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군축센터 한반도 평화 2001-08-27   1854

6·15공동선언 1년, 340명의 평양길

6박7일 민족통일대축전 평양취재기 ① – 방북결정에서 폐막식까지

2001 민족통일대축전 평양행사. 수많은 논란 속에 지난 8월 15일부터 21일까지 개최된 이 행사에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소속으로 월간 참여사회 최경석 기자가 직접 다녀왔다. 6박 7일간 일정으로 평양에 머물면서 바라본 통일대축전과 평양행사 등을 세차례 나눠 싣는다. – 편집자주

다급하게 결정된 평양행

“어쩜, 이 시간에 다 교육을 한데요.”

“뭐, 여하튼 갈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다행이죠.”

8월 14일 밤 9시, 앞서 가던 두 여성은 서로 말을 주고받으며 명동 가톨릭회관 계단을 올라가고 있다. 다급하게 결정된 평양행으로 방북사전교육을 받기 위해 두 시간 전에 급히 통보 받은 340명의 사람들은 속속 가톨릭회관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하루 전만 하더라도 불허방침이던 ‘2001 민족통일대축전 평양행사 참가’가 조건부 허용으로 결정됐기 때문.

현재 이곳에서는 ‘2001 민족통일대축전 평양행사 추진본부(통일연대, 민화협, 7대종단 구성, 이하 추진본부)’ 대표단의 방북사전교육이 실시되고 있다. 통일부 관계자는 “원래 사전교육은 4시간이 의무지만 다급한 일정상 1시간으로 줄이겠다”는 말과 함께 교육을 시작했다. 대표단 340명은 통일부에서 초대한 강연자 2명으로부터 현재 남북관계와 주의사항, 행사 일정 에 대해 전달받고 있었다.

행사 중 남측추진본부 김종수 상임집행위원장은 “3대헌장 기념탑에서의 개폐막식은 북측의 행사로만 진행될 것”이라는 말과 함께 “정부와 각서까지 썼다”며 “평양에 가서 개별적 행동으로 개폐막식에 참관도 하지 말 것”을 부탁하고 있다. 그는 “어느 누가 만일 각서 내용을 어기면 그 사람이 옥살이를 하는 것이 아니고 제 자신이 감옥에 간다”며 “그런 일이 없도록 행동해 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그러나 강당을 가득 메운 사람들은 다급히 결정된 평양행에 대해 웅성거리며 얘기하는 데 더욱 신경을 쓰는 듯했다. 긴박한 기운이 감도는 강당의 풍경은 뒤늦게 들어오는 사람들과 명단확인 및 서명 등으로 매우 혼잡스러운 상태다. 멀리 제주에서부터 서울까지, 그리고 관변단체 사람들에서 통일운동으로 옥고 치른 이들까지 전국각지에서 모인 340명의 추진본부 대표단은 출발 준비를 위해 분주히 발걸음을 옮겼다.

50여 년간의 분단체제를 50분만에 가로질러

“이봐, 저 아래가 장산곶 아냐?”

아시아나항공 OZ 8017 비행기 안. 기장이 북한 영해통과를 알리는 안내방송을 마치자 비행기 밖 구름사이로 언뜻 보이는 땅을 보며 누군가 외친다. 8월 15일 광복절 아침 8시부터 인천국제공항에 모였던 340명은 12시 15분쯤 평양으로 출발, 지금은 백령도를 지나 북의 황해도 장산곶을 지나고 있다. 장산곶은 12년 전 비합법으로 방북했던 소설가 황석영 씨의 소설 『장길산』의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하다.

오후 1시를 넘기니 340명을 태운 아시아나 항공기 두 대는 평양으로 진입하고 있다. 구름이 걷히면서 평양일대의 대지가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사람들은 이제야 북으로 온 걸 실감하는 듯 환호성을 외치거나 사진촬영 등으로 북적인다.

지난 94년부터 98년까지 외부와 단절된 북은 심각한 자연재해와 식량난을 겪으며 일명 ‘고난의 행군’을 4년 동안 이어왔다. 따라서 산과 들도 매우 헐벗은 상태가 아닐까 했다. 그러나 멀리서 보이는 평양 일대는 이런 단편적 지식과 달리 의외로 푸르른 논과 밭, 그리고 군데군데 집단촌락과 콘크리트 건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단, 도로는 대부분 비포장이고 중심도로만 아스팔트인 것이 눈에 띈다.

평양 순안비행장에는 벌써부터 한복차림과 진달래 수술을 든 평양시민들이 마중 나온 것이 보인다. 작년 김대중 대통령의 평양방문시 공중파를 통해 언뜻 비춰졌던 순안비행장. TV에서 보던 것과는 달리 이곳 활주로는 큰 원형경기장처럼 되어 있고 3층짜리 콘크리트건물인 공항청사는 이에 비한다면 다소 외소해 보인다. 순안비행장 주변은 대부분 키가 웃자란 옥수수로 채워져 있다. 주변 개울에서 낚시를 하던 4명의 아이들이 비행기를 발견하고 반갑게 손을 흔들고 있다.

순안비행장에 도착한 추진본부 340명은 평양에 온 것이 믿기지 않은 듯 삼삼오오 모여 결례를 무릅쓰고 담배를 피우고 있다. 어떤 이들은 벌써부터 기념사진을 찍느라 분주하다.

“한 동포로서 뜨겁게 환영한다”

추진본부 김종수 상임집행위원장과 지난 48년 연석회의에 남측 대표로 참가했던 신창균(94세) 옹 등 남측 인사들을 북측 조규일 조국통일민족전선 중앙위 서기국장과 김영성 북측 준비위 부위원장 등이 영접했다. 김영성 부위원장은 “한 동포로써 뜨겁게 환영한다”고 말하며 악수를 청했다.

평양시민들은 ‘2001년 민족통일대축전에 참가하기 위하여 평양에 오는 남녘 동포 대표들을 열렬히 환영한다’는 플래카드를 들고 “조국통일! 민족자주!”를 반복해서 외쳤다.

평양 창전인민학교 강윤하(9세) 학생은 김종수 상임위원장에게 꽃다발을 안기고 있다. 그 외에도 평양시 인민학교 3, 4학년 학생 30명이 나와서 환영해 주고 있다. 한 학생은 “반갑습니다”라고 환하게 웃으며 악수를 청하기도 했다. 30도를 웃도는 더위로 순안비행장은 달궈져 있었다. 3시간 전부터 나와서 기다렸다는 이들 북측 환영단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 있다.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소속으로 동행한 기자는 민화협 사람들과 함께 3번 버스에 올랐다. 각 버스마다는 북측 민화협 소속 안내원들이 두세 명씩 동승했다. 한 안내원은 “30도가 넘은 날씨인데 더 뜨겁게 느껴진다”며 “통일의 열기를 반영하는 것 아니냐”고 말하기도 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평양외곽은 70∼80년대에 지었다는 시멘트 건물이 주를 이루고 포플러나무가 가로수로 늘어서 있다. 간혹 풀밭에서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과 평양시내버스를 기다리는 이, 강가에서 낚시하는 이 등이 보인다. 추진본부가 탄 버스를 보는 평양시민들은 가볍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평양의 대표적인 건물들

평양시내 입구에서부터는 버드나무가 길가 양쪽으로 늘어서 있다. 유경(柳景)이라는 평양의 옛 별칭이 새삼 느껴진다. 북측 안내원에 따르면 “천리마 운동을 하면서 젊은이 동무들이 버드나무를 없애고 개발하자고 했지만 늙은이 동무들이 반대했다”며 “김 주석은 늙은이 동무들의 말을 따라 전통을 보존하라고 해서 지금까지 많이 남아 있다”고 전했다.

평양시내 교통정리를 맡고 있는 여성 교통보안원들이 보인다. 흰색상의에 파란색 치마를 입은 그들은 한 손엔 교통지휘봉을 든 것도 보인다. 버스에 탄 사람들이 손을 흔들자 수줍은 미소로 화답하기도 했다.

지금 버스는 평양시 모란봉 구역을 지나면서 남측의 독립문과 엇비슷하게 생긴 북의 개선문을 통과 중이다. 김일성의 항일투쟁과 45년 10월 평양 개선을 기념해 건립된 이 문은 지난 82년 4월 그의 70회 생일을 기해 완공되었다. 1만500개의 천연화강석을 사용해 높이 60m, 전면폭 50.1m, 측면폭 36.2m로 만든 거대한 문이다.

한편 버스는 서울의 종로와 명칭이 똑같은 평양 종로네거리를 지나, 김일성광장 등을 스쳐 지나가고 있다. 남에는 북의 당 창건 기념일 등에 북한 인민군의 사열식이 거행되는 곳으로 TV를 통해 볼 수 있었던 김일성 광장. 평양시 중심부의 광장으로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평양시의 복구를 위해 수립된 「복구건설총계획」에 따라 54년 건설된 곳이라고 한다. 직사각형으로 된 주 광장과 보조광장이 보이며 지금은 사람들이 없어 한산하다. 주변에는 인민대학습당(국립도서관), 조선역사박물관, 조선미술박물관이 보이고 평양제1백화점 등 평양의 대표적인 건물도 보인다.

인삼닭찜과 담백한 김치

오후 2시 50분, 버스는 남측 추진본부가 7일간 묵을 평양 고려호텔에 도착했다. 고려호텔은 44층으로 된 쌍둥이 빌딩으로 북이 자랑하는 평양제일의 국제급 호텔이다. 위치는 평양의 신시가지인 창광거리에 있다. 주변에는 남쪽의 먹자거리처럼 대부분 식당으로 가득 차 있다. 창광식당, 승리식당 등의 간판도 이색적이며 단고기집도 눈에 띈다.

호텔 안에도 평양 시민들이 가득 모여 환영하고 있다. 이날 가장 환호를 받은 인물은 12년 전 제13차세계청년학생축전에 남측 대표로 왔었던 임수경 씨. 평양 시민 일부가 그를 둘러싸고 환호성을 지르며 부둥켜안기도 한다. 북측 안내원은 “임수경 씨는 우리 인민들이 처음으로 접한 남한 사람이라 다들 인상에 깊이 남아있고 친숙하게 여긴다”고 귀뜸해 줬다.

오후 3시, 남측 대표단 일행은 3층 식당에서 평양에서의 첫 식사를 하게 되었다. 뷔페식의 식사로 이날 남측 인사들에게 가장 인기있던 요리는 인삼닭찜. 그외에도 남쪽 김치와는 사뭇 달리 양념이 거의 들어가지 않은 북의 담백한 김치가 사람들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미 끝났을 줄 알았던 개막식이 아직 열리지도 않았다는 뜻밖의 소식이 전해지기 전 그렇게 방북 첫날 일정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최경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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