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군축센터 일반(pd) 2014-05-04   3957

[논평] 어린이, 청소년에 대한 반인권적 군사교육 중단하라

어린이, 청소년에 대한 반인권적 군사교육 중단하라

군사주의 주입하는 전체주의식 안보교육‧병영체험 중단해야

국제인권기준에 맞춰 시민안전과 인권에 충실해야

 

 

내일(5/5)은 존엄한 민주시민의 일원인 어린이, 청소년들을 위해 제정된 어린이날이다. 그러나 세월호 침몰사건으로 200여명이 넘는 희생자가 발생했고 여전히 80여명이 실종 상태인 지금, 우리는 참담하고 비통한 마음으로 어린이날을 맞이하고 있다. 참여연대와 태안사설해병대 캠프 참사 유가족 일동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포함한 모든 희생자들을 애도하며 철저한 진상규명 및 재발방지대책 마련을 촉구한다. 

 

또한 우리는 국가가 시민 안전에 대한 책임은 방기하면서도 어린이, 청소년에게 폭력적 가치와 군사주의를 강요하고 여전히 안보-군사교육을 장려하고 있음에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 이에 대해 모든 시민의 자성과 경계심이 필요하다. 작년 7월 강압적인 훈련 속에서 구명조끼 없이 바다로 들어갔다가 5명의 학생들이 희생된 태안사설해병대 캠프 참사는 이러한 잘못된 군사교육의 폐해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학생들이 희생된 지 291일째인 오늘까지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이뤄지지 않고 있어 유가족들의 고통과 슬픔은 계속되고 있다. 정부는 태안사설해병대 캠프 참사에 대해 전면 재수사를 실시하고 현장검증을 통해 사건 진상을 철저히 규명해야 할 것이며 관련 책임자들을 엄중히 처벌해야 한다. 

 

태안사설해병대 캠프 참사는 단순한 안전설비의 문제나 공무원과 교사의 직무유기 문제로 국한될 것이 아니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다양성보다는 ‘강해야만 살아남는다’라는 군사주의 가치를 획일적으로 학생들에게 강제로 적용했던 반인권적인 태도의 결과였다. 병영체험 캠프는 학생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고 하나 그 훈련과정을 보면 유격체조와 총검술, 야간 행군과 사격훈련 등을 실시하고 있어 거의 실제 준군사훈련이라 할 수 있다. 훈련과정에서는 기합과 얼차려와 같은 강압적인 통제방식이 동원되기도 한다. 

 

문제가 이렇게 심각한데도 정부는 여전히 군사훈련과 안보교육을 장려하고 있다. 현재 전국 시‧도 교육청은 국방부 소속 지역부대와 교육업무협약을 체결해 학생들의 병영체험을 독려하고 있으며, 심지어 예산까지 지원하고 있다. 정의당 정진후 의원실에 따르면 2009년부터 2013년까지 서울을 제외한 16개 시‧도의 병영체험 참가 학생 수는 11만 1,300여명에 이르며, 윤명화 서울시의원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13년까지 서울 시내에서만 병영체험에 참가한 학생 수는 3만 5,500여명에 이른다. 또한 지난 3년간 국가보훈처를 통해 체험교육을 받은 학생들은 약 30만 명에 달한다. 현재 국방부, 교육부 및 각 지역 교육청이 현황조차 파악하고 있지 않은 사설병영캠프까지 포함하면 매년 수만 명의 학생들이 준군사교육 및 실질적인 군사훈련을 받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훈련 속에서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불합리한 제도와 반인권적 처우에 정당한 이의를 제기하는 법이 아니라 순응하는 법만을 배우게 된다. 사회의 부조리에도 ‘침묵하고 가만히 있는’ 사람을 만들어내는 과정인 것이다. 

 

병영체험 등을 통한 준군사훈련과 국가 또는 상급자에 대한 맹목적 충성을 강조하는 안보교육이 가진 군사주의적 전체주의는 창조적이고 민주적인 시민됨에 역행한다. 상명하복의 강압적인 위계질서와 일방적 소통, 무조건적인 복종심의 형성, 신체적 고통을 통한 가학적 훈련은 인권의 모든 기준에 역행한다. 상대에 대한 적대감과 군사적 대응만을 강조하는 군사적 세계관은 개인의 자율성과 개성을 경시하게 한다. 무엇보다도 이들 군사훈련과 안보교육의 주목적은 추상적인 국가안보나 외부 위협을 강조하는데 있고, 정작 시민의 안전을 실질적으로 지키는 방법을 배양하지 않아 문제는 더 심각한다. 형식적으로 재난대응에 시간을 할애하지만 군사교육 담당자들은 이 문제에 전문성과 경험도 없으며, 유사시에는 당국의 통제에 맹목적인 순응만을 강조하기 일쑤다. 때문에 실제 위기상황에서는 이런 교육이 도리어 더 큰 재난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침몰하는 세월호에서 “가만히 있으라”는 관리자들의 무책임한 선내 방송에 순응하다 희생당한 학생들은 전체주의적인 규율문화에는 익숙했지만, 재난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구체적인 방법 그리고 상황에 대처할 비판적 사고와 자율적 결정 능력 발휘와 관련해서는 국가로부터 제대로 교육받은 적도 훈련한 적도 없는 상태였다. 최근 6년간 군사주의 안보교육이라는 쓰나미로 인해 참여‧논의‧비판‧성찰‧자율적 결정과 같은 민주적 교육은 침몰하고 만 것이다.

 

병영체험과 안보교육에 포함된 ‘적’에 대한 적개심 주입 교육, 살상무기 조작 및 서바이벌 형식의 사격훈련, 어린이에 대한 화생방 훈련 등은 우리나라가 1991년에 비준한 아동권리협약(Convention on the Rights of Child)의 명백한 위반이기도 하다. 협약에서는 평화, 존엄, 관용, 자유, 평등, 연대의 정신에 기반 해 어린이 교육이 모든 사람과의 관계에서 이해 평화, 관용, 성(性) 평등 및 우정의 정신을 지향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2011년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한국 정부에게 “적대행위에 어린이의 징집 및 참여와 관련한 (협약 관련) 조항 위반을 법으로 명백히 금지하라”고 권고를 내린 바 있다. 정부는 해당 권고와 아동권리협약의 정신에 따라 현재 진행 중인 어린이,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병영캠프 체험 등 준군사교육 및 군사훈련이 반인권적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이를 전면 중단해야 한다. 

 

국가가 해야 할 일은 맹목적인 충성 강요가 아니라, 어린이, 청소년을 안전하게 지켜주고 그들의 인권을 존중하고 보장하는 것이며, 국민의 아픔과 고통을 책임지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 후 태안사설해병대 캠프 유가족들이 기자회견에서 요구한 바와 같이 두 사건 모두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이뤄지고 근본적인 재발방지 대책이 수립되어야 한다. 참여연대와 태안사설해병대 캠프 참사 유가족 일동은 폭력적인 어린이, 청소년 병영체험 교육을 근절하고 어린이와 청소년의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로 한 걸음 더 나가갈 수 있도록 군사화 된 교육 현실을 지속적으로 감시하고 그에 상응하는 국제적, 국내적 책임을 물을 것이다. 반인권적이고 전체주의적인 교육으로 인한 희생자들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참여연대 / 태안사설해병대 캠프 참사 유가족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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