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군축센터 일반(pd) 2003-06-10   950

[성명] 노무현 대통령의 방미ㆍ방일에 대한 논평 발표

1.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5월 17일 한미정상회담을 가진데 이어 지난 6월 8일 한일 정상회담을 가졌다. 집권 후 처음으로 전통적인 우방국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외교전략과 역량을 시험한 셈이다.

노무현 정부는 당당한 원칙외교를 강조했던 대선과 집권 초의 기조와는 달리, 이른바 실용외교를 강조하며 두 차례의 정상회담을 진행하였다. 그러나 실용외교는 그다지 성공적이라 할 수 없다. 오히려 ‘현실주의’라는 자기최면 속에 서서히 미국의 동북아 긴장고조·군비증강 전략 구도에 빠져들고 있다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

2. 우선 한미정상회담부터 돌아보자. 정부는 지난 한-미정상회담에서의 최대의 성과로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대한 기조의 재확인’과 ‘주한미군 제2사단의 한강이남 이전 유보’를 꼽아왔다.

하지만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상황들은 이와는 정반대 방향으로 가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미국의 움직임은 오히려 ‘평화적 해결원칙’ 보다는 ‘추가적 제재조처’에 더 힘이 실리고 있다. 한미정상회담 직후 열린 미일 정상회담에서는 ‘더 강경한 제재조치’가 언급하는 등 한미정상회담보다 발언 수위를 높임으로써 ‘한미간의 합의’를 무색케 했다.

한미 정상회담이 한 달도 채 지나기 전에 미국 존 볼튼 국무차관은 미하원 보고에서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개발 및 거래를 막기 위해 현금유입 루트를 봉쇄하고, 장비 및 기술의 이전을 저지 압류하기 위해 우방국들과 법적 외교적 군사적 협력방안을 마련 중이며 관계국간 긴밀한 협의를 시작했다”고 밝혀 미국이 대화보다는 제재를 통한 문제해결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관측에 힘을 실어 주었다.

제2사단 재배치 문제는 더욱 황당하다. 노무현 대통령이 방미성과로 강조해마지 않았던 2사단 재배치 유보는 방미 한달도 지나지 않아 한미간에 전혀 합의된 것이 아니었음이 드러나고 있다. 럼즈펠드 국방부장관을 비롯한 미 고위인사들이 방미직후 ‘여보란 듯이’ 2사단 재배치를 언급함으로써 노무현 정부가 내세운 ‘방미성과’를 무색하게 하더니 급기야 지난 6월 4일 한미양국은 ‘미래 한-미 동맹 정책구상 공동협의’ 2차 회의에서 ‘수년 내에 한강이남으로 이전할 것을 합의’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3.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2사단의 후방배치가 주한미군을 공격적으로 재구성하는 작업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월포위츠 국방부 부장관은 향후 3년간 주한미군 전력증강에 110억달러의 예산을 투입할 것이라며, PAC3 추가배치, 최신공격용헬기 배치, 신속배치여단 1개단위 부대 순환전개 등의 계획을 밝혔다.

이러한 재배치 계획은 미국 내에서조차 북한 선제공격을 위한 것이거나 북에 그러한 위기감을 줄 수 있는 배치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은 주한미군 전력증강 외에도 한국에 상응하는 국방비 증액을 요구하고 있고 한국 정부 역시 ‘자주국방’이라는 명목으로 국방비 증액의 필요성을 언급하고 있다.

최근 미국은 PAC3, 공격용헬기 등의 구매를 주문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고 한국정부 역시 이지스함 조기구매 등의 계획을 구체화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파문이 일고 있다. 이는 한반도에서의 군비증강이라는 일반적 의미 외에도 미국이 주도하는 MD를 한국이 수용하는 구도로 가고 있다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을 종합해 보건대, 미국은 최근의 정세를 빌미로 주한주일미군 전력의 공격적 재배치와 MD의 도입이라는 동북아전략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는 또한 연초부터 미 고위인사들이 거론한 ‘미군 철수’ 언급이 결과적으로 노무현 정부에 대한 정치적 길들이기와 한국국민들에 대한 여론호도책으로 제기된 것으로서 보다 손쉽게 미국 자신의 동북아 군사전략을 완성해나가기 위한 책략이었음을 보여준다.

4. 노무현 대통령의 대일 외교 역시, 최대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해도, ‘전투에서는 이기고 전쟁에서는 진 격’이다. 방일 성과와 관련 노무현 대통령은 한일 공동성명에 일본 정부의 ‘대북 강경기조’를 반영하지 않고 ‘평화적 해결을 명문화’한 것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이번 한일정상회담은 북핵문제에 대해서도 원칙적 선언 이외에 한일간 뚜렷한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으며, 바로 이 점 때문에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결과적으로 미국이 ‘추가적 제재’와 관련 한미일 협의가 끝났음을 내세우는 명분을 만들어 주게 되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더욱이 한일회담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유사법제와 MD 등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빌미로 추진되고 있는 일본의 군비확장에 대해서는 제대로 언급조차 하지 못하였고 다만 국회연설 과정에서 원칙적인 우려를 전달하는 수준에 그쳤다. 이는 이러한 법제정비와 군비확장이 미일 신방위협력지침으로 알려진 미일 동북아 군사전략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는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고 판단된다.

요컨대 노무현 정부의 대일 외교는 최근 한미간의 군비확장 논의의 연장선에서 ‘한국정부가 미국주도 하의 한미일 지역군사동맹의 강화와 MD체계(동북아 NMD)로 가는 구도를 사실상 승인했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한 것이다. 과거사 문제에 대해 언급하지 않겠다는 노대통령의 입장도 과거사에 대한 일본정부와 정치권의 태도가 단지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일본의 군비증강 및 우경화와 연결된 현재의 문제라는 점에서 국민정서는 논외로 하더라도 부적절한 태도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5. 이렇듯 노무현 정부의 이른바 실용외교는 실용적 의미에서도 그 성취를 찾아보기 힘들 뿐 아니라 도리어 ‘우려스러운 현실’ 속으로 침몰 또는 매몰되어가고 있다. 정부가 강조하는 실용주의적 외교는 결국 미국의 입장을 일방적으로 따르는 외교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북핵의 평화적 해결을 내세우면서도 봉쇄와 제재를 추인하고 있고, 동북아 평화와 번영을 얘기하면서도 MD와 군사동맹, 군비증강 등 지역 내 긴장을 고조시키는 대열에 어설프게 합류하고 있다. 노무현 식 자주국방은 한반도 주변의 미군의 군사행동 능력과 공격성을 더욱 높이고 그 전략에 깊숙히 편입되는 쪽으로 방향지워지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자가당착이 이른바 ‘실용적 접근’에 내재된 근원적 한계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 핵문제’ 그리고 이른바 ‘미래의 불확실한 위협’에 대해 ‘군사적 제재와 군비증강’의 논리로만 접근할 때 미국이 주도하는 한미일 군사동맹의 강화와 MD등의 군비강화 외에 다른 대안을 찾을 수 없다. 이러한 군사동맹의 강화는 북한의 반발과 중국 등의 군비증강을 가져오고 이는 또 다시 미일의 군사주의를 정당화하는 명분으로 작용하는 악순환을 유발할 것이다.

6. 문제는 평화에 대한 철학이고 그 철학을 구체화할 전략과 계획이 있느냐 하는 것이다. 현 시기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은 한반도의 운명과 직결된 절대절명의 문제이지 단순히 당근이냐 채찍이냐의 문제는 아니다. ‘자주국방’의 논리도 미국을 정점으로 하는 군사주의적 확장의 하위 개념으로 제기되는 한 한반도의 평화와 자존과는 거리가 먼 구시대적 냉전질서의 연장일 뿐이다.

이 점에서 노무현 정부는 평화 번영의 동북아 중심국가라는 추상적인 문구 이외에 아무 것도 제시하지도 보여주지도 못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한반도 위기의 평화적 해결과 대북포용정책에 대한 일관된 원칙, 군비경쟁에 의한 안보가 아닌 관계개선의 전망에 입각한 안보협력의 비전을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한미동맹의 미래는 무엇인지, 북한 핵문제의 해법과 MD에 대한 입장이 무엇인지, 한반도의 위기와 동북아 지역의 군비경쟁을 해소할 안보협력의 대안은 무엇인지 구체적인 입장과 계획을 제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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