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군축센터 기타(pd) 2003-03-15   1858

[분쟁지역현황] 시에라리온리포트 : 해방된 노예들과 원주민들의 땅 : 시에라리온

다음 글은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에서 자원활동을 하고 있는 최상구씨가 정리한 글을 기초로 해서 재작성한 것이다.

쿠데타로 점철된 역사

아프리카 서남부에 자리잡은 우리에게 이름도 생소한 시에라리온 공화국(Republic of Sierra Leone)은 과거 노예로 끌려갔던 사람들이 정착하면서 만들어진 국가입니다. 그래서 수도의 이름도 프리타운(free town)입니다. 이 지역이 유럽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495년 포르투칼인들이 상아, 금, 노예 무역을 위한 거점으로 활용하면서부터입니다.

이후 17세기들어 영국이 진출하고 1772년 영국의 노예금지법 제정에 따라 40,000명의 노예들이 아프리카로 귀환하였고, 영국해군이 대서양에서 나포한 노예선에서 풀려난 아프리카인들도 프리타운에서 살게 되었고, 북아메리카 지역에서도 약 1,100명의 노예가 이주해와 1850년까지 해방노예의 수는 약 7만 5천 명이나 되었습니다. 영국의 식민지배를 받을 때에는 지역민들에게 가옥세를 부과하였기 때문에 템네족과 멘데족의 반란이 일어나기도 하였습니다.

시에라리온에는 북아메리카에서 돌아온 해방노예의 자손들로서 아프리카식 부족생활을 하지 않는 사람들인 크레올족(2%), 멘데족(30%), 템네족(25%)을 포함하여 13개 소수 부족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공용어로 영어를 사용하면서 크리오어(영어와 서아프리카어의 혼합어), 멘데어, 템네어가 통용되고 있고, 주민의 30%가 전통 애니미즘을 믿고 이슬람(60%), 그리스도교(10%)가 있습니다.

1961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여 보수적인 시에라리온 인민당(Sierra Leone People’s Party: SLPP)과 사회주의적인 전인민회의당(All People’s Congress: APC)이 의회를 구성하였으나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 헌법이 정지되고 의회와 정당이 해산되었으며, 민족재편평의회가 구성되었습니다. 그러나 1968년 4월 하사관들의 쿠데타로 다시 예전의 상태로 돌아갔으며 쿠데타 이전에 총리로 선출된 스티븐스(Stevens)가 총리가 되어 공화제로의 이행을 추진하였습니다.

공화제에 대한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1971년 신헌법을 통해 공화제를 채택하고 대통령에 취임하는 등 독재정치에 따른 정치불안이 계속되었습니다. 1973년 4월에는 의회를 해산하고 전국비상사태 하에서 총선거를 실시하여 모든 의석은 여당인 전인민 회의가 차지하고, 1978년 새헌법을 공표하면서 일당체제를 확립하였습니다. 이후 1986년 일당제 선거에서 스티븐스 전 대통령이 지명한 모모(Momob)가 대통령에 선출되었는데, 이를 계기로 1990년대부터 혁명연합전선(Revolutionary United Front: RUF)이 라이베리아를 거점으로 조직되어 무장투쟁을 시작하면서부터 시에라리온의 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쿠데타 이후 스티븐스의 독재정치와 템네족 우대정책은 남부지역의 멘데족으로 하여금 정치적 소외를 겪게 하였고, 이러한 불만이 폭발하게 된 것입니다. 반정부 활동이 증가하는 가운데 1992년 군부 쿠데타로 스타라세(Strasser) 대위가 임시국가통치위원회 의장에 취임하였지만 그 후로도 쿠데타 기도가 잦아 불안한 정세가 계속되었습니다. 이처럼 사태가 악화되자 1995년 유엔 사무총장은 특사를 파견하여 서아프리카 경제공동체(Economic Community of West African States: ECOWAS)와 아프리카 단결기구(Organization of African Unity)와의 협력하에 분쟁해결을 위한 협상을 벌였습니다.

1996년 무혈 쿠데타로 비오(Bio)준장이 집권한 이후 혁명연합전선과의 정전을 합의하고, 민정이양을 실시하여 총선과 대선을 통해 카바(Kabah)를 대통령으로 선출하였습니다. 그러나 반군 측은 대선 연기를 주장하던 자신의 의사가 무시되자 정전을 깨뜨리고 다시 게릴라전을 개시하였고, 충돌이 지속되는 가운데 1996년 11월 카바 대통령과 반군 지도자 산코(Sankoh)간에 정전이 합의되었습니다.

그러나 1997년 코로마(Koromah)소령을 위시한 군인들이 다시 쿠데타를 일으켜 카바 민선정부가 14개월만에 전복되고 무장군사혁명위원회를 구성하고 반군세력인 혁명연합전선과 결탁하였고, 정치활동을 금지시켰습니다. 유엔은 서아프리카경제공동체와 함께 민선정부의 복귀와 정전을 위한 협상을 벌였지만 실패하였고, 이에 따라 주변국들과 유엔의 제재조치들과 서아프리카경제공동체의 시에라리온 평화유지군(ECOMOG)의 군사개입으로 혁명세력은 1997년 10월 서아프리카경제공동체와의 회담을 통해 1998년 정권을 이양하였습니다.

1998년 서아프리카평화유지군의 활동이 유엔감시단(United Nations Observer Mission in Sierra Leone: UNOMSIL)으로 이양되고 민간정부가 다시 복귀한 이후에도 쿠데타 잔존세력 및 반군의 저항이 계속되었습니다. 1999년에는 공세를 강화하여 수도일부가 반군세력에게 점령당하는 사태가 발생하자 나이지리아, 라이베리아, 토고 등 주변 국가들이 적극 중재에 나서, 1999년 7월 토고의 수도 로메(Lome)에서 카바대통령과 반군의 모든 세력들간에 평화협정을 체결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반군의 무장해제를 감시하기 위해 유엔은 유엔감시단을 해체하고 유엔평화유지군을 결성하여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일부 반군세력의 저항이 계속되어 2000년에는 유엔평화유지군이 포로가 되기도 하는 등 상황이 악화되자 유엔은 평화유지군의 병력을 늘리고, 영국군을 파견하여 2000년 11월 이후에는 정세가 안정을 회복하였습니다. 2001년 5월, 나이지리아 수도 아부자에서 개최된 정부측 및 반군측간 회동에서 반군측은 무기반환 조치를 약속하고 무장해제를 시작하여 2002년 무장해제 종료로 내전이 공식 종료되었으며 같은 해에 대통령 및 총선이 실시되어 카바대통령이 재선되었습니다.


‘피의 다이아몬드’, 탐욕의 처참한 결과

아프리카 내전지역에서 채굴되어 불법 거래되는 미가공 다이아몬드를 가리켜 ‘피의 다이아몬드’라고 합니다. 세계 다이아몬드 생산량 15위권 내의 나라 중 9개국이 아프리카에 있는 국가들입니다. 정부군의 장성들이나 반군 지도자들은 다이아몬드 광산 소유자이거나 채광회사들의 대주주들로, 다이아몬드를 팔아 만든 막대한 자금을 무기구입이나 외국인 용병고용에 사용하고 있습니다.

시에라리온도 마찬가지로 민족간의 차별정책과 경제실패에 따른 청년층의 만성실업 등이 정치불안을 촉발시켰지만, 정작 분쟁의 해결과정에서 걸림돌이 되었던 것은 바로 수년간의 분쟁을 지속시킬 수 있는 가장 큰 자금원이었던 다이아몬드 광산지역에 대한 정부와 반군간의 이해 상충이였습니다. 분쟁기간 동안 많은 다이아몬드 광산지역이 반군의 진영에 있었는데, 바로 이 광산지역에 대한 통제권을 지키기 위해 싸웠던 것입니다. 다이아몬드 지역에 대한 통제권을 지키기 위하여 혁명연합전선은 수 만명의 시민들에 대한 살인과 강간, 방화, 납치, 손목이나 발목 등의 신체절단 등 극악무도한 만행을 저질렀던 것입니다.

시에라레온의 분쟁은 인구의 삼분의 일이 훨씬 넘는 약 2백만명 가량의 난민을 만들었습니다. 2002년에는 100,000명이 넘는 시에라리온 난민 귀향자들과 124,000명의 실향민들이 그들의 고향지역에서 다시 정착을 하였습니다. 대부분의 정착민들은 생활여건이 어려운 북동부지방으로 돌아와 재정착 과정에서 많은 지원이 필요한 실정입니다. 더욱이 시에라리온의 평화과정이 개선되고 있지만, 인접국가인 라이베리아에서의 내전으로 인하여 37,000명이 넘는 난민들이 발생하여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또한 장기간에 걸친 분쟁의 결과 국내경제가 크게 피폐되었으며 농업분야 등을 포함한 산업기반이 붕괴되어 국가경제를 주로 선진 외국의 원조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을 통하여 2001-2004년간 국가 재건전략을 수립하였지만, 12억 5천만불에 달하는 외채(국내 총생산은 6억 6천만불에 불과합니다)는 이를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1999년 기준으로 성인 중 AIDS보균자는 68,000명이며 8,200명이 사망하였습니다. 인권을 위한 의사회는 215,000명∼257,000명 사이의 여성들이 윤간을 포함한 다양한 형태의 성적 학대를 받았다고 합니다. 7,000명 가량의 소년병들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고, 4,000명 이상의 사람들이 손, 발이 절단되었습니다.

과거 해방된 노예와 원주민들이 어우러져 이루어진 국가 시에라리온. 이들에게 전쟁과 폭력, 가난과 절망으로부터의 해방은 너무나 머나먼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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