서를 국립 현충원에 보냈다. 내부적으로 많은 반대가 있었지만, 과연 남쪽이 공화국 체제를 인정할 것인지를 시험해보고 싶었다. 당연히 남쪽 정부가 상응 조치를 취할 줄 알았다. 그러나 남쪽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만약 당시 남쪽 당국자들이 공화국의 상응 시설을 방문했다면 곧바로 정상회담을 할 생각이었다.

당시에도 어려웠는데, 지금이야 더 힘들 것이다. 노무현 정부의 임기도 얼마 남지 않았다. 과연 남쪽이 어떤 보따리를 갖고 올지 모르겠다. 남쪽 사람들은 돈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앞으로 핵을 포기하는 단계마다, 미국을 비롯한 5개국이 경제 지원을 할 것이다. 현재의 북남 관계를 유지하더라도, 남쪽은 쌀과 비료 지원을 계속할 것이다. 아랫사람들에게 계속 남쪽의 신세를 져서는 안 된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물론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설 때까지 남쪽이 도와준다면 고마울 뿐이다. 남쪽 정부는 핵을 포기하면 철도, 에너지를 비롯해 인프라 개선 사업도 하겠다고 이미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번 정상회담에서도 공화국이 핵을 포기하면 많은 사업을 하겠다고 제안할 것이다. 남쪽이 하겠다고 하는데 반대할 이유는 없다.

참여정부 때 최대한 앞으로 나가야

지금 정상회담을 받아들인 이유 중에서 대선도 중요하다. 대선에서 보수 세력이 정권을 잡으면, 북남 관계는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 미국의 정책이 바뀌어도 남쪽이 과거로 돌아간다면, 과연 핵 폐기의 대가가 보장될 수 있을까? 이미 1994년 제네바 합의 당시 클린턴 행정부는 협상을 하자고 하는데, 김영삼 정부가 대북 강경정책을 취하는 바람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한-미 양국은 동맹관계이기 때문에, 남쪽의 강경정책은 미국의 정책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일본도 있지 않은가? 앞으로 아베 정권이 어떻게 될지 모르나, 일본과의 관계 개선은 일본의 여론을 볼 때 쉽지 않을 것이다. 일본과의 관계는 미국과 관계를 정상화하면 자연스럽게 풀릴 문제다.

핵심은 남쪽이다.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보수 정권이 들어선다고 현재의 북남 관계의 틀이 크게 변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 임기 내에 나아갈 수 있는 데까지 가야 한다. 남쪽이 발목을 잡는다면 시간이 허비될 것이다.

정상회담에서 많은 것을 얻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선 이후의 상황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지금 하는 것이 나을 수 있다. 남쪽이 의지만 있다면 남은 몇 개월 동안 북남 관계에서 많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다. 그것이 대선 결과에 영향을 미치면 좋고, 아니면 최소한 다음 정권이 틀을 바꾸지 못할 정도로 앞으로 나아가면 된다.

김정일 위원장은 협상 해볼 만한 상대

김정일 위원장의 생각을 읽어보았다. 필자도 참여했던 2005년 6·17 면담 당시를 떠올려보면, 김정일 위원장은 협상을 해볼 만한 상대다. 중대 제안과 같이 처음 들어보는 제안은 실무적으로 검토해보겠다고 신중한 반응을 보였고, 금강산 관광과 이산가족 화상 상봉과 같은 문제들은 파격적으로 그 자리에서 결정했다. 6자회담에 나와야 한다는 우리 쪽의 거듭된 설득에 대해서는 처음에는 실무자들 의견 때문에 어렵다고 했다. 그러나 결국 받아들였다. 협상이란 주고받기다. 얻고 싶으면 주어야 한다. 물론 주고받기의 결과는 유리할수록 좋다. 그러려면 설득의 논리를 고민해야 한다. 2차 정상회담이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중요한 일보를 딛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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