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군축센터 칼럼(pd) 2014-05-20   2181

[2014 평화상상④] 남북 간 체제 경쟁, ‘국민 보호’ 경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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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밝힌 통일 대박론 이후 우리 사회에서 통일이 새로운 화두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신뢰와 통일을 말하면서도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을 전제로 한 군사 훈련을 여전히 진행하고 있고, 통일의 밑거름이 될 교류와 협력에 대해서는 인색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박 근혜 정부 2년 차를 맞아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과 참여연대는 군사 동맹의 한계를 진단하고, 동북아 영토분쟁과 미·중 갈등 사이에서 한국이 직면하고 있는 외교적 딜레마를 타개할 평화적·포괄적 해법을 모색하는 ‘2014, 평화 상상’ 연재를 공동으로 기획했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필자들을 통해 현안 대응책은 물론 평화를 바라는 이들에게 외교·안보 분야를 바라보는 바람직한 관점을 제안하고자 합니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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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간 체제 경쟁, ‘국민 보호’ 경쟁으로

세월호 참사와 평양 아파트 붕괴사고

서보혁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실행위원,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HK연구교수

 

 

세월호 참사와 평양아파트 붕괴사고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모든 정치권력의 일차적 의무임을 상기시켜준다. 남북한 정치권력은 서로 자기 체제가 우월하다고 과시하는 대신 상대 체제를 비하하면서 적대와 대립을 정당화해왔다.

그러나 남북 간 정치체제의 차이와 대립은 시민의 생명과 안전 앞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 실제 세월호 참사 1개월여 동안 의미 있는 대북정책은 작동할 수 없었고 남북 군 당국 간 상호비방은 국민보호 책임을 질타하는 여론의 관심을 전환시키지 못했다.

지난 5월 13일 평양시 평천구역에 건설 중이던 23층 아파트가 붕괴됐다. 자세한 피해 규모는 아직 알 수 없으나, 북한 관영언론이 이 사실과 함께 인민보안부장과 사고 건물 건설 책임자가 평양시민들 앞에서 공개 사과했다고 보도했다. 이례적인 소식이다. 여기에 분명 세월호 참사의 여파가 북에도 미치고 있고, 북한정권 역시 생명과 안전에 관한 주민 동향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을 읽을 수 있다. 앞으로는 시민의 생명과 안전에 관해서는 소문이나 간접적인 정보전달이 아니라 보다 정확하고 직접적으로 남북 간 정보 교류가 일어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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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 아파트 공사장에서 발생한 사고와 관련해 책임자들이 지난 17일 유가족과 평천구역 주민들을 만나 위로의 뜻을 표하고 사과하고 있는 모습 ⓒAP=연합뉴스

북측 적십자사는 4월 13일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위로 전통문을 남측에 통보한 적이 있다. 그에 앞서 남측도 2004년 용천역 폭발사고와 2006년 수해 때 북측에 전통문을 보내 위로를 전한 바 있다. 이번 평양아파트 붕괴사고를 접해 우리 정부는 북측에 위로 전통문을 보낼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조속히 보내길 바란다. 나아가 적절한 시점에 적십자사를 비롯해 재난 관계기관이 재난 구조 관련 협력사업 추진을 위한 남북대화를 제의하면 좋겠다.

지금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에서는 ‘국민보호 책임(Right to protect:R2P)’이라는 담론이 유행이다. 2005년 유엔 세계정상회의 선언문(A/RES/60/1, para. 138-140)과 2009년 유엔 총회 보고서(A/63/677)로 공식화된 국민보호책임론은 3가지 기둥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것은 1) 국가가 대량학살, 전쟁범죄, 반인도적 범죄, 인종청소 등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고, 2) 국제사회는 국가의 그런 책임을 격려하고 지원할 책임이 있고, 3) 또 국제사회는 위 범죄들로부터 대중을 보호하기 위해 적절한 외교적, 인도적, 다른 수단을 채택하되, 해당 국가가 국민보호 책임에 실패했을 때 유엔 헌장에 의거해 집단적 행동을 취해 보호할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보호책임론은 실제 리비아 사태에 대한 군사적 개입의 근거가 됐고, 현재 시리아 사태에도 적용해야 한다는 국제여론이 높다.

그런데 국민보호책임론의 적용 범위가 위에서 제시된 네 경우와 같이 전시를 전제로 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일어나고 있다. 일부 중견국가들(middle powers)과 전문가들은 국민보호책임이 전시가 아니더라도 대규모 인명 피해가 발생했거나 그런 징후가 있을 경우에도 적용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규모 재난이 그런 경우이다. 실제 재난과 전시의 경우 모두 예방, 대응, 사후조치 등에서 작업 매뉴얼에 유사점이 많다. 다만, 그 적용 방법에서 구체적인 전시 혹은 재난 상황에 따라 유연한 대응이 요구된다.

오늘날 국제협력은 전통적 안보, 국가안보는 물론 비전통적 안보, 인간 안보의 측면으로 확대되고 있다. 재난의 경우도 자연재난과 인간(혹은 사회)재난의 구분이 결합돼 복잡해지고 있다. 남북 간에도 병충해, 조류독감, 수해 등에 관한 협력에 합의가 이루어졌고 직간접적으로 협력 사례가 있다.

때마침 류길재 통일부 장관이 오는 20∼21일 상하이에서 개최되는 ‘아시아 교류 및 신뢰 구축회의(CICA)’에 참석할 예정이다. 회의 이름에 걸맞게 류 장관이 남북 간 신뢰구축을 위한 대화를 제안하며 거기에 재난구호협력을 통한 신뢰구축을 포함시킬 필요가 있다.

남북 간에 두 가지 발상이 필요한 때이다. 세계 냉전 구조의 마지막 섬이라는 오명을 세계 공동번영의 전환점으로 전환시킬 발상의 전환이 그 하나요, (통일까지 불가피한) 남북 간 체제경쟁을 국민보호 책임을 둘러싸고 전개하는 방향으로 전환하는 것이 다른 하나이다. 기후변화에 따른 생활 환경의 변화와 빈곤, 질병, 환경 등 인간 안보 차원에서는 남북의 경계가 무의미하다. 한반도 거주민들의 공동 생존을 위해 대화와 협력이 요청되고 있다. 그 방향으로 국민보호 책임이 부각되고 있고 그 영역이 전시는 물론 재난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세월호 참사와 평양아파트 붕괴 사건으로 남북의 두 정권은 국민보호에 무한 책임을 되새겨 국민보호의 시각에서 남북대화를 리셋(reset)하고, 반도의 대중들과 국제사회는 국가의 책임을 감시하는 노력을 높여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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