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함께 과거사 청산하고 민족존엄 되찾자”

‘평화와 통일을 위한 3.1민족대회’ 이튿날 표정

▲남북 합동법회장면. 중간에 자리잡은 이들이 북측의 승려들 (사진 3.1민족대회공동취재단)

2일 오전 9시 남쪽의 천주교, 천도교, 불교, 개신교 등 4대 종단 예배에 남북의 해당대표들이 참석하는 것을 시작으로 3.1민족대회 참가자들의 이튿날 일정이 진행되었다. 종교인들 외에 여성, 청년, 노동 등 각 부문관계자들은 같은 시각 워커힐호텔에서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오후에는 남북공동학술토론회와 종단별 접촉이 이루어졌으며 대회의 마지막 공식행사인 ‘평화통일 기원의 밤’이 저녁 8시 워커힐 제이든 가든에서 펼쳐졌다.

북쪽 가톨릭 신자들, 명동성당 미사 참석

[동영상] 반갑습니다!~ -3.1민족대회 인터넷 공동취재단

오전 9시께 명동성당에 도착한 조선가톨릭교협회 중앙위원회 장재언 위원장, 강지영 부위원장을 비롯한 15명의 평양 장충성당 신자들은 오전 11시 미사에 참석하기 전에 명동성당 외곽을 둘러보고 김운회(천주교 민족화해위원회 위원장)주교와 20여분간의 비공개 간담회를 가졌다. 북쪽 신자들은 대부분 명동성당을 둘러본 소감을 “감격스럽습니다”라는 짤막한 답으로 대신했다.

▲ 평양 장충성당 성가대원들의 미사모습(사진 3.1민족대회공동취재단)

장충성당 김유철 부회장은 이 자리에서 북쪽 신자들을 세례명과 함께 일일이 소개했다. 세례명이 사무엘인 장재언 위원장은 “우리가 어려울 때 많은 지원물을 보내준 여러분께 깊은 사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또한 “우리 공화국의 가톨릭 신자들도 마르지 않는 샘처럼 신앙심이 솟구친다”며 북쪽 신자들의 신앙심을 넌즈시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이날 만남은 주님께 기도를 바친 덕도 있지만 6.15공동선언이 가져다 준 선물인 것이 더 크다”며 “자주통일을 위해 떨쳐 나서자”고 인사말을 전했다. 이 자리에서는 장충성당의 성가대원들이 노래 ‘반갑습니다’와 ‘우리는 하나’를 불러 분위기를 돋구기도 했다.

북쪽 신자들과 남쪽의 일반 신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미사를 집전한 김운회 주교는 분단 이후 남쪽에서 처음으로 남북신자들이 함께 미사를 진행하는 데 역사적 의미를 부여했다.

김 주교는 “민족화해 일치를 이루는 전기가 될 것”이라며 통일과 화해의 내용을 담은 기도를 올렸다. 이날 미사는 북쪽 성가대원들의 특송 외에는 평상시와 다르지 않은 내용과 순서로 진행되었다.

이날 남쪽의 일반신자로 미사에 참석한 나옥진(32)씨는 “뭉클했다”며 “북쪽 사람들과 조금씩 합쳐진다는 느낌이 든다”며 소감을 전했다.

▲ 만세부르는 남북천도교인들.(사진 3.1민족대회공동취재단)

한편, 이날 같은 시간 남북 신자들이 함께 예배를 본 소망교회에서는 일부 신자들이 북측 대표의 인사말 도중 항의를 해 작은 소동이 빚어지기도 했다. 이곳에 참석했던 남측의 한 인사에 따르면 북측의 오경우 조선그리스도교연맹 중앙위원회 서기장이 연단에 올라 “외세에 의해 전쟁위기가 조성되고 있다”고 말하자 2층의 한 신자가 “끌어내라”고 외쳤다고 한다. 이에 곽선희 목사가 나서 소란을 정리하고 북측 인사들에게 사과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밖에도 봉은사에서 천도교 중앙대교당에서 법회와 시일(천도교에서 ‘일요일’을 이르는 말)식이 각각 진행되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 부문별 상봉

▲청년부문상봉모습. (사진 3.1민족대회공동취재단)

정오까지 워커힐 호텔 내 각 장소에서는 여성, 청년, 노동, 학술 등 해당 남북 대표단들의 상봉이 이뤄졌다. 대부분 각 부문에서는 민간차원의 교류와 연대를 모색하는 환담이 오갔다. 구체적인 합의들은 미뤄졌지만 이날 만남을 계기로 부문별 자체대회 개최 등이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고 관련자들은 기대를 내비쳤다.

한편, 학술부문에 참가했던 안병욱 교수(가톨릭대 인문학부)는 “북측에서는 학술분야의 고위직 대표들이 실무적인 교류에 대한 의지를 가지고 참석했지만 남측 참석자들의 준비가 미흡해 구체적인 이야기는 이뤄지기 어려웠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부문모임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이김현숙 민화협 위원장과 이영희 조선민주여성동맹 중앙위원회 위원장(사진 3.1민족대회공동취재단)

“우리나라 국호 영문표기 ‘Corea’로 되돌려야” 북측 주장

오후 3시께 워커힐 내 무궁화홀에서는 ‘일본의 우리나라 역사 왜곡 진상을 밝히는 남북공동학술 토론회’가 진행되었다. 이 자리에서 북쪽의 문영호 조선사회과학원 언어학연구소장은 ‘우리나라 국호의 영문표기에 대한 역사언어학적 고찰’이라는 주제로 발표에 나섰다.

▲ 우리나라의 국호 영문표기에 대해 발제하고 있는 문영호 소장.(사진 3.1민족대회공동취재단)

그에 따르면 13세기 중기 이후 우리나라의 국호 ‘고려’를 서양어로 표기한 ‘Corea’는 대외문서 등을 통해 700여년간 굳어져 사용되었다. 그러나 일본이 조선강점과 함께 대내·외에서 관례적으로 사용해온 국호 영문명을’Korea’로 전면 날조함으로써 국호에 대한 역사성을 무시한 채 민족적 존임과 국권을 침해했다고 그는 지적했다. 문 소장은 이에 “이와 관련한 역사자료와 문헌들을 북과 남, 해외학자들이 공동으로 조사 발굴하고 고증하면서 민족의 존엄을 지키고 원래의 국호표기로 제 모습을 세상에 자랑떨치자”고 촉구했다.

▲토론회 자료를 진지한 표정으로 읽고 있는 북측의 남녀.(사진 3.1민족대회공동취재단)

이밖에도 북측의 주진구 교수(조선역사학회 소속)가 ‘일본의 역사왜곡책동과 해외침략의 위험성에 대하여’라는 주제로 발제, 조선인 강제연행문제와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해결 없이는 일본이 납치문제를 논할 수 없음을 명확히 밝혔다.

강창일 교수(배재대학교 한일관계사)는 ‘일본제국주의 식민지배는 국제법상 불법이다’는 주제로 근대일본의 조선침략과 일본의 조선민족말살정책에 대한 내용들을 지적했다. 윤경로 교수(한성대 사학과)는 ‘통계로 본 전시체제하 일제의 수탈상’에 대해 발표하기도 했다.

토론이 끝나자마자 남북 참가자들은 공동보도문을 통해 “일본 수구세력에 의한 역사왜곡은 식민지배에 이은 제2차 범죄행위”라며 “남북, 북남 학자들이 함께 과거사 청산문제를 논의하고 배상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인 만큼 민족의 존엄을 되찾기 위해 힘과 지혜를 모으자”고 한 목소리를 냈다.

취재후기

이번 3.1민족대회의 북쪽 참가자들 중에는 지난해 8.15대회에도 참석했던 사람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었다. 서로 낯이 익거나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 남북 참가자들은 자유롭게 안부인사를 건네거나 함께 담배를 피우며 빡빡한 일정 속에서도 작은 만남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남측 참가자들은 “여전히 조심스러운 부분도 있는 게 사실이지만 자꾸 보니까 편하다. 모르는 사람을 만나서 친해지는 과정을 이들과도 똑같이 겪는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북측 여성참가자들 역시 이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익숙해진 것 같았다. 이번 대회에도 한복차림을 한 여성들 중에는 지난 부산아시안게임 때 응원단으로 참석했던 여성이 있어 참가자들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이름 등을 묻는 질문공세에 그는 잔잔한 미소만 띄워 기자들의 애를 태우기도 했다.

지난 8.15행사 때와는 달리 이번 북측 대표단들은 눈에 띄게 말을 아끼는 분위기였다. 이에 대해 참가자들은 북미대치상황과 그에 따른 한반도의 위기가 우려되는 분위기 탓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번 ‘평화와 통일을 위한 3.1대회’는 지난해 8.15대회에 견주어보면 규모와 홍보 면에서 작게 치러진 행사다. 또한 대회가 시작한 첫 날 다른 한켠에서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재향군인회 등 우익세력의 대규모 시위가 있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여정부가 들어선 이후 첫 민간행사가 치러진 동시에 분단이후 남북이 함께 처음으로 3.1절을 맞이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남은 2박3일이었다.

김선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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