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군축센터 평화정책 2008-07-22   2387

[한일 국제회의] 다시 보는 헌법과 평화국가 만들기

분단정부수립 60주년과 헌법 제정 60년을 맞아 한일국제회의 ‘다시 보는 헌법과 평화국가 만들기’가 지난 7월 16일(수) 오후 1시 30분부터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개최되었다. 이번 국제회의는 동북아 평화의 토대로서 헌법의 평화주의를 강조하고, 군비증강 일로에 있는 동북아의 평화구축을 위해 한일 시민사회가 해야 할 역할과 공동의 과제를 모색해보자는 취지였다.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이 날 국제회의에 참여하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1부 한일 헌법의 평화주의 다시 보다


일본 시민운동가로서 평화헌법 개악 저지운동을 주도해 온 다카다 켄씨는 90년대부터 걸프전과 한반도 핵 위기 등을 계기로 급속하게 강화되어 온 일본의 개헌움직임을 설명했다. 아베내각의 실각으로 일본의 명문개헌 여론은 주춤하게 되었으나 여전히 해석개헌 시도는 계속되고 있다고 우려하였다. 그러나 다카다 켄씨는 최근 요미우리 신문사의 헌법개정 관련 여론조사 그래프를 설명하며 정부와 언론의 지속적인 개헌 시도에도 불구하고 호헌론이 개헌론보다 2배 이상 높게 나왔다고 소개하며 이를 평화헌법을 수호하려는 시민운동의 힘이 발휘된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또한 최근 나고야 고등법원이 이라크 자위대 파병이 위헌이라고 판결한 것과 ‘9조회’ 결성, ‘9조 세계회의‘ 개최 등의 사례를 들어 일본 호헌운동의 커다란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 후쿠다 내각은 명문개헌에서 해석개헌으로 입장을 선회하는 방식을 통해 해외파병항구법 제정, 아프간 육상자위대와 항공자위대 파병,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는 ‘보통국가’로서의 개헌 등을 추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다카다 켄씨는 따라서 이에 대항하는 일본의 평화헌법 9조 수호 운동을 강화하고 한일 시민연대와 동북아 평화조류 형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국 측 발표자인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은 한국 정부는 헌법의 평화주의 원칙을 준수해 오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특히 헌법재판소가 양심적 병역거부, 이라크 파병, 용산미군기지이전협정,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등에 대해 판결한 것을 보면 헌법상의 기본권으로서 평화적 생존권은 아직 시민권을 획득시키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한국에서 헌법의 평화주의 원칙이 규범력을 갖지 못했던 것에 대해 이정희 의원은 크게 통치행위론과 자기관련성 논리가 큰 걸림돌로 작용해 왔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를테면 이라크파병위원소송에서 헌법재판소는 “한정된 자료만을 가지고 있어 국익에 도움이 될지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대의기관인 대통령과 국회의 몫이지…” 라며 파병결정을 통치행위로 돌려 자신들의 판단을 회피해왔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평택미군기지확장 관련 헌법소원에서 헌법재판소가 평화적 생존권을 국가에 요청할 수 있는 권리로서 명시했다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이마저도 미국의 군사전략인 전략적 유연성으로 인해 한국인들의 평화적 생존권이 침해당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시민운동은 외교안보 정책이 평화주의 원칙에 근거하도록 끊임없이 요구해야 하며 인권침해 피해자 개인들의 현실을 교차시키는 활동을 통해 평화주의 원칙의 현실 규범력을 높이는 방법들을 강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일본 릿쿄대의 이시자카 교수는 다카다 켄씨가 말한대로 일본 내 호헌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북정책에 있어서는 여전히 보수적 여론이 우세함을 지적했다. 이런 상태에서 북한의 전쟁도발이 벌어질 경우 과연 일본은 계속해서 평화적 수단에 의한 대응이 가능할지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그리고 최근 한국에서 크게 벌어진 촛불시위에 참가한 경험을 말하며 한국 시민들이 ‘대한민국의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구호를 외치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다는 소감을 말하기도 했다. 일본에서는 헌법과 시민들의 일상생활이 유리되어 있다는 문제의식을 던진 것이다.


토론자로 참석한 건국대 조시현 교수는 일본의 헌법 개정 움직임은 국제법적으로 검토될 필요가 있으며 한편으로는 UN의 체제에도 큰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집단적 자위권 허용의 움직임은 일본이 2차 대전의 전쟁책임을 부정하는 움직임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고 문제제기 했다. 조시현 교수는 한국도 국제인권기구의 평화와 관련한 결정 사례를 수집하는 등 구체적인 법 발전을 위한 작업들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2부 평화헌법을 위협하는 동북아 군비경쟁


2부 첫 발표자인 일본의 피스보트 대표인 가와사키 아키라씨는 ‘동아시아에 비군사 질서를 구축하다’라는 주제로 발표를 시작했다. 가와사키 대표는 먼저 세계적인 무기시장이 되고 있는 동아시아 상황을 개괄했다. 6자회담이 확실히 진전되고 있는 가운데 일본 내에서는 납치피해자 가족과 자민당 내부에서 북한과의 우호적 관계를 형성하자는 주장이 나올 정도로 북한과의 정상화를 둘러싼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러나 탈냉전의 새로운 질서들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동아시아 군사비가 엄청나게 높다는 점이다. 냉전시기 잠시 감소했던 군사비는 2001년 9.11 테러 이후 다시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으며 급기야 냉전말기보다 더 초과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그 중에서도 일본 내에서는 군사시설 투자에 대한 재계 압력이 커지고 있고 무기수출 3원칙(1967년 공산권, 유엔이 금지한 국가, 국제분쟁 당사국 및 분쟁의 우려가 있는 국가 등에 대해 무기를 수출하지 않는다는 약속. 이후 1976년 이들 대상국 이외의 국가에까지 범위를 확대, 무기 수출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와의 무기 공동개발 및 기술 제공, 무기 제조 외국회사에 대한 투자 등도 금지)을 재검토하라는 주장으로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또한 이들은 헌법 9조를 개정하려는 정치세력과도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다고 했다.


가와사키 대표는 21세기 새로운 군사적 상황은 크게 폭력과 전쟁의 연쇄, ‘전쟁의 민영화’라 불릴 정도로 군사와 경제의 일체화 그리고 테러대책 미명하에 국가 관리주의 등이 강화되고 있다며 이에 대해 분쟁 예방력을 높이고 전쟁경제를 평화경제로 전환하며 평화적 생존권을 확산시키기 위한 운동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가와사키 대표는 이에 대해 노르웨이 모델을 소개하기도 했다. 노르웨이 재무성은 2006년 석유수입을 기반으로 하는 연금기금투자대상에서 핵무기 및 클러스터폭탄 제조에 관여하는 기업을 배제시키고 연금 운용에 있어서도 ‘윤리 가이드라인’을 제정하여 “제한적인 석유자원을 이용함에 있어 차세대에 대해 책임을 진다”는 기본 이념을 포함시켜 놓았다고 했다.


가와사키 대표는 이러한 사례를 모델로 삼아 동아시아 경제주체들이 군사기술 경쟁에 나서지 않도록 제동을 걸어야 하며, 방산업체가 정치적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하지 않도록 방산업의 투명화를 촉진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2005년 결성된 시민사회 차원의 ‘무력분쟁 예방을 위한 글로벌 파트너십(GPPAC)’ 활동과 같이 국경을 넘어 동북아 시민사회가 비군사적 협력을 확장하는데 힘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평화네트워크의 정욱식 대표 역시 6자회담 참가국들의 군사비 지출 증강을 지적했다.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의 분석에 따르면 실제로 6자회담 참가국들이 전세계 군사비에서 차지하는 군사비 지출 비중은 70%에 육박한다고 한다. 정욱식 대표는 남방 3각체제인 한국, 대만, 일본 그리고 북방 3각체제인 북한, 러시아, 중국 등으로 지역 질서가 고착화되는 움직임이 보이며 이러한 구조 속에서 막대한 자원이 군비경쟁에 소모되어 국내적, 지역적, 세계적으로 해결될 여타 문제들이 방치되고 있음을 비판했다.


정욱식 대표는 동북아 군비경쟁 종식과 군축을 위해서 크게 6자회담에 대한 시민사회 적극적 개입과 한반도 비핵화 이후 동북아 비핵지대로의 확대, 군사동맹에서 동북아 평화안보체제로의 점진적 대체, 동북아 군축을 통한 평화배당기금 창설 등을 통해 평화적 협력을 높일 것을 제안했다. 


한국과 일본 측의 발표에 이어 토론이 진행되었다. 우선 한림대 이삼성 교수는 6자회담 진전 등의 긍정적인 변화에도 불구하고 동북아시아는 지정학적으로 중국대륙의 동해안선을 따라 미일동맹과 중국 중심의 동맹으로 대분단체제가 형성되어 있다는 견해를 내놓기도 했다. 한편 중국과 미국은 동북아시아에서 군사적 패권적 경쟁을 벌이는 반면,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이 전쟁기금 마련을 위해 발행한 채권을 중국이 대량 매수하는 등의 경제적으로 공존하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이삼성 교수는 앞서 설명한 대분단체제를 상징하는 곳으로 제주도, 오키나와, 대만해협을 들며 이곳을 동북아 군사화로부터 자유로운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특히 제주도의 군사기지화는 근본적으로 동아시아 해상수로의 안전구조를 허무는 것으로 부정적인 영향이 더 클 것으로 내다보았다.


국가안보전략연구소의 조성렬 박사는 동아시아에 쌍무적 동맹관계가 지속되는 냉전적 질서와 일본과 중국간의 전략대화, 한중관계 개선, 다자간 안보대화 등 탈냉전적 움직임이 공존하고 있다고 설명하면서 우리는 과연 이러한 두 가지 움직임 중에 어느 것이 더욱 힘을 가지게 될 것인지를 예의주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3부 종합토론 평화국가를 만들기 위한 한일 시민사회의 역할은?


3부에서는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소장이신 구갑우 교수(북한대학원대학)가 ‘평화국가 만들기와 한일 시민사회 역할’에 대해 발표가 있었고 이어 청중들의 활발한 전체 토론이 이어졌다. 토론의 키워드는 6자회담에 대한 다양한 기대가 있는 만큼, 피상적인 주장을 넘어서 시민사회의 집중적인 모니터링 등 구체적인 협력과제를 발굴하자는 것이 공통된 입장이었다. 또한 평화국가를 이루어 가는 주체로서 시민의 역할을 명확히 해야 하며, 소수의 전문화된 운동을 경계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이밖에도 평화체제와 관련된 쟁점으로 동맹의 재평가가 평화체제 논의와 병행되어야 하고 동시에 의제화 될 수 있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되었다.


이번 국제회의는 향후 한일 시민사회의 연대가 한층 강화되고 성숙될 것이라는, 그리고 그것이 동북아 평화에도 기여할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하는 진지하면서도 뜻 깊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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