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세미나] 독일과 한국의 미군기지 재편 현황과 쟁점


미국의 세계군사전략 변화에 따라 대규모의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독일과 한국에서 미군기지 재배치가 진행되고 있다. 한국의 경우 미군기지 재배치를 둘러싼 첨예한 갈등이 반환기지 환경오염문제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며, 독일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에 지난 27일,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는 한국과 독일에서의 미군기지 전문가들이 모여 미군기지 재배치 현황과 쟁점에 대해 토론하는 국제세미나가 있었다. 분단국가의 경험이나 대규모 미군 주둔 등 한국의 상황과 유사하지만 독일의 미군기지 문제는 거의 국내에 소개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독일 측 전문가들이 참가하는 이번 세미나는 매우 뜻깊은 자리였다.



1부, “한국과 독일에서의 미군기지 재편 현황과 의미”

첫 번째 독일측 발표자로 나온 우베 슈테르 박사는 독일 사민당 원내 외교정책 자문위원 출신이다. 슈테르 박사는 먼저 주독 미군기지 재편 경과 및 쟁점, 외국군 주둔 조약의 변천과정 등에 대해 소개했다.

그에 따르면 지금 주독미군은 신속화, 경량화를 추구하며 감축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이는 한국과 같은 미국의 세계 군사전략에 따른 미군 재배치 계획이라기보다는 독일 통일, 구동독에서의 소련군 철수, 바르샤바 조약기구 해체의 결과로 보아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슈테르 박사의 이 같은 의견에 대해 한국 측 발표자, 토론자들은 미국의 2003년 GPR(해외 주둔 미군 재배치 계획)을 언급하며 이견들을 제기하였다.

특히 많은 해외 미군본부가 독일에 위치해 있고, 유럽사령부 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사령부까지 독일에 위치해 있다는 점에서 독일에서의 미군 재배치를 단순하게 볼 수 없다는 의견들이 독일 측에서도 나왔다. 그러자 슈테르 박사는 미국의 글로벌한 군사재배치와 군사변환은 럼스펠드 구상에 따른 것이었지만 전 세계 곳곳에서 성공적으로 진행되지 못해 무력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주장하는 등 팽팽한 반박들이 오갔다. 


한편 이번 발표를 통해 독일의 미군기지 통폐합과 확장 사례를 자세히 알 수 있었다. 하나는 만하임, 하이델베르크 시의 미군기지가 통폐합되고 비스바덴기지로 이전하는 것과 또 다른 하나는 프랑크푸르트 라인/마인기지를 람슈타인과 슈팡달렘 지역으로의 이전이 있었다. 람슈타인 공항은 미국의 해외 기지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군사 공항이며 나토 북유럽 본부가 위치한 곳이라고 했다.

슈테르 박사에 따르면, 독일에서 외국군대의 권리는 1959년 나토군협정에 명시되었는데 나토군협정에 대한 부속협정에 나토군 최고사령관의 지휘권 및 독일 영공에서 군사훈련을 실시할 권리 등의 불평등 조항들이 포함되어 있다고 했다. 그러나 90년 2+4 조약에 따라 98년 부속협정이 개정되어 이러한 불평등 조약들이 어느 정도 개선되는 과정을 거친 적이 있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슈테르 박사는 한국과는 다른 독일인들의 외국군 주둔에 대한 인식을 설명했다. 대부분의 독일인들은 미국의 군사정책에는 반대하더라도 미군 주둔을 원하는 여론이 높다고 했다. 독일군이 다국적 군사구조 틀 내에 있는 것이 독일군 단독으로 군사적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안전장치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이와 연계해 독일의 파시즘적인 우익 민족주의의 기승을 막기 위해 독일 국민들 스스로 다자간 군사협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점 역시 한국과는 매우 다른 차원에서 외국군 주둔에 대한 쟁점들이 존재함을 알 수 있다.


다음으로  주한미군 기지 재편 문제에 대해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조성렬 신안보연구실장의 발표가 있었다. 조 박사는 주한미군이 45년부터 주둔이래 6번의 감축이 진행되었지만 이번과 같은 재편 작업은 처음이라고 운을 떼었다. 또한 앞서 언급한대로 2003년부터 진행되는 미군 병력 감축 및 재편 문제는 냉전 이후 과다한 국방예산을 줄이고 전세계 차원에서 해외미군기지를 신속기동군으로 재편하기 위함이며 그 일환으로 주한미군과 주독미군 재편이 이뤄지는 것이라며 슈테르 박사와 상이한 의견을 피력했다.


이어 용산미군기지이전에 대해서 이전비용을 한국측이 모두 부담하게 되어 있는데 무려 50~60억 달러가 예상된다고 했다. 그리고 평택미군기지 이전 문제에 있어서 미국 측은 자신들이 부담하기로 한 이전 비용에 방위비 분담금을 사용하기를 희망하는 사항과 함께 반환기지 환경 문제 촉발 등이 한미간 민감한 쟁점이 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덧붙여 주한미군 주둔경비지원금 역시 미국측이 한국 측 부담비율을 42%에서 50%로 상향 조정하려고 하는데, 한국 측은 국가예산 증가율에 맞춰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어 타협이 쉽게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또한 미국 측은 용산과 평택 기지이전을 2019년까지 지연시킬 것이라는 의사를 보이고 있어 이로 인해 발생하는 엄청난 비용 증가가 한국 측 부담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조 박사는 대다수 한국인들이 주한미군 철수에는 반대하지만 한국 측의 엄청난 비용부담이 고스란히 국민들 몫으로 떠넘겨지는 문제에는 분명히 반대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현재 진행되고 있는 한미 간 협상에서 한국정부는 아마도 미국 측 입장에 근접해 있는 것 같다는 예측을 조심스럽게 내놓았다.


두 분의 발표가 끝나고 이어 활발한 토론이 진행되었다. 먼저 독일의 헤센 평화갈등 연구재단의 한스 요하임 슈미트 박사는 기지 이전 과정의 투명성을 위해 독일 의회에서 건설청문회를 실시하며 기지이전 과정 및 결과에 대해 주민들이 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되어 있다고 했다. 그러나 군사화정보협회 이사를 맡고 있는 클라우디아 하이트 박사의 주장은 이와 달랐다. 하이트 박사는 독일 연방정부가 주민들의 민원을 접수하거나 정보를 공개한다 할지라도 실제로 대책을 강구하거나 미 측에게 영향력을 행사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또한 양국간 군사시설 이용에 관한 행정협약에 있어서도 미군에 대한 예외사항이 많을 뿐더러 군사훈련 자체에 대해서 매우 관대한 내용들로 채워져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 밖에 외교안보 전문지 D&D 포커스의 김종대 편집장은 미국이 현재 하나의 글로벌 네트워크로서 크게 우주, 항공분야에서 MD체제를, 해상분야에서 PSI 확대를, 개인에 대한 통제로서 전자여권 도입 등을 추구하고 있음을 지적하기도 했다. 또한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박정은 팀장은 독일에서의 원인 제공자 비용부담 원칙 준수 여부, 나토군사령관과 주독미군 사령관의 위상 및 관계, 이라크 전쟁에서 미국이 독일 영공을 사용한 것과 관련 미군의 독일 영공 사용 허가에 대한 지자체 통제나 관리 방식, 과도한 미군주둔경비지원금 지불에 대한 독일연방정부의 입장 등에 대한 세부적인 점들을 질의했다.


그리고 박 팀장은 쌍무간 동맹과 다자안보협력의 병행 가능성과 미 대선결과에 따른 군사전략 변화 등에 대해서도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였다. 그리고 미국의 경제위기가 미군 주둔국의 더 큰 재정적 부담을 요구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덧붙였다. 이에 대해 조성렬 박사는 한, 미, 일 군사적 다자구조를 갖는 것이 미국의 오래된 의도였지만, 한국은 일본과의 역사문제를 의식해 이전부터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쌍무적 동맹관계를 맺는 데 주력해 왔다고 말했다. 또한 미 대선에서 당선이 유력해 보이는 오바마 후보의 안보정책은 테러의 온상을 제거해야 한다는 데 역점을 두고 있어 한국측에 아프간 PRT 대량 파견과 같은 군사적 지원을 요청해 올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1부 막바지에 이르러 클리우디아 하이트 박사가 독일에서 벌어지는 군사정책의 문제점을 추가적으로 설명하는 시간이 주어지기도 했다. 하이트 박사는 독일에서 미 CIA의 비밀 비행 훈련이 빈번히 벌어지고 있음에도 정부가 이를 통제하지 않고 있다며 독일 정부의 책임론을 제기했다. 게다가 독일 내 미 유럽 사령부와 아프리카사령본부까지 위치해 있다는 것은 사실상 미국의 대유럽, 대아프리카 정책에 대해 독일이 주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라며 이를 크게 우려했다.


하이트 박사는 또한 내년 초에 나토창설 60주년에 맞춰 나토역할을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질 계획에 대해서도 소개했으며, 한편 독일의 평화운동가들은 오히려 독일연방군이 지나치게 다국적 구조에 편입되어 있는 구조를 비판하고 있다고 밝혔는데, 이는 나토가 분쟁개입을 목적으로 하고 있어 독일 주민들의 의사에 따라 통제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2부, “반환 미군기지 환경오염 문제와 평화운동”

잠시 휴식시간이 있고나서 강원대 지질학과 이진용 교수의 ‘주한미군기지 오염현황 및 재활용 전망’에 대한 발표로 2부 세미나가 재개되었다. 이 교수는 수십년 간의 미군의 군사훈련과 부주의한 관리 등으로 반환미군기지 환경문제가 심각하며 이에 대한 우리나라 관련 당국의 대응부재를 집중적으로 비판했다. 이러한 문제들은 2007년 6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반환미군기지의 환경치유에 관한 청문회”에서 심각하게 대두된 바 있다.


일례로 2005년 한미합동환경조사결과에서 미 측은 과학적 근거도 없이 일방적으로 특별양해각서에 명시된 ‘공지의 급박하고 실질적인 위험(KISE)’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주장했고, 한국 정부는 이에 대해 환경 치유도 아닌 선심성 약속을 제의하는 그야말로 한심한 태도를 보였다고 했다. 물론 애초부터 오염정화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부재했던 문제도 있었다. 그 외에도 이 교수는 표를 통해 반환미군기지 오염현황 및 지하수 오염현황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보여주면서 이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천문학적인 비용이 소요될 것임을 자세히 설명했다.


이 교수는 무엇보다 정부가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하는 중요한 정보조차 공개하겠다는 립서비스만 할 뿐 실질적으로는 거부하고 있다며 정부의 행태를 강력히 비판했다. 이진용 교수는 지금이라도 제대로 된 정화를 위해서 관련 지방자치단체, 시민,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협의회를 구성하고 정화과정 모니터링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관련 당국이 적극적인 노력을 보여야 할 것이라고 결론 맺었다.

이어 하이트 박사는 독일 주둔 미군기지를 둘러싸고 역사적으로 전개되었던 평화운동과 환경운동을 소개했다. 그리고 엄청난 소음공해와 환경오염으로 인해 백혈병 등의 질병까지 일으키고 있는 람슈타인 기지 피해 상황과 주민들의 기지반대 운동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방위비 분담금, 환경오염 문제와 관련해 하이트 박사는 독일 정부가 미군에게 특별권을 부여하고 결국 그 비용 부담은 국민의 몫으로 돌리고 있음에도 이에 대한 국민의 통제 및 참여권은 거의 없다고 비판했다. 이런 점들은 한국에서도 동일하게 벌어지는 문제점이기도 하다. 토론자로 나왔던 녹색연합 서재철 국장은 반환기지환경 청문회에서 이러한 실상이 국민들에게 적나라하게 공개되었다면서, 이는 정부의 단순한 실수라기보다는 관료집단이나 미군을 담당하는 공무원들의 구조적 문제라는 점을 강조하였다.

한편 하이트 박사는 현재 반기지운동이 점점 국제적 네트워크로 확대되고 있다고 했다. 그런 면에서 독일의 평화운동 전략은 지역에서 벌어지는 반기지 시위들이 점점 환경, 반환기지 재활용 등의 주제들을 포괄하는 운동으로 발전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고유경 사무국장은 한국과 독일의 반기지운동의 연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번 국제 세미나를 통해 독일과 한국 양국 모두 공통적으로  미군 주둔 및 기지이전 문제로 인해 불평등한 비용부담 뿐만 아니라 반환기지 내 심각한 환경오염 문제 해결과 비용부담까지 모두 떠안고 있으며 나아가 주권 침해까지 겪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독일과 한국 정부는 약간의 행정적 처리 과정의 차이만 있을 뿐 결국 부실하고 무능력한 협상으로 인해 국민들에게 그 비용 부담을 전가하면서 국민들의 알권리와 정책결정에 대한 참여권 보장은 배제하는 고질적인 문제점들을 안고 있다는 것도 확인되었다.

미국의 세계군사전략에 따라 지금 세계 곳곳에서는 저항과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그럴수록 한국에서는 대추리 주민들이, 독일에서는 람슈타인 주민들이 저항했던 것처럼, 미군기지를 둘러싼 문제점들과 정보들은 국제적으로 더 많이 공유될 필요가 있다. 미국의 군사적 패권은 한 국가의 평화운동, 사회운동만으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국제세미나발표문-슈테르-조성렬-이진용.hwp

하이트 박사 발표문.p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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