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군축센터 한반도 평화 2003-07-01   1485

식량난 이후 극심한 생존경쟁 시달리는 북한 주민들

<특별기고> “벼뿌리 먹으며 배곯아본 적 있나요?”

북한 식량난 이후 300만이 목숨을 잃었다. 아사와 영양실조로, 비위생적 환경에서 전염병으로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갖은 방법으로 목숨을 이어가던 사람들도 최후의 순간에 내몰리면서 정치범이 될 각오로 중국 땅을 넘는다.

유엔인권위원회에서 북한인권 결의안을 채택하고 한국정부가 표결에 불참한 일을 계기로 북한인권 문제에 대한 논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북한인권에 대한 자료는 제한적이어서 진실성을 파악하는데 어려움이 있고, 시시각각 변하는 국제정세는 한반도의 평화를 끊임없이 위협하고 있다. 이러한 정세 속에서 북한인권운동은 어떠해야 할까.

아사와 영양실조, 전염병

식량난 이후 북한은 약육강식의 생존 경쟁 사회로 빠져든다. 배급소에서 쌀이 떨어진 지 오래고 양식이란 장마당에서 몰래몰래 파는 것 밖에 없다. 생존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은 다 하게 된다. 옥수수밥에서 국수로, 국수에서 풀죽으로, 풀죽에서 송기떡과 소나무 껍질로…. 벼뿌리와 석탄가루까지 먹어가며 배고픔과 싸운다. 장사, 산비탈 뙈기밭 경작, 협동농장 곡식 도둑질, 직장의 기계 부속품 뜯어 중국과 밀수, 대낮 강도질, 부녀자 인신매매까지 아사 위기에 내몰리면서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는 온갖 불법적인 행위도 서슴지 않게 된다.


▲ 탈북 청소년들. 추위와 배고픔에 국경을 넘는 아이들은 땔감을 구하러 150리씩 걷기도 한다(사진제공:좋은벗들)

그러한 가운데 식량난 이후 300만이 목숨을 잃었다. 아사와 영양실조로, 비위생적 환경에서 전염병으로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갖은 방법으로 목숨을 이어가던 사람들도 최후의 순간에 내몰리면서 정치범이 될 각오로 중국 땅을 넘는다. 99년 당시 중국에 거주하는 탈북자의 수는 30만을 헤아렸다. 이런 혼란스러움을 막기 위해 북한정부는 통제를 강화하는 정책을 폈다. 산의 나무를 못 베게 하고 장사를 단속하고 길거리 방랑자를 단속하고 중국 도강을 정치적 반역 행위로 간주해 국경을 봉쇄하고 송환돼오는 탈북자를 강력하게 처벌했다. 이런 통제정책과 식량난은 국가 권력기관을 인민을 위해 봉사하는 기구가 아닌 인민을 수탈하는 억압 기구로 만들어 버렸다.

사회안전원(경찰)은 장마당에서 장사하는 사람에게 트집을 잡아 장사할 물건을 뺏어버리는 인민들의 도둑으로 변했다. 국경수비대는 도강하는 사람에게 뇌물을 받고 도강하기에 안전한 길을 알려주는 안내자가 되어 버렸다.

인간 이하의 삶을 살아가다 최후를 마치는 종신형 처벌 수단이 정치범 수용소인데 그것을 각오하고 중국 땅으로 가고자 할 때, 북한의 식량난이 일반 주민에게 미치는 파장은 실로 엄청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일반 주민들이 겪는 생활고의 수준이 정치범이 겪는 고통과 맞먹을 정도로 일상적인 삶의 질이 떨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북한 전역에서 인권 지수가 크게 저하됨을 의미한다.

▲ 중국 연변 국경제대에 있는 움막(사진제공: 좋은벗들)

식량이 없는데 기차가 잘 다니고 전기 공급이 잘 되고 병원이 잘 운영되고 학교 교육이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상수도 공급이 원활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가 아직 식량난의 실체를 잘 모르기 때문에 오는 착각이다. 기차로 5시간 갈 거리를 보름만에 가게 되고, 땔감을 구하러 150리씩 걸어다니고, 병원에서 맥주병에 소금물 링거 주사도 돈이 있어야 맞을 수 있고, 선생님이 장마당으로 출근하고 학생들이 장마당에서 방랑 생활을 하고, 물이 없어 냇물과 강물로 식수를 쓰고, 군인들이 총을 들고 협동 농장의 옥수수를 지키는 일, 감옥의 죄인이 고문도 아닌 영양실조와 전염병으로 죽어가는 일. 이 모든 현상을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있는 말은 바로 ‘식량난’인 것이다.

경제제재와 군사위협

이미 국내에 들어온 탈북자가 3000명을 훨씬 넘어섰다. 악명 높은 정치범수용소의 존재는 모든 탈북자가 공통적으로 증언하고 있고 인공위성 촬영사진까지 나온 마당에 아직까지 정치범 수용소의 존재에 대해 결론내리기를 주저해서야 되겠는가. 또 많은 탈북자들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정치범이 되어도 좋다고, 양식을 구하기 위해 죽음을 각오하고 두만강을 건넜다는데 정치범 수용소의 폐지에만 목소리를 높일 뿐, 그 이면의 식량난으로 겪는 고통스러운 절규에 대해서는 왜 침묵하는가?

북한의 인권문제가 정치적 자유를 구속하는 등 식량난 이전부터 존재했으나 식량난을 전후해서는 정치적 권리와 경제·사회·문화적 권리로 구분짓는 것이 무의미해졌다. 인간의 기본권도 생존을 위협받지 않는 가운데에서만 의미있기 때문이다. 북한인권문제의 원인을 한 가지로 단정하기는 쉽지 않다. 아니, 그 생각은 지극히 극단적이고 해결방법에 있어서는 위험하기까지 하다. 분명, 식량난 이전에도 존재했고 북한의 내부적 요인과 외부적 요인이 상승작용을 일으켜 지금의 상황으로 떨어졌다. 원인은 정권에게도 있고 외세에게도 있고 식량난 때문에 가중된 측면도 있다. 그러기에 인권 개선의 해법도 다양하게 동시적으로 적용돼야 한다.

정권이 바뀌거나 외세를 몰아내야 한다는 것은 정치적인 해석의 극단적인 표현이다. 정권을 바꾸기 위해 혁명을 해야 한다는 논리는 내정간섭이며 설령 그것이 불가피하더라도 북한 주민들이 결정할 몫이다. 내지는 정권교체와 인권개선을 위해 외부의 힘을 통한 전쟁이라도 감수해야 한다는 것만큼 반인권적인 방법은 없다. 이라크 전쟁이 주는 교훈은 인권개선은 가장 인권적인 방법으로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분배의 투명성을 북한정부는 최대한 보장하려고 애쓰되, 투명성이 선명하지 않다고 인도적 지원을 중단하는 것은 미국에 의한 경제제재의 논리와 다름 아니다.

또 외부의 지원이 일정 기간 북한 주민들의 생존권적 인권은 지켜주겠지만 결국 식량난은 북한정부 스스로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주민들이 외세의 식량에 의존해 살아가는 것만큼 북한의 자주성을 퇴색시키는 것이 없고, 그것만큼 정권 안정을 위협하는 요소도 없다.

▲ 뼈가 앙상한 탈북난민(사진제공: 좋은벗들)북한인권 문제의 최대 피해자는 북한주민이다. 그럼 가해자는 누구인가? 경제제재와 군사력으로 위협하는 미국과 국제사회이다. 한국전쟁의 피해의식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동족이 죽어가도 침묵으로 일관한 한국정부와 국민이다. 주민들이 식량난에 허덕이는데도 통제를 강화하고 체제 유지에 급급했던 북한정부이다.

북한인권의 해법은 북한주민들을 위해 이 모든 가해자가 뉘우치고 북한주민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도움을 주거나 정책을 바꾸는 길이다. 북한정부는 토지를 개혁해 생산성을 늘리고 외부자본과 기술을 도입하고 분배의 투명성을 높여 외부지원을 적극 유도하고 탈북자를 선처하고 정치범수용소를 해체하고 정치적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

미국과 일본 및 국제사회는 군사적 압박정책, 경제제재를 철회하고 인도적 지원을 통해 북한주민들의 생존권을 보장하면서 북한의 개혁, 개방을 이끌어야 한다.

한국정부는 대량의 인도적 지원을 지속해야 한다. 인권 결의안 채택에는 침묵할 수 있으나 인도적 지원에는 결코 침묵해서는 안 된다. 국내외 민간단체는 인도적 지원 호소와 함께 북한 정부에 인권 개선을 적극적으로 요구해야 한다. 북한인권 개선을 위해 정부가 할 수 있는 가장 의미있는 일이 대량 인도적 지원이라면 민간단체가 할 수 있는 일은 바로 북한주민의 요구를 대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이 글은 참여사회 2003년 7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이승용 (좋은벗들 북한인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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