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군축센터 군비축소 1997-11-06   2762

한국대인지뢰대책회의 발족선언문

현재 세계적으로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는 대인지뢰금지운동은 모범적인 평화군축운동입니다. 지금까지 있었던 많은 군축협상들은 강대국의 이해관계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대인지뢰금지운동은 민간단체가 중심이 되어서 많은 나라의 정부들을 참여시킨 운동입니다. ICBL에 가입한 1000여개의 민간단체가 중심이 되어 국제적십자위원회, 유니세프 등 국제기구를 참여시켜서 대인지뢰금지에 대한 국제적 여론을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 지난 9월에는 오슬로회의에서 89개국 정부가 참가한 대인지뢰금지협약 초안을 체결하였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대인지뢰금지운동을 지켜보면서 세계의 많은 민간단체들이 힘을 모은다면 강대국 중심의 냉혹한 세계질서에도 불구하고 평화와 인권을 중요시하는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대인지뢰금지운동에 나선 세계의 평화애호세력들에게 굳건한 연대의 뜻을 표시합니다.

대인지뢰금지협약에 대하여 미국은 자국민의 안전을 이유로 이유로 한반도만을 예외지역으로 해줄 것을 요구했으며, 일부 다른 국가들도 안보상의 이유로 예외조치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한국도 한반도의 특수한 안보현실을 홍보하면서 지뢰의 예외적 사용을 위한 협약조항 삽입을 주장했고, 북한군의 남침을 지연시키기 위해 지뢰의 사용이 필요하며, 한반도에서는 비무장지대에 지뢰가 매설되어 있어서 민간인의 피해는 거의 없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지뢰로 인한 민간인 피해는 해마다 발생하고 있습니다. 군사전문가들은 지뢰를 통한 남침지연전략이 오히려 나중에 미군과 한국군, 한국민간인들을 대규모로 희생시킬 수 있는 재앙을 만드는 전략이라고 반박하고 있습니다.

한국정부가 오는 12월에 대인지뢰금지협약에 가입한다고 해서 한국만이 일방적으로 또는 즉각적으로 대인지뢰를 제거해야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의 취지는 현재 남북대치의 현실을 무시하고 군사적 불균형을 초래하자는데 있지 않습니다. 지난 9월 오슬로에서 체결된 대인지뢰금지협약 초안에 따르면 대인지뢰 금지협약에 가입하면 대인지뢰를 제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합니다. 하지만 대인지뢰를 완전히 제거하기까지는 10년의 기간을 보장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한국정부가 대인지뢰금지협약에 가입하더라도 즉각 단독으로 대인지뢰를 제거해야 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한반도에서의 포괄적 지뢰금지문제에 적극적인 위치를 찾게 될 수 있다는 점을 밝히고자 합니다.

그리고 10년 동안에 북한과 군축협상을 시작해서 북한을 대인지뢰금지협약에 가입하도록 이끌고, 나아가 남북이 공동으로 대인지뢰를 제거한다면, 오히려 대인지뢰금지협약에 가입하는 것이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중요한 전기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또한 대인지뢰금지협약 가입이 남북 대치의 현실 속에서 남한만이 일방적으로 무장해제를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주장합니다. 우리는 더 나아가서 10년의 기간 동안 대인지뢰를 제거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10년후에 대인지뢰가 아닌 대체무기를 설치하는데 충분하다는 점까지 고려하고 있습니다.

대인지뢰금지협약 가입은 결코 한국의 안보를 위태롭게 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평화와 통일을 위한 한국정부의 노력을 세계만방에 과시하는 계기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정부가 대인지뢰금지협약에 가입하지 않는 것은 오히려 국제사회에서 한국정부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만을 심어 주어 국익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대인지뢰반대운동은

첫째,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운동입니다. 한반도의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한반도의 평화정착과 이를 위한 남북한의 군축협상이 필요함을 제기하고 남북한 정부가 하루빨리 군축협상을 시작하도록 촉구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둘째, 비무장지대를 평화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운동입니다. 남북한이 비무장지대에 ‘평화생태 보존구역’을 공동조성하면 생물다양성 보호뿐만 아니라 남북사이의 신뢰구축과 화해를 위해서도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셋째, 비인도적인 무기에 반대하는 인도주의에 기초한 폭넓은 연대를 실현하는 운동입니다. 분단의 한반도적인 상황에서 분단의 극복과 통일국가건설에 평화와 인도주의를 이념으로한 대인지뢰운동은 크나큰 의미가 있습니다.

넷째, 대인지뢰금지운동은 유일초강대국 미국의 전횡을 막고 평화와 호혜평등의 새로운 세계질서를 수립하기 위한 운동입니다. 소련의 해체이후 미국은 유일한 초강대국임을 과시하며 자국의 이익추구만을 위해 때로는 국제법을 무시하기까지 하는 전횡을 일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대인지뢰금지협약은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89개국의 지지를 얻어 만들어졌고, 이 협약으로 국제지뢰반대운동과 조디 윌리암스는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의미 있는 대인지뢰반대운동에 참여하면서 우리들은 더 이상 한반도가 동서이념의 대립장이며 새로운 질서에 대한 강대국들의 연습장이 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더욱이 한반도만을 예외지역으로 하려는 미국과 한국정부의 입장에 깊은 우려를 표명하면서 오슬로회의에서 통과된 대인지뢰금지협약 초안통과를 환영합니다. 아울러 오는 12월초에 카나다 오타와에서 대인지뢰금지협약을 최종서명하는 과정에서 세계의 평화세력들이 한반도의 대인지뢰문제를 남북한이 슬기롭게 풀어 나갈 수 있도록 관심과 지원을 표명해 주기를 요청합니다.

남북한 정부는 평화로운 지구촌을 건설하려는 국제사회의 움직임에 한국이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대인지뢰를 제거해서 비무장지대를 평화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기 위해서는 남북한 정부가 빠른 시일 안에 남북군축협상을 시작해야 합니다. 한반도 군사문제의 중대한 당사자인 미국정부도 대인지뢰제거를 위한 남북한의 협상을 지지하고, 협상의 결과에 따라야 할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일하는 여성, 종교, 시민사회단체들은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앞당기기 위해 이번 대인지뢰금지운동에 함께 하려고 합니다. 전 세계적인 평화운동의 물결에 함께 동참하여 중무장된 죽음의 비무장지대를 평화지대로 바꾸는 노력을 계속해 나갈 것입니다.

1997년 11월 6일 한국대인지뢰대책회의(KCB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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