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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군축센터    한반도 평화를 위해 비핵군축운동을 합니다

  • 비핵화
  • 2011.08.20
  • 3716
후쿠시마 핵사고와 한국 반핵평화운동의 과제



지난 2011년 3월, 한국의 평화운동가들 80여명이 모여 한국 평화운동의 방향을 토론하는 전략워크숍을 개최하였다. 상상력을 동원하여 한반도 평화와 미래를 그려보는 시나리오 워크숍도 진행했는데, 한반도 평화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상상 가능한 여러 변수들이 등장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머리  속에 채워져 있는 국제정세에 관한 정보와 구조적 분석을 뛰어넘는 상상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누구도 그 날 발생한 일본의 대지진과 쓰나미 그리고 후쿠시마의 핵사고를 상상하지도, 예측하지도 못했다. 전세계를 전장으로 삼고 있는 ‘테러와의 전쟁’의 본격적인 개시를 알렸던 9.11이 그렇게 왔듯이 말이다. 이처럼 인류의 역사는 인간의 예측과 상상을 뛰어넘는 사건, 사고들로 큰 전환점을 맞이하기도 한다.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 이후에도 핵의 평화적 이용 대대적으로 홍보했던 일본

그렇다고 이러한 사건들이 어느 날 갑자기 이유도 없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일에는 인과관계가 있다. 일본 후쿠시마 핵사고도 마찬가지이다. 1945년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핵폭탄이 떨어지고 난 이후 일본에서는 핵무기가 아니라면 평화적(상업적) 이용을 위한 핵은 선한 것이라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확대되었다. 일본의 피폭자(히바쿠샤)들이 그런 목소리를 내는데 이용되기까지 했다. 핵의 평화적 이용을 선전하기 위해 일본의 수많은 도시에서는 핵박람회가 꾸준히 개최되기도 했다. 그것은 미국으로부터 핵발전소가 일본에 들여오기까지 계속되었다. 후쿠시마 핵재앙은 어느 날 갑자기 이유없이 발생한 것이 아닌 것이다. 

인간이 자연에 지배받고 있고, 완전무결한 과학기술을 보유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인간사회는 작은 바람에도 무너질 수 있는 모래성을 쌓듯 핵발전소를 짓고, 폐연료를 매립하며 미래로부터 빌려온 지구환경을 재앙 속으로 밀어 넣어 왔다. 후쿠시마 핵사고는 다시 한 번 안전한 핵발전소는 없다는 것을, 핵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것이 얼마나 반평화적일 수 있는지를 인류에게 증명해주었다.

이러한 경각심은 적어도 일본 내에서, 그리고 독일을 비롯한 유럽국가들이 핵정책을 전환하도록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하지만 핵위기 초래에 대한 막중한 책임을 져야 하고 핵문제에 관한 논의를 주도하고 있는 핵보유 국가들은 지금 핵발전소의 안전과 핵테러 대비만을 강조하고 있다. 


후쿠시마 이후 탈핵으로 가는 세계, 무풍지대 한국?

안타깝게도 한국의 사정도 마찬가지이다. 일본 후쿠시마 사태 이후 한국의 원전문제에 대한 경각심이 예전보다 높아진 것은 사실이나, 일본의 재앙은 놀랍게도 한국의 핵정책에 그리 영향을 주지 못하고 있다. 한국 정부와 원자력계는 일본의 핵사고로 인한 방사능 물질 유출이 편서풍 때문에 한국에 피해를 주지 않을 것이라며 마치 주문처럼 반복적으로 말해왔다. 이러한 정부와 원자력 전문가들의 태도는 방사능 물질이 태평양으로 이동하는 것에 대해 국민들이 안도감을 느끼게 했다. 이럴 때는 지구촌이라는 공간개념이 생략된다. 태평양 상의 생명과 환경에 대한 고려도 생략된다. 일본으로부터 방사능 물질이 건너올 수 있으니 만반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반핵평화단체들의 주장은 국민들의 공포를 조장하는 것으로 치부되기까지 한다. 

한국 사회가 핵문제에 둔감해진 이유 중 하나는 오랫동안 한국 정부가 대대적인 광고를 통해 깨끗하고 안전한, 그리고 최근에는 현명한 원자력이란 신화를 만들어왔기 때문이다. 그 덕분인지 에너지 수급을 위해 핵발전소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논리가 마치 상식처럼 여겨지게 되었다. 그리고 다른 나라에 원전을 판매하는 것은 기술의 우수성과 국력을 과시하는 일인 것처럼 이해되고 있다. 핵의 파괴력이나 안전성에 대한 우려는 애당초 논의대상이 아니다. 지금까지 한국의 여러 원전에서 각종 방사능, 냉각재 누출사고가 일어났다는 사실이 수십차례 기록되고 있지만, 시민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정부가 이러한 사고들을 단순하고도 실무적인 작은 착오인 것처럼 사고를 은폐하고 왜곡하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일본의 피폭으로 해방을 맞이한 한국의 경우 핵은 처음부터 공포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1945년 일본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되면서 수많은 일본인들뿐만 아니라 재일 한국인 10만명이 피폭당했다는 역사적 사실도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피폭의 후유증이 대물림되어 고통받고 있는 한국인(한국인피폭자협회)들 중에는 핵발전은 물론 핵억지력도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이들도 있다. 한국 정부가 비밀리에 시도했던 핵물질 추출 시도, 즉 우라늄 고농축 시도나 플루토늄 재처리 시도를 아는 이들도 많지 않다. 뿐만 아니라 너무나도 당연시되는 미국으로부터의 핵우산 제공도 핵무기 사용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고리원전의 경우 안전성에 대해 한국인들보다 일본인들이 더 우려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올 지경이다. 후쿠시마 핵사고로 위기의식이 고조될 때 몸을 낮추던 한국 정부가 다시 신규 핵발전소 건설과 노후 핵발전소의 수명연장을 추진하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결국 한국 반핵평화운동의 핵심과제는 한국이 핵문제로부터 자유롭고, 핵공포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국가라는 대다수 시민들의 터무니없고 막연한 생각을 깨는 것이다. 빈번하게 일어나는 노후 원전의 사고가 우리들의 일상을 파괴하고 후손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가능성을 예고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무차별적인 대규모 살상무기인 핵무기나 북한의 핵무기 개발 문제만큼 핵발전소의 위험성과 그것이 남기는 폐연료의 저장과 매립, 핵물질 추출 등도 한반도의 미래와 평화가 걸린 중대한 문제라는 것을 알게 하는 것이다.


한국 반핵평화운동이 당면한 현안과 과제

한편 후쿠시마 사태 이후 모든 핵에 반대하는 연대활동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된 한국의 반핵평화운동이 직면해 있는 현안들은 매우 다양하고 급박한 것들이다. 북미관계, 북일관계의 정상화와 평화체제로의 전환과 함께, 북한의 핵무기 포기와 남한의 핵우산 포기를 통해 한반도 내 핵무기의 생산과 반입, 배치, 사용을 원천적으로 금지하는 한반도 비핵지대화(또는 일본의 비핵화를 포함하는 동북아비핵지대화)를 추구하는 것, UAE 원전수출 등 원전 해외수출 정책을 포기하도록 하는 것, 2014년 만료될 예정인 한미원자력협정의 개정협상에서 파이로프로세싱을 통한 한국 정부의 재처리 기술 확보 시도를 막아내는 것, 노후 원전의 재가동과 수명연장, 그리고 신규 원전 건설을 저지하는 것 등이 있다.  

특히 2014년 만료되는 한미원자력협정 개정 협상은 이미 3차례나 진행된 상태이다. 한국은 그동안 2016년 국내 원전에서 나오는 사용후 핵연료가 포화 상태에 이른다며 핵연료의 재처리가 가능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재처리를 못하게 하는 것은 일본과 비교해서 불평등하다는 주장도 빼놓지 않고 있다. 이미 한미 양국은 '파이로프로세싱'을 포함한 사용후 핵연료 관리기술에 관한 공동연구에 나서기로 합의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한미원자력협정 개정을 통해 핵연료의 재처리 기술을 확보하려는 한국 정부와 원자력계는 파이로프로세싱 기술이 재처리가 아닌 재활용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파이로프로세싱이 여전히 공인된 기술이 아니며, 플루토늄 추출 가능성을 결코 배제할 수 없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없다. 일본의 경우 지난 5월 사용후핵연료 재처리에 대한 전면 재검토 계획을 밝힌 바 있다. 그런 점에서, 재처리를 가능하도록 한미원자력협정 개정을 시도하는 한국 정부의 정책 방향은 핵비확산에 대한 국제사회의 염원과 시대적 과제에 정면으로 역행하는 일이다. 핵물질 생산의 도미노를 가져올 수 있고,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여정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점도 분명하다. 

또 다른 현안은 원전수출 문제이다. 한국의 이명박 정부는 원전 사업을 녹색 르네상스라며 차세대 주력사업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그 시작인 UAE 원전수주부터 많은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UAE 원전수주를 위해 사용후 핵연료의 재처리와 사실상 200억불에 가까운 UAE 원전건설 자금까지 떠맡게 되었기 때문이다. 최근 위키리크스를 통해 공개된 것처럼 국내 원전에서 폐연료 재처리를 시도할 수도 있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것이 바로 내년에 서울에서 열릴 2012 핵안보정상회의(Nuclear Security Summit)이다. 핵안보정상회의는 핵문제에 관한 한 최대 규모의 정상회의로, 2012년 서울 회의는 후쿠시마 사태를 계기로 핵안보 문제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2010년 4월, 워싱턴에서 열린 첫 핵안보정상회의에는 전세계 47개국 정상들과 국제기구 대표들이 모여 핵 테러 위협이 세계 안보에 가장 큰 위협이며, 핵물질이 테러단체에 넘어가지 않도록 공동의 조치를 취하자는 것이 강조되었다. 그 동안 안보의 수단이었던 핵이 안전하게 지켜야 할 대상이 된 것이다. 이는 핵군축, 핵비확산, 핵의 평화적 이용에 집중되었던 국제사회의 의제가 핵안보 문제로 확대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핵안보정상회의는 문제의 근원인 핵무기나 핵발전소의 축소나 폐기를 말하지 않고 원전과 핵물질의 안전을 도모하는 것으로 논의가 모아질 것으로 보인다. 그 동안 핵비확산 차원에서 크게 부각되었던 북한 핵문제도 후순위로 밀리거나, 안전 문제로 접근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핵안보정상회의의 정치적 성격도 빼놓을 수 없다. 한국의 19대 총선(4월 11일)을 코앞에 두고 큰 규모의 정상회의를 개최한다는 점에서 다분히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는 행사라고 할 수 있다. 2010년 회의에는 NPT에 가입하지 않은 채 사실상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인도· 파키스탄·이스라엘이 초청되었지만, NPT 회원국인 이란과 NPT 탈퇴국인 북한은 초청되지 못하는 등 미국과 국제사회의 이중잣대가 다시금 확인되기도 했다. 


2012년 3월 서울 핵안보정상회의, 핵발전소 수출과 기술과시의 계기로 삼는 한국
핵테러 방지와 핵안전을 강조하는 핵국가들
세계반핵평화운동 핵무기와 핵발전소의 폐기와 축소 요구해야

2012 서울 핵안보정상회의 개최를 바라보는 국내의 시각은 더욱 심각하다. 정부는 핵안보정상회의를 개최함으로써 한국의 “원자력 기술의 안정성과 우수성을 널리 홍보하고 원자력 산업의 해외 진출 기반을 더욱 공고히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며, “북핵 문제 해결에 대한 국제 사회의 의지를 결집하고 공고화시키는 효과도 거둘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히고 있다. 핵안보정상회의에 참여하는 대다수 국가들이 원전을 보유하지 않았거나, 원전 건설 기술을 갖고 있지 않다며, 한국의 원전 기술을 세계에 알리고 수출을 노리는 기회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서울 핵안보정상회의에 대한 정책 제언을 원자력통제기술원(KINAC), 원자력안전기술원(KINS) 등과 같은 원자력계로부터 구하고 있다는 것만 봐도, 정부가 핵안보정상회의를 어떻게 이해하는지를 충분히 알 수 있다. 결국 ‘핵 없는 세상’을 주창하며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오바마가 주도하는 핵안보정상회의는 핵 없는 세상과는 한참 거리가 먼 논의를 다시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핵 없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은 오바마 대통령도, 다른 핵국가도 아닌, 세계 반핵평화운동의 몫이라고 할 수 있다. 핵의 평화적인 이용이라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알려나가고, 핵무기와 핵발전소의 즉각적인 폐기와 축소 등 핵정책의 일대 전환을 촉구하는 세계 반핵평화운동의 역할이 요구된다. 지금부터 한국의 반핵평화운동은 물론 아시아, 세계의 반핵평화운동은 진정 핵 없는 세상을 요구하기 위해 ‘2012 세계핵군축시민회의’(가칭)를 조직하는 논의에 착수해야 한다.     
 

박정은 (참여연대 평화국제팀장)


* 이 글은 2011년 8월 5일 일본 히로시마에서 개최된 원수금(Gensuikin) 국제회의에서 발표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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