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군축센터 파병 2003-07-10   797

평화의 증언을 위해 방한한 이라크 아줌마 수아드

한국의 반전평화팀원들이나 기자들은 그를 ‘엄마’라 불렀다. 이라크전쟁 때 통역가이드를 맡았던 그가 이들을 아들, 딸처럼 챙겨줬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이번엔 한국 딸들의 가이드를 받으며 한국에 왔다. 전쟁이 끝나면서 어느새 사람들의 머릿속에서조차 희미해져가고 있는 이라크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서다. 이라크 여성 수아드 알 카림. 10일 참여연대를 방문해 이라크 사람들이 다시 찾고 있는 평화와 희망을 전했다. 그의 이번 한국방문은 한국이라크평화팀의 일원으로 잘 알려진 평화운동가 임영신 씨의 제안으로 이뤄졌다.

“우리는 다시 시작하고 있다”

이날 자리에서는 수아드와 활동가들이 함께 영상물 <이라크, 전쟁의 얼굴>(강경란 연출)을 본 후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라크...>에서는 전후 이라크 전역에 버려진 무기 폭발로 인해 사상 당하고 있는 민간인들이 비춰졌다. 무덤이 되어가고 있는 병원, ‘NO Sadam! NO America!’를 외치는 사람들이 렌즈에 잡혔다.

“자기과시만 한다”는 CNN을 비롯해 “언론은 더 이상 믿지 않는다”고 잘라 말하는 수아드는 사람들이 절규하는 모습을 담은 <이라크..> 영상물에 대해서도 “진실의 전부가 아니다. 일부일뿐”이라고 냉정하게 지적했다. 현재 이라크 상황을 참담하게만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왜일까.

“기자들은 문제와 사고만 찾는다. 넉달 동안 그들과 동행했는데 소식(news)과 진실(truth)에 자기 생각을 담고 있었다. 전후 이라크에서 소수자들에 의해 벌어지고 있는 약탈이 이라크 모습의 전부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사람들은 이제 스스로 모여 학교의 문을 다시 열고 있다. 파괴되지 않은 공장도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노동자들, 학생들 모두가 다시 자신의 일을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보건부, 교육부, 석유자원부 등등 정부도 마찬가지다. 정상적인 모습을 되찾기 위해 우리는 다시 시작하고 있다. 하지만 언론은 우리의 이런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안 좋은 모습만 보여주려고 한다.”

그는 이라크의 새로운 시작이 ‘0’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미군의 한 대령이 그에게 말하더란다. “너희 나라는 쿠웨이트나, 다른 지역의 사람들과는 달라 보인다. 누군가 다시 너희 나라를 재건해주기를 기다리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너희 스스로 할 수 있을 테니까”라고. 그 역시 이라크가 “문명의 나라이고, 창조의 나라”라고 자부하고 있었다. 그가 새로운 시작에 대한 자신감을 갖고 있는 이유다.

“정치는 궁극적으로 모든 것을 파괴한다”

희망을 꿈꾸고 있는 그에게 전쟁의 기억을 묻는 것은 아픈 상처를 다시금 건드리는 일일 것이다. “전쟁은 그야말로 전쟁이다. 재앙만이 있을 뿐이다. 전후 전지역에 널부러진 무기와 폭탄들이 그대로 방치되었다. 위험경고나 수거활동은 없었다. 아이들 사고가 빈발했다. 한달 후에야 경고 방송이 나오고 상황이 통제되기 시작했다.”

사담 후세인 대통령 치하의 이라크에는 적어도 사회질서를 유지시켜온 법과 제도, 규칙이 있었기 때문에 전쟁직후 무법천지가 된 상황에서 속출하는 약탈행위는 이라크를 가장 불안하게 한 요소라고 수아드는 손꼽았다. “사람들을 지켜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체계도, 안전도 찾아볼 수 없다. 마치 감옥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같은 결과가 “궁극적으로 모든 것을 파괴해버리는 정치 탓”이라며 “잘못된 결정을 내린” 미국과 이라크 정부 모두에 책임을 물었다. 자국의 대통령인 사담에게도 “왜 이런 처참한 결과를 가져오게 했느냐”고 묻고싶다고 말했다. 다른 한편으론, 폭압적인 독재 아래에서도 이라크 사람들이 두려움 때문에 침묵했던 대가를 받고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평화적으로 대화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

수아드는 이라크와 미국은 평화적으로 대화하는 방법을 택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힘과 첨단 기술을 가졌지만 우리는 없다”. 힘의 차이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재앙을, 그런 결과를 가져오는 정치인들만이 아닌, 무고한 민간인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재앙을 초래하지 않기 위해서.

수아드는 54년 평생동안 이라크의 황금기와 고난기를 나란히 겪으며 살아왔다. 아버지는 아랍계고 어머니는 쿠르드족이었으며 이슬람 수니파인 자신과 달리 이혼한 남편은 시아파였다. 개인의 역사가 곧 이라크의 역사를 말해주는 셈. 그는 어머니와 세 딸 등 10여 명의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가장이기도 하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질문에 그의 대답은 간단하다. “먹고 살아야죠.(웃음)” 전후의 슬픔과 고통을 이야기할 때 얼굴에 내린 그림자는 이내 걷어지고 환한 웃음이 보였다. 현재 무역회사의 상무이사인 그는 앞으로 한국과도 활발한 교류를 할 예정이다. 남다른 애틋함이 생기는 한국에는 그와 도움을 주고받은 친구들이 있기 때문이다.

“인생은 계속됩니다. 햇빛도 계속 비추고, 꽃도 다시 피는 것처럼. 평화의 도시, 바그다드에서 여러분을 다시 만나고 싶습니다.” 그가 이날 남긴 마지막 인사였다.

(수아드는 23일 일본 와세다 대학 초청강연과 평화단체 방문을 위한 출국 전까지 한국에 머무는 동안, 평화 환경단체들을 방문할 예정이다. 19일에는 ‘나눔의 집’에 들러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과의 시간도 갖는다. 공식 인터뷰는 오는 12일(토) 늦은 4시 인사동 갤러리 편도나무에서 가질 예정이다.)

김선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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