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군축센터 핵없는 세상 2009-09-09   2293

[핵군축 보고서 II] 한국 정부의 유엔 핵군축 결의안 표결 분석②



4. 표결결과를 통해 본 한국 정부 입장과 문제점



 위와 같은 핵군축에 관한 한국 정부의 표결 결과를 보면, 그동안 정부가 대내외적으로 핵군축과 비확산에 적극 동의하고 있을 것이라는 국민적 기대에 못미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음. 정부는 구체적으로 핵무기 보유 국가들의 핵무기 폐기와 군축을 촉구하는 결의안에 대해 적극 찬성하기보다는 대체로 기권을 선택해 왔음.


  한국 정부의 최근 6년 동안의 표결 결과를 살펴본 결과는 다음과 같은 특징과 문제점이 있음.


  1) ‘북핵’은 용인할 수 없지만, 기존 핵무기 철폐에는 소극적, 부정적


 – 유엔 제 1위원회에서 논의되고 본회의에서 표결에 부쳐진 결의안(2008년) 중 한국 정부는 찬성 18, 반대 0, 기권 11의 입장을 보였음. 기권한 11건의 결의안 중 핵군축 분야가 8건을 차지함. 그 결의안들이 주로 핵무기 사용 금지를 포함해 핵무기 보유 국가들의 실질적인 군축 조치와 비핵국가들에 대한 안전보장 등을 요구하는 내용이라는 점에서 한국 정부의 기권 행사는 이해하기 힘듦.


  – 보고서1(유엔 핵군축 결의안에 대한 주요국가 표결 분석)에서 확인되었듯이, 핵보유 국가 중 미국은 총회에 제출된 모든 핵군축 결의안에 반대 입장을 취하고 있으며,미국보다 전면적이지는 않지만 프랑스, 영국, 러시아 등도 핵군축에 반대하고 있음. 이에 대해 한국 정부가 지속적으로 기권을 행사한 것은 적극적으로 핵보유 국가들의 핵군축을 요구하고 있다기보다는 사실상 이에 대해 소극적이거나 부정적인 입장에 가깝다는 것을 의미함. 또한 한국 정부가 미국, 영국, 프랑스 등과 같은 핵보유국들의 이해관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해석도 가능함. 한국 정부가 줄곧 북한의 핵개발을 용인할 수 없으며, 즉각적인 북한 핵무기 폐기를 요구해 왔다는 점에서, 유엔 핵군축 결의안에 대한 정부의 입장은 ‘북핵’을 용인할 수 없을 뿐 ‘핵무기’를 전적으로 불용하는 것은 아니라는 의구심을 갖게 함.


 – 그 외에도 정부는 대량살상무기 운반수단인 미사일을 통제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미사일(Missiles)’ 결의안에 대해서도 2005년을 제외하고 지속적으로 기권하는 입장을 취했음. 또한 정부는 ‘군축 및 비확산 영역의 다자주의 증진’ 결의안에 대해서도 기권해왔는데, 이 결의안이 당사국간의 대화와 협의 등 다자주의 원칙 아래 무기거래 규제, 비확산, 그리고 대량살상무기 통제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기권입장을 고수하는 것은 납득할 수 없는 일임. 그러나 정부는 ‘대량파괴무기 및 미사일 확산이 세계 평화와 안보에 미치는 심각한 위협에 대처’한다는 명분을 세워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PSI(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에 전면 참여를 선언했음.


  2) 핵군축 강조하던 정부, 관련 내용의 유엔 결의안에는 다수 기권


  – 정부가 다수의 유엔 핵군축 결의안 표결에서는 기권을 행사해 온 것과는 달리, NPT(핵확산방지조약) 등 관련 국제회의 석상에서는 핵군축과 비확산에 대한 필요성과 국제사회 노력에 대한 동참을 강조해왔음. 구체적으로 핵보유국과 비핵국가 간의 상호신뢰 구축, 안보위협을 줄이기 위한 소극적 안전보장(Negative Security Assurances), 이를 위한 수단으로 국제적․지역적 비핵지대(NWFZ) 설치, 핵물질 및 품목에 대한 수출 통제 실시 등을 강조한 바 있음.


 – 정부의 이 같은 대외적인 발언은 유엔 제 1위원회와 본회의에서 이루어진 관련 결의안들에 대한 표결 행위와는 모순적이었음. 정부가 기권한 ‘핵무기 사용․위협으로부터 비핵국가의 안전보장(NSA)을 위한 국제협정 체결‘, ’핵군축‘, ’핵무기 사용금지 협약‘, ’핵무기 작동 준비상태 완화‘ 등의 결의안들은 모두 정부의 한반도 비핵화선언이나 NPT 회의 발언내용 등을 담고 있기 때문임.


<표 2> 한국 정부가 기권한 유엔 핵군축 결의안 내용/ 정부 기존정책 및 발언 비교































한국 정부가 기권(또는 반대)

결의안/ 주요 내용


정부 기존정책 및 발언 비교


결의안


주요 내용


핵무기 사용․

위협으로부터 비핵국가의 안전보장(NSA)을 위한 효과적 국제 협정 체결


핵무기 보유국가의 핵무기 사용이나 사용위협으로부터 비핵국가의 안전을 보장하고, 이에 대한 법적 구속력을 갖추도록 추구


– “한국은 외부 위협으로부터의 핵무기 개발을 막기 위한 실질적인 수단의 하나로써, 소극적 안전보장(NSA) 개념을 지지한다.…우리는 핵보유국들의 안전보장이 핵비보유국의 위협인식을 줄일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비확산 의무를 전적으로 동의하는 비핵보유국들이 확실하고 신뢰할만한 소극적 안전보장(NSA)의 권리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2005년 5월 3일 NPT 검토회의, 2007년 4월 30일 NPT 준비회의)


– 한국정부, 비핵국가들의 안보보장을 위한 실질적인 수단으로서 소극적 안전보장(NSA)과 비핵지대(NWFZ)를 강조하는 성명 발표 (2007년 5월 9일, NPT 준비회의)


– “핵보유국들이 소극적 안전보장(NSA)을 지지하게 되면, 핵무기를 획득하려는 국가들을 단념시켜 국가간 신뢰구축에 기여하며 비확산 체제가 강화될 것이다. 또한 핵무기의 전략적 군사적 비중을 줄여 핵보유국들의 핵군축 노력을 촉진시킬 것이다”(2009년 NPT 준비회의)


핵무기 사용 금지 협약


핵무기 개발, 비축, 사용에 대한 전면 금지, 핵무기 완전 제거 위한 일정 제시 촉구


–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 (1991년 12월 31일) 中에서, ‘남과 북은 핵무기의 시험, 제조, 생산, 접수, 보유, 저장, 배비, 사용을 하지 아니한다.’


1995년 및 2000년 NPT 검토회의에서 합의한 핵군축 의무 이행


핵보유국들의 핵군축 의무 이행 강조 및

 2000년 NPT 검토회의 합의사항 이행을 위한 실질적인 조치 촉구


– “2010년 NPT 검토회의가 눈 앞에 다가옴에 따라, 핵보유국들은 1995년 NPT 검토회의 및 연장회의에서 채택된 원칙과 목표, 2000년 NPT검토회의 최종문서에서 제시하는 핵군축보다 훨씬 더 구체적인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2007년 4월 30일 NPT 준비회의)


핵군축


핵군축과 비확산의 원칙과 목적을 확인, 핵보유국들의 핵무기 감축 및 전면적 철폐 등 2000년 NPT 검토회의에서 도출된 13개항의  실질적 이행 강조


– “지금까지 핵무기 감소에 대한 현저한 진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5개 핵보유국들은 여전히 2만 6천개 이상의 핵병기를 보유하고 있다.(2007년 10월 17일 유엔 군축회의(CD))


– “핵보유국과 비보유국간의 인식 차를 줄이기 위해 핵무기 보유국들은 지속가능한 핵군축 조치들을 통해 더 높은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 핵무기 보유국들이 자발적으로 핵군축을 추진해야만 핵무기 비보유국들에게 비확산 규범 강화를 요구하는 도덕적 권위와 정치적 정당성을 줄 수 있다.”(2007년 4월 30일, 2008년 5월 6일 NPT 준비회의)


– “핵보유국이 지켜야 할 약속의 몫이 훨씬 더 커야 한다. 다시 말해 NPT 6장에 따른 핵군축 의무를 수행할 의무가 있다. 우리는 지난 2000년 검토회의에서 핵보유국들이 13개 실질적 이행 조치 형태로 명료하게 핵군축 약속을 했던 것을 상기한다.”(2004년 4월 26일 NPT 준비회의)


– “핵군축은 NPT 레짐의 실효성을 확신하는 데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이것은 핵보유국들이 비핵보유국들에게 핵추구를 포기하는 데 따른 보상 차원에서 만든 약속이다.” (2007년 10월 17일 유엔 군축회의(CD))


핵무기 작동 준비태세 완화


핵무기를 발사 직전상태로 유지하는 것은 의도하지 않은 혹은 우발적 사용의 위험성을 높여 재앙과도 같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어, 핵무기 발사대기 상태 완화를 요구


– “우리는 최근 일부 핵보유국들이 자국의 핵무기를 대체하거나 현대화할 계획이라는 발표에 주목한다. 그러한 조치들은 핵보유국들 사이에 새로운 형태의 핵무기 경쟁을 촉발하게 되어 우려된다. 우리는 핵보유국들이 핵무기를 더 많이 감축하기 위한 실질적인 조치를 취할 것과 더불어 핵무기 작동 태세 완화와 핵무기 배치 감축을 권고한다”(2007년 5월 8일 NPT 준비회의)


 3) 사실상 핵 억지력을 안보수단으로 삼고 있는 한국


 – ‘핵무기 사용금지 협약’을 비롯해 핵무기 보유 국가들의 핵철폐와 핵무기 준비태세 완화 등을 요구하는 결의안에 한국 정부가 기권하는 이유는 한국이 핵우산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음. 핵무기 사용 금지에 대한 반대 등 미국이 핵군축에 전면적으로 반대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은 핵무기 사용을 전제로 한 핵우산을 미국으로부터 제공받고 있음. 이는 유사시 미국의 핵무기가 한반도에 사용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겠다는 것임.


 – 그러나 정부는 지난해 5월 2010년 NPT검토회의를 위한 준비회의에서 “1992년 1월 20일 남북한이 서명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이 있다. 이는 비핵지대(NWFZ) 개념과 유사한 혁신적인 서명이다”라고 설명한 바 있음. 이러한 논리라면, 북한의 핵무기 개발도 한국에 대한 미국의 핵우산 제공도 한반도 비핵화 원칙이나 비핵지대 원리에도 에 어긋나는 것임. 그러나 그 동안 한미 당국은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을 통해 미국의 핵우산 제공을 확인받아 왔고, 올해만 하더라도 한미정상회담을 통해 핵우산을 통한 확장억지력을 정상회담 발표문에 명문화한 바 있음. 현재 정부는 한반도 비핵화 원칙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한미원자력협정까지 개정하겠다고 밝히고 있음.


 – 결국 한국 정부는 대외적인 언술과는 달리 핵 억지력을 중요한 안보 수단으로 삼고 있는 것임. 실제로 미국은 지난해 제63차 유엔총회에서 ‘미국은 지속적으로 핵군축 및 핵무기 의존도 축소를 위해 노력중이나, 대량살상무기(WMD) 확산 위협이 상존하고 있으며 NATO 및 아시아 지역 동맹국에 억지력을 제공하는 차원에서 핵 능력 유지가 여전히 중요하다’는 내용의 기조연설을 한 바 있음. 한국 정부가 핵무기 사용을 전제로 한 핵우산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은 왜 한국이 핵무기 사용과 위협 감소를 요구하는 각종 결의안에 기권하고 있는지를 설명해주고 있음. 이는 한국이 국제사회가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는 핵군축에 적극 동참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핵보유 국가들의 핵무기 정책에 편승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함.4) 



5. 결과 및 제언


 – 핵무기로부터 안전한 한반도와 동북아 그리고 세계를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핵무기에 의존하려는, 핵 억지력을 안보수단으로 삼는 정책을 폐기하는 것이 우선시 되어야 함. 핵 억지력으로 유지되는 평화는 지속가능하지 않으며, 오히려 상호확증적 파괴력을 강화시키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뿐임. 이것이 오늘날 전세계가 직면한 현실이자, 역사의 교훈이기도 함.


 – 핵군축 결의안에 대한 한국 정부의 입장은 ‘핵무기 없는 세계’를 위한 노력이 비단 핵무기 보유 국가들만의 몫이 아님을 보여줌. 핵무기 폐기가 핵국가들만의 의무가 아니라 핵우산을 제공받고 있는 국가들의 의무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한국 정부의 핵군축에 대한 인식 제고와 입장 전환이 요구됨.

 – 결의안 표결에서 드러난 정부의 소극적이고 모순적인 태도는 과연 한국 정부의 핵군축과 비확산에 대한 원칙은 무엇이며, 핵무기 폐기를 이끌어내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하고 있는지 되묻게 함. 그렇지 않아도 핵군축에 관한 핵보유 국가들의 비타협적인 태도나 이들 국가들과 비핵국가들 간의 대립구도는 유엔에서의 핵군축 논의 진전을 가로막고 있는 요인임. 한국이 비핵국가임에도 불구하고 핵보유 국가들의 핵군축을 적극 요구하기보다는, 핵무기를 용인하는 태도로 일관하는 것은 핵군축을 추구하고 있는 국제사회의 노력을 좌절시키고 저해하고 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임. 한반도 핵위기의 당사자인 한국의 이러한 태도는 국제사회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것이자, 북한의 핵무기 폐기를 요구하고 설득하는데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임. 정부는 핵무기 없는 한반도와 세계를 추구하기 위해 핵군축과 비확산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확고한 원칙을 가져야 하며, 이를 바탕으로 유엔에서 다뤄지는 핵군축 결의안에 대해 일관된 입장을 표명해야 함.


 – 정부는 한반도 비핵화를 넘어, 핵무기 보유 국가들의 한반도와 일본에 대한 안전보장과 핵무기의 반입, 배치, 사용을 금지하는 내용의 동북아 비핵지대화를 추진해야 함. 이미 정부 스스로 비핵국가들에 대한 소극적 안전보장과 비핵지대 조약의 필요성을 강조해 왔던 만큼 이를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음. 유엔 핵군축 결의안에 대해 압도적으로 많은 반대입장을 고수해왔던 미국이 오바마 행정부 들어 ‘핵무기 없는 세상’을 주창하고 있고, 최근 정권교체를 이룬 일본 민주당도 동북아 비핵지대를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음. 또한 북한이 자신들의 핵무기 개발을 미국의 핵무기 위협에 대한 자위적 대응이라고 주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동북아 비핵지대화는 북한의 핵폐기를 유도할 수 있고, 한반도 비핵지대를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합리적인 대안이라고 할 수 있음. 따라서 정부는 유엔 등 국제무대에서 동북아 비핵지대화를 적극 의제화할 필요가 있음.


 – 마지막으로 참여연대는 한국 정부의 대외정책 현황에 대한 국민들의 알권리 보장과 시민사회와의 소통을 강조하고자 함. 지난 7월 참여연대는 핵군축과 비확산에 대한 정부의 입장과 함께, 다수의 유엔 핵군축 결의안에 정부가 기권한 구체적인 사유를 질의한 바 있음. 그러나 담당부처인 외통부는 지금껏 아무런 답변을 내놓지 않고 있음. 이런 사례가 비단 이번 경우만이 아님. 대한민국 국민을 대표하여 국제사회에 입장을 표명하고 발언을 하는 것이라면, 관련 정책을 국민들에게 공개하고 입장을 설명하는 것은 정부의 책무임. 더욱이 한국 정부의 핵군축에 대한 입장이나 외교적 행보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은 일상적인 핵갈등 상황에 노출되어 있는 국민들에게는 지극히 당연한 일임. 정부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외교안보 영역이 성역으로 남아 있을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정부의 대외정책과 그 결정과정을 국민들에게 개방하고 소통하려는 노력을 경주해야 함.



 3)   2003년-2008년 기간은 미 부시 행정부 집권기로, 특히 핵무기, 외기권 분야 유엔 결의안에 대해 미국은 예외 없이 반대 입장을 유지함. 이는 부시행정부의 군사 패권주의와 일방주의적 태도를 유엔 외교에서도 그대로 드러낸 것으로 설명될 수 있음.

  4)   정부는 핵물질, 장치, 기술 이전을 감시․감독하는 핵공급그룹(NSG)의 회원국으로 활동해 왔음. NSG는 지난 2008년 9월, 국제적으로 논란이 되었던 미-인도 핵 민간협력 협정을 용인하고, 결과적으로 NPT에 가입하지 않은 채 핵무기를 개발한 인도의 핵개발을 용인한 것에 대해 한국 정부도 이에 동의한 것임. 이 역시 핵정책 관련한 정부의 모호하고 이중적인 기준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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