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군축센터 파병 2007-06-25   1706

전쟁없는 세상은 ‘거북이가 나는 것’처럼 불가능한 꿈일까

[후기] 영화로 보는 전쟁과 평화(3) – ‘거북이도 난다’

지뢰밭 한가운데 어린 아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를 지뢰밭에서 구하기 위해 조심스럽게 다가서는 한 소년이 있습니다. 지뢰가 무엇인지 알 턱이 없는 아기는 이리저리 움직이고 결국 지뢰를 건드리는데 그 순간 소년은 아이를 구하기 위해 몸을 던집니다.

이것은 얼마 전 ‘경계를 넘어’와 ‘참여연대’에서 상영해 준 “거북이도 난다”라는 영화의 한

장면입니다.

이 영화는 이라크 전쟁이 발발할 즈음 이라크 국경의 쿠르드족 마을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앞에서 아이를 구하기 위해 몸을 던진 소년의 이름은 위성입니다. 그는 마을에서는 매우 중요한 존재입니다. 위성은 전쟁에 관한 뉴스를 볼 수 있도록 위성안테나를 사와 다는 일에서 부터 뉴스를 보고 통역해주는 일과 동네아이들에게 일거리를 알선해주는 등 많은 일을 일사분란하게 처리합니다.

그런 ‘위성’도 사랑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듯합니다. 위성은 전쟁으로 부모를 잃고, 두 팔을 잃은 오빠와 군인들에게 추행을 당해 낳은 아이와 살아가는 소녀를 좋아하게 된 것입니다. 소녀는 자신의 몸으로 낳은 아들임에도 부모를 죽인 원수의 아들이라는 사실에 괴로워하며, 자신의 아기를 죽일 생각만 합니다. 소녀는 ‘위성’의 정성에도 마음을 열지 않고, 결국 자신의 아들의 발을 돌에 묶어 빨간 금붕어가 산다는 연못에 밀어 넣은 후 자신은 절벽에서 신발만을 남긴 채 뛰어내리게 됩니다.

많은 경우에 진실은 우리의 마음을 불편하게 합니다. 특히 인정하고 싶지 않은 진실은 그런 불편을 더욱 가중시킵니다. 그런데 이 영화가 제 마음을 더욱 불편하게 만든 건 이러한 불편한 상황들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돈을 벌기 위해 지뢰를 캐는 장면에서도 양팔이 없는 소년이 입으로 지뢰를 캐는 장면에서도 별 다른 긴장감을 조성하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의 표정 역시 긴장이라든지 두려움을 엿볼 수가 없었습니다. 보통의 영화에서라면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그런 장면이 되었을 법도 한데 말이죠.

그런 위험천만한 상황이 그들에게는 일상이기에 그렇게 표현했을 수도 있다는 추측을 해 볼 수 있었고, 우리가 이렇게 안락한 생활을 누리는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오늘 하루도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외줄타기를 하듯 아슬아슬한 생활을 하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사실들을 아예 모르거나 잊고 살아가는데 말이죠.

얼마 전 아는 분이 이런 질문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몸의 중심이 어디냐?’ 그 분께서는 ‘아픈 곳’이 몸의 중심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아픈 곳이 있으면 온 신경이 그 쪽에 쏠리니 과연 틀린 말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그렇다면 세상의 중심은 어디냐?’라는 질문을 하셨습니다. 아픈 곳이 우리 몸의 중심이 라면, 전쟁과 가난, 굶주림, 질병 등으로 고통 받는 곳이 바로 우리가 사는 세상의 중심이 되어야 하지 않겠냐는 말씀이셨죠.

앞에서 말했듯, 살아 있는 생명체는 자신의 아픈 부위를 어루만지고 치료하려 애씁니다. 죽어서는 불가능하죠. 만약 우리 인류사회도 하나의 공동체로 본다면 그 아픔에 반응을 보이고 어루만지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제 자신을 되돌아보니 제 몸이야 그렇다 쳐도 제 마음 또한 항상 ‘세상의 중심’에서 멀어져 있었습니다. TV나 신문에서 전쟁, 기근, 질병으로 죽어가는 이들의 기사가 나와도 그저 무심히 지나칠 뿐이었습니다. 단 1초도 그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진지하게 고민해본적도 거의 없었던 듯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다른 이의 아픔에 대해 무관심해 질수록 우리 인류사회도 서서히 죽어가는 것은 아닐까?’라는 두려운 생각이 들더군요.

그렇지만 우리는 아직 죽지 않았고, 이러한 아픔들을 치유하기 위해 언제나 관심을 가지고 노력하는 분들이 전 세계 곳곳에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 아픔들을 완치하는 것이 ‘거북이가 나는 것’과 같이 불가능해 보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불가능해 보이는 꿈이 현실이 되기를 기원하며 오늘도 부지런히 날개짓하고 계신 모든 분들께 박수를 드립니다.

채일연(원불교 인권위원회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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