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군축센터 칼럼(pd) 2004-07-20   691

<안국동窓> ‘여름의 맥박’ 걱정스럽다

‘여름의 맥박’이 요동치고 있다. 지난 6월부터 시작된 미국의 항공모함 훈련이 바야흐로 본격화되고 있다. ‘여름의 맥박 04’라고 명명된 이 훈련에 따라 미국 항공모함 7개 함단이 세계 도처에서 동시에 ‘근육 강화’ 작업을 하는 것이다.

태평양에서는 항공모함 세 척이 동원된다. 항공모함 스테니스호가 알래스카 인근에서 훈련을 마치고 하와이로 이동하여 현재 환태평양훈련에 참가하고 있고, 키티호크호는 환태평양훈련 이후 스테니스호와 함께 서태평양에서 공동훈련을 하게 된다. 최근 완성된 레이건호는 버지니아주 노퍽항에서 출발하여 남아메리카 대륙을 순회하며 훈련한 후 태평양에 진입하여 모항인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항에 기항한다.

훈련이라고는 하지만 7개 항공모함을 동시에 가동하는 것은 세계 최강인 미 해군으로서도 처음이다. 지금까지는 12개 항공모함 전단을 6개월씩 순환배치했기 때문에 어느 한 시점에 해외에서 작전중인 항공모함은 3대에 불과했다. 이러한 운용방식을 좀더 효율화하여 유사시 동원 가능한 항공모함을 두 배로 늘린 것이다.

‘함대 대응 계획’이라는 새로운 운용방침을 보면 항공모함 타격단은 전진배치에서 모항으로 귀항하는 즉시 정비와 훈련을 받고 전선투입 준비상태를 유지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미 해군은 필요한 경우에 6개 항공모함 타격단을 세계 어느 곳이든지 30일 이내에 투입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시적으로 보유하게 된다는 것이다.

항공모함 운용방식을 이렇게 공격적으로 전환시킨 배후에는 럼스펠드 국방장관이 추진하는 ‘10-30-30 전략모드’가 있다. 곧, 10일 이내에 세계 어느 곳이든지 군사력이 집중적으로 투입되어, 30일 이내에 승리를 거두며, 이후 30일 이내에 새로운 분쟁에 투입될 준비태세를 갖출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 내용이다. 양보다는 질을 앞세우는 방향으로 군을 개혁해, 냉전시기의 구식군을 21세기 최첨단군으로 환골탈태하여 군의 신속성을 극대화하려는 것이다. 최첨단 과학기술과 새로운 작전개념, 이와 걸맞은 군사조직이라는 삼박자를 결합하여 군사력을 혁신적으로 강화하겠다는 이 계획은 럼스펠드 장관의 진두지휘 아래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첨단군이 지향하는 능력이 ‘10-30-30’이다.

이러한 변화에 비추어 볼 때 미군이 한국에 몇명 배치되어 있느냐는 대북 억지력의 핵심이 아니다. 유사시 신속히 투입 가능한 미군 군사력이 핵심인 것이고, 이 능력은 지속적으로 강화되고 있다. 부시 행정부의 전략이 전쟁 억지라기보다는 예방전쟁에 중심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의 대북 억지력이 아니라 미국의 대북 선제공격력에 유의해야 한다는 것을 이번 ‘여름의 맥박’이 보여주고 있다.

박동하는 ‘여름의 맥박’은 그러나 치명적인 질병을 앓고 있다. 이라크전쟁이 그 한 증상이다. 개전 초기만 해도 럼스펠드 국방장관의 ‘10-30-30 모드’는 순풍에 돛단 듯 보였다. 신속하게 군사력을 투사하여, 신속하게 작전을 전개하여, 신속하게 ‘상황 끝’을 선언하고 다음 전쟁을 준비하려는 순간 발목이 잡혔다. 이라크 저항세력에게.

박동하는 맥박은 혈액을 근육에만 공급했기에 미국의 뇌와 가슴은 빈사상태가 되고 있다.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의 최근 보고서를 보더라도 미국의 국방비가 세계 모든 국가 국방비의 절반에 이를 정도로 미국은 엄청난 금액을 군사력에 퍼붓고 있다. 그 결과 울퉁불퉁 튀어나오는 자신의 근육에 취한 것일까 근육질 점령군에 대한 이라크인들의 좌절과 분노를 느낄 가슴과 이들을 이해할 두뇌는 기능중단 상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기능의 부조화는 이라크인에게 불행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미국 자신과 세계 평화에도 불행한 일이다.

그래도 최강국인 미국이 조만간 이라크에서 승리를 거둘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2001년 미국이 시작한 전쟁을 보라. 이라크보다도 작은 빈국, 아프가니스탄에서조차 ‘근육질’ 미국은 전쟁을 끝내지 못하고 있다. 아직도.

* 이 칼럼은 <한겨레신문>에 게재된 것입니다.

서재정 (코넬대 정치학과 교수, 평화군축센터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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