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군축센터 국제분쟁 2008-10-28   3956

[강연 후기] 김영미 PD가 이라크로 간 이유


김영미 PD가 이라크로 간 이유

이라크, 아프간, 소말리아. 한국 정부가 한국인 입국을 금지하고 있는 나라들이다. 김영미 PD는 왜 이들 나라로 날아가서 전쟁과 분쟁의 당사자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댔을까?

김영미 PD의 말투는 부드러우면서 단호했다. 그녀는 정부가 접근 자체를 금하고 있는 전쟁터과 분쟁의 참상을 담아 한국 국민들에게 그 실상을 알리고 싶었고 경험을 공유하고 싶었다고 했다. 미국 대선에서 큰 이슈인 이라크 침공은 미국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려는 한국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전쟁 직전 2002년 이라크를 찾았고 2005년 다시 이라크를 찾아 전쟁의 폐허가 된 이라크와 이라크 사람들의 생각을 담았다. 그리고 가해자이지만 전쟁의 또 다른 희생자이기도 한 미군들을 취재하기 위해 2008년 다시 이라크로 향했다.

바그다드 다음으로 테러가 많이 벌어진다는 이라크 바쿠바에서 알카에다 수색작전을 수행하는 스트라이커 여단에 배치되었다. 김영미 PD는 미군 임베딩 즉 종군기자로 미군들과 함께 생활은 물론 군사작전까지 참여하며 미군들을 쫓아다녔다. 작전에 투입되어 수색할 때는 살인병기가 되지만 병영에서 본 미군들은 20대 초반의 평범하거나 앳된 청년들이었다. 50도가 넘는 살인적인 더위에 무거운 방탄복과 헬멧, 각종 무기들을 휴대하는 이들은 하루 2-3 차례씩 5-6시간 순찰을 돌아야 했다. 인터넷이나 핸드폰 사용이 자유롭지 않았고 음식도 주로 냉동식품이 제공되는 등 복무환경도 열악했다. 아무리 신체 건강한 청년들이라고 해도 버티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엄마, 집에 가고 싶어” 김영미 PD가 부대 배치 첫 날밤에 들은 미군들의 이런 잠꼬대도 자주 듣게 되었다.


가해자이자 전쟁의 또 다른 희생자, 미군 : 우리는 이라크 자유를 위해 왔는데, 왜 이라크인들은 우리에게 총을 겨누는가


국제사회를 경악하게 했던 하디사 마을에서의 학살사건을 비롯해 미군들의 민간인 살상과 거친 행동은 이런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는 것이 김영미 PD의 분석이다. 도로에 매설된 폭탄이나 어디서 날아올지 모르는 총알에 동료들이 죽어나가는 것을 자주 목격하면서 갖게 되는 공포감은 또 다른 정신적 고통이기도 하다. 그래서 미군 각 부대는 정신치료센터(mental clinic)를 운영하고 있지만 미군들의 자살 수는 전투 중 사망하는 이들 만큼이나 많다. 미군들이 앓고 있는 정신질환은 미국 내 각종 총기사건이나 폭력, 우울증, 가정해체 등 사회적 문제들로 이어지고 있다.


김영미 PD는 미군 사망자 수가 이미 4천명이 넘었고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는 미군들은 그보다도 훨씬 많지만, 미국은 이러한 자국민의 희생을 대가로 목표를 초과달성한 했다고 보았다. 석유도 석유이지만 다른 의미로 이라크 전쟁은 “무기 패션쇼”였기 때문이다. 군수산업이 챙긴 잇속도 상당하다는 것이다. 이라크 전쟁은 각종 신무기를 테스트하는 장이 되어 미국이 전세계를 대상으로 더 많은 무기를 판매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우리들은 이라크의 자유를 위해 왔는데 왜 이라크 사람들은 우리들을 향해 총을 쏘느냐”며 반문하는 미군들은 자유와 민주주의 구호 이면에 석유 강탈과 살상무기 판매가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이라크 전쟁은 “무기 패션쇼”, 석유와 함께 무기판매 열 올리는 미국

주지하듯이 지금 이라크 현지 미군들은 아프간으로 이동 중이다. 이는 이라크가 상대적으로 안정되었기 때문인데, 후세인 제거 이후 최대 집권세력이 된 이라크 시아파로부터 배제된 수니파가 차악의 선택으로 미군과 손을 잡았기 때문에 가능해졌다. 김영미 PD는 수니파의 이러한 선택을 시아파의 정치적 지배권과 석유개발권 독점 그리고 알카에다 세력이 자살폭탄에 민간인들을 이용하고 사회적 불안전을 초래하고 있는 것에 대한 반발로 설명했다. 수니파가 알카에다 수색에 협조하면서 이라크에서 존립하기 어려워진 알카에다 세력이 아프간으로 이동하면서 미군도 아프간으로 이동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라크에서는 심각한 종족 갈등이 본격화되는 일이 예고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라크와 아프간에 한국군을 파병한 한국의 경우 보도통제와 정보접근이 차단되고 있다. 김선일 피랍 살인사건 때나 지난 해 아프간 피랍 살인사건 때에도 한국 취재진은 현장에 없었다. 김영미 PD는 한국 정부가 엄청난 ‘자원외교’의 성과로 강조하는 쿠르드 정부와의 석유 채굴권 양해각서(MOU) 체결의 경우도 현장 취재가 없기 때문에 그러한 자의적이고 일방적인 보도가 계속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쿠르드 지역 유전은 산악지대라 개발이 어렵고 원유 질도 좋지 않아 쿠르드 지방정부는 유전개발을 기대하는 여러 국가들과 쉽게 MOU를 체결하고 있으며, 반면 이라크 석유부는 이러한 계약을 이라크 정부와 무관하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파병하고도 정보 통제, 취재 제한하는 한국 정부

이처럼 현장 취재가 없기 때문에 또 다시 아프간에 한국군이 파병된다고 하더라도 내부 움직임을 파악할 방도가 전혀 없다는 점을 김영미 PD는 크게 우려했다. 김영미 PD는 자이툰 부대의 철군이 과연 한국 국방부의 의지인지에 대해서도 강한 의문을 제기했다. 교체병력까지 준비하던 국방부가 이라크 파견부대를 빼기로 결정한 것은 다국적군 사령부의 의사가 반영된 것이며, 이는 아프간 재파병 가능성과 깊이 연관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미국 정부의 입장을 확인할 길이 없고 언론인들도 이를 파헤칠 노력을 하지 않고 있다며 언론의 무책임과 역할 부재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김영미 PD는 지금과 같은 한국 정부의 정보봉쇄를 누군가가 뚫지 않는다면 이러한 언론환경은 앞으로 30년은 유지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리고 안보문제라 하더라도 정보접근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정부의 의무를 져버리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 국무부가 언론의 정보접근을 위해 마련한 이라크 미군 임베딩에 그녀가 참가한 것도 한국민에게도 정보공개가 필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활동은 한국 정부의 저지로 중단되었다. 외교부가 여권법 위반으로 그녀를 고발했기 때문이다. 언론취재를 정부 허락을 받고 하라는 한국 정부의 태도는 국제 언론계에서 비웃음거리가 되었다.


그러나 김영미 PD의 분쟁취재와 정보접근에 대한 도전은 계속될 것이다. 김영미 PD는 그것을 자신의 존재의의이자 사명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김영미 PD

김영미(39)씨는 한국에서 손꼽히는 분쟁지역 취재 전문 프리랜서 PD다. 1999년 동티모르를 시작으로 지난 10년간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등 세계에서 가장 위험하다는 분쟁지역만 골라 취재해 왔다. 2006년 한국인 선원들이 타고 있던 동원호를 납치한 소말리아 해적들을 단독 취재해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고, 최근에는 이라크 주둔 미군을 밀착 취재한 영상이 지난 9월 10일 KBS 1TV ‘수요기획’을 통해 방영됐다. “10년간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세계의 최전선에서 언론인으로 살아갈 겁니다.” 언론인으로서의 자부심과 포부를 당당히 밝히는 김영미 PD, 지금의 그를 만든 건 바로 왕성한 ‘호기심’과 지칠 줄 모르는 ‘도전정신’이다. (프로필 출처 @ 여성신문)


이 글은 지난 10월 22일, 23일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가 진행한 [특강] ‘김영미PD가 전하는 분쟁의 속살’ 후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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