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DA의 교훈, 한국의 선택(김연철, 코리아연구원, 2007. 4. 18)

BDA, 벌써 1년 반이 지났다. 2005년 9월 16일 미국 재무부가 돈세탁 의혹을 제기한 이후, 언제나 이 문제는 6자회담의 그늘이었다.

지난 1월 베를린 북미회동과 2.13 베이징 합의에서 BDA 해법이 논의됐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60일 동안의 초기조치 시한도 지나가 버렸다. BDA 사태는 조만간 풀리겠지만, 이 문제는 6자회담의 미래를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BDA 사태에서 어떤 교훈을 얻을 것인가?

북한이 원하는 것은 금융거래의 재개

북한의 요구는 단순하다. BDA가 풀리면 비핵화 과정을 시작하겠다는 것이다. 2.13 합의에서 북미 양국은 BDA 문제를 30일 내에 해결하기로 합의했다. 그동안 미국은 다양한 기술적 방법을 검토했다. 중국은행(BOC)을 통한 계좌이체 등은 결국 중국은행의 거부로 성사되지 못했다. 최종해법은 4월 10일 “미국은 문제의 계좌를 동결 해제한다는 마카오 당국의 결정을 지지”하는 것으로 되었다. 미국이 약속한 날짜로부터 25일 정도가 지난 시점이었고, 초기이행조치 마감 4일 전이었다.

시점의 중요성만큼, 해법의 내용도 객관적으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최종해법을 2005년 9월 이전 상태로 돌려놓은 조치라는 평가가 있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2007년 3월 14일 미국 재무부는 BDA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애국법 311조에 따라 BDA는 최종적으로 돈세탁 기관으로 선고되었다. 이 말은 북한계좌의 불법적 성격을 확정하는 것이었다. 불법을 저지른 기관은 처벌의 대상이 되었다. 그런데 불법의 근거였던 북한 계좌들은 풀어 준다는 것이 미국의 해법이다. 앞뒤가 다르다. 미국은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으나, 어정쩡한 해법이었고,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이 조치는 북한의 협상목표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북한이 원하는 것은 단지 2500만 달러가 아니다. 그랬다면 문제는 벌써 해결됐을 것이다. 북한은 금융거래의 재개를 원한다. 불법의 꼬리표를 단 북한 계좌들은 당연히 정상적인 금융거래의 기피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 BDA 소유주, 마카오 당국, 그리고 중국의 금융당국이 미국의 해법에 반발하고 있다.

3월 14일 미국 재무부가 BDA를 돈세탁은행으로 지정함으로써, BDA의 해외송금은 불가능해졌다. 돈세탁 방지법을 채택하고 있는 마카오 당국의 입장에서도 불법으로 판명된 계좌를 법과 무관하게 처리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졌다. 그 이후 이른바 기술적 해결의 과정이라는 것은 미국 재무부가 북한 계좌의 예외적 적용을 주장한 것에 다름 아니다. 당연히 중국은행을 비롯해, 3국 송금대상으로 지목되었던 은행들이 이미 불법으로 판명된 자금의 이체를 거부했다. 나아가 BDA는 북한 계좌를 인질로 삼아, 재무부 결정에 대해 법적 소송을 준비중이다.

북한 외무성은 초기이행조치 시한인 4월 14일 하루 전, 미국과 마카오 당국의 조치를 평가하지만, 실제로 제재가 해제되었는지 실효적으로 검증해 보겠다고 한다. 모두 인출할 수 있는지, 이 돈을 송금할 수 있는지를 실제로 시도해보겠다는 것이다.

결과는 두고 볼 일이다. 물론 미국이나, 중국 모두 이 문제가 2.13 합의의 걸림돌이 되기를 원치 않고 있다. 북한이 금융거래의 재개라는 애초의 협상목표를 끝까지 밀어붙일지, 아니면 미흡하지만 일회적인 동결해제에 만족할 것인지는 며칠 더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BDA를 넘어서면, 더 많은 산들이 기다린다

BDA는 6자회담의 입구를 가로 막았던 걸림돌이다. 이제 이행국면으로 진입하면, 더욱 어려운 쟁점들이 기다리고 있다.

비핵화 워킹그룹에서 보면, 영변 핵시설의 가동중단, 연료봉 인출과 냉각, 그리고 봉인 작업과 감시 장치의 설치 등은 원래 60일 이내에 이루어져야 하지만, BDA 사태로 최소 한 달 이상 지체되었다.

그리고 북한은 핵시설의 목록을 제출해야 하는데, 여기서 쟁점은 이른바 고농축우라늄 프로그램(HEU) 문제다. 미국은 의혹을 제기하고 있고, 북한은 실체를 부정하고 있다. 의혹과 해명 사이의 불신을 극복해야 할 것이다. 불능화의 개념과 방법에 대해서도 명확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불능화까지의 과정은 아무리 순조롭게 진행되어도 현재의 속도라면 올해는 넘길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 다음 국면은 핵무기와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핵물질, 즉 플루토늄의 폐기일 것이다.

에너지 경제지원 워킹그룹의 최대 쟁점은 경수로 문제다. 북한은 초기이행 국면 직후에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할 것이다. 최소한 논의시점과 제공방법 등에 대한 원칙적 합의가 없으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못할 것이다.

북미관계 정상화 역시 쉽지 않은 문제다. 가장 중요한 것은 협상과 법적 현실의 간극이다. 이미 이 간극은 BDA 사태에서도 충분히 증명됐다. 미국의 국내법이 있고, 국제적 규칙과 절차가 있다. 북한은 여러 가지 면에서 국제적 기준에 미흡하다. 협상에서의 정치적 리더십과 법적 충돌 사이의 긴장을 잘 해결해야 할 것이다.

현재 시점에서 북한에게 정상국가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비핵화 과정은 앞으로 나아가기 어렵다. 동시에 북한 역시 금융거래에서, 경제정책에서, 인권문제에서 과거의 체제를 유지하고자 한다면, 관계정상화 과정에서 그들이 원하는 것을 제때에 얻을 수 없다.

결국 해답은 ‘행동 대 행동’의 상응조치에 있다. BDA처럼 정확한 해법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다음 단계로의 진전은 늦어질 수밖에 없다. 앞으로 수많은 단계가 기다릴 것이다. 각 단계에서 쟁점으로 부상할 의제들은 대부분 나와 있다. 그만큼 핵문제의 역사가 길고, 북한의 요구사항 역시 잘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쟁점들의 해법이 준비되지 않았다면, 그만큼 협상의 시간은 길어질 수밖에 없다.

한국, 잃어버릴 시간이 이제는 없다

BDA 사태에서 한국이 얻을 교훈은 무엇인가? 6자회담보다 반보 늦게 가는 남북관계, 이 전략을 지금 시점에서 재평가해야 한다.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겠지만, 결론은 두 달의 시간을 잃었다는 점이다.

임기가 이제 10달 남은 현 정부의 입장에서 두 달이라는 시간은 너무나 소중하다. 6자회담이 진전되면 남북관계도 저절로 나아질 수 있다는 생각은 현실이 아니다. 의제가 다르기 때문이다. 서해 평화정착 방안과 같은 군사적 신뢰구축, 국군포로와 납북자 문제 등 핵심적인 인도적 사안 등은 남북관계에서 풀어야 할 과제이다.

가능성은 별로 없지만, 만약에 북미관계가 가까워진다면, 남북관계에서 우리가 원하는 의제들을 북한에 관철시키기가 더욱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은 중요하다.

대북지원을 중단하고, 남북경협의 속도를 조절한다고 해서 그것이 북한의 태도변화에 압력으로 작용하지도 않는다. 남북관계의 부재는 결과적으로 6자회담에서 한국의 입지와 역할공간을 줄일 뿐이다.

‘6자회담과 남북회담의 병행’ 전략이 필요하다. 문제는 경제협력추진위원회나 장관급회담 등 남북 실무수준에서의 회담에서는 핵문제와 평화문제를 거론할 수 없다는 점이다. 결국 병행전략은 남북관계에서 최고위급 대화가 이루어져야 가능할 것이다. 일부 사람들은 남북정상회담이 어려우니 4자 정상회담을 추진하자고 주장하기도 하나, 그것은 비현실적이다. 아니 현실성 여부는 별개로 치더라도, 남북관계의 부재 속에서 평화체제 논의가 이루어진다면 그것이야말로 한반도의 운명과 관련해서 바람직하지 않다.

오늘(18일)부터 경제협력추진위가 열린다. 쌀 지원 문제 등 여러 가지 현안이 있다. 중요한 것은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속에서 남북관계를 어떻게 안정적으로 관리할 것이며, 남-북-미 삼각관계의 선순환을 통해 어떻게 6자회담에서 한국의 위상과 역할을 발휘할 것이냐는점것이다. 정부가 남북관계의 문을 닫지 않기를 바란다. 아직은 포기할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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