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군축센터 기타(pd) 2010-06-23   1106

[기고]우울한 조국, 자폐적 국가의 자화상

다음 글은 6월 23일자 경향신문에 실린 기고문입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006221807375&code=990304

[기고]우울한 조국, 자폐적 국가의 자화상

조대엽 / 고려대 교수·사회학

의학에서 ‘자폐증’은 의사소통과 사회적 상호작용 능력이 저하된 신경발달 장애를 말한다. 과학일반에서는 외부정보에 의해 수정되지 않는 주관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사고나 행동이 우세한 상태라고 규정하기도 한다. 프랑스의 저명한 우파 지식인 기 소르망은 2005년 수천 대의 자동차가 불탄, 파리에서의 외국인 이민자 폭동 원인을 ‘국가자폐증’이라고 진단한 바 있다. 말하자면 정치권과 일반국민의 총체적 소통장애 현상을 이렇게 부름으로써 정신병리적 용어로 사회병리적 현상을 은유한 것이다.

2010년 우리 사회의 자화상을 보며 이 용어를 다시 떠올린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 한반도 대운하, 세종시 수정안, 4대강 사업 등 이 정부 들어 누구의 말도 듣지 않은 채 막무가내로 밀어붙인 정책과 사건들은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렵다. 과도하기 짝이 없는 자기 몰입이고 타자와의 단절이다. 최근 참여연대가 유엔에 서한을 보낸 일을 둘러싼 파동은 ‘자폐적 사회’의 절정을 보는 듯하다. 정부와 보수 거대언론, 극단적 보수단체들이 참여연대를 ‘이적’과 ‘친북’으로 모는 데 몰입하는 가학이 지나치다.

시민들이 자율적으로 만든 ‘시민단체’는 시민사회의 공익을 추구하기 때문에 국가의 경계를 넘어 지구적 가치를 공유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평화, 인권, 생태환경, 생명, 여성, 아동 등의 가치가 그러한 것이다. 이 점에서 선진국일수록 시민단체가 추구하는 공익적 가치는 개별국가의 국익과 빈번하게 충돌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개별 시민단체도 한 나라의 구성원이고 국민이기 때문에 시민단체의 공익적 가치와 국익의 가치가 지나치게 충돌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고민한다. 이 경우 무엇보다도 정부가 국민과 시민단체에 대해 끊임없는 대화와 설득을 통해 일정수준에서 국익에 대한 공동체 차원의 합의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참여연대가 유엔 안보리 이사국들에 천안함 침몰과 관련한 서한을 보낸 것은 시민단체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이다. 참여연대가 유엔에 보낸 문건의 실제 내용을 보면 그 핵심은 천안함 침몰사건으로 인해 “남북관계가 일촉즉발의 군사적 긴장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는” 것에 대한 진정어린 우려다. 그래서 문건에선 “남한 정부와 북한 정부에 한반도 주민들의 안전을 담보로 한 일련의 공격적, 군사적 언행을 중단할 것을 강력히 촉구”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참여연대의 행동은 한반도에서 평화유지를 위한 시민단체의 고유 활동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아울러 정부의 진상조사 결과 발표에 대해 의혹을 제기한 것은 바로 이러한 진상조사의 문제점이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확대하고, 국민들은 그로 인해 전쟁의 공포를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그간 인터넷을 통해 확산된 이러한 의혹들을 불순한 의도가 개입된 선동으로 규정함으로써 국가자폐의 증세를 더했다.

참여연대는 국내에서는 물론 국제적으로도 널리 알려진 ‘국가대표’ 시민단체이다. 참여연대가 성장한 것은 1990년대 이후 탈냉전의 거대 흐름 속에서 전쟁과 억압의 국가주의, 좌우의 이념, 민족과 조국 등 20세기 가치들이 빠르게 쇠퇴한 효과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2010년 우리의 모습은 여전히 시대착오적 냉전의 계곡에 스스로를 가두고 있다. 정부가 노래하다시피 하는 국격을 신장하고 국가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길은 민의와 소통함으로써 이 우울한 조국의 자폐적 상태로부터 벗어나는 일이다.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