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군축센터 파병 2004-07-09   958

“전쟁은 페스트, 파병은 이 독균을 매개하는 행위”

민족문학작가회의 9일 광화문서 ‘반전평화, 시화전 및 시낭송의 밤’ 열어

“우리는 죽음, 학살보다, 더 확실한 현실을 본 적이 없기에 파병 앞에 붙은 어떤 수사도 인정할 수 없습니다. 나 살기 위하여 죄 없는 누군가를 죽일 수 없나니, 그 마음이 죽음을 살릴 것입니다. 우리는 그 의지에 감염되어야 하고 매개할 소명을 노래합니다.”

민족문학작가회의(위원장 염무웅)가 파병철회를 위한 작가행동을 시작한다. 민족문학작가회의는 “우리는 장미를 노래하고 싶다”라는 제목으로 9일 오후 3시부터 9시까지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앞에서 ‘반전평화, 거리시화전 및 시낭송의 밤’을 열어 문학적 감성으로 반전평화 메세지를 전한다.

민족문학작가회의는 전쟁을 페스트라는 질병에, 파병은 이러한 독균을 인류에게 매개하는 행위라고 비난한다. 또한 고 김선일 씨 피살사건 이후 오히려 파병강행을 추동하려는 보수언론도 함께 비난한다.

“전쟁은 인류의 근본적인 도덕을 말살하는 페스트요. 파병은 세계의 양심인류들에게 치명적인 독균을 매개하는 행위에 다름 아니다. 김선일 씨 사망 이후 사회의 여론은 더욱 극단화 되고 있다. 근본 원인의 성찰이나 대책보다는 즉흥적인 폭력적 감성에 휘둘려 확전을 주장하는가 하면, 일부 보수언론은 파병철회 여론을 두고 ‘이라크 저항세력의 주장과 똑같지 않느냐’ 며 얼토당토않은 불립문자를 내세워 파병선동에 앞장서고 있다.”

지난 해 이라크 전쟁 발발 후 시민사회의 반전평화운동에 개별적으로 동참해온 작가들이 아예 별도로 행사를 열어 파병철회를 선언하는 목적은 “문학적 감성으로 양심을 건드려 꺼뜨릴 수 없는 촛불을 지키자고 외치겠다”는 것이다. 주최 측은 이번 행사가 현재 지속되고 있는 반전평화운동에 작가들이 동참의지를 밝히는 선언이자 연대의 한마당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 행사는 오후 3시 고은, 곽재구, 안도현, 박노해 등 40여 명의 시인들이 참여하는 시화전으로부터 시작되어 저녁 7시 30분 ‘반전평화 시 낭송의 밤’으로 이어진다. 오수연 소설가가 민족문학작가회의의 반전 선언문을 낭독하면서 본격적인 시의 밤이 시작될 예정이다.

문동만 시인의 사회로 정희성 시인, 이경자 소설가, 김창규 시인 등이 시를 낭송하고 김재영 소설가가 산문을 낭송하게 된다. 꽃다지 등이 찬조 공연도 예정되어 있다. 이날 행사에서는 이라크인 하미드 알 무크다르 시인이 고 김선일 씨에 보내는 편지도 낭독될 예정이다.

다음은 이날 행사에서 낭독될 작품 중 일부다.

나의 편지 (고은 시인)

반대하라.

지금 사막은 잠들지 못한다.

지금 메소포타미아의 아이와 어머니는

외진 울음도 나누지 못하고 죽어간다.

기원전 유적은 동트면 또 잿더미

지금 지구는 야만의 행성이 되어버렸다.

오직 토마호크만이

스텔스만이

무도의 세습침략만이 있고

다른 것은 없다.

반대하라.

반대하라.

우리들이 세운 기둥마다 새겼던 말

정의와 자유

해방

세계 평화

기어이 찾아야 할 그 말들을 도둑맞았다.

아 오늘의 이라크는 내일의 어디인가

드디어 미쳤다 (안도현 시인)

제 여인의 허리를 껴안던 팔로 남의 여인의 허리를 쏘려고 조준을 한다

제 딸아이의 볼을 쓰다듬던 손으로 남의 딸아이의 볼을 향해 방아쇠를 당긴다

제 아들의 발등 앞에 축구공을 차주던 발로 남의 아들의 발등을 짓뭉개는 탱크를 운전한다

제 마을의 울타리가 부서지면 달려나가 수리하더니 남의 마을의 울타리는 박격포로 부숴 버린다

제 나라의 나무와 꽃이 목마르면 물도 잘 뿌려주더니 남의 마을의 나무와 꽃에는 수천 발 미사일을 퍼붓는다

드디어 미쳤다…

제 집의 개는 사람보다 더 사랑하고 남의 집의 사람은 개보다 더 증오한다

하나뿐인 별에게 (이상국 시인)

이 별은 너무 몸이 무겁다

특히 아메리카나 유럽 쪽으로 돌 때면

별은 망가질 듯 삐걱거린다

쓸데없이 가진 게 너무 많아서 그렇다

지구라는 별은 원래 조금 삐뚜르하게 걸려 있는데

한쪽에만 자꾸 짐이 실리면 아주 기울어서

어느 날 중심을 잃고

어둠 속으로 떨어지게 될지도 모른다

무역센터 빌딩 같은 것도 그래서 무너지는 것이다

이 별의 균형을 잡기 위해서는

아메리카처럼 힘겨워하는 땅은

갈아엎어 땅콩을 심거나

한 만년 묵밭으로 쉬게 해야 하는데

그 때까지 별이 견딜 수 있을지

오늘밤도 별은 물레방아처럼

삐거덕거리며 돌고 있다

욕은 나의 초보적 저항이다 – 조지부詩 (문동만 시인)

차라리 그 시간에 그거나 세우라

학살의 여신상 그 관능의 여인을 불러,

차라리 깊은 간음이나 즐기라

한때, 너의 호적수처럼 지퍼를 풀고

오르가즘에 대하여

몰래 먹는 사과를 찬미하라

네 친히 찬미하는 예수도 네 좆을 이해하리라

십계의 계율도 전능한 너를 단죄치 않으리라

너는 하나님의 아버지시므로,

절정에 갈증이 타느냐? 이런… 석유를 처 먹으라

삼 시 세끼 아가리에 걸쭉한 원유를

원 없이 처 먹으라

머리가죽만 남고 골통이 날아간

이락의 소년 앞에서

푸줏간의 날고기처럼 너덜대는

도륙된 소녀의 정강이 앞에서

피칠갑의 아가리로 처먹으라 처!처먹으라

너는 얼마나 말랐더냐 얼마나 좋은 봄밤이더냐

홀라당 벗어도 밤바람 견딜만하고 별은 깊게 빛난다

세우기에 얼마나 좋은 봄밤이냐

고작, 학살과의 로멘스라니, 때려치우고

학살과의 스캔들이라니, 걷어치우고

학살의 킨제이보고서라니… 니에미 접 붙어먹을,

고작 좆은 못 세우고 총대를 세우다니

포신만 잔뜩 세우다니,

발기된 크루즈 토마호크 미사일이라니

니에미 접 붙어먹을,

이제 그 분이 오실 것이다

추악과 위선과 도륙의 역사를 끝내시는

그 분이 선홍빛 얼굴로 오실 것이다, 반전의 전사

오! 시체위의 복상사여!

오! 모래밭의 복상사여!

얼굴 없는 얼굴 – 김선일의 주검 앞에 (오인태 시인)

네 어린 날 착한 머리맡을

적시며 넘쳐나던 바다,

그 바다에 잠겨 너는 꿈꾸었겠다

황금빛 낙타의 손을 잡고

옛 궁전을 찾아가는 천일 밤 동안

나는 달디단 아라비안나이트를 읽으리라

그러나 채 낙타를 만나기도 전에

아랍의 사막은 네 작은 몸을 덮쳐버리고

말았다 속내를 알 수 없는 캄캄한 미궁

그 시간, 먼 별빛조차 사라진 네 고향 하늘엔

어린 날 너를 사정없이 때리던 바닷물처럼

비가 쏟아졌다. 막무가내의

빗속에서 떨고있는 너를 보았다.

죽지만 말아다오

죽이지만 말아다오

절규하는 네 등뒤엔 낯을 가린

알 수 없는 얼굴들이 버텨서있었다.

그들은 누구인가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네 목덜미에 끝내 사막의

바람보다 더 날카로운 비수를 꽂아버린

그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네 짧은 생애에 꽃 한 송이 건넨 적 없고

네 황금빛 꿈에 향료 한 방울 보태주지 못한

고향은 먼 먼길을 얼굴 없이 돌아온 네게

목 축일 마지막 술 한잔조차 건넬 수 없어

차마 이렇게 치켜들 수 없는 뜨거운 목을 놓고,

시여, 차라리 죽어버려라 (김수열 시인)

한 끼니 밥도 되지 못하는 네가

한 방울의 물도 되지 못하고

한 방울의 피는 더욱 될 수 없는 네가

하물며 저 절절한 죽음 앞에서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Your life is important.

My life is important, too.

Really, I don’t want to die, please!”

꽃다운 젊음 하나 지키지 못하는 조국에서

더 많은 젊음을 총알받이로 보내야 하는 조국에서

너를 부여안고 눈물 흘린다 한들

풀 한 포기 키워내겠느냐

꽃 한 송이 피어나겠느냐

그러니, 시여

차라리 죽어버려라

장미를 노래하고 싶다 (손세실리아 시인)

죽음이 광장의 시가 되어

장대 끝 만장으로 흐느낀지 오래다.

선교사역을 꿈꾸던 그대가

전쟁난민의 구호용 담요를 포장하는 동안

굶주린 팔루자 거리의 개들은

시체더미를 헤집으며 허기를 채웠고,

그대가 고국에서 보낼 유월의 휴가를 위해

값싼 항공편을 수소문하며

달력에 잦은 눈길을 보내는 동안

고백하거니와 그대를 낳은 그대의 조국은

열사의 땅으로 송출할

젊고 싱싱한 제물색출에만 독이 올라있었다.

그대 조국이

어떤 불온한 음모도 품어본 적 없는

순결한 청춘을 번제물로 상납하기 위해

포악하고 추악한 전쟁광에게 영혼을 매춘하는 동안

겁에 질린 외마디만 남기고 그대는 갔다.

살려달라, 제발!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그대의 살가운 전자우편이 부고장처럼 날아들었다.

주인 잃은 유월의 오렌지빛 슬픈 휴가와 함께.

그대의 죽음을 팔아 모국어로 쓰여질

모든 시어들에 헌화하며,

더이상 눈앞의 탱크와 전쟁을 시로 쓰고 싶지 않다던

자카리아 모하메드*의 고백을 훔친다.

나는 장미를 노래하고 싶다.

*자카리아 모하메드: 1950년 팔레스타인 나불루스 출생, 시인, 반전운동가.

고 김선일에게 보내는 편지 (하미드 알 무크다르 시인, 이라크)

김선일 형제여!

우리는 홀로 독재의 살육장에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불을 뿜는 총구와 조화가 넘쳐나는 그곳에서

나의 글이 당신을 살해한 자에게 경고가 되길 바랍니다.

나의 지난 밤은 독재에 대한 공포였습니다.

독재는 칼로서 우리를 살육했습니다.

우리의 땅은 공동묘지로 넘쳐나고

감옥과 피난처는 우리의 울부짖음으로 가득할 정도로.

수감자들이여! 우리는 감옥 안에서 숨을 거둘 것입니다.

우리는 생명의 열매를 맛보기보다 죽음의 열매를 더 많이 맛보았습니다.

하늘은 어머니와 고아들의 눈물로 가득찼습니다.

처마는 성난 비로 흠뻑 젖었습니다.

독재는 이제 쥐구멍으로 숨어들었습니다.

독재의 그늘이 걷히고, 권좌에서 물러났습니다.

우리는 속박의 끈을 끊고 자유를 갈망했습니다.

우리는 자유의 길을 막다른 길까지 따라갔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늑대의 꼬리, 바트당의 무리들이 생존했습니다.

그들은 다이너마이트를 사용한 테러분자입니다.

그들은 경계를 넘어 우리의 순수한 영혼과 몸과 우리의 자동차를 파괴하였습니다.

그들은 자궁 속에서 태아를 살해했고,

학교에서 학생들을 살해했고,

사원에서 셰이크들을,

집에서 숙녀들을 살해했습니다.

그들이 당신 선일 씨를 죽였을 때,

당신의 피는 우리 이라크 국민의 머리를 따라 흘렀으며

그래서 우리의 외침과 뒤섞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하나가 되었습니다.

당신의 어머니는 자식을 잃어 흐느끼는 우리의 어머니와 같습니다.

오늘, 우리의 어머니는 당신 때문에 울고 있습니다.

마치 당신이 그들의 자식인 양

우리의 아이들도 당신 때문에 울고 있습니다.

마치 당신이 그들의 아버지인 양

나 또한 당신 때문에 울고 있습니다.

당신은 이제 나의 형제가 되었기 때문이죠.

피로써, 고통으로써 그런 죽음으로써.

최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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