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북과 직접 대화 나서야 (Hans Blix, 세계일보, 2006. 10. 23)

북한의 핵실험으로 이제 북한을 어떻게 할 것인지가 세계 초미의 관심사가 됐다. 그러나 북한은 이미 오래 전부터 5∼10개의 핵폭탄을 만드는 데 충분한 플루토늄을 보유한 것으로 의심받아 왔다. 따라서 북한의 핵실험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다만 그들의 핵능력이 명백하게 드러났을 뿐이다.

북한이 핵 포기를 거부한다면 장기적으로 일본, 그리고 어쩌면 한국까지도 자체적으로 핵무기를 개발해야 한다는 압력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원폭을 경험한 일본은 핵무기에 강한 반감을 갖고 있어 단기간에 핵무기를 개발하기는 힘들 것이다. 대신 일본은 미사일 방어망을 강화하고 재래식 전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평화헌법을 개정하는 쪽으로 나갈 것이다.

내 생각으로는 새로 핵무기를 보유하려는 나라들이 그리 많지는 않다. 핵무기 개발 의혹을 받고 있는 이란의 주변 국가들을 예로 들어 보자. 터키는 이란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파키스탄은 이미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 시리아와 사우디아라비아는 핵 기술에 제한이 있고 핵무기를 만들 지식과 기술을 갖춘 이집트는 안보 분야에서 서방과 밀접한 유대를 맺고 있다. 따라서 이란이 핵을 개발하더라도 주변 국가로 확산될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

문제는 북한이 실제로 핵무기를 사용하려 하거나 핵무기를 누군가에 팔려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매우 우려할 만한 일이다. 따라서 북한의 생각을 되돌리고 이란이 핵무기를 개발하지 않도록 하는 데 모든 노력이 경주돼야 한다.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미국이 북한이나 이란을 공격하거나 체제 변화를 기도하지 않을 것이라는 안보 보장을 제공하는 것이다.

북한과 이란이 핵에 의존하려는 것은 그들이 느끼는 안보 위협 때문이다. 북한은 한때 중국과 러시아를 맹방으로 두었으나 이제는 더 이상 중국과 러시아에 의존할 수 없다. 미국은 명백히 북한에 적대적이다. 북한은 고립감을 느끼고 있으며 과대망상에 시달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북한은 핵무기와 미국의 안보 보장 가운데 어느 것이 북한의 안보를 확실하게 지켜줄 것인지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다. 문제는 미국의 입장이 애매모호해 북한이 미국을 믿기 어렵다는 것이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북한을 공격할 의도가 없다고 말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다른 강경주의자들이 대북 채찍을 휘두르고 있다. 미국의 명확한 안보 보장이 이뤄져야만 북한의 생각을 되돌릴 수 있다.

1994년 빌 클린턴 당시 대통령이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을 북한에 특사로 파견, 김일성과 회담함으로써 북한과 대화를 시작해 북한의 플루토늄 비축을 몇 년간 지연시켰던 것처럼 조지 W 부시 대통령도 비슷한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미국이 제시해야 할 카드는 안보 보장과 북한과의 관계 정상화뿐이다. 미국은 북한과의 양자 대화를 시작할 필요가 있다.

북한의 핵실험으로 핵확산금지조약(NPT)이 붕괴됐다는 시각도 있지만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북한과 이란은 협상할 준비가 돼 있다. NPT에 대한 진정한 위협은 주요 핵 보유 국가들이 NPT가 규정한 궁극적인 핵 폐기를 지키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핵을 보유하지 않은 나라들은 핵 보유 국가들에 속고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미국은 탄도탄요격미사일(ABM) 조약에서 탈퇴하고 포괄적 핵실험금지조약(CTBT) 비준을 거부하며 핵무기 성능 개량을 계속하고 있다. 이런 것들이 NPT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고 있다.

북한과 이란의 생각을 바꾸려면 미국이 먼저 CTBT를 비준해야만 한다. 자신은 핵실험 금지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서 북한과 이란에만 핵실험을 금지하라고 요구할 수 있겠는가. 미국이 CTBT를 비준하지 않기 때문에 중국도 비준을 거부한다.

미국이 먼저 핵실험을 금지해야 다른 나라들에 대한 미국의 핵실험 금지 요구도 정당성을 갖출 수 있다.

한스 블릭스 前 IAEA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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