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군축센터 파병 2003-09-25   348

<칼럼> 파병 국익론, 과장 심하다.

이 글은 9월 25일자 동아일보 <여론마당>에 기고된 글입니다.

전투부대 파병을 두고 우리정부와 국민들은 다시 한번 홍역을 치르고 있다. 논란이 되고 있는 전투부대 파병은 1차 비전투부대 파병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파병 규모나 위험이 크고, 파병에 따른 국내외적 부담과 변수도 적지 않다. 따라서 명분이냐 국익이냐는 이분법적 접근을 넘어서는 보다 합리적인 토론이 선행될 필요가 있다.

우선, 미국이 한국에 전투부대 파병을 요청하게 된 배경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이라크에서 게릴라전이 계속되고 미군 사상자가 늘어남에 따라 전비부담과 안전을 우려하는 미국 내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전쟁을 주도한 럼즈펠트 등 이른바 네오콘 세력을 물러나게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진 것은 물론, 부시 대통령의 재선가도 자체에 비상이 걸렸다. 설상가상으로 미국의 파병 요청은 파키스탄, 터어키 등을 제외하고는 별 응답을 얻지 못하고 있다. 한마디로 미국 내에서도 실패한 정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고 다른 나라의 동참도 없는 전장에 우리 군을 파견하는 셈이다.

현재 이라크는 전쟁시기보다 오히려 훨씬 위험한 상황이다. 특히 최근의 공격대상은 유엔본부 등 미 점령군에 협조하는 세력에게 맞추어지고 있다. 교전에 의한 피해말고도 우리가 아직 충분히 대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열화우라늄탄 잔해로부터의 방사능피폭피해다.

이 모든 위험에도 불구하고 파병론자들은 여전히 국익 또는 실리를 위해 파병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만 파병론자들은 이라크전이 장기전의 늪에 빠져들게 됨에 따라 경제적 실리보다는 주로 한미동맹악화에 따른 안보불안 등 소극적 의미의 국익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주권국인 한국에 대한 미국의 보복을 신비화시키고 과장하는 것은 합리적 토론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 주로 거론되는 주한미군 재배치의 경우 많은 전문가들이 미국의 장기적인 세계군사전략의 일환으로 보고 있고 실제로도 1차 파병이 이 문제에 영향을 주었다고 보기 힘들다. 안보불안과 관련해서 우리는 보다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우리의 현실적 걱정거리는 미국이 한반도에서 이라크전과 같은 군사작전을 벌이거나 북한에 대한 압박을 지속하는 것이다. 그러나 북미관계에 대한 미국과 북한의 선택의 폭은 6자 회담 등 다른 여러 변수에 의해 규정되므로 즉자적 정책변동의 여지가 크지 않다. 게다가 대선 전후 네오콘의 입지 약화도 예상해야 한다.

일각에서는 유엔의 동의가 있다면 파병을 고려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유엔에 미국이 제출한 안은 분쟁당사자들의 동의에 의해 이를 중재하기 위해 파견되는 평화유지군이 아니라 미 점령군의 외연을 넓히는 다국적 군대일 뿐이다. 전비 역시 유엔이 지원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이 결의에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을 유럽의 나라들은 단 한나라도 군대를 파견하지 않을 것이고 전비조차 부담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우리가 전투부대 파병을 자발적으로 원하는 것이 아니라면 유엔 결의 여부를 파병의 시금석으로 삼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마지막으로 ‘국익’이라는 용어 사용에 신중해야 한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특정 정파, 특정 산업과 계층의 이해관계가 같을 수 없다. 따라서 정책결정과정의 민주주의야말로 국익을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척도이자 가장 강력한 명분이다. 전투부대 파병 역시 가장 강력한 대외적 명분이자 국익판단의 척도인 국민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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