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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라크
  • 2003.03.28
  • 355

노무현 대통령에게 던지는 이해영 교수의 직격탄



한신대 국제관계학과 이해영 교수가 노무현정부와 외교안보팀에 던지는 쓴소리를 보내왔다. 국익을 위해 이라크전 파병결정을 내린 노무현정부의 판단은 결국 노무현의 자기권력기반마저 파탄시키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무엇보다 왜 우리 국민이 미국에 조공을 바쳐가며 피를 흘려야하는지 그 납득할 수 없는 이유에 대해 노무현정부는 답해야 할 것이라고 일갈했다. 편집자 주



처음, 미국에 할 말은 하겠다고 하고, 북미가 싸우면 남한이 “중재”를 하겠다고 했을 때 그리고 “수평적” 한미관계를 말하고 혹은 한미관계를 재검토하겠다고 했을 때 노 대통령은 많은 이를 감동시켰다. 나는 이것을 하나의 시대정신으로 받아들였다.

예를 들어 전혀 민주적이지는 않았지만 80년대에 전두환의 ‘평화적 정권교체론’도 나름의 시대정신을 표현한 것이었고, YS정권의 군부숙정, DJ정권의 햇볕정책 등도 거역할 수 없는 도도한 시대의 흐름을 받아들인 것이기에 그것 자체로 국민다수의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 정치적 평가를 넘어 나름의 역사적 평가를 기다려 봄직하다.

그런 차원에서 수평적 한미관계론 역시 노무현정권이 역사적으로 평가받을 만한 그런 아젠다였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그가 제시한 이 총론을 그의 외교안보팀이 어떻게 각론으로 다듬어 갈 것인지 애정과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쪽이었다.

그러나 취임 후 겨우 한 달, 새 정부의 이라크파병 결정을 보면서 과연 노무현 대통령의 외교철학 내지 독트린은 무엇이며 아니 그런 것이 있기라도 한 것인가, 나아가 그의 외교안보팀은 과연 이것을 수행할 의지와 준비가 되어 있는가 아니 도대체 이들과 노 대통령이 이른바 ‘코드’가 맞는가, 아주 피하기 어려운 회의를 갖게 되었다.

파병결정은 ‘전략적이고 현실적인 선택’이고, 파병을 통해 향후 미국에 대해 우리가 발언권을 높일 수 있을 것이며, 파병이 우리의 ‘국익’을 위한 선택이었다고 하는 것이 노 대통령과 그 주변에서 흘러나오는 말이었다. 그래서 파병은 현실론, 국익론으로 포장되고, 파병반대론은 명분론이요, 도덕론으로 치부되었다.

노 대통령이 실패하면 그 다음 기다리고 있는 것은 ‘테르미도르의 반동’일지 모른다는 ‘불온한’ 예감을 평소 갖고 있었기에 파병을 둘러싼 갈등을 지켜보면서, 나는 이것이 단순히 예감이 아닌 현실일 수 있다는 불길함에 사로 잡혔다. 파병결정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은 단순히 일회적인 것이 아니라 구조적인 것일 수 있고, 수평적 한미관계론, 중재론이 물 건너가고 있다는 판단은 지금까지 상황을 돌이켜 볼 때 더욱 굳어진다.

한미공조론 앞에서 무릎꿇은 남북공조론

첫째, 파병결정 과정상의 문제이다. 노 대통령의 새로운 외교패러다임은 한편으로 종속적 대미관계를 정리하고, 다른 한편으로 DJ식 햇볕정책의 비밀주의적, 정략주의적 한계를 넘어선 저편에서 비로소 가능성이 주어진다는 것이 나의 판단이다. 그것은 또한 종속적 한미공조론과 ‘퍼주기식’ 남북공조론 모두를 넘어서는 전망을 제시할 때 비로소 구체화된다.



그러나 지금 당장 그 모든 것을 바라진 않는다. 그렇지만 보수적 한미공조론은 미국의 대대적 압력, 조중동의 한미공조 물량공세, 외교테크노크라트의 은밀한 대응을 통해 단 한 달 새에 대통령을 포위, 남북공조론을 밀어내고 청와대를 재점령해 버렸다. 그렇게 한미공조론에 대해 남북공조론은 진정 대꾸 한번 못하고 무릎을 꿇어 버린 것이 아닌가.

한미공조론의 압도는 북한 강경파의 입지만 강화시켜, 중재론의 입지를 스스로 부정하는 결과만 초래할 뿐이다. 우리는 파병결정과정에서 정책결정자들 간에 그 무슨 ‘토론’이 있었는지, 누가 무슨 입장을 대변했는지 알 수 없다. 어느 날 대통령의 지근 보좌관이 ‘십자가’를 매겠다는 선언만을 들었을 뿐이다. 외통부와 국방부의 관련자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부시의 연설을 암송하면서 미국의 개전논리 그 모범답안을 재방송하고 있을 뿐이다.

이라크가 지난 12년간 유엔결의를 몇 번 위반했고, 유엔결의 678, 687, 1441... 대량살상무기, 대테러전, 이라크 민주화... 개전 직전 부시의 라디오 연설문을 그대로 외우고 있지 않은가. 그 절정은 오늘 한국의 유엔대사가 유엔에서 한 미국지지 연설이었다.

전범국가 4위로 등재될 판국

둘째, '노무현 식'이라 함은 원칙과 상식을 존중하고, 국민여론에 항상 깨어 있으며 또 그것을 존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도 이번의 파병결정은 민의수렴은 고사하고 그 흔한 여론조사 한 번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졸속으로 또 조급하게 이루어졌다.

그만큼 미국의 압력이 심각했다고 치자. 그렇다면 공론화, 공청회, 국민투표까지도 고려하는 민의 수렴의 민주적 절차를 밟았다면, 그 압력을 국민의 힘으로 막아내고, 지금의 정치적 위기를 정치적 기회로 뒤바꿀 수많은 시간을 벌 수 있지 않았을까. 오히려 그것이 ‘당당한 외교’ 아닌가. 밀실에서 코드가 의심스러운 외교테크노크라트에 설득 당해 스스로 국민적 기반을 잠식하는 것보다 이 코스가 훨씬 노무현답고 또 당당하지 않았는가.

셋째, 파병의 수준과 규모이다. 처음 500명설이 제기되면서 심지어 야권에서는 전투병 파병설까지 흘리다가 반전여론의 된서리 탓인지 이제는 공병, 의무병 700명을 파병한다고 말한다. 세계사에 전범국가 4위로 등재될 판국이다. 여기에 향후 있을 전쟁 분담금 요구도 함께 감안한다면 한미동맹의 ‘정신’에 - 조약이 아니라- 따라 그 ‘의무’를 충실히 이행한 것이 된다.

우선 알려진 바로는 그 분담금 요구도 천문학적 규모가 될 전망이다. 걸프전 당시의 5억 달러를 훨씬 넘어 20억 달러(약 2조4천억 원) 규모가 될 전망인데, 우리 한 해 예산의 약 2%, 국민 일인당 5만4천 원 정도라고 한다.

다시 말해 우리 모두 영문도 모른 채 미국에 5만4천 원을 ‘조공’으로 바치는 셈이 된다. 전후 복구사업에 참여할 경우 경제적 실익이 기대된다고 청와대측은 말한다. 그러나 백보를 양보해 20억 달러 투자해서 원금이라도 회수하려면 최소 200억 달러이상을 전후 복구사업에서 수주해야 한다.

과거 걸프전과 아프간전쟁에서 우리 기업의 수주율이 각각 0.25%, 0% 였다고 할 때, 이라크 전후 복구사업의 경우 10년에 걸쳐 500억∼3000억 달러가 소요될 전망이고 이 때 많게는 40%에서 적게는 10%을 한국 기업이 수주해야 하는데 이는 사실상 망상에 가깝다. 다시 말해 이른바 경제논리로 본다 하더라도 전혀 실익이 없다는 말이다.

남의 피로 얻으려는 평화

이 구차스러운 경제실익론이 근거가 없다고 할 때, 파병의 규모와 수준도 전혀 현실적이지 않다. 스페인의 경우를 보자. 알려진 것처럼 스페인수상은 부시, 블레어와 더불어 개전국으로 사진도 찍고 국제적으로 모양도 낸 바 있다.

그러나 스페인은 자국내 미군기지 사용을 허가했을 뿐 단 한 명의 병력도 파병하지 않았다. 이는 부시의 유럽 내 후원세력인 이탈리아도 마찬가지이다. 미국 측 선전에 따르면 45개국 가량이 전쟁 지지를 했다고 하지만 대부분은 억지 춘향격의 ‘강요된 동맹’이지 전혀 ‘자발적 동맹’이 아니다.

국가위상에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파병의 수준과 규모는 도대체 어디서, 누구로부터 나온 발상인가. 국제사정에 무지한 탓인가 아니면 미국의 직접적 요구 때문인가. 덧붙여 파병은 아랍권 국민전체를 적으로 돌리는 외교적 우를 범하는 것이며, 우리 국민을 테러의 대상으로 만들 따름이다.

넷째,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론이다. 이라크전후 북한차례가 되었을 때, 그 때 파병의 대가로 발언권을 높여 우리가 주도적으로 문제를 풀어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이다. 사실 이 막연한 기대, 이 전혀 검증되지 않은 가설적 상황이야말로 파병론의 가장 강력한 근거이자, 또 노무현 대통령이 그래도 버티는 근거이기도 하다.

그러나 역으로 바로 이 부분이야말로 파병론이 전혀 비현실적이며, 심지어 위험하기까지 한 이유가 된다. 우리는 부시와 노 대통령 사이의 전화통화 시, 아니 그 이전에 미국과의 실무접촉 시 어떤 실질적 보장과 확약이 있었는지 알지 못한다.

여기서 ‘남의 피로 얻은 평화’라는 도덕적 비판은 잠시 접어두자. 만일 실질적 보장이 있었다면 소위 국익론의 현실적 근거가 됨은 부인하지 않겠다. 그러나 없었다면, 그것은 참으로 중대사안이 된다. 그리고 여기서 또 한 가지 중요한 대목이 있다. 미국이 말하는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우리가 기대하는 ‘평화적’ 해결은 전혀 다른 의미라는 것이다.

미국이 말하는 평화적 해결은 미국 내 보수강경파들이 선호하는 김정일정권의 압박, 와해 즉 이번 이라크전의 목표이기도 한 ‘정권교체(regime change)’를 위한 공세적 봉쇄전략을 의미하는 것이고, 이는 현재 부시의 대북정책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라는 점을 감안하면, 미국으로서는 아무런 입장 변화없이 얼마든지 수용할 수 있는 안이라는 것이다.

북한과 이라크에 대한 미국의 목표는 정권교체로 동일하지만, 단지 양국이 처해있는 조건이 다르고 특히 중요한 것으로 북한군의 군사력은 이라크와 비교할 수준이 아니다. 사정이 그렇다면 부시로서는 동일한 목표를 추구하지만 다른 수단 즉 전통적 봉쇄, 고사, 전복 전략을 얼마든지 ‘평화적으로’ 구사할 수 있고, 또 이것이 현실적으로 선택 가능한 전략적 옵션이 됨은 당연한 일이다.

파병 이후 노무현의 권력기반 와해현상 올 것

국제관계가 기본적으로 힘의 관계에 기초한 힘의 질서라는 것은 부인하지 않는다. 또 그것이 소위 ‘신뢰’니 ‘약속’ 따위에 기초해서 작동되지 않음도 상식이다. 그렇다면 과연 노 대통령과 그 외교안보팀은 미국으로부터 어떤 구속력 있는 보장을 받았고, 이행을 강제할 어떤 수단을 갖고 있는가. 만일 그렇지 않고 아주 막연히 ‘이번에 우리가 도와줬으니’식의 접근이라면 그것은 외교를 파탄 내고, 나아가 권력기반을 위태롭게 할 뿐이다.

다섯째, 원칙과 소신, 강력한 도덕성이야말로 노 대통령의 정치자산임은 익히 알려진 바다. 또 내외에 구축된 인권 대통령의 이미지도 여기에 당연 포함된다.

그러나 파병론의 치명적 약점은 도덕적 정당성의 결여와 그 위법성, 위헌성에 있다. 그래서 이 부분에 대해 대통령이 애써 함구하고, 외교안보팀이 파병이 ‘현실적’ 선택임을 강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렇지만 여기에는 간과할 수 없는 현실적 문제가 있다.

두루 아는 것처럼 노 정권은 ‘이중의 소수파’ 정권이 아닌가. 원내에서 소수이자, 집권당내에서도 소수이다. 그래서 도덕성을 고리로 시민사회의 암묵적 동의와 지지 하에 권력의 동력을 재생산해내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권력형태의 경우 도덕성이 해체될 때, 급속도로 정치적 위기가 찾아오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이번 파병안이 국회를 통과되더라도 그것은 노정권의 정치적 승리가 아니라 정치적 실패가 된다.

반전운동도 필요하다는 식의 조중동식 여유와 초당적 협력을 외치는 보수야당의 느긋함도 바로 이로부터 연유된다. 파병안이 통과될 경우 노 대통령은 자기 권력기반의 대폭 축소 나아가 와해까지도 감수해야할 상황이 올지 모른다.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파병안은 분명 노무현식이 아니다. 그의 정치철학과도 배치된다. 물론 1차적 책임은 노무현식 코드와 맞지 않은 외교안보팀에게 있다. 그러나 최종적, 정치적 책임은 노 대통령 자신에 귀속된다. 임박한 노무현 리더십의 위기, 과연 한국의 시민사회는 새로운 비극에 준비되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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