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군축센터 파병 2003-03-20   903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내는 연속 공개서한(4) 이른바 예방전쟁론에 대한 한국정부의 지지는 자승자박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내는 연속 공개서한 -이라크전 파병은 왜 안되는가?(4)

원칙없는 ‘실리’외교의 대가는 한반도 위기 부메랑

노무현 대통령님께

어제 부시 행정부는 미국의 이라크 전을 지지·지원하는 30개국의 명단을 발표했습니다. 뉴욕타임스지가 외교실패의 절정이라고 혹평한 이 국가들의 명단에는 ‘대한민국’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이들 나라 중 전투병을 파견하는 나라는 미국, 영국, 호주, 단 세 나라에 불과하고 비전투병 파견국 역시 한국을 포함하여, 슬로바키아, 체코, 폴란드, 스페인 등 5개국에 불과합니다. 이쯤 되면 외교실패의 절정으로 평가되는 부시의 외교정책도 한국의 참전이라는 예상치 못한 성과물을 얻는데는 성공한 셈입니다.

당당한 외교를 외치던 새 정부의 대미외교는 이렇듯 극소수의 사실상 전범국가에 포함되는 것으로 그 첫발을 내디딘 모습이 되었습니다. 이 선택은 ‘국익’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설명되고 있습니다. 특히 한반도 평화를 보장받는 조건에서 이루어지는 실리외교라는 측면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라크 파병으로 한반도 평화를 보장받겠다는 의도 자체의 부도덕성과 비현실성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선 우리정부가 지원하겠다는 미국의 군사전략이 무엇인지 분명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현재 미국의 대이라크전은 부시의 ‘선제공격 안보독트린’을 그 근간으로 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불량국가들의 잠재적 위협을 예방하기 위해 미리 공격한다는 것으로 엄밀히 말해 방어적 의미를 함축한 전통적인 ‘선제공격’이라기보다는 ‘예방공격’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타당하다 하겠습니다.

부시의 이러한 공세적 안보독트린은 9.11 테러와 아프간 전쟁을 거치는 동안 구체화되었습니다. 부시 대통령은 2002년 3월 9.11테러 6개월 기념식에서 “테러와의 전쟁이 제 2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테러와의 전쟁은 앞으로 지구촌 전체의 테러네트워크가 완전히 무너질 때 끝이 날 것”이라고 천명하여 대테러전쟁을 일종의 영구전쟁화할 것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이즈음 미국정부는 본토방위 강화라는 명분으로 부시행정부 핵심각료들과 그들을 지원해온 군수업체들이 수십년간 추진해왔던 MD 구축을 기정사실화하고, 국방예산을 대폭 확대하는가 하면, 17만명 규모의 국토안보부를 신설하는 등 군비확장을 국가시스템화 하는 작업을 진행하게 됩니다.

한편, 부시는 2002년 연두교서를 통해 이라크, 이란, 북한을 악의 축으로 지명한 후, “이들 나라가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해 우리의 미래를 위협하게 놓아둘 수는 없다”고 밝힘으로써 2단계 테러와의 전쟁 대상국을 사실상 지목했습니다. 이들에 대한 처방은 같은 해 6월 웨스트포인트 졸업식에서 행한 부시의 연설을 한층 분명해 지는데 그것이 바로 선제공격론입니다.

부시는 “위협이 완전히 현실로 나타날 때까지 기다린다면 이는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며 전통적인 ‘억지전략’을 폐기하고 ‘선제공격권’ 개념을 도입한 것입니다. 게다가 그 뒤 의회에서 작성된 ‘핵태세보고서’는 불량국가들에 대한 핵선제공격까지 명시함으로써 핵무기를 억제수단 또는 전쟁종결수단이 아닌 전쟁수행수단으로 사용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세계 모든 나라들의 반대와 비난에도 불구하고 부시가 대이라크전을 강행하고 나아가 이라크에서의 핵무기 사용까지 배제하지 않고 있는 것은 부시가 추구해온 공격적 안보독트린과 세계전략을 염두에 둘 때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이라크가 테러를 직접 지원했다든가, 대량학살무기를 실제로 보유하거나 개발하고 있다거나 하는 구체적 증거도 전혀 제시하지 않은 채, 사담 후세인의 존재 자체가 잠재적 위협이라고 선언하고 자기 맘대로 ‘이라크자유작전’으로 명명하는 오만도 우연한 일은 아닙니다. MOAB폭탄, 열화우라늄탄’ ‘집속폭탄’ ‘e-폭탄’ 등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 살상을 포함하는 불법적 무기의 실험장으로 만드는 것 역시 이른바 ‘테러예방’ 전쟁의 필수 구성요소입니다.

주목할 것은 이러한 부시의 전략과 구상이 우연적인 것이 아니라 현 미 집권세력과 그들을 뒷받침하는 군수업체들이 오랫동안 구상하고 로비해온 결과라는 것입니다. 한국정부가 지원하겠다고 나선 이라크 전쟁은 이 구상의 서막에 불과합니다. 미국의 다음 표적은 이란과 북한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미국의 고위관리들이 수차례 구체적으로 언급한 바 있습니다.

이라크전을 통해 예방공격을 허용하고 군대까지 파병한 한국정부에게 돌아올 대가는 북한에 대한 예방전쟁 가능성이라는 부메랑입니다. 한국정부가 이라크전 파병국의 하나였다는 점은 한반도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협력을 구하는데 커다란 족쇄로 작용할 것입니다.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전 참전을 요구하면서 이면에서 무엇을 약속했었는지 아니면 어떤 협박을 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부시행정부의 약속은 공수표라는 것입니다

그들의 ‘새로운 미국의 세기를 위한 프로젝트’에 부합하지 않은 모든 약속이 그렇습니다. 부시 대통령이 만약 약속을 위반하기로 마음을 먹는다한들 한국정부가 이를 반대할 외교적 정당성을 가지기는 매우 힘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참여연대가 수차례 강조했듯이 참전과 평화를 바꾼다는 구상은 한국에게는 족쇄를, 미국에게는 선택의 폭만 넓혀주는 손해가 예정된 거래입니다.

물론 이라크 전쟁 이후 북한에 대한 공격위험이 심각해 질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만약 부시대통령이 이라크 전쟁 전후 북한문제에 대한 평화적 해결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면 이는 한국의 참전에 대한 대가일까요? 이라크전쟁 과정에서 부딪힌 전세계 반전여론 때문일 것입니다. 이 점 때문에라도 참전은 거부되어야 합니다.

노무현 대통령님

오늘 중으로 가공할만한 폭력이 이라크의 무고한 시민들에게 퍼부어질 것입니다. 이 전쟁에서 부시가 성공하든 실패하든 전쟁 이후의 세계는 지금과 크게 달라질 것이라는 예측입니다. 애매한 국익이나 실리를 논하기에 앞서 우리가 과연 어떤 세계의 문턱에 서 있는지, 우리정부는 미국의 가공할 전쟁독트린이 지배하는 세계질서에 과연 동의하는지, 그 질서가 우리에게 가져다줄 미래가 어떤 것일 지, 그야말로 냉정히 따져 봐야 합니다.

이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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