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군축센터 기타(pd) 2003-03-15   2126

[분쟁지역현황] 카슈미르

일반

  • 면적 : 인도령 잠무 카슈미르 9만5356㎢, 파키스탄령 아자드 카슈미르 5만6003㎢, 총 15만 1360㎢
  • 위치 : 인도북쪽. 통제선(Line Of Control, LOC)으로 남북이 나뉘어져 있으며 남쪽이 인도령 잠무 카슈미르, 북쪽이 파키스탄령 아자드 카슈미르임. 파키스탄, 중국과 국경이 맞닿아 있음
  • 지형 : 대부분 산악과 구릉지대. 산악지역에는 고드윈 오스틴(일명 K-2봉)산과 낭가 파르바트(Nanga Parbat)산이 솟아있고, 인더스강이 흐름. 구릉지대는 초원과 사막이 어우러져 있고, 풍부한 수자원을 이용한 농업과 목축업이 발달돼 있음.
  • 인구 : 인도령 잠무 카슈미르 770만명, 파키스탄령 아자드 카슈미르 258만명(국외 피난민 약 300만명) 총 1300만명
  • 종교 : 이슬람교(77%), 힌두교, 불교, 시크교
  • 주요생산품 : 양탄자, 모피, 숄, 옥수수, 밀, 쌀, 사프란(향미료), 사과, 배, 호두, 살구

정치상황

카슈미르는 BC 3세기 마우리아 왕조를 거쳐, 서기 500년경에는 파키스탄 북부 탁실라를 중심으로 불교 문화가 꽃피었던 곳이다. 11세기부터 이슬람 왕조가 흥망을 거듭하다 19세기 영국이 인도를 점령하면서 카슈미르도 영국의 간접 통치를 받았다. 당시 카슈미르에는 560여개 국가들이 있었고, 이들 왕국은 소수 힌두교계(22%)임에도 불구하고 지역 주민의 대부분(77%)인 이슬람교도들을 탄압하며 영국의 식민 지배에 협력하였다.

1947년 영국으로부터 인도가 독립할 당시 인도는 인도와 파키스탄으로 분리독립 하였고, 특히 이 과정에서 각 지방의 자율적 결정에 따라 인도 또는 파키스탄으로 편입하도록 하였습니다. 당시 카슈미르 지역은 번왕국이 통치하였는데, 번왕국의 하리 싱(hari Singh, 힌두교)은 파탄(북방족속이라는 의미)인들이 카슈미르 지역으로 침입하는 사건 속에서 위협을 느껴, 절대다수의 이슬람교도가 원하는 파키스탄 귀속이 아닌 1947년 10월 26일 국민투표를 전제로 인도로의 편입을 결정했다. 이로 인하여 카슈미르지역의 분쟁은 시작되었다.

1947년 10월 카슈미르의 이슬람 무장부족 집단이 파키스탄의 지원 아래 수도인 스리나가르(Srinagar) 점령을 시도하자, 인도는 즉각 군대를 파견하여 1차 인도-파키스탄 전쟁이 발발하였다. 이에 관련, 인도의 네루 수상은 주민투표에 따라 카슈미르의 장래를 결정하겠다고 약속했고, 유엔에 이 안건이 상정되어 1948년 8월 정전합의가 이뤄지고, 1949년 1월부터 정전협정이 발효되었다. 이때 카슈미르에 대하여 인도가 카슈미르 지방의 2/3를, 파키스탄이 나머지 1/3을 분할점령하고, 이를 경계하는 통제선(Line Of Control, LOC)이 만들어졌다.

당시 유엔 결의안은 “인도령 잠무 카슈미르가 인도와 파키스탄 중 한 곳을 선택할 때는 자유롭고 민주적인 주민투표를 통해 결정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유엔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파키스탄은 전쟁후에도 자국점령 카슈미르가 독립정부임을 주장하였고, 1951년 인도의 네루 수상은 잠무 카슈미르의 ‘특별 지위’를 규정하는 헌법 370조항을 신설하고, 1957년 이 지역을 인도 연방의 하나로 편입한다.

1964년 네루의 사망 후 인도의 정국혼란을 기화로 파키스탄은 인도 점령 카슈미르에서 비정규전을 감행하여 그 해 12월 카슈미르 지역을 공격하였고, 1965년 4월에는 쿠츠(Rann of Kutch)지역에서 양측간 충돌이 빈번히 발생하였고, 결국 1965년 9월 통제선 전역으로 확대되면서 2차 전쟁이 발발하게 됐다. 이 전쟁은 구소련의 중재로 1966년 1월 타시켄트에서 휴전협정이 체결되었다.

1971년, 동파키스탄이 방글라데시로 독립하는 과정에서 파키스탄의 세력약화와 난민유입을 차단하기 위해 인도가 개입하여 3차 전쟁이 발발하게 된다. 이 전쟁은 1972년 심라(Simla)협정으로 전쟁이 종료되면서, 현재의 통제선(LOC)이 확정되었다.

1980년대 들어 인도령 카슈미르에서 인도로부터의 분리 독립을 외치는 ‘잠무 카슈미르 해방전선(JKLF)’이 결성되면서, 인도 정부군과의 무력충돌이 본격화됐다. 잠무 카슈미르에는 이슬람교도의 비율이 64%에 달한다. 이들은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의 지원을 받으며 인도군에 대한 테러전을 벌였고, 인도군은 민간인 탄압과 무자비한 보복을 가해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2001년 12월 인도 국회의사당 폭탄테러와 2002년 5월 인도병영 테러도 이 과정에서 발생, 양국 간 군사충돌 위기로 발전했다.

이슬람 무장세력은 ‘주민들의 자유로운 투표를 통해 잠무 카슈미르의 미래를 결정할 것’을 인도에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인도는 이들의 ‘분리 독립’ 대신 ‘자치’ 정도는 허용할 수 있다는 입장이고, 파키스탄은 이들의 ‘자유를 위한 투쟁’을 지지하지만 분리 독립 대신 파키스탄으로의 편입을 원한다.

55년에 걸친 카슈미르 분쟁은 종교갈등에서 출발, 지금은 인도·파키스탄의 영토분쟁, 인도·중국 간의 지역 패권 갈등, 테러와의 전쟁 등과도 복잡하게 얽혀있다. 최근 인·파 분쟁을 계기로, 국제사회는 21세기 지구상에 마지막으로 남은 비극의 땅 카슈미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 등 강대국들이 방관의 자세를 버리고 적극 나서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이 분쟁으로 1989년부터 1999년까지 약 7만명 사망, 17만5천명의 난민이 발생하였다. 2002년에는 양측의 공방전이 가열되는 가운데 인도가 ‘테러와의 전쟁’을 강조하며 전쟁태세를 강화함으로써 핵전쟁의 위기를 초래하기도 하였다. 아직도 이 지역은 통제선을 중심으로 양국에서 벌이는 포격전이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최근상황

2002년 5월, 카슈미르 통제선 지대에 총 100만명 규모의 군대가 집결, 국경을 사이에 두고 포격전이 시작돼 적잖은 희생자를 냈다. 특히 우려되는 것은 양국이 핵 보유국이기 때문에 자칫 두 나라의 분쟁이 핵전쟁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최근 양국간의 갈등은 2002년 5월 14일 인도의 잠무ㆍ카슈미르주에서 벌어진 학살사건에서 촉발됐다. 파키스탄의 이슬람 과격파가 이 지역에 침입, 습격하는 과정에서 인도군 병사의 아내와 아이 등 34명이 희생됐다. 인도 정부는 인도주재 파키스탄 대사를 추방하기로 하고 전투준비태세를 강화하고 있다.

대규모 분쟁이 있었던 지난 1999년, 파키스탄이 인도에 대한 핵 공격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최근 밝혀졌다. 이 정보를 발표한 미국의 전 정부 고위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미국과 옛 소련이 핵 전쟁 위기에 직면했던 62년 쿠바사태 이후 최대의 위기상황이 벌어졌었다고 한다.

인도와 파키스탄간 분쟁에 있어 앞으로 예상되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인도군이 파키스탄측 테러리스트를 소탕하기 위해 국경을 넘어 침공, 이에 대한 파키스탄측의 대항과 이슬람 과격파의 테러가 거듭되다가 결국에는 전면적인 전쟁으로 돌입하는 것이다.

다행히도 지난 2002년 11월 언론보도에 따르면, 지난 몇 달간 국제사회의 중재와 압박에 의해, 카슈미르 지역의 긴장은 완화되고 있다. 양측 모두 전선에서 군대를 철수할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다. 파키스탄 군부수장인 Pervez Musharraf가 카슈미르 인도령에 대한 침입을 중지하겠다고 약속함으로써 이러한 상황이 펼쳐졌다. 이에 대해 유엔 코피 아난 사무총장은 “이러한 전향적 변화를 환영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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