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군축센터 파병 2004-05-19   911

[성명] 주한미군 이라크 파병 관련 논평 발표

안보불안 부채질하는 일부 언론과 정치권, 비난받아 마땅

미국 정부가 주한미군 1개 여단을 이라크로 파견하겠다고 요청했고, 한국정부도 이에 동의했다. 독일, 일본에 주둔중인 미군에 이어 주한미군까지 차출하겠다는 것은 이라크 상황의 악화를 반증하는 것과 동시에, 그 동안 논란이 되어왔던 주한미군의 감축이 조기에 가시화된다는 측면이 있다.

미국 정부가 이렇게까지 무리하고도 급하게 주한미군의 차출을 강행한 이유는 악화되고 있는 이라크 정황으로 인한 고육지책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주권이양을 앞두고 저항세력의 공격양상은 더 거세지고 있는 반면, 스페인, 온두라스 등은 이미 철군을 추진 중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 정부가 미군과 연합군의 병력을 늘여서 이라크를 안정시키겠다는 계획에 대해서는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 이라크 사태의 본질은 국제적 질서를 도외시한 채 군사력만을 의존한 미국의 패권적 정책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부시행정부가 이라크의 안정을 위해 지금 해야 할 역할은 즉각적으로 미군 철수를 밝히고, 이라크 사태에 대해 유엔 등의 국제사회와 진지한 논의를 시작하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이라크 정황악화로 인해 주한미군까지 차출하게 된 것은 결과적으로 한국군 추가 파병부대의 역할인 평화·재건임무가 이라크에서 불가능하다는 것을 여실히 웅변해 주고 있다. 제2의 전면전 상황인 이라크에서 평화·재건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파병한다는 것은 국민을 기만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또 추가 파병동의안에는 파병의 목적을 ‘전후’ 이라크의 재건복구를 위함이라고 명확히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현재 이라크 어디에서 ‘전후 이라크’가 존재하는지 않는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참여정부는 아무런 명분도 없고 국익에도 전혀 도움이 않을 뿐 아니라 정부 스스로 만든 파병동의안 조차도 충족시킬 수 없는 추가 파병을 지금이라도 철회해야 한다.

주한미군의 이라크 차출 발표가 있은 직후 ‘이번 일과 관계없이 한국군 파병 원칙은 변함이 없다’고 파병강행 의지를 재차 밝힌 외교 당국의 태도도 쉽사리 이해되지 않는다. 보수층 조차도 ‘안보불안’을 이유로 신중한 대응을 주장하고 있고, 대다수의 국민들은 포로학대 사건 등으로 인해 파병자체에 반대하고 있는 현 상황을 완전히 도외시한 발언이다. 이런 식으로 국민의 의사를 반하면서까지 한미동맹을 강조하는 것은 오히려 장래적 한미 관계 발전에 장애물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이미 국민들은 주한미군 차출의 옳고 그름을 떠나 한국의 상황은 아랑 곳 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그것도 비정상적 외교채널을 통해 통보한 미국 당국의 태도에 대해 유감을 표하고 있다.

일부 언론과 정치권은 이번 주한미군의 이라크 차출과 이로 인한 감축이 ‘한국군의 추가파병이 지연되어서’라든지, ‘한-미 관계의 누수 현상’ 때문이라고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견강부회에 지나지 않는다. 만약 한국군 추가파병 지연에 따른 압박이 목적이었다면 오히려 경고를 하는 수준에서 그쳐야 했지만 이번에는 실행으로 옮겼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또 주한미군 감축의 경우에는 ‘해외주둔 미군 재배치(GRP)’ 전략에 따라 이미 기정사실화 되어 왔던 사안이다. 그리고 미 2사단의 1개 보병여단 감축이 한국 안보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은 대다수 안보 전문가들의 견해이다. 문제가 있다면 심리적 요인일 것이다. 그런데 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일부 언론이 오히려 주한미군 감축을 확대생산해서 국민의 불안감을 조장하는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특히 한나라당이 미국의 자체 계획에 따라 오래 전부터 추진되어 왔던 이번 사안에 대해 아무런 근거도 제시하지 않고 ‘외국자본의 투자기피’ 등을 연계하는 것은 공당으로서의 기본적 책임조차도 망각한 처사이다.

이번 일을 통해 우리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미국 자체의 전략에 따라 주한미군의 재편작업이 진행된다는 점이 또 다시 확인되었다. 미군의 이번 이라크 파견은 향후 주한미군의 재배치, 성격 및 역할 전환 등과도 연계될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응한 우리정부의 전략이 무엇인지는 아직 잘 보이지 않는다. 참여정부는 ‘주한미군의 110억불 전력증강’과 ‘협력적 자주국방’을 대안으로 내세우지만, 이는 대안이 될 수 없다. 이는 군비증강적 동맹체제를 강화하겠다는 것과 국방비를 늘여 첨단무기를 더 사오겠다는 것만을 의미할 뿐이다. 이것들은 안보공백을 보충한다는 이유로 시작되지만, 결과적으로는 한반도의 군사력 증강으로 이어지게 된다. 결국 한반도 안보위협 해결의 최우선 과제인 남북간의 군사적 신뢰구축은 고사하고, 불필요한 군비경쟁만을 유도할 것이다. 정부 스스로가 새로운 안보위협을 조성하는 잘못된 길을 가고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참여정부는 미국의 세계 패권전략에 동참하거나, 무기도입과 전력증강만을 통해 안보정책을 해결하려는 유혹을 떨쳐버려야 한다. 오히려 이 기회에 한반도에 실제하는 안보위협이 무엇인지에 대한 합리적 판단부터 하는 것이 순서이다. 나아가 독립적인 평화안보전략을 구상하는 것도 서둘러야 한다. 당연히 군비증강적 동맹체제는 재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라도 아무런 원칙도 명분도 충족시켜 줄 수 없는 파병결정에 대한 구체적 재검토 작업부터 착수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평화군축센터

PDe2004051900.hwp

첨부파일: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