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부하기로 작정을 했나, 원래 그랬나”

노 대통령 방미발언 비난 고조…남북대화 악영향 우려

미국을 방문 중인 노무현 대통령이 미국 현지시간 12일 저녁에 열린 코리아 소사이이어티 주최 만찬에서 북한체제 비난으로 읽힐 수 있는 발언을 해 파문이 일고 있다. 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미국이 53년 전 (한국전쟁에서) 도와주지 않았다면 나는 (북한 체제 하에서) 정치범수용소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방미 전인 지난 9일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 소속 의원들과의 청와대 만찬에서도 이미 나왔던 것으로, 즉흥적이라기보다는 자신에 대한 미 행정부와 여론의 불신을 해소하기 위한 준비된 발언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역사적 가정을 전제로 부시 행정부의 대북인식에 부응하는 발언을 한 것을 놓고 국내의 비난이 고조되고 있다. 한반도 평화 및 북한 전문가들은 “노 대통령의 발언은 일국의 대통령으로서 국민적 자존심을 고려하지 않은 것은 물론, 인권문제 등 국제사회의 체제문제 거론을 정면으로 비난해온 북한과의 향후 협상에도 악영향을 미칠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박순성 동국대 교수(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소장)는 “우리 정부는 북한과의 외교적 문제를 고려해 국제사회와 국내 일부 인권단체의 비판까지 감수하면서 지난 4월 중순에 있었던 UN의 대북 인권결의안 표결에 불참했는데 노 대통령이 미국까지 가서 북한 체제문제를 건드리는 발언을 한 것은 참으로 안타깝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이날 발언은 대통령의 대북관과 정치철학에 회의감을 느끼고 하고, 그에 기초한 대북정책 및 한반도평화정책의 안정성에 대한 신뢰감도 떨어뜨린다”고 꼬집었다.

대통령의 이날 발언으로 어렵게 물꼬를 튼 남북대화가 또 다시 꼬일 가능성도 높아졌다는 지적이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DJ정부 시절 최성홍 외교통상부 장관이 방미 중에 ‘북한에는 당근과 채찍이 동시에 필요하다’는 발언을 해 남북장관급회담이 연기된 적이 있다”면서 “노 대통령의 발언은 이보다 강경할뿐더러, 대통령의 발언이라는 점에서 북한 당국을 훨씬 자극할 것”으로 전망했다.

정 대표는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노 대통령이 북한의 체제문제에 대해 부시행정부의 입장에 동의하는 것은 미국의 대북강경책을 완화시킬 수 있는 논리적 근거를 잃어버리는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노 대통령의 발언은 이번 방미의 최대 목표로 잡았던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대해서도 부시행정부의 확답을 받지 못할 것으로 보여 그 심각성을 더할 전망이다. <워싱턴타임스>는 13일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말을 빌어 “북핵사태 해결을 위한 선택 대안의 하나로 선제공격론을 포함한 모든 대안이 여전히 열려 있다”고 발언한 것을 기사화했다. 미국의 선제공격론에서 북한을 제외시켜줄 것을 요구했던 노 대통령의 대미 외교목표가 부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도 갖기 전에 백악관의 유력인사에 의해 부인된 셈이다.

대통령의 발언과 태도가 알려지면서 지난 대선에서 강력한 지지층이었던 네티즌의 반발도 거세지고 있다. 인터넷 매체의 독자의견란에는 “지난 대선에서 내가 누구를 찍었단 말인가?”, “사진찍으로 미국에 가지는 않겠다는 발언은 한낱 쇼에 불과했단 말인가”, “미국에 아부하기로 작정을 했는지, 원래 그랬는데 우리가 착각한 것인지 모르겠다”는 등 노 대통령의 대미외교에 대한 비난과 실망을 토로하는 글들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장흥배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