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국의 핵무기 보유 여부는 미국이 결정한다”? (프레시안, 2005. 8. 11)

(출처: 프레시안)

지난해, 파키스탄의 최고 핵과학자 압둘 카디르 칸이 이란과 북한 등 이른바 ‘악의 축’ 국가들에게 비밀리에 핵폭탄 제조기술을 팔았다는 뉴스가 전해지자 전세계의 지도자들은 숨을 죽이고 부시 대통령이 어떤 식으로 무샤라프 파키스탄 대통령을 징벌할 것인지 지켜봤다.

어쨌거나 부시 대통령은 재임기간 내내 대량살상무기를 감추고 있는 국가와 독재자들을 징벌하겠노라고, 특히 깡패국가들에게 핵기술을 제공하는 개인이나 대량살상무기를 가진 테러리스트들에게는 더욱 가혹한 징계를 내리겠노라고 엄포를 놓아 왔기 때문이었다. 파키스탄과 무샤라프는 부시의 징벌을 받기에 딱 알맞은 대상이었다.

부시와 체니 부통령, 그리고 미 행정부의 고위관리들은 파키스탄의 최고 핵과학자 압둘 카디르 칸이 자그마치 15년 동안이나 깡패국가들에게 핵기술과 장비를 제공해 왔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따라서 칸의 핵기술 판매 행각을 알고 난 이후 부시가 파키스탄에 솜방망이 징계를 했다는 것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어쨌거나 그것이 부시의 대응이었는데 사실 이는 체니의 (범죄적) 행각을 은폐하기 위한 것이었다. 체니는 파키스탄의 핵확산 행위를 10년 이상 알고 있으면서도 이를 막기 위한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던 것이다.

9.11테러 때와 마찬가지로 부시 행정부는 파키스탄이 미국의 적대국가들에게 -이라크보다도 훨씬 위협적인- 핵기술과 장비를 팔고 있다는 산더미 같은 증거들에도 불구하고 이를 방관하고 묵인했다.

칸이 국제 암시장에 핵기술을 내다 팔기 시작한 1989년 미 국방부를 위해 일하는 젊은 분석가 리차드 발로우(Richard Barlow)는 당시 국방부 장관이었던 체니에게 충격적인 내용의 보고서를 제출했다. 파키스탄이 핵폭탄을 제조했으며 미국이 테러지원국가로 지정한 국가들에게 핵장비들을 판매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진보적 시사잡지 <마더 존스(Mother Jones)> 2002년 1월호가 보도했던 것처럼 발로우의 보고서는 “정치적으로 불편한” 것이었다. <마더 존스>는 이렇게 보도했다.

“파키스탄이 핵폭탄을 갖고 있다는 정보가 사실이라면 미 의회는 파키스탄에 대한 각종 지원의 중단을 결정할 것이다. 그런데 파키스탄은 아프간의 친소련 정부와 맞서 싸우는 아프간 반군을 지원하고 있는 미 중앙정보국(CIA)의 노력에 핵심적인 동맹국이다. 게다가 14억 달러에 이르는 대(對) 파키스탄 F-16 전투기 판매도 무산될 것이다.”

파키스탄에 대한 미 전투기 판매를 간절히 원했던 체니는 발로우의 보고서를 묵살했다. 몇 달 후 미 의회에서 증언에 나서게 된 한 국방부 관리는 체니 장관으로부터 파키스탄의 핵 능력을 축소 보고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에 대해 발로우는 자신의 상관에게 불만을 털어놓았고 그는 해고당했다.

<마더 존스>의 보도에 따르면 “3년 후인 1992년 파키스탄의 한 고위관리는 파키스탄이 이미 1987년에 핵폭탄을 제조할 능력을 확보했다고 인정했고” “1998년 최초의 핵실험을 단행했다.”

<마더 존스>의 폭로는 이어진다. 발로우가 파키스탄의 핵개발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을 즈음, 에너지부의 분석가 브라이언 시버트(Bryan Siebert)는 이라크 사담 후세인의 핵개발에 대한 분석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의 결론은 “이라크가 핵무기 개발을 위한 본격적 노력을 하고 있으며” 따라서 국가안보회의는 이라크의 핵개발 노력에 대해 보다 심층적인 조사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역시 부시(아버지 부시) 행정부는 묵살했다. 당시 미국은 이라크를 회교국가인 이란에 대한 대항세력으로 간주하고 지원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발로우는 이렇게 말했다.

“그것은 정보의 실패가 아니었다. 정보 수집과 분석은 제대로 작동되고 있었다.”

체니는 파키스탄의 핵무기 실상을 은폐하기 위해 갖은 수를 다 썼다. 탐사보도전문기자 세이무어 허시(Seymour Hersh)는 주간지 <뉴요커> 1993년 3월 29일자에 실린 기사에서 발로우의 말을 인용, CIA와 국방부의 일부 고위관리들이 파키스탄의 핵능력에 관해 의회에서 거짓증언을 했으며 이는 파키스탄에 대한 F-16 전투기 판매를 성사시키기 위해서였다고 보도했다. 이 전투기는 비밀리에 핵무기 장착 설비까지 갖추고 있었다. 당시 CIA 부국장 리차드 커(Richard Kerr)는 파키스탄의 핵능력이 이미 1990년 봄에 너무나 발전해 있어서 파키스탄 핵무기에 의한 위협이 1960년대 쿠바 미사일 위기 때보다도 더 컸다고 말했다.

커는 허시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파키스탄의 핵무기는) 내가 미 행정부에서 일하기 시작한 이래 가장 위험한 핵 위기”였으며 “핵전쟁을 할 수도 있는 지경에 이르렀다. 쿠바 미사일 위기 때보다도 훨씬 위험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89년 체니와 국방부 및 CIA의 일부 관리들은 파키스탄 핵능력의 실상을 의회로부터 은폐했다. 허시 기자는 체니 등의 은폐 시도에 대해 “레이건 행정부가 매우 적극적으로 파키스탄의 핵개발을 도운 것”과 관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레이건 대통령과 그의 안보보좌관들은 파키스탄의 군부실력자들을 아프간의 소련군을 축출하기 위한 미국의 대리전을 돕는 충성스런 동맹세력으로 간주했다. 파키스탄의 핵무기 개발을 막는 것보다는 아프간에서 소련군을 몰아내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레이건 행정부는 파키스탄의 핵개발을 막기는커녕 80년대 중반 내내 파키스탄이 수백만 달러를 들여 미국으로부터 수출이 금지된 첨단 자재들을 구입하는 것을 모른 체했다.”

“파키스탄이 미국으로부터 핵무기 관련 기술과 자재들을 사들이고 있다는 사실을 은폐한 미 정부의 능력은 대단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1989년 이후) 국무부와 CIA, 그리고 (체니 휘하의) 국방부는 온갖 수단을 동원해 전 CIA 정보분석관 리차드 발로우가 작성한 파키스탄의 불법적 핵기술 습득행위에 대한 내부보고가 외부로 새나가지 않도록 했기 때문이다. 발로우는 국무부 등 미 정부기구들이 파키스탄의 핵기술 구매 행위와 관련해 상습적으로 거짓말을 했으며 의회를 오도했다고 결론내렸다.”

1990년대 중반의 상황에 대한 허시 기자의 이같은 묘사는 기묘하게도 오늘날 부시 행정부의 대외정책 행태를 연상시킨다.

허시는 1993년 <뉴요커>의 이 기사를 위해 수십명의 정보 및 행정부 관리들을 인터뷰했는데 이들 중 대다수가 발로우의 주장을 확인해줬다. 파키스탄의 핵기술 습득 실상이 체니 등에 의해 미 의회로부터 은폐됐으며 이는 아프간전쟁 수행에 악영향을 미칠지도 모를 대(對)파키스탄 군사.경제지원의 중단을 막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원문 보기: ‘Cheney + Pakistan = Iran’ by Jason Leopold

http://www.commondreams.org/views05/0809-24.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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