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주한미군 여중생 압사사건 피고인 무죄판결에 대한 시민사회단체의 입장 발표

주한미군 여중생 압사사건 피고인 무죄판결에 대한 시민사회단체 입장

이대로는 한미 관계를 정상적인 주권국 사이의 관계라 할 수가 없다.

어제(20일) 미군 군사법정은 지난 6월 경기도 양주에서 신효순, 심미선 두 학생을 장갑차로 압사시킨 미군 2명중 관제병 페르난도 니노 병장에 대해 무죄 평결을 내렸다. 운전병 마크 워커 병장에 대한 재판이 남아있긴 하지만, 어제의 결과를 볼 때 온 국민의 분노를 불러일으킨 이번 사건은 어처구니없게도 단 한 사람의 책임자도 없이 끝날 듯하다.

우리 사법부가 마땅히 행사해야 할 재판권이 미군 측에 넘겨진 상황에서 엄중한 책임 추궁이 어려울 것으로 예견되긴 했지만 아예 ‘무죄’라는 평결이 내려진 것에 대해서는 도저히 묵과할 수가 없다. 어린 학생 둘이 장갑차에 치어 목숨을 잃었는데 사병도 지휘관도 책임질 사람이 없다면, 도대체 장갑차 바퀴더러 책임을 지란 말인가?

이번 재판 결과는 일본 오키나와에서 벌어진 미군의 성추행사건에 대해 빌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이 직접 사과한 것과 비교되어 더욱 참담한 심정을 불러일으킨다. 이번 일은 우리 국민들 사이에 주한미군의 존재이유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불러일으킬 것이며 가뜩이나 고조되어 있는 미국에 대한 비판적 감정에 기름을 부을 것이다.

이번 재판은 애당초 공정할 수 없는 재판이었다. 재판부와 검찰은 죄를 엄중히 물으려는 의지를 보여주지 않았고 그저 재판을 연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급급했다. 핵심적인 논란거리였던 통신장비의 이상 유무와 관련하여 사전 점검에서 고장이 없었다는 증언은 유죄를 입증하는 결정적인 증언이었는데도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부대 중대장 증인 신청도 거부되었다.

무엇보다 배심원단이 모두 현역 미국군인인 상황에서 공정하고 엄격한 결과를 기대하기는 애초에 불가능했다. 배심원들과 피고인이 직업적인 동질성과 공감대를 가진 사람들로 구성되는 재판은 미국식 사법제도의 기준에 비추어서도 말이 되지 않는다.

주한미군 당국은 이번 사건 이외에도 한강에 독극물을 방류한 미군 군무원에 대한 한국 사법부의 재판을 거부하고 피고인을 사실상 도피하게 하는 등 끊임없이 명백한 중범죄자를 옹호하고 빼돌린 과거를 갖고 있다. 우리는 한국 국민의 안전과 최소한의 자존심조차 무시하는 미군당국의 오만함에 분노하는 것은 물론, 그 근저에 있는 불평등을 시정하기 위한 노력에 나서지 않고 있는 우리 정부의 무책임을 강력히 규탄한다.

우리는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 소파)의 철저한 재개정만이 더 이상의 억울한 죽음을 막을 방법이라고 믿는다. 소파는 과연 주권국간의 조약인지 의심스러울 지경으로 온갖 불평등한 요소를 담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된 형사재판권관할 문제의 불평등성이 이번 사건을 통해 극적으로 입증된 것이다. 소파 개정의 필요성은 그동안 미국 군무원의 한강 독극물 투입사건의 재판과정, 연이은 주한미군부대의 기름 유출 오염사건 등을 통해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따라서 우리 정부는 더 이상 지체하지 말고 소파 전면 개정에 나서야 한다. 소파의 개정은 본협정, 합의의사록, 양해사항 전체에 걸쳐서 이뤄져야 하며, 우리 국내법에 의해 재판절차가 진행되도록 명확히 규정하는 것은 물론 주한미군에 의해서 일어나는 범죄에 대한 원상복구 및 배상 의무 등을 명시해야 할 것이다. 우리 시민사회단체들은 <대선유권자연대> 명의로 각 당 후보들에게 제안한 “100대 정책과제”를 통해 소파의 개정방향을 상세하게 제시한 바 있다.

그러나 우리 정부의 태도는 한심하기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외교부는 소파 개정협상 때부터 개정안의 명백한 불평등성을 변명하는데 급급하더니, 이번 재판 결과에 대해서도 “재판을 투명하게 진행하려는 미군당국의 노력을 평가하며 이와 같은 결과를 수용할 수밖에 없다”며 개정은 이미 완료된 만큼 운용을 개선하는 식으로 대처하겠다고 입장을 밝히고 있다.

도대체 어느 나라의 외교당국인가? 한 나라의 주권을 유린하는 주한미군의 행태에 우리 정부가 제대로 대응할 의지를 가지고 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청와대와 외교 당국은 이번 일을 계기로 소파의 재개정을 통해 정당한 주권을 찾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선거를 앞두고 있는 각 당 및 각 당 대통령 후보들에게 촉구한다. 민주당, 한나라당, 국민통합21, 민주노동당은 무죄 판결 이후 즉시 소파를 재개정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차제에 각 당 후보들은 불합리하고 불평등한 소파의 전면 재개정을 국민 앞에 서약할 것을 촉구한다.

녹색연합,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참여연대,평화네트워크,평화를만드는여성회,한국여성단체연합,한국여성민우회,한국여성의전화연합,환경운동연합

첨부파일: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