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군축센터 칼럼(pd) 2011-07-01   3047

[기고] 제주 해군기지 반대운동에 주목하는 이유

제주 해군기지 반대운동에 주목하는 이유



박정은 (참여연대 평화국제팀 팀장)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막으려는 움직임이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그 중심에는 2007년 국방부와 제주도에 의해 해군기지 후보지로 느닷없이 ‘선정’된 이래 줄곧 기지 건설에 저항해온 강정마을 주민들이 있다. 제주의 시민사회단체와 종교계도 발 벗고 나선 지 오래다. 이들은 일제시대 대중국 전진기지로 쓰이다가 해방후에는 4·3사건이라는 아픈 역사를 겪은 제주가 이제는 무장갈등에서 자유로운 ‘평화의 섬’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제주 올레길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중덕해안을 다녀간 시민들도 거대한 용암바위인 구럼비와 천연기념물인 연산호 그리고 멸종위기종인 붉은발말똥게 지킴이를 자청하고 나섰다. 

1993년 해군이 새로운 기지 건설의 필요성을 제기한 이후 후보지로 거론되던 지역들은 하나같이 강하게 반대하며 계획 철회를 요구했다. 2002년 처음 예정지로 검토되던 대정읍 화순마을, 2005년부터 검토되던 남원읍 위미마을, 그리고 2007년 후보지 결정을 위한 여론조사가 있기 불과 17일 전에야 조사대상에 포함된 강정마을에 이르기까지 해군기지 건설 계획은 곳곳에서 거센 저항에 직면했다. 이들은 환경보전과 공동체 유지를 주장하며 군과 제주도정의 일방적 추진에 반대했다. 그럼 해군은 왜 제주에 기지 건설이 필요하다는 것일까. 또 이들에게 지역주민의 반대는 어떤 의미일까. 야5당이 구성한 국회진상조사단이 최근 개최한 공청회에서 그 일단을 찾아볼 수 있다. 

‘평화의 섬’에 들어서는 해군기지 

“거대한 국가번영과 국민의 풍요를 보장해야 하는 대의 앞에 내 지역의 이익과 내 것만을 주장하는 갈등과 대립의 현실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 일찍이 ‘평화를 바라거든 전쟁을 준비하라’는 격언이 있듯이 내가 지킬 힘이 없을 때는 평화가 존립할 수 없음을 역사가 증명하고 있습니다”(정삼만 해군대학 해양전략연구부장 대령, 2011.6.23 국회 진상조사단 공청회)

주목할 것은 군사기지 건설이 곧 국가번영이고 대의라고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이 자리에서 미 군함 기항시 미군의 헤픈 씀씀이로 경제적 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천박한 논리도 나왔지만, 무시하자.) 이들은 힘이 있는 국가만이 번영을 누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 신성한 ‘힘’은 곧 군사력을 의미한다. 이들에게 해군기지 건설 반대는 국가를 위해 국민이 기꺼이 감내해야 할 것을 져버리는 행위다. 

또한 이들에게는 절대보존지역으로 선정된 중덕해안과 구럼비를 파괴하는 것도, 연산호 군락지에 심각한 영향을 가하는 것도 그리 큰 문제가 되지 못한다. 군사기지 건설이 환경영향평가에 의해 좌우되어서는 안될 일이다. 오랜 세월 이웃사촌으로 지내던 공동체가 서로 원수 대하듯 대립하고 갈가리 찢기는 것도 불가피하다. 위법성이 드러난 입지선정 과정조차 “국방사업 역사상 가장 민주적인 절차로 결정되었다”고 우기기까지 한다.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국가안보이고, 이를 위해 해군기지는 반드시 건설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누구를 위한 국가안보인가

강정마을 주민과 기지반대운동측은 이러한 국가안보 논리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있다. 이들은 국가구성원인 지역주민의 민주적 의사결정을 무시하고 생존권을 짓밟으면서 얻고자 하는 국가안보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를 묻는다. 국책사업이라면 공동체를 황폐화시켜도, 요식적인 환경영향평가와 절대보존지역 해제 같은 각종 편법을 동원해서라도 추진되어야 하는가. 많은 비용을 들여 보호해오던 천혜의 자연경관을 파괴하면서 사실상 해군기지용의 관광 미항(美港)을 건설한다는 앞뒤가 맞지 않는 주장에 항변하는 것이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둘러싼 논란은 바로 안전과 위협에 대한 판단의 문제다. 또한 그 판단에 시민의 참여와 통제가 보장되고 있는지, 절차적 정당성은 갖추었는지에 관한 문제다. 국가안보의 중요성을 무시해서는 안되겠지만 누구의 안전이 우선되어야 하는지, 위협에 대한 군의 판단과 해석은 사회적 합의에 바탕을 둔 것인지, 절차적 정당성은 획득한 것인지가 우선 검토되어야 한다.

해군은 남방해역에서 ‘힘’을 자랑하고 싶을지 모르지만, 한국군의 독자적인 군사활동이 가능하다고 보는 이들은 거의 없다. 결국 미국과 중국의 해양패권 다툼에서 어느 한편에 서야 할 것이고, 그것이 가져올 군사적 긴장은 군사기지의 전면적인 확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 2006년부터 공군이 국방중기계획을 통해 제주에 전략기지를 건설하겠다는 뜻을 지속적으로 밝히고 있고, 미국의 미사일방어(MD)계획에 한국이 편입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이러한 우려를 키우고 있다. 해군 측에서 이것이 한낱 기우나 오해라고 주장한다면, 사실상 효용성 없는 해군기지를 굳이 건설하려는 것은 오로지 육군에 대해 상대적 박탈감을 갖고 있는 해군의 몸집 키우기라고밖에 볼 수 없다.

‘안보의 민주화’를 위한 운동에 나서자
  
정부와 군은 북한이나 중국을 염두에 둔 주변국을 위협으로 상정하고 있다. 그러나 위협에는 외부의 군사적 위협만 있는 것이 아니다. 시민의 안전과 권리를 침해하는 국가폭력도 중대한 위협이다. 애초 후보지도 아니었던 마을이 불쑥 해군기지 예정지로 여론조사 대상이 되고, 민주적으로 실시한 주민투표 결과를 인정해주지 않으면서, 절차적으로 심각한 하자가 있어도 기지 건설을 밀어붙이는 정부와 군을 지켜보는 이들에게 무엇이 ‘위협’이겠는가. 

야5당과 시민사회가 한목소리로 기지건설 중단을 요구해도 비웃기라도 하듯 공사를 강행하는 군이, 그리고 국회와 시민사회의 통제가 작동하지 않는 씨스템이 더 큰 위협은 아닐까. 국가가 규정한 위협에 동의하지 않고 정부정책에 저항한다는 이유로 탄압받는다면 더욱 그러하다. 이미 강정마을 주민이 고소 고발로 사법 처리된 사건만 15건이고, 마을회장에 대한 업무방해죄 소송 12건을 포함하면 모두 30건의 고소 고발이 진행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당장 해군이 기지공사를 중단하리라 기대하긴 어렵다. 지역주민의 반대가 정당하다고 해서 국방사업을 멈춘다는 것은 그들의 사전에 없는 일이다. 하지만 강정마을 주민과 시민들은 군과 정부의 정책에 대한 시민 참여와 통제, 절차적 정당성과 투명성 제고 등의 필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그런 면에서 제주 해군기지 반대는 ‘안보의 민주화’를 위한 운동이라고 볼 수 있다. 무엇이 위협이고 안전인지 해석하는 시민의 권리를 획득하고자 하는 노력 말이다. 지난 5년 동안의 싸움에서 강정마을 주민들은 이를 체득했다. 시민권이 배제되었던 안보영역에 도전하고 있는 이 운동을 눈여겨봐야 하는 이유다.

*이 글은 2011. 6. 29 <창비주간논평>으로 발표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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