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군축센터 파병 2003-10-23   585

<파병반대의 논리> 우리는 이유없는 죽음에 직면하고 있다.

각계전문가와 세계지성이 말하는 이라크 파병반대의 논리

지난 6개월간 내가 참여해 온 일은 근대 역사상 가장 추악한 거짓이었다고 나는 믿는다. ‘이라크 자유작전(Operation Iraqi Freedom)’이 그것이다. 2001년 9월 11일의 끔찍한 사건 후에, 그리고 아프간전쟁을 거쳐 이라크 침략을 위한 정지작업이 이루어졌다.

‘이라크 자유작전’의 시작과 함께 전세계가 목격해야 할 가공할 무력행사를 묘사하기 위해 ‘충격과 공포’라는 말이 사용됐다. 이 말은 미국과 영국의 첨단무기들에서 뿜어나오는 힘의 과시를 지칭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라크 침략에 참여하기 위해 준비해 왔던 병사의 일원으로서 ‘충격과 공포’라는 말은 나의 가슴 속에도 깊이 새겨졌다. 우리가 이라크를 향해 출진하는 순간까지도 이 두 강대국은 다른 나라들에게는 복종하기를 요구했던 국제법을 스스로 위반하려 하고 있었다. 유엔의 동의도 없이, 자국민들의 호소도 무시한 채, 미국과 영국은 이라크를 침공한 것이다.

‘충격과 공포’, 이 말은 이라크로 출진하면서 내가 가슴 속 깊이 느꼈던 정서적 충격을 정확하게 묘사하는 말이다. 이 전쟁은 정의를 위한 것이 아닌, 위선적 행동이었던 것이다.

전쟁의 첫 번째 총성이 울리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이른바 해방과 자유를 위한 이번 전쟁에서는 위선이 판을 쳤다.

아랍의 TV방송들이 생포되거나 전사한 미군 병사들의 모습을 방영하자 미국과 영국의 지도자들은 그토록 참혹한 모습을 방영한 이들 방송들을 맹렬하게 비난하면서 복수를 다짐했다. 그러나 사담 후세인의 두 아들이 사살된 지 수 시간만에 미 정부는 그 끔찍한 모습을 공개, 전세계 시청자들이 볼 수 있게 했다. “나는 ‘바담 풍’ 해도 너는 ‘바람 풍’ 하라”는 얘기나 다름없다.

이라크에서 복무하는 우리 미군들은 이라크 국민들을 돕는 것이 우리의 임무라고 들었다. 인도적 지원과 함께 군사적 도움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린 두 아이를 치료하기 위해 미군부대를 찾은 이라크 어머니들에 관한 최근 <성조지>(미 육군 기관지) 기사 어디에서 인도주의를 찾을 수 있는지 나에게 말해 달라.

이 아이들은 길거리에서 주운 폭발물을 가지고 놀다가 심한 화상을 입었다. <성조지> 기사에 따르면 화상을 입은 아이들과 어머니들은 미군부대에서 한 시간을 기다렸지만 미 군의관은 치료를 거부했다. 한 미군 병사는 이 일에 대해 자신이 목격한 미군의 수많은 ‘잔학행위’ 중의 하나라고 말했다.

다행히, 나 자신은 이러한 잔학행위를 직접 목격한 적은 없다. 그러나 나 자신이나 대부분이 인정하다시피 이라크전쟁 자체가 거대한 잔학행위이다.

도대체 이라크에서 우리의 목적은 무엇인가? 우리가 수없이 들어왔던 것처럼 대량살상무기의 제거가 이번 침략의 목표였단 말인가? 그렇다면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는 도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후세인 정권이 오사마 빈 라덴과 긴밀히 연계돼 있기 때문에 후세인 정권을 축출하기 위해 이라크를 침략했단 말인가? 그렇다면 과연 연계의 증거는 있는가?

우리의 경제적 이익이 침략의 진짜 목표는 아니었던가? 이라크 석유는 세계에서 가장 값싼 비용으로 채굴, 정제될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이번 전쟁은 현대판 십자군전쟁인 것처럼 생각된다. 정복과 지배를 꿈꾸는 사악한 지도자를 축출하고 억압받는 국민들을 해방시키기 위한 십자군전쟁이 아니라 다른 나라의 천연자원을 장악하기 위한 십자군전쟁 말이다. 적어도 내게는 석유가 이라크 점령의 진짜 이유인 것처럼 보인다.

단 하나, 분명한 진실이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미국인이 목숨을 잃고 있다는 것이다. 이라크 주둔 미군 병사를 향해 매일 10-14건의 공격이 감행되고 있다. 매일 전사자 숫자가 늘어가면서 이 상황이 조만간 종결될 가능성은 보이지 않는다.

한때 나는 ‘미 합중국의 헌법을 수호한다’는 대의를 위해 군에 복무하고 있다고 믿었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이를 믿을 수 없다. 나는 신념도, 결의도 모두 잃어버렸다. 내가 더 이상 군에 있어야 할 정당성을 찾을 수가 없다. 모두가 절반쯤만 진실이거나 아니면 새빨간 거짓말이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 지혜가 찾아온다고 했다. 36살인 나는 더 이상 저들이 말하는 바를 아무런 의문도 없이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지난 해 11월 켄터키주의 포트 캠벨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이라크 파병에 관한 얘기가 들려왔다. 그리고 이러한 소문이 사실로 드러나면서 나의 심장은 내려앉았고, 의문은 더욱 커갔다. 그 의문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의문은 신념과 결의로 굳어갔다.

이곳에서의 나의 복무 시한은 거의 끝났다. 나와 함께 온 많은 전우들의 복무시한도 끝나가고 있다. 우리들 모두는 이라크에서 아무런 근거도 정당성도 없이 죽음에 직면해 있다. 도대체 얼마나 더 죽어야 한단 말인가? 미국인들이 깨어나 지도자들의 이익이 아닌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이라크에 있는 우리 아들딸들을 미국으로 귀환시키라고 요구할 때까지 얼마나 더 많은 눈물을 흘려야 한단 말인가?

이 기사는 인터넷신문 프레시안 2003년 9월 22일자 기사입니다. (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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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프레드모어 (이라크 주둔 미 육군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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