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조원 국책사업 결정이 경미한 사안인가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소장 박순성 교수)가 9월 29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지적한 “30조원대 한국형다목적헬기(KMH)사업 추진결정의 문제점”은 여러모로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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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30조원이나 되는 국책사업을 결정하는데 있어서 관련법규가 규정한 최소한의 의사결정 절차조차 없었다는 점부터가 충격이다. 이 사업의 의결단위인 ‘항공우주산업개발정책심의회(위원장 고건 국무총리)’는 KMH를 결정하기 위해 2000년 이후 처음으로 열렸다. 그러나 면밀하고 실질적인 검토과정은 커녕 회의도 없이 지난 19일 위원들의 서명만으로 KMH사업을 ‘범정부 차원의 국책사업’으로 결정한 것이다.

“경미한 사안인 경우, 회의없이 서명으로 결정하기도 한다”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는 사실수집을 해가면서도 상당히 고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설마 정부가 이렇게 무성의하고 무책임하게 30조원 투입을 결정했을까라는 의구심에 수차례에 걸쳐 주무부서 관계자들에게 사실확인을 했음을 밝혔다.

그러나 확인과정에서 듣게된 주무부처들의 답변은 이러한 고심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이 사안과 관련하여 소관위원회 위원장이 있는 국무조정실에 확인해 본 결과 ‘항공우주산업개발정책심의회’는 열리지 않았으며, 산업자원부 관계자들이 해당 위원들을 찾아다니면서 서면으로 서명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직접 통화했던 평화군축센터 권상훈 간사에 따르면 국무조정실 관계자는 “경미한 사안인 경우, 이렇게(회의없이 서명만으로) 의사결정을 하기도 한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권상훈 간사는 “30조원의 국책사업이 경미한 사안이냐”고 항의했으나 그에 대해서는 아무런 해명을 듣지 못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실무자차원의 회의조차 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것은 물론 이 사안에 대한 주무부처의 의식수준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비판했다.

타당성 검토한 유일한 보고서부터가 부실덩어리

의사결정과정 뿐 아니라 타당성 검토과정에 대해서도 강력히 문제제기되고 있다. 이번 결정의 유일한 검토자료라는 ‘KDI보고서’는 최소한의 객관성과 신뢰성조차 확보하지 못했음이 속속들이 드러나고 있는 실정이다. KDI는 검토용역을 발주처 산하기관으로 역하청을 주기까지 했으며, 심지어 용역연구소 중 국방과학연구원은 연구비용역 8000만원 중 7800만원을 사무실 공사비와 사무집기 구입 등의 명목으로 불법 전용했음이 감사원 감사결과에서 밝혀지기도 했다.

이렇게 작성된 보고서조차도 KMH사업의 타당성에 대해 확실한 답변을 못하고 있다. KDI보고서는 “500여대 정도여야 투자가치가 있는 것”이라는 견해인데, 1998년 기준으로 군과 민간이 보유한 헬기 전체가 126대에 불과한 국내 상황을 고려해보면 KMH추진근거는 더욱 무색하다고 볼 수 있다.

이태호 정책실장은 “검토단계에서는 6∼7조원이라던 사업이 어느새 30조원이 되었다. 이렇게 부실한 타당성 검토를 근거로 사업을 진행한다면 KMH는 제2의 경부고속전철과 경인운하사업이 될 가능성이 높다. 앞으로 얼마만큼의 국고가 더 투입되어야 될지 알 수 없다”고 비판했다.

참여연대, 감사원에 국민감사 청구할 예정

박순성 평화군축센터 소장은 이번 사안에 대해 참여연대는 3가지 차원으로 접근할 계획임을 밝혔다. 우선 ‘항공우주산업개발촉진법’과 ‘공공기관의기록물관리에관한법률’을 위반했으므로 의결자체가 무효임을 주장하며 해당경위에 대한 진상조사를 요청할 계획이다. 여기에 ‘KDI검토보고서’는 물론 이번 사업자체에 대한 타당성 조사에 대해 감사원에 국민감사를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동시에 이번 주중에 장영달 국방위원장을 면담하고 이번 사안에 대한 국정감사 차원의 집중조사를 요청할 계획이다. 이태호 정책실장은 “서명한 위원들은 직무유기에 해당될 수 있다. 이에 대해 법률검토 중이다”고 밝혔다.

KMH사업이 예산낭비 국책사업의 연장선에 놓일 것인가 아닌가는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가 이번에 제기한 문제제기를 감사원과 국회에서 적극적으로 받아 조사를 진행해 봐야 최종 판정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일단 30조원의 국책사업을 결정하는데 있어 신중한 타당성 검토와 적절한 의사결정 절차가 없었다는 점에서부터 또하나의 예산낭비 국책사업이 될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낳고 있다.

최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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