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군축센터 일반(pd) 2004-01-20   726

<이제훈의 평화바이러스> 대한민국 외교관은 무엇으로 사는가

통일부와 외교부가 있다(외교부의 정식명칭은 외교통상부이나 흔히 외교부라 약칭한다. 통상이 아닌 외교와 관련한 논의에 집중할 이 글에서도 외교부로 부른다). 다들 알다시피 통일부는 남북관계와 관련된 전략수립과 정책집행을 맡고, 외교부는 남북관계를 뺀 외교일반을 맡는다. 분단국가의 특수성이 반영된 정부 부처 편재다(통일 전 서독에도 ‘내독관계부’가 있었다. 나는 통일부라는 부처 명칭을 남북관계부로 바꾸는 게 적절하다는 생각이다).

이런 부처 편재는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남북기본합의서) 전문에서 “(남과 북)쌍방 사이의 관계가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는 남북관계에 관한 규정에 부합하는 것이기도 하다.

역사와 현실을 고려할 때, 한국 정부에 대북 관계, 대미 관계만큼 중요한 ‘외교’ 영역은 없다. 때문에 남북, 한-미, 북-미 관계는 삼각형의 각 변처럼 서로를 지탱하는 지지대와 같다. 당연하게도 통일부와 외교부의 업무 영역은 상호중첩적이며, 긴밀한 협의가 불가피하고 절실하다. 그러나 밖에서 생각하는 것처럼 통일부와 외교부의 사이가 좋거나, 긴밀해야 할 협의가 무난하게 잘 이뤄지지는 않는다.

외교부는 엘리트 의식이 지나치게 강해 통일부 공무원들을 ‘촌놈’ 대하듯 하며, 낮춰보는 경향이 있다. 다카키 마사오(박정희 전 대통령)에 의해 국토통일원이라는 이름으로 출발한 통일부는 대통령의 직할 통치 영역이었고, 중앙정보부-안전기획부-국가정보원으로 이어지는 정보기관의 막강한 힘에 눌려 주눅이 들어 있었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정확하게는 남북간 각종 당국회담과 민간-정부 차원의 교류협력이 봇물을 이룬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실제로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명실상부한 정부부처로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통일부와 외교부는 그렇게 가깝고도 먼 이웃이(었)다. 두 부처의 공무원들은 상황 파악 방식과 문제 접근법 또한 사뭇 다르다. 예컨대 이른바 ‘북핵 문제’처럼 한반도 정세에 큰 영향을 끼칠 민감한 사안이 불거지면, 둘은 서로 다른 반응을 보인다.

통일부 공무원들은 거의 본능적으로 ‘북한의 처지와 시각’을 염두에 두고 사안에 접근한다. 반면 외교부 공무원들은 마찬가지로 거의 본능적으로 ‘미국의 시각과 접근법’을 주된 변수로 놓고 정책대안을 모색한다. 그래서, 요즘 언론에 자주 나오는 무척 잘못된 이분법을 동원하자면, 통일부는 ‘자주파’일 수밖에 없고, 외교부는 ‘(한-미)동맹파’가 된다.

이건 나쁜 일이 아니다. 오히려 바람직하기까지 하다. 북한에 대해서 그렇듯이, 미국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몰라서는 한국의 나아갈 바와 대처 방안을 제대로 마련하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한국처럼 주변에 4강국이 버티고 있는 작은 나라가 지혜롭지도 못하다면,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버텨나갈 수 있겠는가.

신기남 열린우리당 상임중앙위원의 ‘숭미주의자’비판이 아니더라도, 문제는 외교부가 지나치게 동맹중심적(좀 거칠게 표현하자면 ‘친미사대주의적) 사고와 행태를 보인다는 점이다. 물론 김대중 정부 이후 한국 외교부는 ‘숭미’(崇美)에서 ‘용미’(用美)로 무게중심을 옮기기 위해 애쓰고 있고, 나름의 성과도 있다.

요즘 대통령을 비롯해 여러 사람들한테 뭇매를 맞고 있는 외교부 공무원들은 ‘하잘 것 없는 너까지 우리한테 칼질이냐’며 울분을 토할지도 모르지만, 마냥 억울해할 일만도 아니다. 외교 공무원 가운데 ‘성골’들만 간다는 외교부 북미국의 간부급 공무원들이 ‘용미주의자’이기보다는 ‘숭미주의자’에 가깝다는 평가는 외교안보 전문가들 사이에서 그리 듣기 어려운 이야기가 아니다.

김대중 정부 시기, 미국에서 조지 부시가 대통령이 되고 난 뒤, 남북관계가 한겨울의 얼어붙은 한강마냥 냉랭해졌을 때, 임동원 외교안보통일 특보는 ‘김대중 대통령의 대북 특사’로 북한을 두 차례 방문했다.

그 첫 번째는 2002년 4월3∼6일 방북이었다. 이때 임 특보는 김정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 국방위원장을 만나 “북남관계를 원상회복시키겠다”는 다짐을 받아왔고, 그해 9월 경의-동해선 철도·도로 연결공사 착공식이 이뤄지는 등 실제로 남북간 교류협력은 다시 활발해졌다. 김대중 대통령은 임 특보를 통해 김 위원장에게 ‘북한이 미국, 일본과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조언했고, 김 위원장은 그 뒤 미, 일과 관계개선을 위한 적극적 조처를 취했다. 알다시피 그 해 9월17일 고이즈미 일본 총리의 방북과 북-일 정상회담이 열렸다.

특사 방북의 결과를 놓고 보자면, 남북관계 뿐만 아니라, 북-미, 북-일 등 외교부의 주요 업무 영역에 속하는 일들도 비중있게 논의됐음을 알 수 있다. 상황이 이렇다면, 특사방북단에 외교부 공무원이 포함돼야 상식적일 것이다.

그러나 방북단에 외교부 공무원은 없었다. 당시 임 특보를 보좌한 방북단의 공무원들은 국정원의 김보현 3차장과 서훈 조정관, 통일부의 조명균 교류협력국장과 김천식 정책총괄과장뿐(현 남북회담사무국 회담운영부장)이었다.

왜 그랬을까. 왜 외교부 공무원은 단 한 명도 포함되지 않았을까. 남북관계는 외교부의 영역이 아니라, 통일부의 고유 업무영역이라서? 대미관계를 원활하게 풀어야 하고, 특사 방북 결과를 미국에 설명할 책임을 짊어진 외교부는 당연하게도 특사방북단에 한 명이라도 포함시키려했다. 그러나 결과는 그렇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북핵문제’로 불리는 북-미간 갈등이 비등점을 향해 치닫던 지난해 1월27∼29일 임 특보가 다시 대통령 특사로 방북했다. 이때에도 외교부에선 아무도 특사방북단에 포함되지 못했다. 이종석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인수위원(현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처 사무차장), 서훈 국정원 국장, 김천식 통일부 남북회담사무국 회담운영부장 등이 임 특보를 수행했다. 이밖에 특사 방북 직전 미국을 방문하고 돌아온 임성준 대통령 외교안보수석비서관도 특사 방북단에 포함됐다.

청와대에 들어가기 전 외교부 차관보였던 임 수석은 외교부 몫이라기보다는 직전 방미 협의 때 파악한 미국의 의중을 북쪽에 설명하기 위한 차원에서 포함된 것으로 평가받았다. 2001년 4월 특사 방북 때와 마찬가지로 2003년 1월 특사 방북 때에도 임 특보는 외교부 공무원을 방북단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남북관계는 통일부 몫이라서? 특사 방북단의 숫자(7∼8명)가 워낙 작아 외교부 공무원까지 데려갈 수 없어서? 아니다(나로선 나름의 취재와 분석을 거친 판단이 있지만, 지금 그 얘기를 하고 싶지는 않다).

어쨌거나 외교부 공무원들은 그때 진지하게 성찰했어야 했다. 특히 외교부 ‘성골’들은. 역사와 민심, (외교부 ‘성골’들이 촌스런 비주류라고 생각하는) 권력핵심이 대한민국의 외교관들에게 무엇을 기대했는지를. 서글프고도 쓰라린 반세기 분단의 역사와 이별하려는 거대한 한걸음이었던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 이후 달라진 남북관계와 한미관계에 대해. 우리가 평화와 통일의 너른 바다로, 21세기 지구마을의 책임있는 주권국가로 거듭나려면 대한민국의 외교관들이 전과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에 대해.

누군가 그러지 않았던가. 이미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바로 행동해야 할 시기라고. 때는 아직 늦지 않았다.

첨언 : 언론에선 최근의 사태와 관련해 ‘자주파’와 ‘동맹파’의 권력투쟁에서 ‘자주파’가 완승을 거뒀다는 평가를 많이 하는 듯하다. 정치권에선 ‘반미주의자가 권력을 장악했다’는 정치공세도 나오는 형편이다. 나로선 동의도 이해가 안된다.

내가 아는 한, ‘자주파의 거두’로 거론되고 있는 이종석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처 사무차장은 좌파도, 친북도, 반미주의자도 아니다. 조선노동당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대표적인 북한 전문가인 이 사무차장은 학자치고는 현실주의적인 편이고, 이념적으로는 중도-온건 개혁 쪽에 가깝다. 대명천지에 미국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해 전투병을 포함한 3000여명의 군인을 이라크에 보내기로 결정하는 자주파도 있는가.

내 보기에 자주파와 동맹파의 권력투쟁이라거나 자주파의 완승이라거나, 이런 식의 보도는 사태에 대한 엄정한 분석이라기보다는 참주선동에 가깝다. ‘물정 모르는 (영어도 못하는) 좌익-친북-반미주의자들이 나라를 말아먹는다’는 참주선동 말이다. 생각해보면, 2001년 여름 임동원 당시 통일부 장관이 국회의 해임결의로 밀려날 때에도 그들은 그랬다. ‘임동원은 좌익-친북-반미주의자’라고.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이다. 평북 출신으로 육군소장을 지낸 임동원은, 내 경험과 판단으론 한국에선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존경할만한 (온건)보수주의자’일뿐, 좌파나 친북이나 반미하고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최근 외교부의 한 중간 간부는 “나라의 장래가 걱정”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영어도 못하는 반미주의자가 권력을 장악해서?’ 아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자칭 주류-보수주의자라고 하는 수구파들은 너무 자질이 떨어진다. 21세기 한국이 주권국가로 살아나갈 전략적 비전도 전혀 없고….” 용산미군기지 이전 협상과 관련해 미국의 부당한 요구와 정부의 협상력 부족을 질타하지는 못할망정 미군의 한강 이남 전부 이전은 서울을 북한군의 장사정포의 먹거리로 내놓는 격이라는 시대착오적 참주선동을 일삼는 어떤 이들을 보면 나도 절로 한숨이 나온다.

이제훈 한겨레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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